내 가슴에 값진 보물

권오인 수필가 | 기사입력 2021/10/21 [13:44]

▲ 권오인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가을비는 곧게 서서 창가로 달려온다. 이런 날 새들은 비를 맞으며 기도드린다. 그들의 간절한 주문은 대부분 먹잇감에 집착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나도 새의 사유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회안도 느낀다. 지금까지 한편으로는 먹고살기 위해 뛰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가을비가 지친 삶의 궤적을 일깨워 인생무상의 좁다란 곁길로 끌고 가나 싶어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본다.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라지만 모처럼 책꽂이 정리를 시작했다. 가치를 상실한 월간지는 퇴출시키고 새로 산책들을 그 자리에 배치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보다 흩어진 잡서들을 다시 들춰보았다. 정말 불에 태워 버릴 만큼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생각하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들 중에는 소중히 보호받아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쓸모없거나 독이 되어 버려야 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인류의 유산으로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가치 있는 정신, 철학, 제도, 예술품 등의 디딤돌은 소중히 간직해야겠지만 해악이 되는 낡은 사고방식, 낡은 패러다임 같은 걸림돌은 치워야 한다. 

 

얼마 안 되지만 책꽂이에서 쓰레기통으로 옮겨 놓으니 홀가분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해묵은 소중한 것들은 먼지를 털고 닦아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만이 가치를 부여하고 아끼는 소중한 사람이나 정신적, 물질적인 보따리가 보인다. 비 오는 호젓한 날이니 무엇이 들어있나 풀어보자.

 

우선 소중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는 반월(半月)이라는 내 아호(雅號)다. 그리고 우리 집 당호(堂號)는 반월당(半月堂)이다. 아호와 당호를 같이 쓰고 있는 셈이다. 사람의 호칭은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풍아한 아호를 멋스럽게 칭하는 것도 좋을 듯해서 작명했는데 누군가 내 호를 불러주면 좋겠다. 구태여 호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아직 부족하지만 중용이고 미앙(未央)의 행태’라고나 할까 싶다. 

 

호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서산시청에 근무하던 윤군상 국장이 이름 부르기가 어색하다며 호를 물어왔다. 당시 호가 없었지만 갑자기 놀려주고 싶은 끼가 발동했다. 내 호를 알려주면 반드시 불러주겠다는 다짐을 받고 말했다. 호는 형통할 형(亨) 그리고 수풀 림(林)이다. 이제 불러보라고 했더니 “형님!” 하고 딱 한번 부르고 지금껏 부르지 않는다. 이제는 반월이라 불러다오. 

 

어느 날 달갑지 않은 밉상이 왔다. 보조의자 하나 끌어다 옆에 놓고 귀동냥한 폐기된 정보를 구습으로 한참 풀더니 자신에 어울리는 호를 작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쁘지만 빨리 보낼 심산으로 순발력 있게 불러 주었다. 나 아(我)에 벗 우(友)가 딱이다. 어떠냐고 의사를 물으니 좋다고 대답하길래 이제부터는 이름 대신 호를 부르겠다며 “아우”라고 불렀더니 옆에서 욕을 내뱉고 도망쳤다. 어찌나 고소하던지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호를 부탁하여 작명했다. 도청 산림과장을 했던 김영수 과장은 향산(香山)이다. 그 의미는 ‘풋 향내 나는 산 사랑의 덕장’이다. 감사위원장을 역임한 이완수 위원장은 백소(白素)다. 의미는 ‘순수한 포용과 청렴한 선비’다. 교육원장을 했던 황수철 원장은 소담(沼潭)이다. ‘무릇 인간의 샘 같은 군자’를 의미한다. 지인인 노복래 사장은 우담(𦔊潭)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연꽃이 약속된 샘에 핀다’라는 의미다. 이 절친들은 호가 의미하는 이상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불러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두 번째는 요즈음 희소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최범진이라는 수양아들이 있다. 외모는 균형 잡힌 큰 체격에 수려한 멋에 더하여 마음은 온화하고 따뜻한 사나이다. 아주 예의 바르며 정과 의리를 겸비한 서글서글한 사내다. 아들과 인연이 되었던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범진이 아버지인 최성규 회장과는 평소 호형호제로 지내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 아우가 아들 범진이 결혼식에 주례를 부탁했다. 정성을 다하여 준비했다. ‘인디언들의 결혼 시’ 내용만큼이나 깊은 마음을 담아 내용을 작성하고 또 주례사를 인쇄하여 케이스에 담았다가 결혼식이 끝나고 선물로 신랑신부에게 주었다. 

