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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주인인 청년아, 떨치고 일어나 경계에 서라!

‘전라도의 덕성’ 글 모음–서론(序論)편, 상(上)편, 중(中)편, 하(下)편, 결론(結論)편

강상헌 상형문자원 원장 | 기사입력 2022/05/25 [15:34]

[필자 주(註)] 전라남도 공식 소식지 <전남새뜸>의 시리즈 ‘풍류해자’에서 2020년 9월 시작해 간간히 연재한 ‘전라도의 덕성’ 5회분을 2022년 4월에 이르러 마무리 지었습니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기껏 고양이를 그렸구나 하는 아쉽고 어중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쓸 때마다 어른들, 동료 선생님들, 귀한 청년 아우님들을 간절히 그리며 붓방아를 찧었습니다. 예로 든 이야기가 남도의 사례에 치우친 까닭이기도 합니다. 해량(海諒) 구합니다. 함께 궁리하기 위한 자료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 모음의 마무리는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원래 게재될 때의 글을 그대로 싣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미래사전저널’의 웹페이지(blog.naver.com/futurepedia)에서 관계 자료를 더 접하실 수 있습니다.  오랜 지인인 낙낙한 인품의 선배 언론인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대표의 청에 응해 그가 주관하는 매체에 이 글을 선보입니다. <강상헌 상형문자원 원장>

 

에세이인문학 풍류해자 <110> 전라도의 덕성(序論)

문화다양성의 깃발…코로나 시대 인류 살릴 새 엔진 

 

 ‘전라도를 다시 본다’(2005년 刊)라는 책, ‘꾸밈없이 살아온 투박한 남도의 삶이 이런 남다른 멋이 될 줄 미처 몰랐다.’ 강정채 전남대 총장의 발간의 뜻이다.

 어디건 ‘그 땅과 사람들’의 얘기는 뜻이 있으리. 더해서, 여태 세상에서 ‘전라도’ 이름이 어찌 쓰여 왔는지를 곱새겨 본다면 그 제목이 품은 여러 뜻도 짐작할 수 있겠다.

 

광주지하철 농성역에는 ‘호남 100대 문화원형’ 전시장이 있다. 호남학연구원의 2007년 작업(기획 송정민 전남대 교수), ‘민족 문화의 꽃을 피우다’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이 땅과 사람들의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속셈 스며난다. 이를테면 ’전라도의 덕성(德性)‘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류 멱살을 쥐었다. 히로시마 핵폭발을 넘는 충격파다. 전 지구가 흔들린다. 강대국 선진문명이라 이르던 것들이 맥없이 무너진다. 유럽, 미국의 문물과 정신도 저리 허약했다. 말세인가. 엔진 바꿔 끼울까?

 

동아시아 태평양지중해의 한가운데, 절묘한 위치의 이 땅은 일찍이 장보고라는 걸출한 해양 영웅을 냈다.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한 남도 사람들의 해전(海戰) 시리즈에서도 그 찬란함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세계사적 의미는 우리만 모르는 것인가. 

 

이집트와 그리스 사이처럼 육지가 둘러싼 바다가 지중해(地中海)다. 개구리가 물에서 먹이질 하다 뭍에 올라와 쉬듯 양서류(兩棲類)의 본능으로 바다와 육지를 갈고 다녀야 성에 찰 해양(海洋) 족속 우리 겨레였다. 어쩌다 그걸 잃었을까나, 이제야 우리는 바다를 제대로 바라본다.

 

예부터 중국 러시아 유구(류큐)국 대만 왜(倭) 등을 마주 보는 바다 십자로, 이 지중해의 뜻을 국토지리에 새겨 궁리하는 것이 ’전라도 다시 보기‘의 첫째다. 그 바다는 우주로 솟구치는 터전이 됐다. 정치 경제의 지정학(地政學)은 이미 지났다. 이제 국제 교류의 마당은 ’문화‘다. 

 

‘문화의 제국(帝國)’ 표표한 깃발 세운다. 아시아의 거인들, 큰 정치가 김구(金九)와 ‘동양평화론’ 안중근의 염원이었다. 이는 ‘전라도 경영’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필연(必然)이기도 하다. 나라도 따라 바뀔 터다. 우리가 만들 ‘코로나 이후’의 동아지중해산(産) 미래학이다.  

