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전쟁 중 국난극복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진정한 견위수명(見危授命) 자세

노승석 박사 | 기사입력 2021/07/19 [12:10]

▲ 이순신 영정  ©브레이크뉴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남긴 어록 내용은  《난중일기》와 그의 문집인 《이충무공전서》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이 내용들은 대부분 이순신이 전란 중에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결사적인 항전 의지와 국난 극복을 위한 한결같은 염원이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이 직접 지은 것도 있지만, 옛 문헌에서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인용하거나 첨삭을 더한 것도 있다. 

 

특히  《난중일기》속의 여백에 따로 적어놓은 어록들은 이순신이 진중에서 생활하는데 항상 경계로 삼을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함에도 1955년 최초의 난중일기 완역본이 나온 이후로 해당 어록들의 출전이 정확히 밝혀지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뒤늦게나마 최근에 와서야 필자가 어록의 정확한 출전을 밝힌 사례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계사년 9월 15일 자 이후에 적은 별도의 기록들 중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① “출전하여 만 번 죽을지라도 한 번 살려는 계책을 돌아보지 않으니 분한 마음이 그지없다.[出萬死不顧一生之計 憤憤不已]”

 

이 글귀를 한국고전번역원 DB로 검색하면 유성룡의 《서애집》〈정충록발(精忠錄跋)〉에서 해당 글귀가 확인된다. 그렇다보니 이 글귀의 저자는 당연히 유성룡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출만사불고일생지계(出萬死不顧一生之計)”구는 이미 2천 년 전부터 중국의 고전적 문헌자료에서 관용적인 용어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에 보면, “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치며 출전하여 만 번 죽을지라도 한 번 살려는 계책을 돌아보지 않고 천하를 위해 잔악한 적을 제거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여해)) 유성룡이 이 글귀를 인용하고 뒤에 “분분불이(憤憤不已)”를 추가한 것이다. 

 

이 9자의 글귀는 전쟁에서 결사적인 각오를 다짐하는 의미로 중국의 문인과 학자들에 의해 자주 쓰였다. 당(唐)나라 때 조유(趙蕤)의 《장단경(長短經)》과 이백(李白)의 《이태백집(李太白集)》에서도 확인된다. 송나라 때 학자 유창(劉敞)의 《공시집(公是集)》에서는 “무기를 잡은 병졸들이 견고한 적을 격파하는데 격분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청(淸)나라 때 고증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일지록(日知錄)》에서 “제(齊)나라의 현령 전단(田單)이 즉묵(卽墨)을 수비하면서 백성을 격려한다”는 의미로 기록하였다. 

 

 위 글귀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도 있는데, 이 역시 최근에 정확한 출전을 밝히게 되었다.  

 

국보 76호 난중일기. 사진/ 문화재청 현충사 여해연구소ⓒ.    ©브레이크뉴스

 

 ②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힘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이를 따르리라[安國家定社稷 盡忠竭力 死生以之] 

 

남해 노량 관음루. 사진/여해연구소 사진ⓒ.     ©브레이크뉴스

 

이 글귀는 이순신이  《통감절요》〈후한기〉희평(熹平) 원년조에 나오는 글귀를 요약하여  《난중일기》에 적은 것이다. 송나라의 묵재(黙齋) 채정손(蔡正孫)이 말하기를, “대신이 나라의 주석(柱石)이 되어 천하가 위태로운 때에 처하면 마땅히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서 충성과 힘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이에 따르는 것이 옳다.(… 當以安國家定社稷 爲己任 盡忠竭力 死生以之可也)”고 하였다. 《춘추좌씨전》소공 원년에도 “자산(子產)이 말하기를, 진실로 사직에 이로우면 죽으나 사나 이에 따르리라(苟利社稷 死生以之)”라는 내용이 있다. “사생이지(死生以之)”는 “사생을 생각밖에 두고 이를 따른다(由)”는 뜻이다. 

 

위의 두 글귀는 이순신이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결사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로 전쟁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이순신의 대표적인 어록인 “반드시 죽고하자 하면 산다(必死則生)”, “죽을힘을 내어 항거하여 싸우면 그래도 해낼 수 있다.”, “죽고 삶은 명에 달렸으니 죽어야한다면 죽을 것이다”는 내용들과 의미가 통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도 바칠줄 아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이 담긴 이순신의 어록내용은 오늘날 위기 대처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순신이 인용한 출전을 밝히는 것도 역시 중요했다.  skku1001@naver.com

 

▲ 노승석 박사.  ©브레이크뉴스

*필자/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자문위원. 《교감완역 난중일기》개정2판,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저자.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Yi Sun-sin spared his life for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during the war!

