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취재]전봉준 장군의 장녀 전옥례 후손은 생존해 있다!

<최현식과 동학농민혁명사 연구> “호적을 열람해 확인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틀림이 없었다”

박용규 박사 | 기사입력 2022/06/24 [20:56]

전봉준과 첫째 부인 여산 송씨와의 사이에서 장녀 전옥례(全玉禮)와 차녀 전성녀가 태어났다. 이 글에서는 장녀 전옥례와 그 후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장녀 전옥례와 그 후손에 대한 연구는 이미 충분히 나왔다. 최현식(1923∼2011) 선생은 1980년에 <갑오동학혁명사>를 저술하여, 동학농민혁명 전문 연구자로 등장했다. 그는 1969년에 전옥례를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최현식은 족보와 산외면 동곡리에서 밝혀진 자료에 의거해서, 전봉준 가계에 대해 “장녀가 전옥례여사(1970년 별세. 전북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 손(孫) 이희종씨) 이(二)녀의 외손녀 강금례여사(산외면 동곡리. 자(子) 박승규씨) 장자 용규(龍圭. 동곡리에서 사망) 차자 용현(龍鉉. 동곡리에서 행방불명)이 있었다고 한다.(증고(證考). 강금례여사. 태은기옹. 산외면 동곡리)”(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증정판), 향토문화사, 1983, 232쪽.)라고 서술했다. 즉 전봉준 장녀로 전옥례, 그 손자로 이희종이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최현식은 <최현식과 동학농민혁명사 연구>(갈채, 2006, 159∼160쪽.)의 「동학군 지도자들의 가족을 찾아서」 부분에서 전옥례를 만나고, 전옥례를 확인하는 과정을 이렇게 기술했다. 

 

“제2회 기념문화제가 끝나고 얼마 안 돼 한 남자가 내게 연락을 취해왔다. 자신의 할머니가 전봉준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열일을 제쳐두고 그를 찾아갔다. 이름을 이희종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158쪽) 

 

“나는 당장 그이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다는 진안으로 향했다. 당시 전봉준의 장녀인 전옥례 여사는 나이가 89세였다. 

 

나는 전옥례 여사로부터 그간의 행적을 직접 듣고 호적을 열람했다. 전옥례 여사는 동학혁명이 끝난 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15세의 나이로 진안에 있는 마이산으로 도피했다. 이름을 김옥련으로 바꾼 전옥례 여사는 금당사의 공양주로 숨어 살다가 23세에 이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호적을 열람해 확인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한편 현재 보존되고 있는 전봉준 고택이 실제로 그녀가 살았던 집인지를 모시고 가서 확인했다. 그녀는 전봉준이 살았던 집이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현재는 네 칸인 것을 당시 자신들이 살 때는 세 칸이었다고 증언한 것도 모두 그녀였다. 훗날 그곳에 들어와 살았던 사람들이 한 칸을 늘린 것 같다고 그녀는 추측을 덧붙이기도 했다.

 

전옥례 여사는 이듬해인 1970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나서 얼마 만에 세상을 하직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만 같아 옷깃을 바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159쪽) 

 

이렇게 최현식은 호적을 열람해 확인한 결과, 전봉준의 장녀가 전옥례(호적은 김옥련으로 기재)임이 틀림이 없다고 밝혔다. 최현식은 “현재 보존되고 있는 전봉준 고택이 실제로 그녀가 살았던 집인지를 모시고 가서 확인했”는데, 전옥례가 “전봉준이 살았던 집이 틀림없다. 당시 자신들이 살 때는 세 칸이었다.”고 증언한 것을 듣고, 전봉준의 장녀임이 틀림이 없다고 기술했다.     

최현식은 「천안전씨 옥례여사 묘비문」(1984년 최현식 지음)을 자신의 책에 수록했다.(위의 책, 312∼313쪽). 