 

문화는, 코비드’19 비대면(非對面) 환경에 선 인류의 새 플랫폼이며 방탄소년단 사례처럼 재화(財貨)의 새 핵심이다. 향토학자 김정호 선생은 진즉 이를 염두에 둔 ‘호남 문화항공모함론’을 폈다. 광주엔 노무현의 밝은 눈빛도 서린 아시아문화전당이 있어 이 염원을 지지한다. 

 

오늘날 왜 (남도의) 문화인가? 쾌락이 삶의 의의가 된 코카콜라 풍 서구 소비문화와 물질 지상주의의 자본시장, 지구를 점령한 배금(拜金)사상의 부조리가 인간세상을 역습하는, 기후위기와 바이러스의 창궐을 코앞에서 본다. 인류의 붕괴는 이미 그들의 역량 밖이다.  

 

우리의 본디가 ‘현대문명’의 뒤죽박죽을 바뤄야 하는 까닭이다. 흔들리지 않는, 형형한 전라도의 혼을 소환하는 것이다. 눈을 뜨면, 개벽(開闢)이 보인다.

 

우리를 적셔온 일월성신(日月星辰) 천지신명 향한 경건함, 신새벽 어머니 비손의 자비로움, 거친 심장 때리는 태초의 북소리, 신령스런 밥상 등 정신과 물질이 혼연히 하나 되는 어제와 오늘들, 우리 마법 구슬을 굴리며 그 염원의 열쇠를 명상한다. 천지인(天地人)을 깨운다.

 

한 백년, 대부분 겨레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외세에 흔들려 ‘백인 사회만의 가치’가 인류의 정의라는 거짓 신탁(神託)을 마음에 품고 살았더라, 이제 겨레 혼 불러내자. 착한 문화의 나라 세우자.

 

인내천(人乃天)이니 홍익인간(弘益人間)하라.

 

■ 토막새김

 

책 ‘전라도를 다시 본다’는 △남도의 삶터와 살림 △무등산, 영산강 등의 숨결 △민속, 누정(樓亭), 말, 몸짓 △신(神)이 내린 허튼 음악과 판소리 △황토 들과 갯벌의 선물 △차(茶)와 밥상 △잃어버린 왕국 마한 등의 주제를 다뤘다.

 

책 ‘호남 100대 문화원형’은 △인물 △생활 △종교 △민속 △문예 등으로 짜였다. 겨레종교인 증산교 원불교 등의 생성, 한스런 죽음과 남은 자들의 혼을 어루만지는 씻김굿, 전봉준 임방울 등 남도만의 한(恨)과 흥(興)을 풀었다. 살펴야 할 현대사의 딴딴한 매듭들도 여럿이다. (2020년 9월 4일)

 

▲목포 유달산은 개미진 홍어가 지나던 그 바다를 지금도 내려다본다. (2015년 조용백 作 ‘목포의 초상’)   ©브레이크뉴스

 

에세이인문학 풍류해자 <111> 개미와 홍어-전라도의 덕성(上)

남도밥상의 ‘개미’, 코로나시대 인류의 새 동력 되리니... 

 

남도밥상의 맛을 이르는 특징적인, 그러면서도 뜻 모호한 채 쓰이는 맛난 언어가 있다. ‘개미’다. ‘맛이 있다’를 넘어서는, 특별한 맛을 이르고자 하는 의도로 쓴다. ‘개미 있다’ ‘개미지다’라고 쓴다. ‘게미’라고 쓰기도 한다.

 

개미의 말밑(어원)이나 유래가 명료하지 않다. 한자가 변한 말인지 아니면 온전한 토종어인지, 어떤 일을 계기로 시작되어 이런 뜻으로 쓰이는지 등의 언어(학)적 지식이 낙낙히 쌓여있지 않은 것이다. 사투리라며 제쳐두기도 한다. 국어사전에 없다.

 

글 쓰는 이들의 묘사를 모아보면, 이는 은근하면서도 깊은 음식의 맛을 기리기 위한 언어다. “이 말 모르고 누가 감히 남도밥상을 안다 하랴.” 얼마 전 타계한 박준영 선생(전 나주문화원장)이 나직이 들려준 얘기다. 다소곳이 지켜온 긍지의 언어인 것이다.

 

남도 땅과 사람들의 삶을 새겨온 황풍년 씨(전라도닷컴 발행인)의 에세이집 ‘풍년식탐’(2013년 刊)은 ‘개미’가 이 지역 음식의 개미를 얼마나 개미지게 풀었는지를 절절히 드러낸다. 

