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자극들을 계속해서 받게 된다.
이 중에는 사람이 성욕을 느끼게 하는 자극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자극들을 흔히, ‘성적인 자극’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설명했듯이, 이런 자극을 받은 까닭에 사람이 느끼는 성욕이란, 그저 하나의 반응에 불과하다.
무시하겠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혹은 외면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자극들이 ‘사람의 존재’를, ‘사람의 생명유지’를 담당하는 ‘기본욕구로서의 성욕’을 계속해서 자극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극들은 매우 강하게, 어떤 자극들은 아주 은근하게.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이나, 그 냄새가 역시, 사람의 생명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식욕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것처럼.
물론,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이 성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성적인 자극을 받았다고 해도, 이미 설명했듯이,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에서는 미처 성욕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니.
그래서 사람은 ‘내가 언제 성적인 자극을 받았나?’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해도, 그런 자극을 받은 까닭에 사람이 성욕을 느끼는 경우들은 매우 많이 있으며, 그 뒤에는 자위나 섹스를 비롯한 이런저런 성행위를 하는 경우들도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그 결과, 사람의 생명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경우들도 많고.
이런 형편이라면 그런 자극들을 그저 ‘성욕을 느끼게 하는 자극’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하기보다, ‘기본욕구로서의 성욕에 대한 자극’, 혹은 ‘기본욕구로서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자극’이라고 이해하는 훨씬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설명했듯이,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일 때에 온전하게 성욕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성적인 자극’이란 사람이 ‘안정감을 갖게 하는 자극’, 또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자극’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사람이 그런 자극을 받으면 성욕을 느끼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심리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상태라고 해도, 이미 성욕이 충분하게 만족되었다면 사람이 더 이상 성욕을 느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가 잔뜩 부른 상태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쉽게 식욕을 느끼지는 않듯이.
따라서 사람은 성욕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자극을 받는 경우에는 온전하게 성욕을 느낄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온전한 성욕을 느끼기 어렵다고 정리할 수 있다.
또, 비록 성욕을 느꼈다고 해도, 온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고.
이미 설명했듯이, 정신적 상처를 받게 되면, 혹은, 혼자만 방치되면 사람은 그만큼 더 불안한 상태가 된다.
그렇다 보니 흔히 말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자극’만으로 무조건 사람이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사람은 바로 이 ‘불안’의 정도에 따라서 ‘부드러운 자극’보다 그만큼 더 강한 자극을 받거나, 그만큼 더 약한 자극을 받아야 비로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경우도 매우 많이 있다. (이렇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사람이 불안할수록 예민한 부분은 그만큼 더 예민하게 되고, 둔한 부분은 그만큼 더 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뒤에야 온전한 성욕을 느끼게 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또 정확하고.
이 중에서 ‘더 강한 자극’을 받아야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사람이 일반적인 성적인 자극을 받았다면 그만큼 더 성욕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보나마나 그만큼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니.
이와는 달리, ‘더 약한 자극’을 받아도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더 성욕을 느끼기 쉬울 것이고.
‘요즘은 성욕 때문에 아주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아직은 자위로 해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정말 미치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젊은 놈이 그런 것을 갖고 무슨 고민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진지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도 이런 생각 때문에 공부가 안됩니다.’(20·재수생)
그렇다 보니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인데, 또 이미 설명했듯이, 사람은 정신적 상처를 받을수록 그만큼 더 큰 가해욕구나 수해욕구를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바로 그런 욕구가 만족되어야 심리적으로 안정되는데, 따라서 실제로 사람은 이중에서 어떤 욕구가 더 큰가에 따라서 바로 그에 맞는 자극을 받아야만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즉 수해욕구가 더 큰 사람이라면 그만큼 더 ‘거친 자극’을 받아야만.
그 반면, 가해욕구가 더 큰 사람이라면 그만큼 더 ‘순한 자극’을 받아야만.
이에 대해서는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 등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수해욕구가 더 큰 사람이 ‘순한 자극’을 받는다면, 혹은 가해욕구가 더 큰 사람이 ‘거친 자극’을 받는다면 보나마나 그만큼 더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만큼 더 성욕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고.
이뿐 아니라, ‘상대적 우월감’이 있는 사람 역시, 칭찬을 듣는 등 그 욕구에 맞는 자극을 받아야 비로소 안정될 것이며, ‘상대적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비난당하는 등, 그만큼 더 그 욕구에 맞는 자극을 받아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이 지적받거나 비난당하면, ‘상대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칭찬을 듣는다면 그만큼 성욕을 느끼기 힘들 것이고.
예를 들어서, ‘외모’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이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매우 아름답습니다’라고 칭찬하는 등으로.
그런 말을 듣는다면 보나마나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 것이니.
따라서 실제적인 ‘성적인 자극’이란 이런 다양한 욕구들을 만족시키는 자극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며,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만족하면 그만큼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사람은 성욕을 느끼게 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만큼 불안하게 되어, 더 이상 성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이해하면 또 정확하다.
그런데 자신을 알게 될수록, 그래서 ‘절대적 자신감’을 가질수록 사람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그만큼 더 심리적인 안정상태가 된다.
외모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재산 상태나 학력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혹은 학벌이 어떻든지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