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수 박사 “한반도 극비 실화” 발간...현대사 비밀공개 '지적 충격주다!'

장화수 박사 “왜곡된 사실 폭로, 굴절된 기록 고발(告發). 민족 혼백(魂魄) 잃지 않도록 하는 문제 제기”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1/12/10 [08:39]

▲압록강 철교 앞에 선 장화수 박사. 그는 “대예언-대사상(혜화출판사 간. 탄허 큰스님-장화수 박사 대담 집필)”이란 저서를 발간, 김탄허 스님의 예언을 이슈화했던 학자이기도 하다.   ©브레이크뉴스

 

중앙대학교 전 교수인 장화수 박사(경제학. 중앙대 명예교수)는 “대예언-대사상(혜화출판사 간. 탄허 큰스님-장화수 박사 대담 집필)”이란 저서를 발간, 김탄허 스님의 예언을 이슈화했던 학자이다. 장화수 박사는 최근 “한반도 극비 실화(韓半島 極秘 實話-혜화출판사)”를 발간, 현대 한국사 가운데 묻혀있었던 주요 내용을 공개,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지적 충격을 안겨줬다.

 

장 박사는 이 책의 후기에서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은 『한반도』의 불행한 최근세 야사(野史)에 비추어, 뼈를 깎는 고통 속의 굴종, 즉 한(恨) 많고 원(怨) 많은 극비자료’들을 발굴해서 “100년 국운(國運)의 ‘현대사’ 속에 숨겨진 야비한 실화 7편”을 각각 나누어 한권의 책자로 역어 놓는데 일생일대의 의의로 삼고 있다“면서 ”감춰지고 왜곡된 사실관계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여, 필자(筆者)가 40여 년간 모은 극비사료와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한국역사]의 끈질긴 생명력과 참된 본질(本質)=진실(眞實)을 추출해서, 필자 나름의 가치판단을 비화(秘話)로 기록할 목적이 첫째이고, 왜곡된 사실을 폭로하고 굴절된 기록을 고발(告發)하는 동시에 민족의 혼백(魂魄), 즉 얼과 넋을 두 번 다시 잃지 않도록 야심찬 학자의 의욕을 걸고 이곳에서 겸허하게 문제제기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 지구가 최후의 심판과 후천 개벽을 우려하는 징조 속에서, 세계독점 금융자본들의 무정부적인 행태는 1929년의 대공황(Great Crisis)의 수만 배를 능가하는 폭발력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가히 앞날이 예측불허 되는 안개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른바 “천민 자본주의 또는 천민 사회주의”가 자본축적 500년간 찌들은 ‘소아병이나 모험주의’처럼, 이른바 고리대금, 강탈, 사기수법, 침략, 식민주의를 간교하게 동원해서 ‘금융공학=파생상품’이란 미명 하에 전 세계 인민(人民)들을 영문도 모르게 착취하면서, ‘금융독점 투기공황’이 얽혀 놓은 파탄 상태로 보인다. 이윽고 거대한 5가지(5T) 첨단기술(Hi-Tech)을 무력화시키면서 인류(人類)가 5천년 동안 축적해 놓은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결정체까지 공황(恐慌-Panic)으로 파멸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 순간 ‘자유와 보수, 진보와 반동’이 교차되는 극도의 혼란(混亂)과 무질서(無秩序) 속에서, 굴절된 과거사의 왜곡에 관한 반성이나 비판조차 없이, 또한 냉철한 현실인식 위의 차원 높은 상황판단 속에 미래관(未來觀)과 가치관(價値觀)의 수립은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할 뿐이다. 이에 따라 허무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총체적 전환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의 소명의식(召命意識)]은 ‘창조적 파괴의 진통’ 속에 직면해 있을 뿐”이라면서 “그동안 이 나라 [한반도]의 시대적 변천은 《조선→대한제국→미소군정→남북한》으로 굴종의 역사 100여년을 모질게 겪어 오면서, 불행했던 과거사를 지닌 이 나라가 이제는 참된 민족의 해원(解寃)을 씻고 동시에 오늘날 21세기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부강국(富强國)으로 거듭나는 대약진(大躍進)의 과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반만년 역사가 염원(念願)하는「한반도 통일(統一)」의 완수와 “북동아시아 중심국가의 실현”을 위한 옳・밝・넑・앎・삶을 이 땅에 실천하려는 이상향(理想鄕-Utopia)의 건설은, 이 책「한반도의 극비실화」를 엮어 펴내는 핵심사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장화수 박사의 저서인 “한반도 극비 실화”의 핵심 사건들에 대한 해설이다.