 

그 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서 최성규 회장이 우리 아들 주례를 서 주었으니 평생 멘토가 될 수양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당황스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사자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선뜻 나서며 답변을 채근했다. 생각하고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수양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이지만 오는 사람 손을 잡아준 것은 나의 자격 여부를 떠나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정현종 시인에 ‘방문객’이라는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감동인가? 내생에 동반자로 인연이 된 수양아들 범진이 내외와 손자 동화, 그리고 아우 성규와 제수씨가 고맙고 또 고맙다. 

 

세 번째는 우리 집에 4대째 같이 살아온 유품 174점을 태안문화원에 기증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보존 가치를 불문하고 소장하고 있던 동이 3점을 비롯하여 나무 절구통, 대바구니 그리고 밥그릇, 국그릇, 접시 등 소품 171점과 함께 총 174점을 보냈다. 

 

김한국 문화원장이 귀중한 물품을 가정에서 보관 관리하기보다는 온습도 시설이 있는 문화원 수장고에 보관하면 좋겠다며 졸랐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싶었으나 어머니께서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유품을 함부로 내주느냐며 걱정을 했다. 마음이 누그러졌을 즈음 문화원에 기증하면 온습도를 맞추어 영구히 보존할 수 있다고 설득하여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웃는 낯으로 떠나보냈다. 

 아이들 키만큼 큰 동이는 제법 나이를 먹었다. 통정대부에 추증되었던 증조부께서 벼를 보관하기 위해 구입했던 많은 살림살이 중의 하나로 대물려 오늘에 이르렀다. 

 

둥근 동체에 짙은 회색의 무문 토기지만 특징은 입구 하단에 손가락 끝으로 눌러놓은 듯한 23개의 모양을 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100㎝, 구경 65㎝, 둘레 235㎝로 벼 3가마를 담을 수 있는 큰 동이다. 이 동이의 생산지는 원북면 분점으로 추정된다. 분점은 지금의 학암포로 그곳은 조선시대부터 질그릇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고 내수에도 기여했던 많은 가마가 있었던 곳이다. 

분점에서 우리 집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어선을 이용하여 운반했을 것이다. 이후 태안문화원에 유품을 기증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한 충남 역사문화연구원 박병희 원장이 하도 졸라서 소장하고 있던 유품 72점을 역사문화원에 보냈다. 

 

앞으로도 집안 깊숙이 넣어둔 귀한 유품을 추가로 기증할 예정이다. 선조께서 물려주신 소중한 유물들을 각 기관의 수장고에 잘 보관·관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사료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보따리를 하나 더 푼다면 우리 아내가 소장하고 있는 대물림 금반지다. 몇 대조 할머니께서 시작하여 내려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머니한테 대물림의 뜻과 함께 물려받은 금반지다. 어머니도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아지자 우리 집 큰며느리에게 대대로 대물림하는 금반지라며 주셨다. “잘 간수하였다가 며느리한테 주라”는 말도 덧붙였다며 얼마 전에 아내에게 물려주셨다. 이 금반지는 무게는 잘 모르지만 적당한 크기에 투박하고 볼품은 없다. 하지만 조상에 얼과 정이 물씬 배어있는 소중한 보석인 셈이다. 이보다 더 고귀한 가풍의 끈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숭고함은 국립박물관에도 단연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훌륭한 선대에서 시작하여 후대로 이어지는 대물림의 금반지 자체도 소중하지만, 그 뜻에 대한 경의와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이 반지 또한 훗날 예쁜 맏며느리한테 조상들의 뜻과 얼을 담아 바통 터치해야 할 날이 오겠지. 이만하면 묻어두고 가기보다 햇볕에 내보인 것이 잘했다 싶다가도 오히려 소중한 것이 바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precious treasure in my heart

