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올라간 일본지명은 삭제돼야

“더 이상 '일본서기'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욕보이지 말길 바란다”

이찬구 철학박사 | 기사입력 2021/09/10 [14:01]

▲ 이찬구 박사.  ©브레이크뉴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이 갑자기 위기를 맞고 있다. 전북 남원의 시민단체들이 남원의 고분을 소개하는 글 가운데 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지명인 기문국(己汶國)이 표기된 것이 잘못되었다고 삭제해달라는 규탄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함께 신청 중인 경남 합천의 지명에도 일본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하나인 '다라국(多羅國)'이라고 표기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에 항의하는 ‘가야사 되찾기 전국연대’가 결성되어 활동 중이다.

 

문제의 두 지명인 기문과 다라를 국내 문헌에서 찾지 않고 『일본서기』에만 의존하여 표기를 덧붙인 것이 아주 생소할 뿐만 아니라, 하필이면 일본문헌을 인용해 근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이 표기를 삭제해달라는 민원은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에 까지 올라가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문화재청이나 남원시의 태도는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우선 유네스코 실사단의 내방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신청 자료가 이미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잠정등록’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다고 변명한다.

 

현재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는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비롯해 김해시 대성동, 함안 말이산, 합천 옥전, 고성 송학동, 창녕 교동·송현동, 고령 지산동까지 7개 고분군이 대상이다.

 

남원시에 의하면, 2020년 9월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심의과정을 거쳐 올 1월에 유네스코로 등재신청서가 제출됐으며, 앞으로 현지실사와 패널 회의를 거쳐 내년 6월께 등재여부가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기회에 유네스코 등재과정에서 발생한 지명 표기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근원은 해방 이후 근 80년이 다 되도록 정리되지 않고 있는 식민사학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신이다. 우리사회의 각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 때이지만, 국사학계는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금까지 일제 총독부가 남긴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사학계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자기네 중심으로 카르텔을 형성하며 국민과 괴리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단적인 예가 이번에 『일본서기』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일본서기』에 대하여는 국내 두 대사전이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공통적으로 『일본서기』는 8세기 초에 일본을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책으로서, 원사료 편찬과정에 상당한 조작과 윤색이 가해졌고,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사서(史書)보다는 사서(詐書)에 가깝다고 혹평도 했다.

 

▲ 지난 9월9일, 남원시민단체들이 남원을 일본지명 기문으로 표기한 것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브레이크뉴스

 

그런데 총론적인 시각에서는 『일본서기』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고대사학자 다수가 앞 다투어 활용하고 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국내학자들의 이런 기이한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 문제 있다고 다 인정하면서도 왜 각자 논문에서는 활용도가 높은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의심은 『일본서기』가 ‘임나일본부설’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란 일본이 과거 4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지방을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북한학계는 1963년에 이미 임나일본부설을 사이비학설이라고 폐기했는데, 일본 극우파들은 물론 남한 국사학계도 ‘가야사’를 ‘임나사’로 대체해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부활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시민들이 지적한 ‘기문’과 ‘다라’라는 지명이 『일본서기』의 「계체기」와 「신공기」에 등장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서기』를 불신한다고 하면서도 학자들마다 『일본서기』를 토대로 ‘기문’을 남원, 김천, 선산, 섬진강유역, 낙동강유역 등등으로 비정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일본서기』를 가짜라고 여겨온 학자들은 진작부터 기문이나 다라는 한반도에 있는 지명이 아니고 대마도 등 일본열도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렇게 이설이 난무한 지명 표기를 국제기구에서 승인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런 분란을 뻔히 알면서도 가야고분 등재를 시민들 몰래 무리하게 추진한 학계와 당국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차제에 지적된 문제들을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회에서 심의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솔직히 가야고분 설명에 있어서 기문과 다라라는 두 지명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두 지명을 표기해야 남원 고분과 합천 고분이 빛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얼굴에 붙어 있는 사마귀처럼 흉한 것이 되고 있다. 일본 극우파들은 『일본서기』를 끌어들여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한국 학자들에게 박수를 쳐 주겠지만 『삼국유사』, 『삼국사기』 같은 우리 문헌과는 전혀 배치되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는 발상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수치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기문이라는 지명은 우리의 사료에도 나타난다. 『삼국사기』(권37)에는 ‘기문은 본래 금물’(己汶縣本今勿)이라고 했다. 이 금물(今勿)은 오늘날 충청남도 예산(禮山)지방을 가리킨다. 이 기문을 남원이라고 우긴 것은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의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였다. 『삼국사기』에는 남원의 백제시대 옛 이름이 고룡군(古龍郡)이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남원은 기문이 아니라 고룡인 것이다. 남원의 옛 지명이 필요하면 ‘고룡’이라고 쓰면 된다. 공연히 남원=기문으로 잘못 쓰다가는 남원 시민은 물론이요 예산 시민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 