 

▲1편 요약:〖트루만・모택동<37도선․남북분단>협잡(挾雜)휴전선

 

이 책에서 최초로 공개하고 폭로하는 내용, 즉 ≪미국・중공의 국제음모(陰謀)≫를 아시나요! 벌써 70년 전, [한국전쟁(1950년 6・25동란)] 이듬해 유명한 『1・4 후퇴와 중공군 인해전술로 남침할 때』마침 <미국-트르만 대통령과 중국공산당-모택동 주석>은 극비로 [남한(南韓)]을 “공산측에 양보하는 굴욕적 휴전협상(休戰協商)”을 추진하고 있었다(朝鮮戰爭-韓國編 <中>:佐佐木春降,1976).

 

1951년 불과 1~3월 기간에 [한국]은 물론 귀신도 모르게 국운을 좌우하는 ≪역사적 난도질 = 37゜군사분계선(평택→동해)을 긋기 위해, 남북(南北)을 분단(分斷)하고, 전쟁(戰爭)을 끝내자는 비밀흥정≫을 다 해먹었다. [한반도]를 분할했던 해방직후와 같은 <38도선>은 절대 아니고, 현재의 <휴전선-DMZ>도 결코 아닌, 오히려 축소된 ≪37도 분할(分割)≫이라는 끔찍한 협작 흥정을 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37도선≫이 실현 되었다면, 지금 남한의 『서울을 포함한 북동부 3분의1 남한 땅』은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갔고, [대한민국]이란 국가도 쇠망하는 불행을 당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결국‘미국・중공 난도질’ 때문에 생긴 증거는 일부러 “1・4후퇴(1951)”라는 엄동설한속의 평택-천안까지 후퇴작전(後退作戰)이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 때 [미국・한국 및 UN 16개 참전국군대가 최대의 전투력과 최신 무기(武器)를 갖추고 있어서 거꾸로 북진(北進)을 했어도, 맥아더 말처럼 통일(統一)이 되고도 남았을 만큼 우리가 막강했는데, 비굴하게도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자기의 재선거를 의식하고(출마 못했음), 한반도의 <휴전안・전쟁 포기 안>을 극비로 제시하고 협잡으로 흥정했단 말이다. 혈맹(血盟)이라고 굳게 믿었던 [미국의 국익]이 미국 내 정치, 미군수 독점자본과 미국경제의 공황방지, 전쟁경제의 유효수요(有效需要)-소모전, 한반도 국지전 때문에 영문도 모르는 [한국]을 희롱하고 농락한 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2편 요약:《이등박문 통감의 보호국(保護國) 영구통치》는 <식민통치>를 부정

 

1905년 날조된 『을사늑약=보호조약』을 빌미로 [대한제국]을 삼킨 일본의 “이등박문(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은 고차적 간악한 <통감보호통치>만으로도 <식민지>를 능가하는 지능적으로 <한반도의 보호권=대리권=지배권>을 행사하고,≪일본제국주의 영구 종속국(從屬國)≫을 구축하려했던 희귀한 역사적 극비사실<日本近代史の虛像と實像―大月書店, 1990․ 이왕무, 대한제국기-순종의 남순행 연구. 정신문화연구 30권, 2007>이 극비자료들을 통해서 최근 발견되고 있다.

 

이 책 속에서 일제가 전쟁경제를 교묘하게 착취해서 물자동원을 하고, 금융조작을 본토를 제외한 식민지와 전쟁터에서 사기행각을 벌린 실상이 생생하게 공개되고 폭로되어 있다. 이것은“한일합병(韓日合倂)=일제식민지”를 만들 필요도 없이 ‘보호국’만으로도 [대한제국]을 영원한 [일본제국]의 노예로 동화(同化)시키려는 무서운 음모를 물경 5년 동안 추진하다가 이등박문이 암살되면서 합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등(伊藤)의 죽음(1909.10.26.안중근 의사에 의한 피살)’이 없었다면, [한반도]와 한국민족(韓國民族)은 말살되고, [국가]는 영원히 해체되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대동아연방제국”의 [종속국=대한제국]이란 흉계(凶計)는 <이등 조선통감>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간교하고 천재적인 지략(智略)이지만, 이미“통감 초창기에 한국민족을 과소평가 했다가 크게 경악한 결과”차선책으로 나온 지능적인 대 정략(大 政略)으로 평가된다.

