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박사가 쓴 “원불교란 무엇인가?<제1탄>

"박중빈은 어떠한 종교단체를 개창하기 위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다."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21/04/26 [09:39]

▲ 도올 김용옥 교수. <사진 제공 = jtbc 차이나는 도올>     ©브레이크뉴스

 

필자의 거실에는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 1948~) 박사의 휘호(揮毫)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1991년 10월 3일 원불교 여의도교당 봉불식의 강연으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저에게 써준 휘호이지요. “神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이 세계는 신을 창조한다. 창조는 한 시절에 완결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입니다. 그 도올 김용옥 선생이 4월 16일 자, 원불교신문에 <원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고(寄稿)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원불교도가 아닌 학자가 제 3자의 눈으로 원불교를 바라본 객관적인 원불교를 3회에 걸쳐 전재(轉載)합니다.

 

김용옥 박사가 쓴 “원불교란 무엇인가? <1회>

 

【이 어려운 질문에 쉽게 대답하려면 우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난하다. 법성포를 서북방으로 바라보는 구수산(九岫山) 아랫자락 길룡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라난 한 청년의 대각으로 시작된 종교운동. “청년”이라는 말에 좀 섬뜩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태산 박중빈이 득도했을 때가 1916년 4월 28일이므로 만 나이가 25세도 채 되지 않는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뭘 깨달았다 한들 얼마나 대단한 것을 깨달았겠는가? 원불교 신자들에게는 매우 불경스럽게 들릴 이러한 질문이 머리에 맴돌지 않는 한, 소태산의 정신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상식이요, 소신이다. "대각”이라는 말은  "크게 깨달았다"는 뜻인데, 과연 무엇을 크게 깨달았다는 말인가? 당신은 과연 이 나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큰 깨달음이란 큰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만이 이감(移感)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 원불교 잘 돌아가고 있소? 앞날이 훤합니까? 전도가 창창합니까? 도대체 원불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미래방향을 예견할 수 있겠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재 원불교의 사람들이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의 외침에 부응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져보려면 우선 소태산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25세의 시골청년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생각해보라! 옛날 영광 백수면 길룡리는 매우 편벽한 곳이어서 제대로 된 서당도 없었다. 그가 7세 때부터 화창한 하늘의 푸름과 우연히 이는 바람과 구름에 의문이 일었고, 끊임없이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감과 그 실상에 대한 회의가 일어, 스승을 구하고자 했어도 구할 길이 없었고, 산신령이나 도사를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요, 형편상 만권시서를 독파할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회의와 갈망과 절망 속에 그의 우주론적·인간론 적 질문은 깊어만 갔고, 그러던 중 1916년 음 3월 26일 이른 새벽, 홀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대각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咆哮)라는 것, 박중빈의 대각에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과 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대각 자체가 개념적 추론의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요,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라는 것이다. 그 포효는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태어난 단군(檀君)의 포효와 동시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를 불교의 변양(變樣)으로 생각하거나, 생활화된 현대불교의 일종으로 간주하는데, 내가 단연코 말하건대,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박중빈이 스스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득도의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 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께 정하노라”라고 언명했다 해서, 원불교가 불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불(佛)의 가르침일 뿐이요, 이때 불이란 “깨우침”의 별명일 뿐이다. 박중빈은 어떠한 종교단체를 개창하기 위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존재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의 실상을 알고파서 몸부림쳤을 뿐이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그는 그의 깨우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승가(僧伽)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종교에 있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원불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많이 불경(不敬)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3자의 예리한 눈으로 볼 때, 상당히 원불교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준 것으로 여간 고마운 충고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duksan4037@daum.net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Dr. Kim Yong-ok wrote, “What is Won Buddhism?

"Park Joong-bin did not realize to open any religious organization."