 

그 책의 ‘흑산도 최명자 아짐의 홍어된장찜’ 글을 맛보면 개미의 쓰임새 확연하다. ‘천 갈래 만 갈래로 뻗어가는 맛의 지존’이라고 했다. 홍어의 다양한 개미인 것이다. 아 그렇지, 개미의 뜻은 홍어(요리)의 맛으로 설명해야 제격이겠구나. 홍어 모르면, 알고서 다시 오시게나. 

 

동아지중해 한가운데 흑산도는 예로부터 홍어 포인트였다. 거기서 건너보이는 영산도는 본섬의 예리 항(港)과 함께 홍어중심이었다. 나주의 영산포는 영산도 이주민이 옮겨와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왜구의 노략질 피하자는 명분 등으로 고려는 공도(空島)정책으로 섬들을 비웠다. 

 

살림집은 옮겼어도 홍어잡이는 흑산바다였다. 유달산이 내려다보는 목포나루 앞을 지나 영산강을 오르는 운송과정에서 홍어는 곰삭았다. 신선(新鮮)부터 삭힘까지, 세계적인 홍어 맛의 파노라마가 시작됐다. 선조들은, 김치 같은 발효의 이 명품을 ‘발명’한 명인(名人)들이었다.

 

용맹스런 덕장(德將) 이순신의 바다이기도 하다. 유달산은 이 바다를 지금도 지켜본다. 우리는 자칫 이 인류문화(사)적 의미를 대수롭지 않다고 경시하는 것은 아닌가, 저어한다. 

 

남도의 덕성 중 거의 모든 지역과 사람들을 매혹하는 요소, 혼을 담아 예술의 경지에 이른 ‘맛’이다. ‘풍년식탐’의 이모저모에 그 맛과 맛을 빚는 사람들의 인심(人心)이 절절히 드러난다. 아름답다 가(佳)자 넣어 가미(佳味)라고도 개미를 푸는 까닭일 것이다. 

 

현대사의 여러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맛의 고을 미향(味鄕)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지점이다. 모두 감동하는, 현재 제 가진 가장 큰 재산인 이 덕(德)을 바탕삼아 ‘전라도’와 한국을 펴야 덕스러운 선택일 터다. 물론 제대로 보완하고 정비한 명품을 내놔야 한다.

 

개미가 미래로, 인류로 비상(飛上)하여 중국 프랑스 터키 등지의 글로벌 음식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근거다. 실제로는, 이 말과 뜻이 이 지역에서조차 시나브로 잊히는 것이 안타깝다. 겉모습 요란한 서구의 허접문명에 한눈파느라 자칫 제 보석 팽개칠라.

 

■ 토막새김

 

개미의 문자학, ‘아름다운 맛’ 가미(佳味) 단어를 다시 보자. 

 

한자의 발음표기법인 반절(反切)로 가(佳)를 풀면 고해절(古膎切)이니 古의 ‘ㄱ’과 膎의 ‘ㅐ’가 합쳐지는 ‘개’가 佳의 원래 발음이었다. ‘개미’가 佳味의 한자발음에서 왔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加味(가미)라 하는 이도 있다.

 

배추를 백채(白菜)라고 하는데 한자발음이 ‘바이차이’다. 일부에서 배추를 ‘배차’라고 부르던 우리 말 옛 습관을 기억한다. 가미와 개미의 경우와도 흡사한 ‘비교발음론’이랄까. 허나 개미든 게미든 가미든, ‘개미’는 이미 남도의 개미를 설파(說破)하는 힘차고 이쁜 말이다. (2020년 9월 17일)

 

에세이인문학 풍류해자 <115> 어중간의 경제학-전라도의 덕성(中)

‘남의 떡’이 그리도 크고 맛있어 보이나요? 

 

 ‘우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힘을 회복하는 길이다. 발해만 홍산문화(BC 6000~BC 800년) 출토 조소(彫塑) 여신상을 보는 소회(所懷)다. 동이족, 먼 옛날 우리의 할머니로 추정한다. 

 

피라미드 모나리자 만리장성 등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돈 내고 줄서서 사진 찍는 곳이란 점이다.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여러 겨레 못 모은다. 좋지만, 어중간한 까닭이다.

