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라디오 드라마는 빛나는 별처럼 찬란했었다!”

[비화 공개]나를 키운 '라디오 드라마 황금시대’

김선옥 시인 | 기사입력 2022/06/19 [11:03]

▲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  ©브레이크뉴스

 

지난 2018년 6월10일 한국성우협회는 탄생60년을 기념해 성우의 역사와 함께 라디오 드라마의 역사를 집대성한 '성우60년의 역정-한국 라디오 드라마사'를 출판했다. 이 출판기념회에 함께하면서 나는 갖가지 회한에 사무쳤었다. 라디오방송의 꽃으로 불리어지고 라디오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라디오 드라마의 쓸쓸한 퇴조와 아쉬운 황혼을 몸소 느껴서이다. 지난날 라디오 드라마는 빛나는 별처럼 찬란했다. 꿈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였다.

 

그 골든타임에 내가 있었다. 그 순간은 서정주 시인이 읊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처럼' 30년 넘은 방송 활동 기간 나를 키운 건 라디오 드라마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1954년 시작해서 현재까지 방송되고 있는 'KBS 무대'를 비롯해서 7500회로 마감했던 일일 홈드라마 '아차부인 재치부인'과 48편의 작품이 영화화 되었던 '소설극장' 그리고 최초의 경제드라마 '경제실록 50년'을 기획 연출한 라디오 시대의 행운아였다.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찬란했던 옛 라디오 드라마를 추억하면서 그때 그 시절의 황홀했던 순간을 되돌아본다.

 

청취율 1위를 탈환하라-아차부인 재치부인 '안녕히 주무셨어요~어머 아차부인! 네 재치부인! 오늘도 명랑하게~ 활기차고 코믹한 가락의 시그널 송과 함께 출근길 등굣길을 싱싱하고 유쾌한 웃음으로 물들게 했다. KBS의 아침 홈드라마 '아차부인 재치부인'이 1986년 4월 27일 봄 개편과 함께 '그 때 그 방송'으로 종말을 고했다. 1965년 5월 3일 TBC 동양방송에서 시작해 21년간 매일 연속 방송 되었던 최고 청취율의 홈드라마가 7500회로 그 막을 내린 것이다.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극중 인물을 보면 늘 실수 연발에다가 조금은 엉뚱한 아차부인과 현명하고 지혜롭다. 도시형 깍쟁이 재치부인 그리고 아차씨의 딸 옥희와 재치씨의 아들 바우가 두 부부의 중심인물이다. 간혹 옥희의 할아버지가 등장해서 핵가족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우리시대에 대가족의 우월성을 꾸짖듯(?)느끼게 해서 사랑을 받았다.

 

가공이 없고 우리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이면서 늘'내 이야기' 같은 줄거리여서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더욱 친근했던 것 같다.

 

뉴스나 인기 연속극 스포츠 빅게임에도 결코 청취율 1위 자리를 뺏기지 않은 이 프로그램은 21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내용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낡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1970년대 당시만  해도 전화 텔리비전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 귀한 때라 아차부인과 재치부인 중 누군가 이 첨단기구를 구입하면 영락없이 시기와 질투가 벌어져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진다. 바로 생생한 내 이웃 이야기여서 솔깃했던 것이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대를 넘어오면서 무대를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단독주택 주장이 우세해 한옥사수(?)로 결론을 보았다.

 

배역 교체도 문제 거리였다. 연기자의 일신상 사정으로 배역이 교체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왜 와이프를 자꾸 바꿔치기 하느냐'는 엄중항의(?)도 있었다. 옥희는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왜 늙지 않느냐는 애교어린 항변도 받곤 했다. 필자가 76년도에 프로그램을 맡은 당시는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청취율 하강기였다.

 

텔레비전 보급률이 높아진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교통프로그램 '가로수를누비며'가 출근길 강적으로 나타났다. 그보다 더 최악의 경우는 여학생들의 인기를 끌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해 오던 임국희씨가 아침 프로그램인 '임국희의 여성싸롱'의 진행을 맡아 주부가 돼버린 옛 여학생들을 대거 몰고 가버린 '사건' 때문이었다.

