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세에 동백나무를 심은 뜻

권오인 수필가 | 기사입력 2021/06/09 [10:17]

▲ 권오인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나는 쉰 살 되던 해 동백나무 50그루를 심었다. 시골집 진입로 변에 심은 나무는 일렬횡대로 선 경계 초병처럼 꼿꼿하게 자리를 잡았다. 아직 작은 묘목에 불과 하지만 상상의 시물레이션은 어느 공원의 한 축이었다. 몇 날을 벼르던 일을 마친 성취감은 지난 설날에 우울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쉰 살이 되던 설날아침, 차례를 지내고 조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갔을 때 무엇인가 허전하고 죄송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잠시 묘소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니 조부모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한없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장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직 범부에 머물고 있나 하는 민망함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년의 나이에 걸맞는 번듯한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면목이 없었다. 그날 이후 머리는 삼 끌처럼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했다. 더 많은 세월의 겹을 쌓기 전에 작아도 의미 있는 아름다운 내 인생의 흔적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팔자에 없는 거부가 될 수도 없고 낙하산 타고 큰 자리를 차지할 형편도 안 되니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다. 그러면서 평소 좋아하는 독서로 위안을 삼아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어떤 책을 읽다가 ‘Noon of life’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공허했던 가슴에 용기가 생겼다. 작가는 인생에 정오를 40살이라 주장했지만 내 나이는 그보다 10년이 지난 50살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이 인생에 정점이라며 자신의 사고에 가면을 씌웠다. 그것도 모자라 젊음의 열정을 덧칠하기도 하고 의도적인 자부심도 키웠다. 그러다 보니 일상은 보편적이고 긍정의 사물이 보였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 그렇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달렸다. 그 마음으로 우공이산의 공상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을 찾으니 동백나무를 식재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화단에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오래된 한 그루의 동백나무가 있다. 사시장철 푸른 기상으로 집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그 나무 주위에는 해마다 씨앗이 떨어져 자생하는 어린모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마침 주말에 처가 온 막내 매제와 동백모종을 캐어 집으로 들어오는 길 가장자리에 내 나이 50에 맞춰 50그루를 이식하였다. 길가에 일렬로 늘어선 나무는 오는 손님 반갑게 맞고 떠나는 사람 배웅하는 듯했다. 그곳에 물을 길어다 흠뻑 주고 나서 푸른 동백을 보니 성취감과 보람에 마음이 흡족하여 병석에서 일어난 기분이었다. 일을 마치고 매제와 들마루에 걸 터 앉아 막걸리 한잔 기울이니 소소한 행복에 젖는다. 매제는 진입로에 좋은 나무도 많은데 하필 동백나무를 심은 뜻이 있느냐 물었다. 오늘 심은 동백나무는 단순히 집에 모종이 있어서 옮긴 것이 아니라 평소 동백의 생태가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철학과 의미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동백은 선비의 상징이다. 도톰한 잎 파리는 사시사철 변치 않는 초록이요. 붉은 꽃은 시들기 전에 통째로 숨을 거두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활하지 않으니 의리요 구걸하지 않으니 결의에 찬 사내 모습이다. 보통 동백꽃은 매화와 함께 겨울의 끝자락에 핀다. 추위에 떨면서 꽃을 피우니 수정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맡는다. 목련꽃은 아름다움이 나무에서 열리는 듯 아름답지만 꽃이 질 때는 가장 추한 모습으로 한 잎 한 잎 떨어진다. 하지만 동백꽃은 노란 수술이 달린 채 목이 부러지듯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꽃이 통구조이다 보니 그렇다. 여기에 더하여 꽃은 완전히 시들어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한 번에 떨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로 여긴다. 때문에 뭐니 뭐니 해도 동백의 백미는 낙화다. 그때 또 하나 긋는 나이테의 값을 못한 아픔을 동백이 보듬어 주었다. 

