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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장에 나오는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원의 입장은 미묘하다. 피감기관원들은 국회의원이 마치 자신의 알몸을 위아래로 훑는 느낌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과거 인연을 맺은 이와 국감장에서 마주섰다면 어떨까? 더구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원수를 국감장에서 만난다면, 18대 첫 국정감사장에서 의원과 피감원으로 만난 원수(?)들을 살펴봤다.
에피소드 1. 별의 별(★) 恨
지난 10월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육사 선후배가 만났다.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육사 36기)과 이상희 국방부 장관(육사 26기)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96년 김 의원은 사단장인 이 장관 휘하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 작전참모(중령)였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의 상하관계였지만 10년이 지나 국감장에서 둘의 관계는 역전돼 있었다. 더구나 김 의원이 지난 2006년 6월 '스타'를 달지 못하고 예편했는데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이 장관이었으니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뒤 자신이 '스타'로 진급하지 못한 이유가 당시 사령관인 이 장관이 근무평점을 낙제점인 ‘c’를 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한다. 반면 이 장관은 제3군사령관,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왔으나 국감장에서 이 의원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성회 vs 이상희 |
그러나 국감에서 김 의원과 이 장관은 원수라기보다 동지에 가까웠다. 김 의원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군필자 가산점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장관이 “군필자 가산점제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하며 국방부는 이를 위해 노력해갈 것”이라고 ‘화답’한 것이다. 알고 보니 김 의원이 이 장관에게 과거 근무평점을 나쁘게 준 것과 관련해 진상을 확인하고 서로간의 앙금을 풀었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에게 확인해본 결과 이 장관이 당시 김 의원의 근무평점 때 c를 줬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a를 줬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란 후문이다.
한편 김 의원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록 장군이 되지는 못했지만 진급에서 누락됐기 때문에 ‘선량’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장관과는 서로 오해를 풀었고 이제는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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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피고와 검사 그후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송두환 헌법재판관이 지난 10월7일 국감장에서 만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감에 앞서 의원들과 헌법재판관들의 상견례에서 만난 이 둘은 5년 만이었다.
지난 2003년 특별검사와 피고인으로 만난 후 처음이었다. 당시 송 재판관은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맡아 박 의원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박 의원으로서는 악연을 국감장에서 만난 것이다.
박지원 vs 송두환 |
그러나 박 의원과 송 재판관은 깊게 악수를 나누며 “축하한다”, “오랜만이다. 축하한다” 등 깊게 악수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박 의원은 “저는 개인적으로 대북송금 특검을 해서 노무현 정권에서 징역을 살았다”는 말로 질의를 시작했다. 이어 “그분(박 의원)이 특검이 연장되면 수표를 추적해 (진위를) 밝힐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피고인이 고생을 했다고 한 (송 재판관)말을 전해 들었다”며 “그분(송 재판관)을 존경한다”며 송 재판관과의 인연을 밝혔다. 또 “언론이 (송 재판관에 대해) 물었을 때 비록 저를 구속했지만 저는 참으로 합리적인 분이기 때문에 헌법재판관이 돼야 한다고 했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헌재를 존중한다”고 밝히며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당시 특검 기간 중 수사를 끝내지 못했던 송 재판관은 박 의원에 대한 기소 여부를 대검 중수부에 넘겼다. 중수부는 박 의원에게 현대그룹으로부터 대북사업의 대가로 뇌물 150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를 강행했다. 그러나 2006년 5월 박 의원은 고등법원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에피소드 3. 어제의 동지 오늘은 적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됐다. 지난 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정감사에서 상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 최철국 의원에게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아무개 서울지역본부장이 라이터를 던지며 폭언과 협박을 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이아무개 서울지역본부장은 국회의원에게 협박성 폭언을 한 혐의(국회회의장 모욕)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원에 발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건 후 이 본부장과의 사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 의원측이 “2~3번쯤 만나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달랐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 의원과 이 본부장이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국감장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무능력한 사람을 서울지역본부장으로 보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격분한 것 같다”는 것이다.
최철국 vs 이모 본부장 |
실제 경찰조사 결과 최 의원과 이 본부장은 지난 2004년부터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의원이 경남 김해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산업단지공단을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과정에서 당시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본부장이었던 이 본부장을 알게 됐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김해시와 함께 2012년까지 경남 김해 주촌면 일대 에 5200여억원을 투자해 150만여㎡ 규모의 ‘김해일반산업단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지난 7월에 기공식을 했다.
이후 지난 2005년 열린우리당 경남도당위원장을 맡은 최 의원이 지역구인 김해뿐만 아니라 경남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이 본부장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이 본부장 역시 최 의원과 마찬가지로 경남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출신인지라 경남지역의 산업단지 공단 유치를 위해 함께 일하면서 수년간 막역한 사이로 지낸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인연은 최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부하직원의 횡령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추궁한 데 격분한 이 본부장의 폭언과 협박으로 파경을 맞게 됐다.
취재 / 설원민 기자 sinclair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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