 

 「천안전씨 옥례여사 묘비문」(1984년 최현식 지음). 전북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 산 사기정골에 묘와 묘비문이 있음.  ©전옥례 묘비 최현식 지음 이현우 제공

 

 

동학농민혁명 전공자로 전주역사박물관 관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우윤이 전주역사박물관과 진안문화원의 공저로, 2003년에 <전북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동학농민혁명·의병운동·삼일독립운동)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이용엽(미협 진안지부장)이 「진안지역의 동학농민혁명」(<전북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동학농민혁명·의병운동·삼일독립운동), 전주역사박물관, 진안문화원(공저), 2003, 69∼77쪽.)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용엽은 「진안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의 “4. 전봉준의 딸 전옥례 여사”에서, 전옥례를 전봉준의 장녀로 기술하였고(69쪽), 전옥례가 23세에 전북 진안 부귀면 신정리 이영찬과 결혼했다(69쪽)는 사실을 서술했다. 이용엽은 1984년 최현식 선생이 지은 ‘천안전씨 옥례여사 묘비’문의 전문을 게재하였고(71쪽), 전옥례의 제적부를 공개했다. 전옥례의 제적부(77쪽)에 김옥련(金玉連)으로 변성명되어 기재되어 있고, 이영찬과 혼인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전봉준 장녀 전옥례(호적은 김옥련). 신복룡 책 330쪽 20210516     ©전봉준 장녀 전옥례(호적은 김옥련) 신복룡 책 330쪽 2021051

 

2020년 동학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인 조광환 등 3인이 <정읍동학농민혁명사>((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2020)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전옥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천안 전씨 족보에 의하면 전봉준은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전봉준의 전처 여산 송씨 소생인 첫째 딸 전옥례(全玉禮)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진안 마이산으로 들어가 김옥련이란 이름으로 행세하며 금당사의 공양주로 은신했다. 23세에 이영찬과 결혼하여 전봉준의 외손자 이주석을 낳고 외증손 이희종을 두었다.”(298쪽.) 즉 전봉준의 장녀로 전옥례를 인정하고 있고, 전옥례가 이영찬과 결혼하여, 전봉준의 외손자 이주석을 낳았고, 외증손 이희종을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 오른쪽 아들 이주석 왼쪽 손자 이희종 이상곤 교수 사진 제공  ©오른쪽 아들 이주석 왼쪽 손자 이희종 이상곤 교수 사진 제공

 

 

동학농민혁명을 일평생 연구한 이이화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전봉준, 혁명의 기록>(생각정원, 2014, 266∼267쪽.)에서 전봉준의 두 딸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두 딸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숨어살았다. 큰딸 옥례玉禮는 15세에 화를 피하여 마이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김옥련金玉連으로 바꾸고 금당사의 공양주로 있었다 한다. 작은딸은 성녀姓女인데 그녀의 딸 강금례가 가정의 내력을 증언해주었다. 그러니 전봉준의 혈손은 외손으로 이어졌다. 현재 친손은 찾을 길이 없고 외손은 확인이 된다.”

 

계속해서 이이화는 <동학농민혁명사>3(교유서가, 2020)에서 전봉준의 큰딸 전옥례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전봉준의 딸들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숨어살았다 한다. 큰딸 전옥례는 열다섯 살에 화를 피해 진안 마이산 금당사로 들어가 김옥련으로 이름을 바꾸고 금당사 공양주로 있었다 한다.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경주인(京主人) 노릇을 하는 이영찬에게 시집을 가서 일곱 남매를 낳았다. 그녀는 아버지 이야기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다가 1968년 녹두 민요를 듣고 자식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때로 그녀는 동학농민혁명 행사에 불려다니다가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78쪽.) 이렇게 이이화는 전옥례가 생전에 동학농민혁명 행사에 불려 다니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 이이화 선생     ©이이화 선생

 

최근에 전봉준 장군의 가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송정수 전북대 명예교수는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 혜안, 2021)에서, 전옥례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송정수는 전영래, 신복룡, 최현식의 선행 연구를 검토(192∼198쪽)한 이후,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여러 정황에서 보듯, 전옥례 할머니가 전봉준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옥례 할머니는 이처럼 오랫동안 자손들에게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며 일생을 살아왔던 것인데, 이 같은 사례는 전옥례 할머니뿐만 아니라 동학에 참여한 다른 여러 집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들에게 씌워진 역적의 굴레가 혹 자손들에게 미칠까 염려되고 두려운 마음에서 일체 함구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혁명에 참여했던 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또 이들이 가졌던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이다.”(198∼199쪽.)