 

오늘도 나는 주련처럼 서서 메시지를 전하는 그 길을 옷깃을 여미며 걷는다. 공직자인 나는 남은 생애 내내 동백을 빼닮은 선비로 살고자 다짐 한다. 그런 마음에서 심은 50그루의 동백나무는 내 삶을 함께하며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고 채찍하고 때로는 버팀목도 되고 따스한 안식처의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The meaning of planting a camellia at the age of 50

- Kwon Oh-in Essayist

 

When I was fifty years old, I planted 50 camellia trees. The trees planted on the side of the road to the country house stood upright like a border guard lined up in a row. Although it is still only a small seedling, the imaginary simulation was an axis of a certain park. The sense of accomplishment after completing the work that had been hard for several days revived the depressed mood of the last Lunar New Year. On the morning of New Year's Day, when I was fifty years old, when I went to the grave of my grandparents at the funeral after a ceremony, I felt empty and apologetic. As I sat in front of the cemetery for a moment and pondered it, I was embarrassed that I could not live up to the boundless love and sacrifice my grandparents gave me, and that I was still living in the commons.

 

But more than that, there was no shame in not being able to achieve anything worthy of a middle-aged age. From that day on, his head was as complicated as a chisel and his heart was troubled. I never left the thought of making a small but meaningful and beautiful trace of my life before building up more layers of time. However, I couldn't be a refusal that was not on the list, and I couldn't afford to take a big place on a parachute, so I thought about items that I could do with my own abilities. At the same time, I was comforted by my favorite reading, and I spent my life as usual. Then, while reading a book, I read a passage from ‘Noon of life’ and found courage in my empty heart. The author claimed to be 40 at noon in life, but I was 50, 10 years after that.

 

Even so, he masked his thinking, saying that now is the culmination of his life. It wasn't enough, so I painted over the passion of youth and intentionally raised self-esteem. As a result, everyday life was universal and positive things were seen. All-in-one mind-set (一切唯心造), yes. It is up to people to think and it is up to them to make up their minds. With that in mind, I found an item that could leave a realistically possible trace in the fantasy of Mt. Ugong, so I planted a camellia.

 

There is an old camellia tree in our flower bed, which is serving as the head of the house. Around the tree, like a guardian deity who protects the house with its green weather in all seasons, the seeds fell off every year, and young mothers grew up covetously. At the end of the weekend, my wife and my youngest brother-in-law dig up camellia seedlings and transplanted 50 trees at the age of 50 on the edge of the road leading to the house. The trees lined up along the road seemed to welcome incoming guests and send off those leaving. When I saw the blue camellia after drawing water and drenching it, I felt like I got up from the sick bed with a sense of accomplishment and reward. After work, sitting with my brother-in-law on the deulmaru and sipping a glass of makgeolli, I am drenched in small happiness. There are many good trees on the driveway, so she asked if there was any intention to plant camellias. The camellia tree planted today was not moved simply because there was a seedling in the house, but it told us that the ecology of the camellia usually has a philosophy and meaning that comes to us as echoes.

 

The camellia is a symbol of the scholar. Thick leaf flies are green all year round. This is because the red flower dies before it withers and does not show an ugly appearance. He is loyal because he is not cunning, and he is a man full of determination because he does not beg. Usually, camellia flowers bloom at the end of winter together with plum blossoms. The flowers bloom while shivering in the cold, so the fertilization is done by the fern bird, not the insect. Magnolia flowers are as beautiful as they open from a tree, but when the flowers fall, they are the ugliest and fall one by one. But the camellia flower has yellow stamens and the whole flower falls like a broken neck. It is because the flower is a barrel structure. In addition, it is considered a beautiful tree to leave behind because the flowers fall all at once before fully withering and showing a shabby appearance. Because of this, the best thing about camellia is the fall flowers. At that time, camellia comforted the pain of not being able to pay for another annual ring.

 

Even today, I stand like Juryeon and walk the path of delivering a message with my collar closed. As a public official, I am determined to live as a scholar who resembles a camellia for the rest of my life. The 50 camellias planted with such a heart are expected to share my life, enlighten and whip my foolish self, and sometimes serve as a support and a warm h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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