A true watchdog attitude

- Dr. Seungseok Roh

 

  The contents of the sayings left by Yi Sun-sin during the Imjin War can be seen in the 『Nanjung Ilgi』 and his collection of works, 『Lichungmugongjeonseo』. Since most of these contents were written by Yi Sun-sin during the war, it contains his desperate will to resist the war and his unwavering desire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Some of these were written by themselves, but others were quoted from old texts that could be instructive or added corrections.

 

  In particular, the words written in the blank space in the 《Nanjung Diary》 are so important that they always use it as a boundary for Yi Sun-sin while he is living in the camp. Nevertheless, it was very regrettable that the source of the phrases was not clearly revealed after the first complete translation of the Nanjung Ilgi was published in 1955. Only recently, although belatedly, there was a case in which the author revealed the exact origin of the word.

  As a representative example, among the separate records written after September 15 of the year of Gyesa, there is the following text.

 

  ① “Even if you die ten thousand times in battle, you do not look back on your plan to live once, so I feel very resentful. [出萬不顧一生之計憤憤不已]”

 

  If you search for this phrase in the Korean Classical Translation Institute DB, you can find it in Yoo Seong-ryong's 《Seoaejip》 and <Jeongchungnokbal(精忠錄跋)>. Therefore, the author of this text is naturally seen as Yoo Seong-ryong. However, it has been confirmed that the phrase “death of death and death without death” was already used as an idiomatic term i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for 2,000 years ago. According to Sima Qian's 《Sagi (史記)》 and 〈Jang Jinyeoyeoljeon (張耳陳餘列傳)〉, “The general will go to war with his eyes wide open and shout, For the sake of this, we have removed the cruel enemy.” (“Shinwan Translation of Nanjungilgi Gyojubon” (Yeohae)) Yoo Seong-ryong quoted this phrase and added “Bunbunbuli” afterward.

 

  These nine characters were frequently used by Chinese writers and scholars to signify a determination to make a decisive decision in war. It is also confirmed in the 《Jang Danjing》 of Zhao Yu (趙蕤) and the 《Lee Taebaekjip》 of Li Bai (李白) during the Tang Dynasty. In the Song Dynasty scholar Liu Chang (劉敞)'s Gongshijip (公是集), it was used to mean "soldiers with weapons do not look back when they are outraged when they defeat a strong enemy." Also during the Qing dynasty, archaeologist Go Yeommu (顧炎武), an archaeologist, in the Iljirok (日知錄), said, “The county spirit flyer of the Qi dynasty guards the impromptu and encourages people ” was written in the sense.

 

 Below the above text, there is also the following text, which also recently revealed the exact source.

 

National Treasure No. 76 Nanjung Diary Photo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s Hyeonchungsa Temple Yeohae Research Centerⓒ

 

 ② I will give my allegiance and strength to make the country comfortable and stabilize my resignation, and die, but I will follow them alive

 

   This passage was written by Yi Sun-sin in the "Nanjung Ilgi" by summarizing the passages in the first year of Hee-pyung (熹平) in "Tonggamjeolyo" and "After Hanki". Chae Jeong-sun (蔡正孫), a mook-jae of the Song Dynasty, said, “When he becomes the head of the country and the world is in peril, he should make the state comfortable and stabilize his resignation. It is right to die with all one's might, but it is right to follow the men and women. (…爲己任 盡忠竭力 death life以之可也)” he said. Even in the first year of Sogong, in the first year of Sogong, there is a content that says, “If it is truly beneficial to resignation, you will die, but the men will follow.” “Sasaengji” means “leaving life out of your mind and following it” (由).

 

  The above two texts emphasized that Yi Sun-sin should fight the war with the attitude of guard life (見危授命) capable of fighting decisively at the expense of his own life in the war with the Japanese army. These are the representative sayings of Yi Sun-sin, “If we must die, we must live”, “If we fight with the strength to fight, we can still do it”, “If we die and die, we will die.” make sense The contents of Yi Sun-sin's words, which contain the spirit of a man who sacrificed his life for the country, are giving important lessons in dealing with crises today. In order to understand this accurately, it was also important to disclose the source cited by Yi Sun-sin.

 

Namhae Noryang Gwaneum-ru Yeohae Research Center Photo ⓒ skku1001@naver.com

 

 *Writer/Roh Seung-seok

Director of Yeohae Classics Research Institute. Advisory Committee Member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of Nanjung Ilgi. Author of the revised 2nd edition of 『Nanjung Ilgi at the Gamwan Station』, the Gyoju version of the Nanjung Ilgi at the Shinwan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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