 

당시 [대한제국]은 전혀 국력(國力)은 허약하고 국제관계 외교(外交)도 고립되어 주변 열강제국들에게 무시당하는 후진 약소국(後進 弱小國)으로서, 항상 [대 청국이나 섬기는 속방 국] 형태로 왕따 당한 독립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고종과 명성황후]가 1882년부터 친정 체제를 시작하여 <자주독립(自主獨立)과 부국강병(富國强兵)>정책을 뒤 밀어, 주변열강(청,러,일)들이 서로 경쟁하는 틈새를 유리하게 이용해서 강력한 주권국가(主權國家)를 독립(獨立)시키겠다는 계략(計略)을 폈으나, 간악한 <통감>의 책략(策略) 때문에 종속국(從屬國)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국운(國運)마저 불행하여 [한국]의 근대화 100년 기간은 망하는 길로만 들어갔다. 이미 그 때부터 한반도는 식민지(植民地)를 거쳐, 해방 후 지금까지도 역경 속에 살고 있었지 않는가. “을사늑약” 당시 <한반도의 국운>은 험난한 위기가 중첩된 상황 속에 미래 앞날을 한 치도 내다 볼 수 없었다. 결국 국운이 불행하다 보니까 <이등 통감>에게 농락당한 내용이 이 책에 적혀있다.

 

장화수 박사는 이 책에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 지구가 최후의 심판과 후천 개벽을 우려하는 징조 속에서, 세계독점 금융자본들의 무정부적인 행태는 1929년의 대공황(Great Crisis)의 수만 배를 능가하는 폭발력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가히 앞날이 예측불허 되는 안개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편 요약 :일제 침략 전쟁비용은 <조선중앙은행권>으로 착취

 

<나치스・히틀러>는 전쟁비용(戰爭費用)을 주로 유태인 재산으로 갈취해 쓰기 위해서 인종 청소를 감행했다. 약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虐殺)하고 그 대가로 약 600조 $(달러)에 해당되는 막대한 비용을 염출해서 제2차 대전 전쟁(戰爭)비용으로 충당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히틀러>는 유럽 전체를 침략해서 수많은 국가를 독일에 합병해서 전쟁 비용 조달에 확대 재생산을 감행하였지만 전쟁 비용의 대부분은 그 당시 가장 방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에게서 학살과 강탈을 서슴지 않았던 사실은 그리 상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히틀러>에 비해서, 10분의 1 국력을 가진 <일본 제국의 동양침략 즉, 태평양 전쟁을 치루는 막대한 비용>을 과연 어떻게 만들어 썼을까. 그것도 패전(敗戰)의 경우, 손해배상이나 전쟁범죄 일본 본토내의 인플레를 은폐하기 위해서 <일본 중앙은행>은 전혀 손대지 않고, 무슨 재주로 방대한 대동아 침략전쟁(大東亞 侵略戰爭:조선,만주,중국,몽고,연해주,대만,홍콩,싱가폴,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차이나3국,말레이지아,미얀마(버마),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태평양군도 그리고 미국 등 연합국)의 침공을 감행했을까.

 

<전비(戰費)와 물자조달, 군인징집, 징용, 정신대 등의 강탈>에 관한 역사적 사료(史料)들은 [일제]가 흔적도 없이 깡그리 증거인멸(證據湮滅)을 시켜 버렸지만, 다행이도 전쟁비용 조달에 관한 증거자료는 가까스로 옛 동경의 [구단시다]에 있었던 <조선은행 일본지점>에 남은 희귀한 일부 자료가 유일하게 색출되었다. 또한 [아사이 신문사] 지하 창고에 일부가 있었다. 이것들이 당시 조선은행 상무이사가 저술한, 소위 『조선은행사(朝鮮銀行史)』라는 귀중한 증거사료로 이 책속에 수록되어 있다.

