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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Koreans?-제2탄]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무례한가?

“자기 내면에 확고한 도덕률이 서 있는 사람들은 결코 타인을 무시하거나 하대하지 않아”

이종철 철학박사 | 기사입력 2023/11/20 [08:02]

▲필자/ 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얼마 전 학부모의 간섭과 모욕으로 꽃다운 교사가 자살했고, 군수 참모처장이 남의 귀한 자식을 노예처럼 부려 먹은 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인성을 배워야 할 학교와 공사가 분명해야 할 군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예들이 너무나 많아서 오히려 그것들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듯하다. 

 

이제는 ‘모욕과 무시 그리고 차별’이라는 말이 한국인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나보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무시하고, 사는 동네가 꾸질하다고 무시하고, 가방끈이 짧다고 무시하고, 지잡대라 무시하고, 직업이 천하다고 무시하고, 업무 처리가 늦다고 무시하고, 키가 작다고 무시하고, 못생겼다고 무시하고, 장애인이라고 무시하고, 피부 색깔이 검다고 무시하고 정규직이라고 강사를 무시한다. 

 

이런 모욕과 무시가 이제는 학교 현장에서도 빈발해서 선생님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은 자기보다 조금만 못해도 무시하려는 태도가 유전자처럼 각인된듯하다.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무례해졌는가? 한국인들이 도덕 교육이나 인성 교육이 잘 못 돼서 그런가? 한국의 가정교육이 잘 못 돼서 그런가? 한국인 자체의 인성이나 사회 자체가 태생적으로 잘 못 돼서 그런가? 모욕과 무시는 선진 외국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물 타기를 하지 마라.

 

이조 5백 년 동안 조선은 유교가 지배해온 국가이다. 잘 알다시피 유교는 다른 무엇보다 예(禮)를 중시한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인간들이 지켜야 할 3가지 법도와 5가지 인륜을 말한다. 여기에는 군신 간, 부부 간, 부자 간, 친구들 간 등 인간 사회 모두에 적용되는 도리와 예법이 지정되어 있다. 부모가 죽으면 3년 상을 치루고, 조상을 섬기는 제사를 지낼 때 차례 음식상 놓는 법도 다 규정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에서 벌어진 예송논쟁(禮訟論爭)은 이런 예법이 현실 정치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했음을 알려준다. 이는 효종이 죽은 후 효종의 계모인 장렬왕후가 기년복(朞年服)을 입을 것인가, 3년 복을 입을 것인가를 두고 벌인 논쟁이다. 효종은 둘째이기 때문에 기년 상을 치러야겠지만 동시에 왕이기 때문에 3년 상을 치러야 한다고 서인과 남인 간에 벌인 논쟁이었다. 이만큼 조선 5백 년 동안 조선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강력하게 규율해왔던 예법 덕분에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오늘날에 와서 깡그리 사라지고 있을까? 한국 사회가 지난 1세기 동안 근대화하면서 전통 예법은 사라지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지 못하다 보니 도덕규범의 공백 현상, 말하자면 일종의 아노미(Anomie)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야 할 규범이 무엇일까?

 

서구인들도 중세 천 년을 지배했던 가톨릭이 종교 개혁으로 무너졌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가톨릭은 개인의 신앙보다는 엄격한 예배 의식과 사제, 그리고 교회 제도에 기초해 있다. 중세 후반 가톨릭교회들이 면죄부를 판매할 만큼 타락하자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도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제창했다. 개신교는 사제나 교회를 배제하고 오로지 믿는 자의 내면의 양심을 통해 신과의 만남, 믿음을 강조했다. 더 이상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는 데카르트의 Cogito의 확실성(Gewwisheit)과 마찬가지로 양심(Gewisse)은 내 마음속의 자기 확신에 기초한 도덕률이다. 이런 내면의 양심이 사제와 교회를 대신해서 새로운 신앙의 준거 역할을 하고 도덕적 인간의 도덕률을 세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 개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아노미의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신과 교통하는 내면의 확실한 양심 때문이다. 이 양심은 기존의 규칙이나 의무에 구애받지 않는다. 헤겔이 말하듯, “양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의 힘 속에서 마음대로 묶고 풀 수 있는 절대적 자주성의 위엄을 지닌다.” 각자가 마음속에 신을 모시고 있으니까 칸트가 말한 것처럼 타인을 ‘목적의 왕국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 5백 년을 지탱해왔던 타율적인 유교의 예(禮)를 벗어  던졌지만 서구인들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내면의 도덕률을 정립하지는 못했다. 유학에서 강조하는 성(誠)과 경(敬)을 타율적인 예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서 그것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경제나 법 같은 서구적 근대화의 외면을 모방했지만, 프로테스탄티즘의 내면의 신앙, 양심적 도덕은 배우지 못했다. 