 - Kwon Oh-in Essayist

 

The autumn rain stands upright and runs to the window. On this day, the birds pray in the rain. Most of their desperate spells will be obsessed with their prey. From a certain point of view, I also feel a sense of remorse that I am not far from the thoughts of birds. Until now, on the one hand, I was running to make a living. Perhaps the autumn rain awakens the trajectory of her exhausted life and leads her to the narrow side road of her life, shaking her head and trying to wake her up.

 

Rainy days are days off, but I started organizing my bookshelves. The monthly magazine, which lost its value, was withdrawn and new walks placed in its place. Rather than a neatly organized library, I looked at the scattered miscellaneous books again. I wonder if it's really of no use to me enough to burn it down, so there are certain things born in this world that need to be protected and useless or poisonous. Stepping stones such as valuable spirits, philosophy, institutions, and works of art that should be preserved as human heritage should be cherished, but obstacles such as old ways of thinking and old paradigms that are harmful should be removed.

 

It's not much, but moving it from the bookshelf to the trash can was a breeze. And the precious things that have been around for a long time were dusted off and wiped to reflect on their value and meaning. As a result, you can see precious people or mental and material bundles that only you value and cherish over the course of your life. It's a quiet rainy day, so let's unpack what's in it.

 

First of all, one of the things I cherish is my nickname, the half moon (半月). And our house is called Banwoldang (半月堂). It means that you are using the aho and dang sign together. A person's name is important.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call the rich Aho stylishly rather than calling my name as I get older, so I named it, but I hope someone calls me by my name. If I were to give the meaning of the old Taeyeo Ho, I would say that it is 'still not enough, but it's moderate, and it's a bad behavior'.

 

There is an anecdote related to the ho. Director Yoon Gun-sang, who worked at the Seosan City Hall, asked for his name, saying it was awkward to call his name. At that time, there was no interest, but suddenly a talent to play with was activated. He promised to call me if I gave him my number, he said. The arcs are the prosperous older brother (亨) and the bush forest (林). When I asked him to call me now, he said, “Brother!” And I called it only once and never called until now. Call me half moon now.

 

One day, an unwelcome hater came. He dragged an auxiliary chair and put it next to him, and after unraveling the discarded information for a long time, he asked him to name a room that suits him. Although he was busy, he called me quickly with the intention of sending it quickly. My friend Woo (友) is perfect for me (我). When I asked the doctor how he was doing, he said yes, so he said, “I will call you by name instead of my name from now on. No matter how much I complained, I still laugh.

 

In the meantime, my friends around me asked for a name and named it. Kim Young-soo,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provincial forestry department, is Hyangsan (香山). Its meaning is ‘the virtue of living love that smells fresh’. Chairman Lee Wan-su, who served as the chairman of the audit committee, is Baek So (白素). Its meaning is ‘pure inclusiveness and an honest scholar’. Hwang Su-cheol,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education center, is So-dam (沼潭). It means ‘every gentleman like the fountain of man’. My acquaintance, President Noh Bok-rae, is Woo Dam (𦔊潭). It means ‘lotus flowers unstained by the world will bloom in the promised spring’. These best friends have lived a life beyond what Ho meant. Now, many people consider it precious and want to call it.

 

The second one is rare these days, but I have a precious and proud foster son named Choi Beom-Jin. In addition to his well-rounded and large physique, he has a gentle and warm heart. She is very polite and a sad, sad man who combines affection and loyalty. It dates back to 2012, when she had a relationship with her son.