 

▲고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사태 속에서 나는 '청취율 1위 재 탈환작전'의 엄명을 받았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골몰해야 했다. 첫 시도는 기존 포맷을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청취자 성우 모집의 돌입이었다.

 

이른바 '아차부인 재치부인'에 출연하는 엑스트라 모집인 셈이다 출연자에게는 출연료는 물론 출연진과의 기념사진과 출연 녹음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 등 푸짐한 상품도 준다고 군침어린 스파트를 쏘아댔다. 그 결과 4~5천명이 몰려와 대성황을 이루었다 응시한 사람은 주부들이 대다수였다. 여대생과 직장 여성까지 다양했다. 주부 등 과거에 연극을 해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거나 자칭 끼(?)가 있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주인공의 친구이거나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로 출연했다. 이것이 화제가 돼서 프로그램의 인기를 되찾는데 큰 몫을 한 것이다.

 

두 번 째는 소재공모였다. 주위의 갖가지 싱싱한 이야기가 들어와 프로그램의 활력이 되었다. 채택된 소재들은 1978년 책으로 엮어져 출간되기도 했다.

 

세 번째 기획 역시 신선했다. 고운 우리 말 찾기로'우리 말 순화 캠페인을 벌였다. 잊혀져가는 '토속어' 발굴 등으로 화제를 낳았다. 방송의 공적 측면으로 볼 때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런 프로젝트 힘으로 '아차부인 재치부인'은 청취율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더욱 가까이 청취자 곁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인쇄매체와 전파매체의 극적 만남-소설극장 

 

1975년 10월 TBC 동양라디오는 '소설극장'을 편성 문학의 대중화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소설극장'은 1970년대 인기작가의 유명세와 그들의 주가를 폭등케  하는 경이로운 기획이었다.

 

첫 작품은 한수산의 베스트셀러 '부초'였다. 출판가의 히트 소설을 각색해서 출판의 추종자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갓 출판된 조해일의 '겨울여자'를 방송하면서 베스트셀러의 창조자가 됐다. 인쇄매체와 전파매체의 결합을 통해 책이 날개돋힌 듯 팔려다. 또 영화화 되면서 '소설극장'은 당당히 베스트셀러의 산실이요, 온실로 군림했다. 당시 20만부 이상의 소설은 조해일의 '겨울여자' 한수산의 '밤의찬가' 최인호의 '도시의 사냥꾼' 박범신의 '죽음보다 깊은 잠'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 송영의 '땅콩껍질 속의 연가' 김주영의 '목마 위의 여자' 조선작의'미쓰 양의 모험'등이다. '소설극장'에  방송 되었다 하면 10만부 이상이 보증수표였다. 영화화는 당연지사로 여겼다.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거나 신문 잡지에 연재 되었던 소설을 선택해서 라디오 드라마화한 이 프로그램의 고정 청취자는 가정주부와 직장여성 중고등학생 등 다양했다. 20%가 넘는 청취율로 각광을 받았다.

 

'소설극장'은 각종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거나 화제를 만들어서 방송계의 뉴스 초점이 되기도 했다. 소설가 김주영이 자신의 소설 '목마 위의 여자'에서 소매치기 역을 맡아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였다. 그가 성우로 출연 방송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 자주 방송출연의 계기를  만들었다. 

 

소설가 최인호 역시 '가족'이란 자신의 작품에 성우로 우정 출연, 화제가 됐다. 특히 소설가와 청취자가 함께 출연해서 격론을 벌인 조해일의 '겨울 여자' 편은 방송계의 최대 화제였다. 겨울여자의 주인공 이화 같은 여대생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냐를 놓고 갑론을박 논쟁을 벌였다. 이밖에 박완서 송영 유현종 등도 드라마에 직접 출연했다. 자신의 작품 배경과 주제를 설명하므로서 청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설극장'은 영화화의 교두보였다. 당시 충무로 영화가는 '소설극장'이 방송되면 그 원작자 모시기에 혈안이 됐다. 방송이 되자말자 작품의 판권을 사기 위해 경쟁이 붙었다. 당시 100만원도 많다던 원작료가 5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해일의 '겨울 여자'가 영화로 제작됐다. 당시 우리 영화로는 관객동원 최고인 100만명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60여 편의 '소설극장' 작품 중 48편이 영화화 됐다. 라디오 드라마의 주가는 껑충 뛸 수밖에 없었다.