 

<전쟁비용을 강탈하는 사기범죄>를 감행한 비법(秘法)은 『조선 식민지 중앙은행』을 이용해서 통화팽창(인플레이션)과 뻥튀기 사기계정(詐欺計定)을 만들어 일제 산하 식민지 5개국 중앙은행(일본은행은 제외)을 이용하여 화폐신용 창조를 해서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했다. 이들 화폐는 침략자금으로 전쟁터에서 군표(軍票)로 살포해 썼다는 결정적인 사료(史料)를 완벽한 증거물로 찾아낸 것이다.

 

마치 최신 21세기 금융 공학(金融 工學)과 비슷한 파생 상품처럼 교묘하게 착취하고, 사기적인 신용창조 방식으로 통화팽창을 시키면서, 침략전쟁을 수행하고 수탈과 강탈을 자행한 기법(技法)이었다. 다만 ‘일본 중앙은행’만은 <스와프 차명(借名)계좌>만 개설하고 빠져버렸다. 일본 본토는 인플레이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었다. 물론 패전 시에도 배상금이나 청구권 및 전쟁 범죄를 면탈하기 위함이었다.

 

예컨대 만주 중앙은행(장춘-신경), 중화연합 중앙은행(남경), 대만 중앙은행(대북) 및 동남아 전지역의 금융계정(金融計定)들을 겹쳐서 조선은행(서울)을 최고 중심으로, 그 속에 네트 워크를 구축하고, 화폐 발행과 뻥튀기 금융계좌를 개설하고, 이들끼리 상호투자(相好投資)를 벌려서, 종자돈도 전혀 없는 종이 화폐(가짜 통화=불환 지폐)로 필요한 전쟁물자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무자비하게 전쟁소모품으로 사용했다. 결국 [일제]는 패전(敗戰)후에도 후환(後患)을 없애버리고, 모든 전쟁범죄도 은폐(隱蔽)시키면서, 전쟁배상, 청구권, 위자료 등 전쟁보상금도 증거를 소멸시켜 버렸다.

 

▲4편 요약:『간도협약(間島協約→1909년 청・일 비밀협약)과 독도영유권(獨島領有權)→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들 협약들은 틀림없는 [대한제국]의 역사적 고유한 영토(領土)임을 협약 초안(草案)에서도 이미 밝혀 놓았다고 한다. 간교한 [일제군국주의(日帝軍國主義) 도둑놈=주범(主犯)들의 꼼수에 말려, 러일전쟁 때의 죽도(竹島=독도) 기득권만(해방 즉시소멸된 것)을 고수한 채로, 오늘날까지 오기를 부리면서 분쟁(紛爭)을 조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 간도문제와 독도문제 등 2가지 문제의 모든 경과와 왜곡된 현황과 지금껏 방치된 밀계(密契)를 밝혀, 이 책 속에서 이를 공개하고 세상에 고발한다.

 

▲ 장화수 박사의 저서 표지. ©브레이크뉴스

“독도(獨島)”문제는 [러・일 전쟁(1904)] 때, <일본군>이 처음 군사적으로 제멋대로 사용한 것을 가끔 연고권을 주장하다가,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조약(講和條約,1951.9.8.)」 때에 일부러 방치(放置)시켜 놓고, 마치 [미국]이 묵인(黙認)한 것처럼 트집 잡아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니, 해괴망측한 억지주장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물론 [미국]도 초안에는 당연히“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통치한 일체의 행위는 무효(無效)다”라고 명령했었다.

 

이와 함께“[대한제국]을 대리(代理)해서 보호(保護)한다”라는 미명 하에, 그들 <청・일>끼리 협잡(挾雜)한 외교조약, 재산권, 대리권 및 보호통치권 등 불법적 강탈행위는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 행위, 일체가 해방과 동시에 무효(無效)라고 취소(取消) 되어 버린 사실이 너무나도 확실하다.