 

Bum-jin and her father, Chairman Choi Seong-gyu, were the only ones who usually worked as a ho-hyeong-ho. The brother asked his son Beomjin to officiate at the wedding. She prepared with all her heart. I wrote the content as deeply as the content of ‘A Poem of Indians’, printed the wedding ceremony and put it in a case, and gave it to the bride and groom as a gift after the wedding.

 

Then he went on a honeymoon and was invited to dinner. On the spot, Chairman Choi Seong-gyu officiated my son, so he created an embarrassing atmosphere, saying that he would like to become a foster father who will be a mentor for the rest of his life. The parties were willing to come forward and answer the questions like GoStop. Without time to think and hesitate, I became a foster father. Maybe it was a brief moment, but I thought that holding the hand of the person who came was really good regardless of my qualifications. This is because the phrase ‘visitors’ came to mind in the poet Jeong Hyeon-jong. “It's really amazing that one person comes. Because a person's lifetime comes.”

 

How majestic and dramatic is this? I am grateful and thankful to my foster son Beomjin, my wife and grandson Donghwa, and my younger brothers Seonggyu and Jesu, who became my companions in my next life.

 

Third, we donated 174 items that we have lived with for the fourth generation in our house to the Taean Cultural Center. In addition, a total of 174 pieces were sent along with 3 pieces of copper that they had in their possession regardless of their preservation value, a wooden mortar, a bamboo basket, and 171 items such as rice bowls, soup bowls, and plates.

 

Kim Hank Cultural Center Director insisted that it would be better to keep valuable items in a storage room with temperature and humidity facilities rather than keeping them at home. I thought it was a good thing, but I was worried that my mother would give away the relics that had been stained with the hands of my ancestors. When his heart had softened, he persuaded that if he donated it to the Cultural Center, it could be preserved permanently by adjusting the temperature and humidity.

 

 Dong-i, who is as tall as the children, has aged quite a bit. It has been passed down to today as one of the many household items that my great-grandfather, who had been honored as the Great Grandfather, purchased to store rice.

 

It has a round body and is a dark gray unprinted earthenware, but its distinctive feature is that it has 23 shapes that seem to be pressed with fingertips at the bottom of the entrance. The size is 100cm high, 65cm in diameter, and 235cm in circumference. The production site of this dongi is presumed to be the branch of Wonbuk-myeon. The branch is present-day Hakampo, where there were many kilns that made earthenware from the Joseon Dynasty and exported them to China and contributed to domestic consumption.

 

It wasn't too far from the branch to our house, but it would have been transported using a fishing boat. After receiving information that he had donated items to the Taean Cultural Center, Park Byeong-hee, director of the Chungnam Institute of History and Culture, scolded him and sent 72 items of his belongings to the Center for History and Culture.

 

In the future, we plan to donate additional valuable items stored deep inside the house. It is hoped that the precious relics handed down by the ancestors should be well stored and managed in the storage rooms of each institution, so that they will become valuable materials to be passed on to future generations.

 

Last but not least, if you open up one more package, it is a gold ring that my wife owns. It is not known exactly how many grandparents started and descended, but it is a gold ring that was inherited from her mother along with the will of inheritance. Her mother also gave her grandmother a golden ring to pass down to her eldest daughter-in-law in our house as she got older. She added, “She is well taken care of, then give it to her daughter-in-law,” which she handed down to her wife not long ago. I don't know the weight of this gold ring, but it's a decent size, clunky and unobtrusive. However, it is a precious jewel that is imbued with the spirit and affection of our ancestors. There is no national museum with a more noble string of family traditions and a sublime that cannot be converted into a price.

 

Once again, the gold ring itself, which is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s precious, but I feel respect and pride for its meaning. and proud There will come a day when this ring will also have to be touched to the pretty eldest daughter-in-law with the will and spirit of her ancestors. If this is the case, even if I think that it was better to show it in the sun rather than leave it behind, I am worried that something precious may be f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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