 

이상과 같이 최현식, 우윤, 조광환, 이이화, 송정수의 선행 연구에 의해, 전봉준 장군의 장녀가 전옥례로 밝혀졌다. 특히 1984년 4월 15일 최현식이 「천안전씨 옥례여사 묘비문」에서 전옥례를 “전봉준 선생의 장녀”라고 밝힌 이후, 지금까지 전옥례(호적은 김옥련으로 기록)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봉준의 장녀라고 자처하고 나타난 사람은 없었다. 

 

▲ 박용규 박사.    ©브레이크뉴스

그런데 최근에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희종의 아들 이현우씨가 2019년 8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에 전봉준의 유족 등록을 신청하였으나, 2020년 12월 24일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 보낸 유족등록신청 결과 통지서에 “신청인의 유족 인정 여부를 보류함”이라는 심의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현우씨가 최근에 이 내용을 필자에게 말씀해 주었다. 

 

지금까지 전옥례는 전봉준의 장녀로 학계에서 인정받아 왔다. 유족등록신청 결과 통지서에서 보류 사유로 “신청인과 참여자의 유족관계 확인을 위한 추가적인 사실조사가 필요하여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 운영 시행세칙」 제13조 제4항에 의거, 참여자와 유족 인정여부를 보류함.”이라고 밝혔다. 향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신청인(이현우씨)과 참여자(전봉준)의 유족관계 확인을 위한 추가적인 사실조사를 하는데 있어서, 필자의 이 글이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hispak@hanmail.net

 

*필자/-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고려대 사학과 박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Excavation coverage] The descendants of General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Jeon Ok-rye, are still alive!

<A study on the history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with Choi Hyun-sik>

-Dr. Yongkyu Park

 

Jeon Bong-jun and his first wife, Yeosan Song, had their eldest daughter Jeon Ok-rye and second daughter Jeon Seong-nyeo.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take a look at her eldest daughter, Jeon Ok-rye and her descendants.

Research on her eldest daughter, Jeon Ok-rye and her descendants has already been sufficiently published. Hyunsik Choi (1923~2011) wrote <The History of the Gapodonghak Revolution> in 1980 and emerged as a researcher specializing i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He reveals that he met Jeon Ok-rye in 1969.

 

Based on genealogy records and data revealed in Donggok-ri, Sanoe-myeon, Choi Hyeon-sik said about Jeon Bong-joon's family line, "The eldest daughter is Jeon Ok-rye (died 1970; Lee Hee-jong, the son of Shinjeong-ri, Bugwi-myeon, Jinan-gun, Jeollabuk-do), and Kang Geum-rye, the granddaughter of the second daughter. Donggok-ri, Sanoe-myeon. It is said that the eldest son Yong-gyu (drowned in Donggok-ri) was the eldest son Yong-hyeon (disappeared in Donggok-ri). Donggok-ri)” (Choi Hyun-sik, <The History of Gapodonghak Revolution> (gift edition), History of Local Culture, 1983, p. 232.). In other words,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was Jeon Ok-rye, and her grandson was Lee Hee-jong.

 

Subsequently, Choi Hyun-sik described the process of meeting and confirming Jeon Ok-rye in the “Finding the families of the leaders of Donghak-gun” in <A Study on Choi Hyun-sik an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ary History> (Applause, 2006, pp. 159-160.).

 

“Not long after the 2nd commemorative cultural festival ended, a man contacted me. He said that his grandmother was the daughter of Jeon Bong-jun. I set aside ten days and went to see him. He was a man whose name was Heejong Lee” (p. 158).

 

“I immediately headed to Jinan where his grandmother was with him. At the time,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Jeon Ok-rye, was 89 years old.

 

I directly listened to Ms. Jeon Ok-rye's deeds and read her familyregister. Jeon Ok-rye said that after the Donghak Revolution, she escaped public attention. At the age of 15, she fled to Mai Mountain in Jinan. Jeon Ok-rye, who changed her name to Kim Ok-ryun, said that she lived in hiding as a gongyangju of Geumdang Temple, and when she was 23, she married a man with the surname Lee, and she is today.