 

하필이면 [미국]이 [일본]의 흉계(凶計)에 말려, 6․25 전쟁 중 정황 없는 가운데 [한국]의 옵서

버도 불참한 틈새를 악용해서 「독도(獨島)」를 명기(銘記)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영토]에 포함시킨다는 어구가 빠졌다는 억지 주장을 펴서 [일본]이 지금까지도 독도를 자기들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데 격노(激怒)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또한 [미국]이 암묵리에 방임했단 사실도 사실여부를 떠나서, [한국]을 무시한 우방의 처사로서 크게 실망(失望) 안할 수가 없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여러 가지 있지만, 특히 [미국]의 이해 못할 무책임한 사유도 여러 건이 있다. <남북한(南北韓)의 “38도 군사분계선(DMG)”설정>도 미국의 국익만 내세운 처사이고, 2차대전 종료 시 이미 전쟁 당사국 [일본]이 분단되었어야 마땅한 사실조차도 직무유기한 미국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비난을 받기에 당연하다. 무슨 악운(惡運)으로 죄 없는 [한반도]를 우방 연합국이라는 [미국・소련]이 무자비하게 희생(犧牲)시켰는지 전대미문의 비극(悲劇)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300년 전, 숙종 12년에 확정된 백두산정계비(定界碑)와 간도(間島) 영유권문제를 위시로 한국전쟁 및 남북분단”등 일련의 사태가 전부 [한국]의 주권(主權)을 무시한 그들만의 흥정에 의해서 꼬이게 된 사실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야말로“[미국(美國)]의 직무유기(職務遺棄)이고, 배임(背任)행위”임에 틀림없다. “한국령 독도(獨島)”는 [신라]이래 천년 동안 역사가 증명하는 영토(領土)인데, 겨우 1904년 이후 [일제(日帝)]가 <날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빙자해서, 대리권, 보호권을 앞세워 이를 강탈하고 갈취(喝取)하려드는 흉계(凶計)는 생사를 걸고 항복(降伏)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이 책 속에는 바로 이 같은 사실왜곡을 고발하고 있다.

 

두 번째, 『청국(만주)의 <간도(間島-북,서,동,) 지역>이 원래 [한국]의 영유권(領有圈-숙종12년, 1752)』이라는 근본적인 논거(論據)가 이 책속에 명백히 입증(立證)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이 1905년《일본에게 보호국(保護國-위조된 을사늑약으로 날조된 보호・대리권(保護代理權)》을 총칼에 눌려 송두리째 빼앗긴 뒤로, 이를 총지휘한 원흉(元兇)“ 이등박문 조선통감”이 「대동아 연방국가」건설을 획책하느라 조선의 <식민지>까지는 잠시 보류한 반면, 더욱 간악한 [대한제국의 종속]을 강력히 추진하느라 <보호국>으로 조선을 남겨두면서 <대한제국을 일본제국에 동화시키려는 흉계>를 강력히 추진했다.

 

이등박문은 영국처럼“대일본제국, 즉 <한반도, 만주, 중국, 몽고, 대만,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버마(미얀마), 인도, 태평양군도 등 포함>”을 건설하기 위하여 [조선]은 보호국으로 제2의 [일본]을 본떠서 식민지 본국처럼 만들고,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은 “대일본제국연방”으로 건설하려는 대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등은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극비리에 흥정을 벌리려고 대한제국의 통감자리는 자기직계 부하 부통감에게 물려주고 <하얼빈>으로 찾아 갔었다. 그때 극적으로 <이등박문>은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곧바로“일제의 가쓰라 총리대신에 의해서 식민지”로 강점되었고, 악독한 <데라우찌 총독>이 초대 총독이 되었다. 1909.10. 26.“ 이등박문”은 <러시아령 만주 하얼빈>까지 밀계(密契)를 모의할 목적으로 갔다가 피살(被殺) 당하게 되었다. 그 뒤 9개월 후 이듬해 1910년 〖한일합병=식민지〗 때문에 [한국]은 거의 영원히 방대한 <간도(間島) 영유권>이 소멸(消滅) 당하고 말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사태를 촉발하고 한편 오늘의 결과를 초래시킨 주범(主犯)은 당연히 [일제(日帝)]이고, 공범(共犯)은 [청국(淸國) 이홍장+원세계] 북양대신들이다.

 

1909년 멸망한 [청국]과 [일본]은 그들만의 국제사기를 쳐서 [한국]도 전혀 모르게 극비리에『간도협약<間島協約>』을 맺었다. 이들 협약의 핵심내용은 극비에 속해 상세한 음모는 알 수 없다. 현재도 음모(陰謀)의 핵심(核心)은 일제가 간도를 조선영토처럼 위장했기 때문에 비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일제는“간도협약”을 통해서 일거에 <남만주철도-안봉선>을 매수하고, 침략을 감행하여 [만주국]건설의 전초를 세운 뒤 만주로 진출했다.