 

경제주역들의  생생한  육성다큐-경제실록50년

 

라디오 다큐멘터리 '경제실록 50년-거대한 물결'은 1988년11월1일 부터 방송됐다.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최고의 주역들이 직접 육성으로 증언해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포항제철 창업자 박태준 회장은 단골손님으로 자주 출연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화나 포항제철 창설 비사는 최초의 증언이어서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경제실록 50년-거대한 물결' 경부고속도로 건설 편에 출연한 정주영 회장의 증언비화는 유명하다.

 

1968년2월 무렵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수원 근처 막사에 간이침대를 가져다 놓았다.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독려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점버 차림의 박정희 대통령이 서 있더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 사장, 오늘 나와 함께 헬리콥터를 탑시다'라고 말했다. 영문을 모른 채 헬리콥터를 탔다고 한다. 탑승객은 주원 건설부장관과 조종사 넷이었다. 그 무렵 고속도로는 통과 구간 문제로 각 지역 주민들이 생떼를 부리거나 반대시위가 한창이었다. 자기 지방을 지나는 걸 반대하거나 우리 고장은 꼭 지나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공사가 지연되고 있었다. 이런  지지부진한 진행 장소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지시해 정해졌다고 한다. 그것이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구간이 된 것. 정주영 회장은 포병장교  출신의 박대통령이 헬리콥터 밑의 지리를 너무나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는 증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서독 방문 중 독일의 그 유명한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보고 시작한 경부고속도로는 이렇게 해서 가장 적은 건설비인 430억원으로 428Km를 3년 만에 완공했다. “그 5분지 2인 134km를 현대건설이 이루어 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했다. 지금은 너무나 잘 알려진 또 다른 이야기지만 정주영 회장의 500원짜리 지폐의 위력에 관한 비사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육성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971년 9월이었다. 미포만의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일본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한 장을 갖고 영국을 찾은 정주영 회장은 정말 막막했다고 했다 허황된 꿈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냉소를 물리쳤다. 차관도입만  이루어진다면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뛰어든 일이었다. 그래서 기술협조 계약을 체결한 '애풀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상환능력도 문제지만 도대체 배를 만들 능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정주영 회장은 그 말에 맥이 쭉 빠졌다. 그런데 불현듯 호주머니에 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정주영 회장은 지폐를 꺼내 테이블에 펴보였다. “이 돈을 보시요, 이것은 거북선이라는 철갑선이요, 우리는 1500년대에 이 배를 만들었소. 그런데 영국은 우리보다 300년이나 늦게 이런 배를 만들고 있지 않소! 우리가 산업화가 늦어 그렇지 아이디어나 잠재력은  탁월하다오.” 

 

▲ 김선옥 시인.    ©브레이크뉴스

이 말에 롱바톰  회장은 빙그레  웃더니 버클레이 부총재를 소개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그 부총재의 소개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매부였던 리바노스로부터 26만톤급 유조선 2척을 8천만 달러에 수주 받아 지금의 현대미포조선을 탄생시켰다. 경제실록 50년-거대한 물결은 이밖에 '고독한 황제'편에서 박태준회장이 출연해서 포항제철의 숨은 비사를 털어놓아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필자 김선옥 시인 약력

 

TBC 동양방송 프로듀서입사. KBS라디오 제작센터장,KBS아트비전 상임이사, 경인방송 대표이사 전무, 한양대 미디 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방송통신심의원회 광고특별위원 역임.