 

터키 베트남은 프랑스 중국처럼 음식으로도 손님 끈다. 마카오는 라스베가스처럼 놀음판 벌여 돈 번다. 영국은 해리포터,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이미지 발라 재미 본다. 싱가포르는 쇼핑 명소다. 우리는? 나아지고는 있지만 인류 홀리기엔 어떤 부문도 아직 어중간하다.

 

관광의 전통이 확 바뀔 거라고 한다. ‘어떻게 변하느냐?’며 겁낸다. 스스로를 통째로 뒤집어야 겨우 따라갈 정도일 것이다. 허나 대개 ‘나는 말고, 너가 먼저’ 같은 어중간한 속셈이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는 ‘나’를 개벽하는 이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 한다. 어찌 관광뿐이랴.

 

‘굴뚝 없는 산업’ 관광은 문화전통과 자연환경의 틀에서 짓는 가장 이상적인 비즈니스다. 여태 산업화와 개발의 열매를 나누는 데 늘 소외됐던 나머지 우리 지역과 사람들의 문화와 환경이 덜 망가진 역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해답은 그 ‘어중간’을 압도적 우위(優位)로 바꾸는 데 있다. 피라미드 모나리자 만리장성은, 아직은, 워낙 압도적이어서 코로나 이후 차츰 문 열리면 다시 문전성시 부를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절대우위’다. 프로도의 절대반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배 만들어 거제도와, 자동차로 울산과 경쟁하겠다면 이는 무리다. 다만 ‘문화’와 ‘환경’은 외국을 포함한 타 지역보다 낫거나 견줄 만하다. 터전 또는 인프라를 보완한다면 ‘비교우위’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다. 이내 절대우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크다.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허황된 욕심이라고? 한번이라도 해봤어?! 기업가 고 정주영에게서 자주 들었던 어투다. 장보고는 당시로선 온 세상이나 다름없는 중국 대륙을 주름잡고서, 그 앞바다 동아지중해의 완도 청해진을 바탕으로 북태평양을 경영했다. 

 

부끄럽지 않을 후손이 되어야 할 우리 아니던가. 결코 쩨쩨하지 말 것!

 

문제는 내 위치 즉 좌표를 바로 파악하고, 세상을 보는 각도 즉 앵글을 영점 조준하듯 정교하게 맞추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중심의 이제까지의 세계관이나, 식민지 침략을 위해 일본이 조작한 비뚤어진 역사관과 같은 생각의 틀을 우선 바로잡아 우리 줏대를 갖출 일이다.

 

비교우위는 국제 무역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다. A나라에서 물건 2개 종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둘 다 B나라에서 드는 비용보다 적다면 이는 A의 절대우위다. 그 중 1개의 A B 사이의 생산비 차이가 다른 1개에 비해 적다면 이 품목은 B가 A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비해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리 지역의 생산성이 처진다 해도 문화와 환경에서는 비교우위를 갖는 것이니, 이를 선택과 집중의 새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에는 뉴욕 파리 베이징이 서울 부산보다 더 중요한 경쟁자가 될 것임을 명심할 것.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의 거대함, 그랜드캐니언이나 중국 계림의 위대한 자연, 영국 에든버러 축제나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같은 이벤트의 압도적인 힘을 생각한다. 거긴 역사 연혁 이야기도 튼실하다. 절대우위 가능성 갖추고도 아직은 어중간한, 우리가 챙겨야 할 대목이다.

 

옛날부터 농사와 수산이 뛰어났다. 왜놈들 탐냈을 만큼 쌀 소금 면화의 3백(白)은 나라 모두를 살렸다. 낙낙한 광에서 따뜻한 인심과 뛰어난 음식, 예술이 생겨났다. 

 

탐관오리 토악질을 참고만 살지는 않았다. 나라의 마음, 동학의 고향이다. 미향(味鄕) 예향(藝鄕) 의향(義鄕)의 토대다.

 

당당히 살았다. 불의(不義)한 이들의 못난 심보까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진정한 힘을 키워야 한다. ‘어중간’을 ‘압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물며 전라도의 밥상에서도 그 힘은 솟구친다. 

 

해 보라, 세계 최고의 문화전진기지 ‘전라도’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 토막새김

 

어중간(於中間)의 뜻, 於는 영어 전치사 at 즉 ‘~에 (있다)’와 같은 뜻이니 ‘中間에 있다’고 풀자. 흔히 쓰는, 좀 부정적인 그 의미의 본디를 생각해 보면 언어의 변신술이 재미있다.

