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주목받은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분재(盆栽)정원, ‘생각하는 정원’으로 탄생시킨 성범영 원장

이창호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2/01/24 [05:47]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오른쪽)과 이창호 위원장이 함께 생각하는 정원에서 앉아있는 모습.     ©브레이크뉴스

신(GOD)이 축복한 황금의 땅 제주도에 키 작은 난쟁이 나무들에 미쳐 일생을 살아온 한 농부가 있다.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분재(盆栽)정원, ‘생각하는 정원’으로 탄생시킨 성범영 원장이다.

 

자갈밭을 개간하고 나무를 가꿀 때, 친지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루외(미친놈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분재와 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1992년 마침내 한중수교 한 달 전에 정원을 개원하기에 이른다.

 

성범영 원장은, 4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을 떠나 혼자서 돌멩이만 가득한 제주도에 와 황막한 섬을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는 나무에 반했고 나무를 사랑했다. 그의 분재원은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철학적인 의미가 깊은 이름을 갖고 있다.

 

48년 동안 생각하는 정원 주인 성범영은 보통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 및 육체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는 자신이 힘들 때면 ‘아내의 사랑과 지지가 힘이 돼주곤 했다’고 말하곤 한다.

 

1962년으로 그는 군에서 퇴역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를 소개하는 방송을 들었다. 대학교수들이 제주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제주도가 아름답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다고 했다. 이때 그는 불쑥 제주도에 살고 있는 전우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몇 시간의 바다 여정을 거쳐 그는 제주도로 갔다. 그가 본 제주도는 신기롭기 그지 없었다. 나무는 푸르고 감귤은 나뭇가지에 가득 매달려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돗물도 없었지만 곳곳에 푸른 나무들이 경이롭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했던 그는 이곳에 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1970년대 초부터 성범영은 서울과 제주도 사이를 빈번히 들락거렸다. 사업이 잘돼 돈이 생기면 바로 제주도의 황무지를 샀다. 스물네 곳에 땅을 사서 오늘의 생각하는 정원 규모를 만들었다. 땅을 개간하고 돌담을 쌓고 원목으로 문을 짜서 달고 조경용 나무들을 구매해 들였다.

 

분재에 대해 성범영은 독학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늘 밤을 새우며 분재에 관한 서적을 읽고 전문가를 방문해 자문하곤 했다. 점차 분재에 입문하게 되자 그만 분재에 깊이 빠져들었다.

 

1974년, 성범영은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을 버리고 아예 호적을 제주로 옮겨왔다. 아내는 종종 그를 보러 제주로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성범영은 지친 모습이었다. 농장을 빨리 꾸리기 위해 성범영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노동자들과 함께 돌을 캐고 나무를 심고 분재를 자르곤 했다.

 

1987년 초, 성범영의 머릿속에는 점차 한국 제주도 특색이 있는 분재예술원의 윤곽이 떠올랐다. 1990년 4월, 그는 3년을 기한으로 힘든 공사를 시작했다. 1992년 7월 30일, 분재예술원은 드디어 개원했다. 하지만 당시 공사는 25%밖에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원하자 바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1995년, 중국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방문하면서 분재예술원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장주석이 방문한 날 하늘은 과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성범영 부부는 감격의 마음으로 귀빈을 맞이했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나서 성범영은 “위엄보다는 내내 친근하고 자상하였다.”라고 말했다. 그 후 국내의 많은 언론들은 성범영의 분재원이 ‘세계 유일의 분재원’이라고 보도했다. 해마다 관광객은 무려 30~40%씩 증가했고 매일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관광객이 수천 명에 달했다.

 

성범영 원장은 말한다. “정원을 시작한 해는 1968년이고 오픈은 1992년, 장쩌민 주석님께서 1995년 11월 17일 정원을 방문하셨고, 1998년 4월 30일 후진타오 부주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현 시진핑 주석님께서는 2005년 7월 22일 제가 중국을 출장하던 중에 다녀가셨습니다. 제가 뵙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지요. 현재까지 2007년 8월에 한중수교 15주년 행사를 필두로 2012년 20주년, 2017년 25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끝맺었지요. 올해는 30주년을 맞으며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하루빨리 상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성범영 원장의 생각하는 정원은 제주도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 나무와 대화하면서 더 많은 인생의 철학과 이치를 깨닫게 된다.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고정관념을 자르지 않으면 늙어가게 됩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꿈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돌멩이 밭을 꿈같고 환영 같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렸다. 성범영 원장의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한편, 그의 책《생각하는 정원》 머리말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생각하는 정원’에서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가득 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우리 정원이 그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을 주었다면 내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다.”라고 쓰여 있다.