 

애초부터 일본문헌에서 인용한 ‘남원=기문=임나’라는 학계와 당국의 구도는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의 『삼국사기』가 『일본서기』의 오류를 잘 지적해주고 있다. 『일본서기』는 거부되는 것이 마땅하다. 더 이상 『일본서기』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욕보이지 말길 바란다. 그동안 『일본서기』로 『삼국사기』를 망신주고 ‘삼국사기 초기불신론’을 조장해온 한국 국사학계는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역사 주권은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라고 본다. lee291838@naver.com

 

*필자/이찬구. 

철학박사. 가톨릭대 종교학과 외래강사(전). 인하대 고고학과 외래강사(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이사(현). 미래로가는 바른역사협의회 공동대표(현).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The name of the Japanese place on the list of the World Cultural Heritage of the Kaya Kofun should be deleted.

“I hope you don’t insult our cultural heritage with ‘Nippon Shoki’ anymore.”

-Chan-goo Lee, Doctor of Philosophy

 

  The application of the 'Gaya Ancient Tombs' to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is suddenly facing a crisis. Civic groups in Namwon, Jeollabuk-do, have been protesting for more than two months, demanding that the name Kimun-guk (己汶國), a place name that appears only in the Japanese Book of Records, the far-right bible, in the article introducing the tombs in Namwon, is wrongly written, and that it be deleted. In addition, there is also a problem that the name of Hapcheon, Gyeongnam, which is being applied for together, is marked as 'Dara-guk', one of the claims of the Japanese far-right, as 'Dara-guk'. Therefore, the ‘National Solidarity for Reclaiming Gayasa’ was formed and is active in protesting against this.

  The fact that the two place names in question, Kimun and Dara, were added by relying only on 『Nippon Shogi』 without finding them in the domestic literature is very unfamiliar, and it is said that the rationale for citing Japanese documents is ambiguous. Complaints requesting that this mark be deleted are currently up in the Blue House National Petition.

  However, it seems difficult to find a clue about the attitudes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nd Namwon City, which are the parties involved. First of all, it is excused that the visit of the UNESCO due diligence team is short, and the application materials are already on the UNESCO website under the name of 'provisional registration'.

  Currently, seven tombs are listed as World Heritage Sites: Yugok-ri and Durak-ri in Namwon, Daeseong-dong in Gimhae, Malisan in Haman, Okjeon in Hapcheon, Songhak-dong in Goseong, Gyo-dong and Songhyeon-dong in Changnyeong, and Jisan-dong in Goryeong.

  According to Namwon City, the application for inscription was submitted to UNESCO in January of this year after going through the deliberation process of the World Heritage Subcommitte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in September 2020.

  However, we need to take this opportunity to have a serious discussion on the problem of naming geographical names that arose during the UNESCO inscription process. The root of the problem is the public dissatisfaction and distrust of colonial history, which has not been sorted out until nearly 80 years after liberation. It is said that each field of our society has developed remarkably and has entered the ranks of advanced countries economically, but it is pointed out that the national history academia is the most backward. The point is that until now, the colonial legacy left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has not been liquidated. This means that the national history academia does not live up to the expectations of the people, forms a cartel around them, and is conducting historical research that is separated from the people.