 

중용(中庸)은 인생의 교훈이면서 도(道)의 방법론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음 즉 어중간이 떳떳한 것이라니 오늘 우리 마음의 행로는 참 어지럽다. 

 허나 도와 덕(德)이 어찌 쉽기만 하랴.

 

어디서나 불한당 같은 이들이 짖어댄다. 세상 읽는 눈이 더 밝아야 하는 시대다. 이성(理性)의 종말인가.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에 부끄럽지 말자. 고귀한 영혼인 당신을 경건하게 모시라. (2021년 11월 25일)

 

▲ ‘우리’를 찾는 것이 우리 힘을 회복하는 길이다. 발해만 홍산문화 출토 조소(彫塑)는 동이겨레, 우리의 할머니일 것이다. (2013년 김병택 作/아시아인문재단 제공)     ©브레이크뉴스

 

에세이인문학 풍류해자 <130> 돌파하는 브랜드-전라도의 덕성(下)

남도밥상의 비결, 저 갯벌과 바다가 우리 ‘브랜드’다. 

 

절박하게, 우리가 해야만 할 그 일, 코로나19 이후의 돌파구 마련에 관한 강박감은 특히 정책결정자들을 잠 못 들게 한다. 물론 핵심은 ‘뭘 먹고 살지?’다.

 

어떤 사례, 한 농산물 브랜드 ‘오닝’에 관한 얘기다. ‘아침’의 뜻 모닝에서 ㅁ(미음) 발음을 뺐다고 한다. morning에서 m을 뺀 것이다. 영어 데려다 의미 없는 철자삭제까지,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은 참 가상하다 싶다. 

 

얼굴 같은 대표적 이름, ‘브랜드’는 상품경제에서 절대적 존재다. 이는 새 돌파구의 전위(前衛)이고 전제(前提)다. 형(形 이미지) 음(音 소리) 의(義 뜻)의 셋이 잘 어울리는, 저런 억지 안 쓰면서 제대로 된 이름 없을까. 形音義는 상형문자(그림글자)의 3요소이기도 하다. 

 

브랜드는 상징성을 도드라지게 살리는 언어나 도형이 제격이다. 요리명인이라는 백종원 씨의 이름과 얼굴(그림)이 요즘의 알찬 브랜드라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도(南道), 전북 전남 경남의 서남 해안과 그 안쪽은 천혜의 곡창(穀倉)과 해창(海倉)이다. 기후는 순하고 황토밭 토양은 가멸다. 세계적인 갯벌과 섬도 많은 리아스식 해안은 세계지도를 펴고 톺아봐도 심상치 않다. 소금 좋은 해안은 원래 세계 어느 곳이건 축복 받은 땅이다.

 

조개 캐고 세발낙지 건지는, 게 짱뚱이 건들건들 뛰노는 생명의 갯벌. 생산성 최고의 저 미덕을 제대로 아는 이가 그리도 없었을까? ‘뻘짓’이 헛짓 바보짓이라고? 뻘에서 일하는 이, 바다를 사는 의미롭고 아름다운 일를 저렇게 멸시하였구나. 미래를 지워 온 철없는 겨레라니. 

 

세계 최고 갯벌로 꼽히는 서남해안이 땅 몇 뙈기 탐낸 간척(干拓) 명분으로 흐트러지니, ‘가성비’의 뜻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저 갯벌이 ‘남도의 바로 그 맛’을 샘솟게 하는 하늘의 비밀, 천기(天機)임을 아는 이는 이제 손가락으로 꼽겠다. 

 

소탐대실 근시안적 마음이 여태 바다 망친다. 맛나고 튼실한 농산물 해산물 넘치는 땅, 중국 일본도 탐내던 곳이었다. 흔하다보니 귀한 줄 몰랐다. 애먼 데만 본 것이다.

 

북태평양 동아시아지중해의 배꼽으로 예부터 대륙(중국)과 류큐(오키나와) 대만 왜(일본)같은 바다 밖 연안(沿岸)지역과의 잦은 교류는 남도의 실속을 채웠다. 

 

지중해성 지리상의 요소가 우리나라를, 특히 남도를 특징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전통과 문화의 여러 차이는 거기서 비롯된다.