 

'소설극장''여인극장''아차부인 재치부인''즐거운 우리집''경제실록 50년' 등400여 편의 라디오드라마 연출. '한국방송대상 연출상'(1983년)' ABU 라디오 대상(1983년)' '한국방송대상 작품상(1993년)' 1993년 한국 프로듀서 상 라디오 대상' 등 수상. 시집 '오후 4시의 빗방울' '모과나무에 손 풍금소리가 걸렸다 등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PEN클럽 한국본부, 대한언론인회 회원.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Last day, the radio drama was as brilliant as a shining star!”

[Secret Story] The 'radio drama golden age' that raised me

- Poet Kim Seon-ok

 

On June 10, 2018, the Korea Voice Actors Association published '60 Years of Voice Actors - Korean Radio Drama History', a compilation of the history of voice actors and radio dramas to commemorate the 60th anniversary of their birth. While attending this publication anniversary, I was filled with various regrets. It is because I personally felt the sad twilight and the lonely decline of the radio drama that was called the flower of radio broadcasting and saved the golden age of radio. Radio dramas of the past were as dazzling as a shining star. Like a dream, it was an inexhaustible bundle of stories.

I was there in that golden hour. I want to express that moment, as the poet Seo Jeong-ju wrote, 'It was the wind that raised me at 80%', and it was a radio drama that raised me during my 30-year broadcasting career. I started in 1954 and finished with 7,500 episodes including 'KBS Stage', which has been aired to this day, and the daily home drama 'Mrs. He was a lucky boy in the radio era who planned and directed '. It has now disappeared into my memories, but I look back on the enchanting moments of that time while reminiscing on the splendid old radio drama.

Retake the first place in the listening rate - Madame Ocha, witty wife 'Good night~ Oh, Madam Ocha! Your wit! Even today, cheerfully~ With a lively and comical signal song, I colored the way to work and back with a fresh and pleasant smile. On April 27, 1986, the KBS morning home drama, 'Madame, Miss Wit,' ended with 'At that time' with the spring reshuffle on April 27, 1986. The home drama with the highest audience rating, which started on TBC Dongyang Broadcasting on May 3, 1965 and aired every day continuously for 21 years, ended with 7,500 episodes.

If you look at the characters in the play of 'Madame Acha, Madame Wit,' she is wise and wise with a woman who is always making mistakes and a bit erratic. The two main characters of the couple are the urban-type scoundrel Mrs. Jai, Acha's daughter Ok-hee and Jae-chi's son, Bau. Occasionally, Ok-hee's grandfather appeared, and in our era, which is transforming into a nuclear family, he was loved because it made him feel as if he was scolding (?) the superiority of a large family.

It seems that the characters in the drama were more familiar because it is a story with a variety of topics directly related to our daily life without processing, and always has the same plot as 'my story'.

This program, which never lost the top spot in audience ratings even in the news or popular soap opera sports big game, has undergone many changes as the 21 years have passed. It seems like an old story now, but back in the 1970s, home appliances such as telephones, TVs, and refrigerators were rare. It was a lively story of my neighbor, so it was tempting.

There are episodes that make you laugh. In the 1980s, there was an opinion that the stage should be changed from a detached house to an apartment. However, this argument was concluded as a hanok (?), as the argument for a detached house prevailed.

Changing roles was also a problem. The roles were often changed due to personal circumstances of the actors. Whenever that happens, there was also a serious protest (?), 'Why do you keep changing your wife?' Ok-hee would also receive a charismatic plea that she did not age, even though she had been several decades old. When I took over the program in 1976, the listening rate of 'Mrs.

The increase in TV penetration was also the reason. However, the transportation program 'Wandering the trees' appeared as a strong force on the way to work. In the worst case, Lim Gook-hee, who had been hosting 'Starry Night' with the popularity of female students, took charge of the morning program 'Im Guk-hee's Women's Sarong' and drove away a large number of former female students who became housewives. It was because

In such a situation, I was given a severe blow to the 'operation to retake the first place in listening rate'. I had to devote myself to new ideas. The first attempt was to recruit voice actors for listeners without departing from the existing format.