 

*필자/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Jeju Island's 'Thinking Garden' attracting attention from the Chinese President

Director Seong Beom-young, who created a wasteland covered with thorns as a bonsai garden and a ‘thinking garden’

-Lee Chang-ho, columnist

 

In Jeju Island, the golden land blessed by God, there is a farmer who has lived his whole life crazy for short dwarf trees. Director Seong Beom-young, who created a wasteland covered with thorns into a bonsai garden, a ‘thinking garden’.

 When he was clearing gravel fields and planting trees, his relatives and people around him called him ‘Duru et al. (Jeju dialect meaning crazy man)’. However, his love for bonsai and trees did not stop, and in 1992 he finally opened the garden a month befor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China.

 Director Seong Beom-young, 40 years ago when he was young, left his wife and children and left his wife and children alone to make a beautiful field in Jeju Island, which is full of stones, and a deserted island. He fell in love with trees and loved them. His bonsai garden has a deep philosophical meaning, 'thinking garden'.

 For 48 years, the garden owner, Seong Beom-young, has endured mental and physical pain that is difficult to bear as a normal human being. When he's having a hard time, he often says, 'His wife's love and support used to give him strength.'

 In 1962, he retired from the military, and by chance he heard a broadcast introducing Jeju Island. He said that university professors were talking about Jeju Island and that Jeju Island was both beautiful and poor. At this time, he suddenly wanted to see his comrades living in Jeju Island, earnestly.

 After a few hours of sea journey, he went to Jeju Island. The Jeju Island he saw was very strange. The trees were green and the tangerines were hanging from the branches. There was no electricity and there was no tap water, but the green trees everywhere were amazing. He has loved trees since he was young, and he was eager to plant trees here.

 Since the early 1970s, Seong Bum-young has been frequenting between Seoul and Jeju Island. When the business went well and he had money, he immediately bought the wasteland of Jeju Island. He bought land in twenty-four places and created the garden size he thinks of today. He cleared the land, built stone walls, weaved doors out of solid wood, and purchased trees for landscaping.

 Seong Bum-young is a self-taught person who became an expert on bonsai. He would always stay up all night, reading books on bonsai, and visiting experts for advice. He gradually fell into bonsai as he began to fall in love with bonsai.

 In 1974, Seong Bum-young abandoned his successful business in Seoul and moved his family register to Jeju. His wife often came to Jeju to see him, but each time Seong Bum-Young looked exhausted. To set up the farm quickly, Seong Bum-young would get up early every morning to dig stones, plant trees, and cut bonsai with the workers.

In early 1987, the outline of the Bonsai Arts Center with the characteristics of Jeju Island, Korea gradually emerged in Seong Bum-young's mind. In April 1990, he began the arduous work of a three-year term. On July 30, 1992, the Bonsai Arts Center finally opened. However, the construction was only 25% completed at the time. Fortunately, as soon as it opened, it caused a great sensation both at home and abroad.

 In 1995, when Chinese President Jiang Zemin visited, the Bonsai Arts Center came to the attention of the public. On the day Jang Joo-suk visited, the sky was clear without a single cloud. Seong Bum-young and her husband welcomed the distinguished guests with emotion.

 After meeting with the Chinese President, Seong Bum-young said, "I was friendly and caring throughout the whole time rather than dignified." After that, many domestic media reported that Seong Bum-young's bonsai garden was 'the only bonsai garden in the world'. Each year, the number of tourists increased by 30-40%, and thousands of tourists dine at restaurants every day.

 Director Seong Bum-young says: “The garden started in 1968 and opened in 1992. President Jiang Zemin visited the garden on November 17, 1995, and Vice President Hu Jintao visited the garden on April 30, 1998. Current President Xi Jinping visited on July 22, 2005 while I was on a business trip to China. I am very sorry that I could not see you. So far, the 15th anniversary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China was held in August 2007, followed by the 20th anniversary of 2012 and the 25th anniversary of 2017. As we celebrate our 30th anniversary this year, the difficult situation is unfolding due to the pandemic.

 Director Seong Beom-young's Thinking Garden has become a symbol of Jeju Island. He realizes more of the philosophy and rationale of life as he talks with the tree over his many years. “If you don’t cut off the roots, a bonsai will die, and if you don’t cut off your stereotypes, you will grow old.”

 He always talks to people about his new plans. People gave him the nickname ‘Dream-dong’. He turned the stone garden into a dreamlike and phantasmagorical beautiful garden. Director Sung Beom-young's dream is still in progress.

 On the other hand, in the preface of his book 《The Thinking Garden》, “The happiest moment is when you meet people with happy faces and smiles in ‘The Thinking Garden’. If my garden gave them ‘peace of mind and joy’, then there is nothing more pleasing to me than that.”

 

*Writer/Lee Chang-ho

Chairman of the Korea-China Exchange Promotion Committee.

 Photo: Thinking Garden Director Seong Beom-young and Chairman Lee Chang-ho are sitting together in the Thinking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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