 

한국의 교회가 외형적으로 그렇게 많이 성장했어도 내면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교회가 한국인들의 도덕과 정신 형성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는 천민자본주의와 탐욕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더 많이 했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 밑바탕에는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본래 정신과 달리 현세의 복만 추구하는 기복(祈福)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한국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로지 화폐 신(Money God) 뿐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가 한국 사회다. 때문에 부가 축적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가진자들의 모욕과 무시, 그리고 차별은 이런 천민 의식이 표출될 수 있는 하수관이나 다음 없게 되었다. 잘못된 행동임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양심도 없고, 그것을 외부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법이나 도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자를 보면 하대하는 태도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덕률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과연 그것이 가능할 까와 관련해서는 좀 더 많은 숙고와 토론이 필요할 수 있다. 자기 내면에 확고한 도덕률이 서 있는 사람들은 결코 타인을 무시하거나 하대하지 않는다. jogel@naver.com.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Why Koreans?-Part 2] Why are Koreans so rude?

“People who have a firm moral code within themselves never ignore or treat others poorly.”

-Lee Jong-cheol, Ph.D. in philosophy

 

Not long ago, a beautiful teacher committed suicide due to interference and insults from parents, and there was an uproar over an incident where the chief of staff of the county governor treated someone else's precious child like a slave. It's hard to believe that something like this happened in a school where character was supposed to be taught and in the military where construction work was supposed to be clear. However, in reality, there are so many examples like this that it seems strange to even mention them.

Now, the words ‘insults, disregard, and discrimination’ have become part of the daily lives of Koreans. Koreans ignore me because they are poorer than me, ignore me because the apartment size is small, ignore me because the neighborhood I live in is ugly, ignore me because my bag strap is short, ignore me because I am a slob, ignore me because my job is menial, ignore me because I am late in getting work done. , ignore people because they are short, ignore them because they are ugly, ignore them because they are disabled, ignore them because their skin color is dark, and ignore instructors because they are full-time employees.

Such insults and disregard are now frequent in school settings, putting teachers under extreme stress. When you look at it that way, it seems like Koreans are genetically engraved with the attitude of ignoring people who are even slightly inferior to them. Why on earth have Koreans become so rude? Is it because Koreans have poor moral and character education? Is it because home education in Korea is not good? Is it because Koreans' personality or society itself is inherently flawed? Don't be fooled by the fact that insults and disregard are common phenomena even in developed countries.

Joseon was a country dominated by Confucianism for 500 years during the reign of the Yi Dynasty. As you know, Confucianism values propriety more than anything else. The Three Rivers and Five Rules refer to the three laws and five human principles that humans must follow. It specifies duties and etiquette that apply to all human societies, including between rulers and subjects, between husband and wife, between father and son, and between friends. When a parent dies, there is a three-year mourning ceremony, and there are also regulations on how to place food on the table when holding ancestral rites.

The Yesong controversy (禮訟論爭) that took place in Joseon in the 17th century shows that this type of etiquette was important enough to influence real-world politics. This is a debate that took place after Hyojong's death over whether Queen Jangryeol, Hyojong's stepmother, should wear the annual uniform or the three-year uniform. It was an argument between the Seoin and Namin that Hyojong should be mourned every year because he was the second son, but at the same time, because he was the king, he should be mourned for three years. It may be that Joseon was called ‘the country of etiquette in the East’ thanks to the etiquette that so strongly regulated the every move of the Joseon people for 500 years. But why are these things completely disappearing today? As Korean society has modernized over the past century, traditional etiquette has disappeared and new norms have not been established, so is there a vacuum in moral norms, so to speak, a kind of anomie phenomenon? So what are the new norms we need to create?

Westerners also experienced a similar experience when Catholicism, which dominated the Middle Ages for a thousand years, collapsed due to the Reformation. Catholicism is based on strict worship rituals, priests, and church institutions rather than individual faith. When the Catholic Church in the late Middle Ages became corrupted to the point of selling indulgences, Martin Luther attempted religious reform and advocated Protestantism. Protestantism excluded priests and churches and emphasized faith and encounter with God solely through the inner conscience of the believer. Like the certainty (Gewwisheit) of Descartes' Cogito, which cannot be doubted until it is doubted any longer, conscience (Gewisse) is a moral law based on self-certainty in my mind. This inner conscience acts as a reference for new faith on behalf of the priest and the church and establishes the moral law of moral humanity.