 

As a result of reading and checking her family register, there was no mistake in her story. While making this known to the world, I went to see if the house of Jeon Bong-joon, which is currently being preserved, was actually the house where she lived. She testified that it must have been the house where Jeon Bong-jun lived. She was the one who testified that she was now four khan, and that they were three khan when they lived. She later speculated that the people who had come in and lived there probably increased the space by one, she added.

Jeon Ok-rye passed away in 1970 at the age of ninety. Participating in her funeral, I was compelled to straighten her lapels as it seemed no mere coincidence that she left her world some time after she announced her existence to the world.” ( 159)

 

As a result of reading and checking her family register, Choi Hyun-sik revealed that there was no doubt that the eldest daughter of Jeon Bong-jun was Jeon Ok-rye (her family register was written as Kim Ok-ryun). Choi Hyun-sik said, "I went to check if the house that Bong-jun Jeon lived in was actually the house she lived in." At the time, she was three khan when they lived,” she wrote, after hearing her testimony that she must have been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Choi Hyeon-sik recorded the “Embreopsis of the Cheonan-an clan Ms. Okrye” (written by Choi Hyun-sik in 1984) in his book. (Above book, pp. 312-313).

 

 “The Tombstone of Ms. Okrye of the Cheonan-an clan” (written by Choi Hyun-sik in 1984)

There is a tombstone and a tombstone in Sagijeonggol in Mt. Sinjeong-ri, Bugwi-myeon, Jinan-gun, Jeollabuk-do.

 

Woo Yun-yi, who majored in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was serving as the director of the Jeonju History Museum, is a co-author of the Jeonju History Museum and the Jinan Cultural Center. has published

 

In this book, Lee Yong-yeop (head of the Jinan branch of the American 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resents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Jinan Region” (“Scholar Report on the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National Movement in Jinan, Jeollabuk-do” (Donghak Peasant Revolution, Ui-byeong Movement, Samil Independence Movement), Jeonju History Museum, Jinan Cultural Center (co-author) ), 2003, pp. 69-77.) was published. Lee Yong-yeop, “4. In “Mrs. Jeon Ok-rye, Daughter of Jeon Bong-joon,” she described Jeon Ok-rye as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p. 69) and stated that Ok-rye Jeon married Lee Young-chan, Shinjeong-ri, Bugwi-myeon, Jinan, Jeollabuk-do at the age of 23 (p. 69). In 1984, Lee Yong-yeop published the full text of ‘The Tombstone of Mrs. Okrye of the Cheonan Clan,’ written by Choi Hyun-sik in 1984 (p. 71), and published the weeding book of Jeon Ok-rye. In the Jejeok Book of Jeon Ok-rye (p. 77), she was changed to Kim Ok-ryeon (金玉連), and it is confirmed that she was married to Lee Young-chan.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Jeon Ok-rye (referred to as Kim Ok-ryun)

 

In 2020, three people including Jo Gwang-hwan, director of the Donghak History and Culture Research Institute, published <Jeongeup Donghak Peasant Revolutionary History> (Donghak Peasant Revolution Succession Society, 2020). In this book, I wrote about Jeon Ok-rye: “According to the genealogy of the Jeon family in Cheonan, Jeon Bong-jun had two sons and two daughters. Jeon Ok-rye, the eldest daughter of Jeon Bong-joon's ex-wife Yeosan Song clan, took refuge as an offering drink at Geumdang Temple, pretending to be Kim Ok-ryun whe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broke out. At the age of 23, he married Lee Young-chan and gave birth to Jeon Bong-jun's grandson Lee Ju-seok and had a great-grandson Lee Hee-jong." It is revealed that he had a great-grandson, Lee Hee-jong.