 

<한국령 간도>를 통째로 희생한 대가로, 한국의 “간도영토”는 포기(抛棄)되는 결과로 자연 멸실되고 말았다. 현재도 이를 원상복귀 시키기는 커녕 이제는 [중국]까지 가세해서 “패권주의=대국주의”로 나오는 통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나마 간도(間島) 및 백두산 천지의 영유권(領有圈)은 혼돈(混沌) 속에 빠지고,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역사왜곡(歷史歪曲)』에 억압당하면서 “북한과 중국과의 밀약”이 포함된 역사적 전말을 단편적이지만, 이 책 속에서 고발하고 있다.

 

▲5편 요약:『박정희 만주군관 출신 군사쿠데타가 성공한 기적(奇績)』

 

현재 [한국의 위상]은 변화가 많지만 선진국(先進國)의 전열에 들어섰다. 이와 같은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을 성공(成功)시킨 주요한 요인(要因)들을 분석해서, 박정희의 위대한 국가건설 업적을 이 책속에 서술(敍述)하고 만주인맥의 정신을 해명해 보았다.

 

첫째 『박정희의 한국 경제대국 건설』은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국가전략을 구사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 했는가 ?

 

그는 [일제시대]에 사범학교(師範學校)를 나와서 만주군관학교(滿洲軍官學校)를 거처 철저한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교육만을 받은 인간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지닌 쿠데타 정신은 목표나 방향이 무엇보다도 [일제]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일제 군국주의>가 침략해서 [만주국(滿洲國)]을 건설하는 과정(1931~1945)은 ‘5개년 경제통제계획’과 ‘고도경제 발전 등 ’병참기지에 주력하면서도, 주로 침략전쟁(侵略戰爭)을 최우선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가용재원을 만주에서 강탈해서 중국으로 그리고 동남아로 침략전선을 확장해 나가다가 식민 괴뢰국이 실패하니까 그들이 말하는 “통제경제(統制經濟)”는 결국은 멸망했다.

 

반면 만주국통치를 가장 잘 아는 만국출신 “박정희”는 침략전쟁 대신 빈곤(貧困)의 탈출에 국가의 목표와 온갖 정책방향을 집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모든 재원은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했다. 일제가 만주 괴뢰국을 세운 뒤에 이른바 “통제경제(統制經濟)”를 실시하여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건설하고는 대륙침략을 위한 철저한 병참기지로 침략만을 위한 수탈을 감행했다. 반면 만주국 건설의 주모자 ‘이시하라 중장’을 그대로 답습한 한국의 “박정희”는 무자비한 침략대신 빈곤으로부터 고도 경제대국 건설에 매진했다. 예컨대 수출 진흥, 외화 획득, 외자 유치, 중화학 공업, 국토개발 등 경제발전과 고도성장을 최우선시해서 엄청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 장화수  중앙대 명예교수. ©브레이크뉴스

둘째, <박정희 만군 출신들의 최고 정예군대>를 관찰해 보자.

 

해방 후 나약한 잡탕 ‘국방경비대’로부터 1948년 [대한민국]의 국군(國軍)을 창설하고 정규군대를 조직하고 있다가 “6・25 전쟁”이 발발했던 불과 5년 기간에 오직 [미군]들에게 <만군출신>들이 가장 정예군(精銳軍)임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은 군사훈련이나 전투경험을 비롯하여 [미군]과의 합동작전에서 타군 출신들보다도 특히 [미군 고문관]들에게 과거 <만군 시절>의 ‘일제 고문관 훈련’을 받은 경험이 풍부하여 능숙하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고문관 정치를 잘한 것이다.

 

셋째, <6․25 전쟁 중에 만주군 출신 정규한국군 >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불과 5년전 까지도 <북한 인민군(주로 중공한인 8로군 출신들로 인민군 최초에 3, 5, 7사단들 임)>들은 이미 중공 8로군들의 전투기법이나 상대 지휘관들의 전투성격을 미리 터득하고 있었다. 또한 <중공 의용군(장개석군과 싸운 홍군)>들과는 크고 작은 수없는 전투(戰鬪)를 치렀던 역전의 용사들, 즉 ‘만주군 수비대’출신인 관계로, 상대방 적(敵)을 너무나 잘 알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또한 처음 <중공 의용군>이라고 비 정규군인양 속이고 [한반도]에 남침할 때, <만군출신 장교>들은 이들이 <정예 중공군 홍군부대>라는 사실을 수없이 [미군사령부]에 보고했고, 그런 첩보는 적중하여 공로를 세웠다. 실제로 중공 의용군이란 정규 중국 인민군들이었다.