In that sense, the reason why Westerners were able to avoid falling into the confusion of anomie during the modernization process after the Reformation was because of their clear inner conscience that communicates with God. This conscience is not bound by existing rules or obligations. As Hegel said, “Conscience possesses the dignity of absolute independence, capable of binding and unbinding at will in the power of its own confidence.” Since each person has God in their heart, as Kant said, they can regard others as the ‘kingdom of purpose.’

On the other hand,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Koreans threw away the heteronomous Confucian rites that had supported the Joseon Dynasty for 500 years, but were unable to establish an internal moral code that they could judge for themselves like Westerners did. The sincerity and respect emphasized in Confucianism cannot be said to be heteronomous etiquette, but it has become difficult to find even traces of it in most Koreans. Although they imitated the external aspects of Western modernization, such as economy and law, they did not learn the internal faith and conscientious morality of Protestantism.

Even though the Korean church has grown so much on the outside, it does not properly understand the inner spirit, which is why the church has had little influence on the moral and mental formation of Koreans. Rather, the church played a greater role in encouraging low-income capitalism and greedy desires. At the foundation of the Korean church's growthism is a deep belief in blessings and blessings, which pursues only blessings in this life, unlike the original spirit of Christianity, which is love. The only thing that captures the Korean mind is the Money God.

Korean society is a society where everything is possible as long as you have money. Because of this, as wealth accumulated and economic inequality deepened, the insults, disregard, and discrimination of the wealthy became a place where there were no sewers or channels through which this sense of being a low-class citizen could be expressed. Since they do not have a conscience that allows them to realize that they are doing something wrong, and the law or morality that can externally control it does not play its role, their attitude of belittling anyone who is even slightly weaker than them is becoming extreme.

It's not too late. Koreans must now be able to establish new moral rules in a new era. More reflection and discussion may be needed regarding what that is and whether it is possible. People who have a firm moral code within themselves never ignore or treat others poorly. jog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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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진한 2023/11/20 [19:14] 수정 | 삭제
  • 공자님은 하늘을 속일수 없으셨고, 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유력자들을 깨우치시던 하느님(天).神明의 전통 숭배자이셨음. 일본은 막부시대에 불교국가가 되어, 하느님을 부정하는 나라로, 논어도 잘못 연구하여, 한국에 엉뚱한 야담.가설들이 판치고 있음.그런데, 유교를 인정않는 나라에서 유교 연구하면 왜곡이나 할 국가분위기일것. 불교나 불교에서 파생된 후발 불교신앙인 일본 국교 신도는 세계종교인 유교와 가톨릭과 분명 다릅니다.창조자,우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입장이 아주 다릅니다.불교 Monkey 일본과, 한국에 남은 잔재들이 주권없이 다시 도전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부처 Monkey류에 속하는, 패전국,전범국, UN적국 일본 원숭이류들! 독일처럼 반성의 과정도 보여오지 않아옴. 하느님도 모르고, 창조신도 부정하는 부처 Monkey류 모방하여 성씨 없는 賤民 원숭이 점쇠(히로히토,나루히토등 일본에서는 천황이라 부름)가,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하며 신부억압하고,목사 구타하던 일본원숭이들. 세계종교 유교도 일본 불교 계열 신도처럼 종교 아니고 사회규범이라고 오도하던 야만족 일본. 일본 Monkey는 수천년 야만족이라 Economic Animal로 분류됨. 서양의 철학가들이 하느님,예수님 부정하고 , 교황.성직자 부정할 여건인가? 철학으로 하느님을 재단하려는 발상이 일본 원숭이 점쇠가 만든,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이자, 패전국 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불교 Monkey들에게서 왕성하게 창작되는 요즘. 유교가 하느님(天), 地神, 神明, 조상신 숭배하는 종교인것을 부정하기 위해, 귀신을 공자님이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견강부회하는 불교 Monkey 일본과, 토착왜구 서울대류의 왜구 원숭이들의 철학.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Q.SUN 2023/11/20 [14:46] 수정 | 삭제
  • 어찌 이리 옳으신 말씀만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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