 

문화나 역사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은 ‘저 천혜의 자원’이 경이(驚異)롭다고 마냥 부러워한다. 삶의 터전과 방편이 절로 탁월했던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 또한 맛과 멋을 챙기는 순박한 전통을 꾸준히 곱새겨온 터다. 

 

뻘밭과 문전옥답의 식재료는 신(神)들과 나눠도 손색없을 밥상문화를 빚었다. 이 지역 전통에 부정적인 생각 품은 이들까지도, 예외 없이 “저 사람들, 음식 제대로 해먹는 것 하나는 알아 줘야 돼!” 입을 모은다. 만장일치 수준이다. 

 

놀랍다. 돈으로 못 살 재산, 전승(傳承)의 브랜드다.

 

고흥반도와 무등산 기슭에선 일찍이 분청사기(粉靑沙器)를 구웠다. 장보고의 ‘벤처기업’ 강진만 청자기(靑瓷器) 전통과 이어진 그릇예술의 개화(開花)가 그 안에 담기는 음식의 품격을 드높였다. 맛의 시각적 완성이다. 

 

‘정치’ 따위는 따라오지 못할, 민중정서의 개가(凱歌)다. 꽃은 눈을 가진 이를 보고 웃는다.

 

동아지중해의 중심축인 남도를 푸는 제대로 된 안목이 여태 없었던 것이다. 또 동아시아 중심의 새 국제질서에서는 저 바다의 위세(威勢)가 새삼 치명적일 것이다. 이제 제 이름표와 해석 붙여 그 가치를 인류가 공유(共有)토록 해야 한다.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해양역사학)는 최근 광주강연에서 ‘지중해적 특성에 비춰본 남도의 전통과 문화는 실은 전 인류적 자산’이라고 단언했다. 

 

청년들이 떨쳐 일어나 감춰져온 바다의 정수(精髓)를 품으라는 축원(祝願)이었다. 근현대사에서 유럽에 밀렸던 대양(大洋)의 헤게모니(주도권)를 빼앗아 다시 휘두르라는 열정의 질타(叱咤)였다.

 

‘바다’의 남도는 이런 이유로 세계 제일의 밥상을 제 얼굴로, 제일 큰 브랜드로 세워야 한다.

 

■ 토막새김

 

(재)아시아인문재단(이사장 김성종)과 광주문화재단(대표이사 황풍년)이 최근 지역문화자산 발굴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 지역의 전통과 문화유산이 겨레를 넘어 코로나19 이후 개벽(開闢) 인류의 삶에 돌파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포부와 공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라남도와 광주시의 영혼 깃든 새 이미지, 브랜드 창출의 갈망으로 읽힌다.

 

양측 관계자는 음식과 제례(祭禮) 예술 등 전통과 현재의 문화에 관한 열린 해석, 이런 일련의 과정과 결과가 ‘동아지중해 문명’의 이름으로 국제사회와 교류되도록 할 새로운 시도를 펼치겠다고 설명했다. ‘인류에게 남도는 무엇인가?’의 답을 찾자는 것이다. (2021년 7월 1일) 

 

에세이인문학 풍류해자 <149> 전라도의 덕성(結)-어중간을 깨자.

인류 보듬어 치유할 새 문명의 마중물-인심의 밥상

 

일제 말, 광주서 중학교 다니던 그는 방학을 맞아 땅끝마을 근방 집까지 무전여행을 떠났다. ‘좀 있는 집’ 아들의 객기(客氣)도 섞인 모험이었겠으나, 그때는 무섭게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길가 집들 형편인들 오죽 했을까. 얻어먹은 곶감의 ‘아름다운 맛’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안 굶고 잘 자며 일주일을 걸었다. 그 때 본 ‘전라도의 마음’은 컸다. 호연지기(浩然之氣) 가르쳐준 영어선생님 내 아버지의 ‘라떼’다. 진작 별세했다.

 

1,000원 밥상, 광주 대인시장의 ‘해 뜨는 식당’을 마음에 떠올리면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 늘 가슴 먹먹하다. 어머니 故 김순자 선생의 뜻 이어 따님 김윤경 사장이 12년째 의미 큰 사업을 펼친다. 

 

무료급식 아니니 사먹는 이 당당하다. 설거지 하겠다는 청년들 멋지다. 조용히 ‘김순자 김윤경’이 되어주는 이웃들 줄섰다. ‘계산’이야 어설프지만, 계산 너머의 마음이 거대한 물결이다.