This is a call for extras to appear in the so-called 'Mrs. Witts'. They said that they would give the performers a fee, as well as generous prizes such as commemorative photos with the cast and a cassette tape containing the recordings of their appearances. As a result, 4,000 to 5,000 people came and it was a great success, and most of the people who took the exam were housewives. They ranged from female college students to working women. People who have experience in plays in the past, such as housewives, or people who claim to have a talent (?), gathered in large numbers. They appeared as either the main character's friends or the neighbor's uncle. This became a hot topic and played a major role in restoring the popularity of the program.

The second was a material competition. All kinds of fresh stories from the surrounding people came in and became the vitality of the program. The materials adopted were compiled into a book and published in 1978.

The third project was also fresh. We launched a campaign to 'purify our horses' in search of beautiful Korean horses. The discovery of the forgotten 'local language' created a topic of discussion. I think it had a great meaning from the public aspect of broadcasting. In any case, with the power of this project, 'Madame, Madame Wit,' reclaimed the top spot in listening ratings. It was an opportunity to get closer to the listener.

 

Dramatic Encounter of Print Media and Radio Media - Novel Theater

 

In October 1975, TBC Dongyang Radio organized 'Novel Theater' and left a great milestone in popularizing literature. 'Novel Theater' was a phenomenal project that caused the popularity of popular writers and their stock prices to skyrocket in the 1970s.

The first work was Han Susan's bestseller 'Bucho'. He started as a follower of publishing by adapting the hit novel of the publisher. However, he became the creator of the bestseller by broadcasting the freshly published 'Winter Woman' by Jo Hae-il. Books are sold like wings through the combination of print media and radio media. Also, as it was made into a movie, 'Novel Theater' proudly reigned as the cradle of bestsellers and a greenhouse. At that time, more than 200,000 novels were published: Jo Hae-il's 'Winter Woman' Han Susan's 'A Hymn to the Night' Choi In-ho's 'City Hunter' Park Beom-shin's 'Sleep Deeper Than Death' Park Wan-seo's 'A Stumbled Afternoon' Song Young's 'Love Song in Peanut Shells' Kim Joo-young's 'The Woman on a Wooden Horse' and 'The Adventures of Miss Missu' by Chosun. If it was aired on 'Novel Theatre', more than 100,000 copies were guaranteed checks. Filmmaking was taken for granted. The regular audience of this program, which was made into a radio drama by selecting novels published as books or serializ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varied from housewives and working wome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It was in the limelight with a listening rate of over 20%.

'Novel Theater' has become the news focus of the broadcasting industry by introducing various new formats or creating topics. Novelist Kim Joo-young took on the role of a pickpocket in her novel 'The Woman on a Wooden Horse', showing off a strong Gyeongsang dialect. He entered broadcasting as a voice actor. After that, he made frequent appearances on TV.

Novelist Choi In-ho also became a hot topic when he appeared as a voice actor in his work called 'Family'. In particular, Jo Hae-il's 'Winter Woman' was the biggest topic in the broadcasting industry, where the novelist and listener appeared together and had a heated debate. There was a heated debate over whether female college students like Lee Hwa, the protagonist of Winter Woman, could actually exist. In addition, Park Wan-seo, Song-young, Yoo Hyeon-jong and others directly appeared in the drama. By explaining the background and subject of his work, he also showed a sense of getting closer to the listener.

'Novel Theater' was a bridgehead for film adaptation. At that time, when 'Novel Theater' aired at the Chungmuro ​​Film House, he was frantic about recruiting the original author. As soon as it aired, there was a competition to buy the rights to the work. At that time, the original fee, which was a lot of 1 million won, soared to 5 million won. It is also true that Jo Hae-il's 'Winter Woman' was made into a movie. It was because our movie had surpassed the 1 million mark, which was the highest mobilization for our film at the time. In any case, 48 of the 60 'Novel Theater' works were made into movies. The stock price of radio dramas had no choice but to soar.