 

 Lee Joo-seok is on the right and Hee-jong Lee is on the left. (Professor Lee Sang-gon's photo provided)

 

Lee Yi-hwa, who has studie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ll his life, described the two daughters of Jeon Bong-jun as follows in his book <Bongjun Jeon, Records of the Revolution> (Thinking Garden, 2014, pp. 266~267.). “The two daughters changed their first and last names and lived in hiding. Her eldest daughter, Ok-rye 玉 禮, escaped fire at the age of 15 and went to Mai Mountain and changed her name to Kim Ok-ryeon 金玉 連, and she was said to have served as a tribute to Geumdang Temple. Her younger daughter is a saint, and her daughter Kang Geum-rye testifies to her family history. So Jeon Bong-jun's blood descent was passed on to his only descendants. Currently, there is no way to find the biological descendants, and the only descendants are confirmed.”

 

Continuing, Lee Ehwa described Jeon Ok-rye, the eldest daughter of Jeon Bong-jun, in <The History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3 (Gyoyuseoga, 2020).

 

“It is said that Bong-Jun Jeon’s daughters changed their first and last names and lived in hiding. Her eldest daughter, Jeon Ok-rye, escaped from anger at the age of fifteen and went to Jinan Maisan Geumdangsa Temple, where she changed her name to Kim Ok-ryun and she served as Geumdangsa Gongyangju. It was not until she was twenty-two that she married Lee Yeong-Chan, who served as the owner of Gyeongju, and she gave birth to seven children. She couldn't even open her mouth to talk about her father, but she listened to a 1968 mung bean folk song and told her children the truth. Sometimes she was called to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ary Event, and she died in 1970.” .

 

   Lee Hwa (1937~2020) Teacher

 

Song Jeong-su, an emeritus professor at Chonbuk National University, who recently conducted an in-depth study of General Jeon Bong-jun's ancestry, explained in detail about Jeon Ok-rye in <The Story of General Jeon Bong-jun and his family>, Hyean, 2021). After reviewing the previous studies of Jeon Yeong-rae, Shin Bok-ryong, and Choi Hyeon-sik (192~198 pages), Song Jeong-su concluded as follows. “As seen in various circumstances, there seems to be no doubt now that Grandmother Jeon Ok-rye is the daughter of General Jeon Bong-jun. Her grandmother, Jeon Ok-rye, had spent her whole life completely hiding her identity even from her descendants for this long, and this case is not only her grandmother Jeon-ok-rye, but also many other people who participated in her Donghak. It can be easily found even in the house. She was afraid that the bondage of rebellion placed on them might extend to her or her descendants, and she had been living in silence from her fear. This will clearly show how harsh the oppression of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revolution and their families was after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ended in failure, and how great the fear they had” (pp. 198-199).

 

As described above, the eldest daughter of General Jeon Bong-jun was found to be Jeon Ok-rye through previous studies by Choi Hyeon-sik, Woo Yun, Jo Gwang-hwan, Lee Yi-hwa, and Song Jeong-su. In particular, on April 15, 1984, after Choi Hyun-sik declared that Jeon Ok-rye was the “eldest daughter of Mr. Jeon Bong-jun” in “The Tombstone of Mrs. Okrye of the Cheonan-an clan,” someone other than Jeon Ok-rye (recorded as Kim Ok-ryun) has been There was no one who claimed to be the eldest daughter and appeared.

 

But recently something happened to her that she couldn't comprehend. In August 2019, Lee Hyeon-woo, son of Lee Hee-jong, applied for registration of the bereaved family of Jeon Bong-jun to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Participation Review Committee for the restoration of honor, but on December 24, 2020, the notification of the result of the application for survivor registration sent by the chairman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Memorial Foundation said, “The applicant It is said that he received a notice of the result of the deliberation saying, "Whether or not to recognize the family of the deceased is withheld." Hyunwoo Lee recently told me this.

 

So far, Jeon Ok-rye has been recognized in academia as the eldest daughter of Jeon Bong-jun. As a reason for withholding in the notification of the result of the application for survivors registration, “Additional fact-finding is needed to confirm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pplicant and the participant. We will withhold whether or not to admit it.” In the future, I hope that this article will be helpful in conducting an additional fact-finding investigation to confirm the bereaved relationship between the applicant (Hyun-Woo Lee) and the participant (Bong-Jun Jeon) by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Participant's Honor Restoration Deliberation Committee. hispak@hanmail.net

 

*Writer/- Park Yong-gyu

Research Fellow, National Research Institute. Ph.D., Department of History,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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