  A single example of that was revealed in the process of quoting 『Nihon Shoki』 this time. Regarding 『Nippon Shoki』, the two major dictionaries in Korea have the same view. In common, 『Nihonshoki』 was compiled in the early 8th century to beautify Japan. The process of compiling raw materials was heavily manipulated and polished, and its credibility was difficult to recognize. It was also criticized for being close.

  However, from a general point of view, although the 『Nihon Shoki』 has problems, many ancient historians are competing to use it when entering into each argument. From the point of view of ordinary people,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is bizarre double attitude of domestic scholars. Even though he admits that there are problems by himself, he cannot help but doubt why it is so useful in each thesis. The biggest doubt that citizens have is that the 『Nihon Shoki』 is directly related to the 'Imna Japan Headquarters'. The Imna Japan Headquarters is a theory that Japan dominated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4th to the 6th centuries. In 1963, the North Korean academia already abolished the Imna-Japan doctrine as a pseudo-scientific theory, but the Japanese far-right as well as the South Korean academia are raising suspicions that they are actually trying to revive the Imna-Japan doctrine by replacing 'Kayasa' with 'Im Nasa'. .

  The seriousness of the problem lies in the fact that the names of 'Kimun' and 'Dara' pointed out by citizens appear in 「Gyegigi」 and 「Shingigi」 of 『Nihon Shoki』. Even though they say they distrust the 『Nippon Shogi』, scholars are busy judging ‘Kimun’ as Namwon, Gimcheon, Seonsan, Seomjin River basin, Nakdong River basin, etc. However, scholars who have considered the 『Nihon Shoki』 as a fake have argued that Kimun and Dara should be found in the Japanese archipelago such as Tsushima, not in the Korean peninsula. Although it would be difficult for international organizations to approve such a place name notation, which has been rife with rumors, it is also difficult to escape the responsibility of the academic community and the authorities for pushing forward the listing of the Gaya tombs without the knowledge of citizens, despite the clear knowledge of this conflict. It is said that the process of deliberation by the World Heritage Subcommitte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remains on the issues pointed out later, but the reaction of civic groups is cold.

  To be honest, the two names Kimun and Dara are not important in the description of the Gaya Tomb. Namwon and Hapcheon tombs do not shine only when the two place names are marked. It's becoming ugly like a wart on your face. The Japanese far-right will applaud Korean scholars who are trying to bring in “Nippon Shoki” and register it on UNESCO, but the idea of ​​listing it in UNESCO based on “Nippon Shogi”, which is completely inconsistent with Korean documents such as 『Samguk Yusa』 and 『Samguksagi』. It should be borne in mind that this is becoming a shame for our people.

  However, it turned out that the name Kimun also appears in our historical sources. In 『Samguk Sagi』 (Vol. 37), it is said that ‘gimen are originally forbidden things’ (己汶縣本今勿). This golden water (今勿) refers to the present-day Yesan (禮山) region of Chungcheongnam-do. It was Imanishi Ryu, a colonial historia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the Gyeongseong Imperial University, who claimed this flag as Namwon. In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it is written that the old name of Namwon during the Baekje era was Goryonggun. Therefore, Namwon is not Kimun, but Old Dragon. If you need the old place name of Namwon, you can write ‘Goryong’. If you openly use it as Namwon = Kimun, you will face the anger not only of Namwon citizens but also of Yesan citizens.

  The structure of the academic community and the authorities of ‘Namwon = Kimun = Imna’ quoted from the Japanese literature from the beginning was wrong. Our 『Samguksagi』 points out the errors of 『Nippon Shogi』 well. 『Nihon Shoki』 should be rejected. Please do not insult our cultural heritage with 『Nihon Shoki』. In the meantime, the Korean history academia, which has disgraced 『Samguk Sagi』 with 『Nihon Shogi』 and promoted ‘the early disbelief in the Samguk Sagi’, should reflect deeply. Historical sovereignty is seen as self-preservation. lee291838@naver.com

 

* Author/Lee Chan-goo.

Doctor of Philosophy. Adjunct lecturer, Department of Religion, Catholic University (former). Inha University, Department of Archeology, visiting lecturer (former). Director of the Korean National Religious Council (present). Co-CEO of Bareun History Council heading to the futur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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