 

Documentary on the vivid development of economic leaders - 50 Years of Economic Annals

 

The radio documentary 'Fifty Years of Economic Annals - A Huge Wave' was aired on November 1, 1988. The best actors who have led the Korean economy testify in person and gained popularity. In particular, Hyundai Group founder Chung Ju-young and Pohang Steel founder Park Tae-joon frequently appeared as regular customers. The secret to the construction of the Gyeongbu Expressway or the secret to the founding of Pohang Iron and Steel was the first testimonial, so it became the focus of the news. The story behind the testimony of Chairman Chung Ju-young, who appeared in the Gyeongbu Expressway construction episode of 'Annals of Economics 50 Years - A Huge Wave' is famous.

It was around February 1968. Chairman Ju-Young Chung brought an extra bed to the barracks near Suwon. He was encouraging the construction of Gyeongbu Expressway. One morning, he knocked on the door and went out to find President Park Chung-hee standing there in a jumper. President Park Chung-hee said, 'President Jung, let's ride a helicopter with me today.' It is said that he rode a helicopter without knowing English. The passengers were Minister of Construction Joo Won and four pilots. At that time, the expressway was in the midst of a problem with the passage section, causing local residents to live or protest against it. Opinions were divided, such as opposing the passage of one's own country or that one must pass through our country. So the project was delayed. It is said that President Park Chung-hee directly ordered the location of this sluggish process by helicopter. It became the current Gyeongbu Expressway section. Chairman Chung Ju-young testified that he was surprised that President Park, a former artillery officer, knew so well the geography under the helicopter.

President Park Chung-hee completed the Gyeongbu Expressway, which started after seeing Germany's famous autobahn during his visit to West Germany in 1964, and completed 428 km in three years with the lowest construction cost of KRW 43 billion. “Hyundai E&C accomplished the 134km in two quarters,” he proudly testified. Another story that is now too well known, but the secret about the power of the 500 won bill of Chairman Ju-Young Chung was first known to the world through his upbringing through this program.

It was September 1971. Chairman Chung Joo-young, who visited the UK with a photo of the sandy beach of Mipo Bay and a blueprint for a tanker borrowed from Japan, said it was a very difficult one. He jumped in, believing firmly that if only the introduction of a loan could be made, he would be able to put it to sleep. So he met Long Bottom, chairman of Apple Doors, who had signed a technical cooperation contract.

“The repayment ability is also a problem, but the question is whether it has the ability to build a ship.”

Chairman Joo-Young Chung lost his pulse at those words. But suddenly I remembered the 500 won bill in my pocket. Chairman Ju-Young Chung took out a bill and spread it on the table. “Look at the money, this is an ironclad ship called the Turtle Ship, and we built this ship in the 1500s. But England isn't building ships like this 300 years later than us! Our industrialization is slow, but the ideas and potential are outstanding.”

At this, Chairman Longbottom smiled and introduced the Vice-President of Berkeley. And again,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vice president, Hyundai Mipo Dockyard was born by receiving an order for two 260,000-ton tankers for $80 million from Rivanos, the mother-in-law of the Greek shipping king Onassis. 50 Years of Economic Annals - Huge Waves also became the focus of the news when Chairman Park Tae-joon appeared in 'The Lonely Emperor' and revealed the hidden secrets of Pohang Steel.

**Writer Kim Seon-ok’s biography

Joined TBC Dongyang Broadcasting Producer. She has served as the head of KBS Radio Production Center, executive director of KBS Art Vision, executive director of Kyungin Broadcasting, adjunct professor at Hanyang University's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and special member of the Advertising Committee of the Broadcasting and Communications Committee.

She directed more than 400 radio dramas, including 'Novel Theater', 'Women's Theater', 'Oops, Madame Wit', 'My Happy Home' and 'Fifty Years of Economic Annals'. She won the 'Korea Broadcasting Grand Prize Directing Award' (1983), 'ABU Radio Grand Prize (1983)', 'Korean Broadcasting Grand Prize Best Picture (1993)' and '1993 Korea Producer Award Radio Grand Prize'. Her collection of poems, 'Raindrops at 4 PM', 'A quince tree caught the sound of a wind chime, etc.' 'Currently a member of the Korean Writers' Association, the Korean Poet's Association, the PEN Club Korea Headquarters, and the Korea Pres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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