-Poet Kim Deok-kwon

 

In my living room, there is a piece of a whistle by Dr. Kim Yong-ok (金容沃: 1948~). On October 3, 1991, this is the Hwiho I wrote to me to commemorate the relationship with Won Buddhism through a lecture at the Bonbulsik of the Yeouido Church of Won Buddhism. “If God created the world, this world created God. Because creation cannot be completed in one time.” April 28th is the opening day of Won Buddhism. That Dool, Kim Yong-ok, wrote a contribution about <What is Won Buddhism?> in the Won Buddhism newspaper on April 16. An objective non-Buddhist scholar who looked at Won Buddhism through the eyes of a third person reprints Won Buddhism three times.

 

Dr. Kim Yong-ok wrote, “What is Won Buddhism? <1 time>

 

【To easily answer this difficult question, it is safe to say this first. A religious movement started as a young man who was born in Gilryong-ri, the foot of Gusu Mountain, looking northwest of Beopseongpo, and grew up without leaving it. There may be someone who may be a little frightened by the term "youth", but strictly speaking, since Sotaesan Park Jung-bin gained gain on April 28, 1916, he is less than 25 years old. How great would a 25-year-old man realize what he knew? It is my common sense and belief that you cannot know exactly the spiritual world of Sotaesan unless you have such a question that will sound very disrespectful to Won Buddhism believers. The word "diagonal" means "greatly enlightened", but what do you mean greatly enlightened? Can you really answer my words with confidence? Great enlightenment means only those who have acquired great enlightenment. Could it be that it can be)?

 

Are you doing well with Won Buddhism these days? Is the future bright? Is evangelism prosperous? Where on earth should Won Buddhism go? Can you foresee that future direction? The only way to answer these questions with confidence is to consider whether the current Won Buddhism people are living a life that meets the cry of Sotaesan Park Jung-bin.

 

However, in order to examine these things, first of all, you need to know what is the content of Sotaesan's enlightenment. What did the 25-year-old rural youth realize? Think about it! In the old days, Gilryong-ri, Baeksu-myeon, Gwangju, was very flat, so there was no proper Seodang. Since he was 7 years old, he had doubts about the blue of the sunny sky and the wind and clouds that happened by chance.There was a sense of awe and skepticism about the reality of Samra Mansang constantly. There was no way to meet.

He wasn't a man of great knowledge, and he wasn't a man who could afford to read a full book of poems. Amid skepticism, longing, and despair, his cosmological and anthropological questions deepened, and then in the early morning of March 26, 1916, his mind suddenly collapsed and reached the height of the angle. And he said: “Everything is one body and everything is one source.” Awakening alone is the original solitary roar created by the soil scent of the Yeonggwangsancheon Stream, and Park Jung-bin's diagonal has a distinct characteristic. That he was not greatly assisted by knowledge and that he realized alone. The fact that he did not receive much help from knowledge means that his diagonal is not the conclusion of conceptual reasoning itself, and that he realizes alone is the original solitary roar created by the scent of the earthen scent of Gwangju Mountain Stream. The roar can be understood as a synchronic event with the roar of Dangun, born under Shin Dan-su.

 

Many people think of "Won Buddhism" as a variation of Buddhism, or as a kind of modern Buddhism that has become a commonplace, but I will definitely say, Won Buddhism is not Buddhism. Park Jung-bin said, "I obtained the Tao without the guidance of the Master, but if I look back on the path of Deukdo, it is often consistent with the past Buddha's actions and words. It does not become Buddhism. Buddhism is only a teaching of Buddha, and at this time, fire is only a nickname for “awakening”. Park Joong-bin did not realize to open any religious organization. He couldn't bear it because of the questions arising from his existence, and he only struggled to know the reality of the universe and human beings. Even after realizing that “all things are one body and everything is one source,” he did not organize a Sangha to logically explain his enlightenment. His interest was not in religion.]

 

How is it? It is true that it sounds a lot of profanity from the perspective of a Won Buddhist. However, from a third person's keen eye, shouldn't it be taken as a grateful advice, as it showed quite an insight into the future of Won Buddhism?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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