 

결국은 “1・4 후퇴”가 있은 뒤 3개월 후 ‘충청도 평택-천안’까지 후퇴했던 <국군(國軍)>이 일거에 북진할 때에는 <중공군 100만여명의 인해전술>까지 일체의 정보(情報)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들의 신뢰를 받는 동시에, 원래 <일본군 고문관>들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미군 고문관]들과도 가장 익숙한 협조가 생겨서 신뢰를 받았다. “서부전선 전투”에서 북진(北進) 임무를 명령받고 선두에 서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공로를 세웠다. 만군출신 <백선엽 대장>이 1사단장으로 서부전선을 총 담당 하면서 평양점령을 감행했던 사실이나, 또한 만군출신 <정일권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아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의 최 상위 위상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3가지 요인들 때문에, 한국전쟁(韓國戰爭) 도중에 “미국에 유학시켜 최신 군사 훈련을 받은 수많은 군 간부”들 중에서도 <5・16 군사쿠데타(1961)>가 진행될 때에 ‘만군출신 군사 에리떼’들이 타군출신 장교들보다도 [미군]들의 인정을 받은 관계로, 먼저 유리하게 정권장악(政權掌握)에 적극적 주도권(主導權)을 행사하고《군사정부(軍事政府)》를 통치(統治)할 수 있었지 않는가 싶다. 한편 그때 <만주군 및 일본군> 출신 고급장교들은 <만주국> 침략을 위하여 <일본 본토>에서 일어나 군국주의 정권을 장악했던, 일제 2가지 군사쿠데타, 즉「5・15(1931년) 사건과 동시에 2・26(1935년) 군사쿠데타」를 잘 알고 <5⸰16 쿠데타>에 활용했다.

 

또한 당시 <일제 군국주의정치의 총리대신 도조(東條英機) 대장>의 파쇼 정치에서 황국신민의 추진력을 보았기 때문에, 박정희에게는 훌륭한 개발 독재(開發 獨裁)의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치렀는지 또한 일제 침략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파멸로 귀결되었는가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박정희 18년 군사정권』의 신화(神話)는 <월남파병과 중동건설 및 5개년계획>을 통한 <수출 지상주의에 의한 외화획득, 외국투자재원의 조달 및 고도성장과 경제건설만이 지상목표(目標)>이었다. 그런 내용이 이 책속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 만주 군관학교. 오른쪽이 장화수 박사. 왼쪽은 길림대 사학과 교수.  ©브레이크뉴스

 

▲6편 요약 : 이 책 『6편, 왜 [대한제국]만이 <중국・일본>과는 달리 완전한 식민지(植民地)로 몰락했는가?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유색인종으로 유일하게 선진국(先進國)이 되었고, 중국은 반식민지(半植民地)가 되었는데, 한국만이 일제의 완전 식민지(完全 植民地)가 되었는가? 경제사적인 분석을 통하여 3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처참한 국운을 겪은 비운(悲運)의 “대한제국” 그의 운명을 서술해 보기로 했다.

 

▲7편 요약: 해방직후 남북한 간 물자교역=38무역』 즉 물물교환, 전력송수신, 우편교류, 농업용수수급 및 인적교류 등, 그 당시 통계(統計)까지 색출해서, 사실 그대로 해설(解說)해 놓았다. 즉 <경제교류(交流)・협력(協力)=지역 간 무역(地易 間 貿易-Interzonal Trade)>의 해방 직후 및 대한민국 건국 초기 4년간 교역개념과 경과는 무엇이었던가? 남북한 분단국의 경제교류 및 협력에 관한 상황은 지금도 본 궤도(本 軌道)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한반도 특수과제(課題-테마)>의 초창기 본질을 파악해서 완전통일 없는 그나마 최대공약수를 남북한 사이에 찾도록 서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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