 

아름답다. ‘전라도의 힘’이다. 인심(人心)의 천심(天心)이다. 레시피(요리법) 넘어서는 ‘어머니 손맛’은 이 인심에서 나오는 신령한 기운이다. 시계와 저울, 서양의 과학으로 어찌 따를쏘냐? 전라도 밥상이 저 손맛, 인심의 소산(所産)임을 다시 보자. 

 

인터넷 평가에 휘둘려 서울처럼 달고 맵짠 음식 간이 이 동네에도 퍼져가는 것이 걱정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이쁜 인심마저 맵고 짠 달콤함으로 빠져들라. 

 

풍류는 인심의 밥상에서, 개미진 입맛에서 태어난다. 예로부터 살림터전으로 윤택했던 동아시아지중해의 복판, 흑산바다와 갯벌로 에워싸인 황토벌에 무등산 지리산 월출산의 숨결이 농산(農産) 수산(水産)과 함께 멋 아는 사람들 키웠더라. 인심과 음식 예술은 한 뿌리다.

 

어중간(於中間)은 ‘중간에 있다’는 뜻. 자기가 스스로 중간이라고, 핵심과 가깝다고 여기는(착각하는) 순간 그는 ‘어중간한 사람’이 된다. ‘새로운 기운’과는 영영 이별인 것이다. 於(어)는 ‘~에’라는 뜻이다.

 

혹, 지 게으른 탓까지 다 ‘지역차별’ 같은 ‘정치개념’으로 핑계 삼았던 것은 아닌가? 역사의 쓰디 쓴 교훈보다 얄팍한 향기에 취해 시대를 배회하지는 않는가, 어중간의 결과일 터다.

 

우리들, 특히 청년은 어중간을 깨고 다시 경계에 서자. ‘어중간’은 침체(沈滯)다. 떠나자. 청해진대사 장보고와 충무공 이순신을 넘어서라. 하늘 삿대질하면 익은 감 떨어질까? 큰 바다, 광야를 헤매는 개척자가 돼라. 

 

전라도학자 김희태 선생의 ‘특산물 등 전라도 물산(物産)’을 보았다. 책 ‘전라도천년사’의 일부다. 역사에 새겨진 이 고장 문물의 넉넉함은 자못 황홀하다. 너끈히 나라 내외의 모두를 먹여 살렸구나. 

 

인심과 밥상의 한 뿌리다. 타 지역이나 왜(倭)도적들의 선망과 질시는 당연했겠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탈(脫)중앙의 글로벌 시대다. 남도음식 부활을 시도했던 故 박준영 전 나주문화원장은 “전라도의 특출한 문화를 음식이라는 주제로 포장해 세계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보다 세상을 가까이하라.’는 고언(苦言), ‘문화독립’ 주장도 귀하다.

 

밥상이 방법론이다. 천지신명에다 산신령도 감복할 울 엄니들의 손맛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늘 만나 서로 익숙한 사이 ‘너와 나’ 말고도, 새로운 시각의 국내외 많은 관찰자들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 보여주라. 

 

문화는, 풍류는 절로 이 마음을 따른다. 종속(從屬) 벗고 ‘나’를 해방하는 간절한 길이다.

 

전라도밥상은 국내용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계 깨고 인류의 심성을 보듬게 하라.

 

■ 토막새김

 

터키 이집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지중해 지역 문화의 핵심 또는 뿌리는 음식이다. 지금도 요리로 재미 본다. ‘간판’인 것이다. 문화와 버무린 ‘프랑스 와인’ ‘이탈리아 요리’ ‘동서양의 만남 터키 음식’ 등이 인기 높은 비결, 유혹을 위한 집요한 노력 즉 ‘돈’이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 이 한줄 세계 각국의 언론에 제목 내기 위한 이들의 투자와 연구는 경탄스럽다. 한편, 거대한 음모와도 같다. 끈질기다. 소위 선진 문화의 정체다. 그 집요한 노력은 바로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전라도밥상은 세계를 감동시키지 않지? 국내외 통찰 큰 분들도 애석해한다. 이 문화유산은 이제 인류에 기여해야 옳다. 전라도의 가장 큰 경쟁력, 허물어지기 전에 창달(暢達)하자. (2022416). kangshbada@naver.com

 

*필자/강상헌

언론인. 상형문자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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