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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 저서 “갑순이가 아니라,” 출간

이하배 박사, ‘베를린 자유대학교’(FU Berlin)에서 철학과 중국학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아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21/05/11 [09:53]

▲ 이하배 박사.     ©브레이크뉴스

이하배 박사의 저서 “갑순이가 아니라, 부제: 갑질 없는 수평 소통으로 더 사람, 더 세상”가 출간(출판사=다사람더사람)됐다.

 

출판사측은 서평에서 “갑질과 불통의 ‘수직 문화’ 속에 ‘사람-이기’, ‘함께-이기’ 어려운 시대다. 저자는 ‘한국 최대의 인문지리서’ 130여권을 펴낸 조부님의 슬하에서 6년 간 서당공부만을 한 영향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게 된다. 이어서 베를린 자유대학교(FU Berlin)에서 사회 비판, 문화 비판 등 현대철학과 중국사상 등을 폭넓게 전공하고 귀국하여, 무엇보다-권력관계, 이해(利害)관계 그리고 이해(理解)관계와 이어지는-‘분리’와 ‘결합’의 개념 쌍으로 지금여기의 생생한 ‘잘못 분리’, ‘잘못 함께’ 속의 소외 현실을 폭넓게 물어 밝혀 풀어가는 관심에서 꾸준히 연구와 강의, 사회운동을 해왔다. 이러한 관심은 전달학문이기나 사변학문이기를 벗어나 구체적인 ‘비-인간’, ‘비-세상’의 생생한 소외 현장에 주목하면서-물음의 대상이나 접근방식의 차원에서든, 문체의 차원에서든-자유롭게 ‘동문서문’(東問西問) 종횡무진 물어감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를 소개하면서 “학문과 현실 사이의 틈을 잇고 ‘세상크기’와 ‘사람크기’를 구체적으로 물어 밝혀 키우려는 ‘함 있는 앎, 앎 있는 함’의 맥락에서 <갑순이가 아니라,>가 태어남은 이러한 관심의 자연스런 연장이리. <갑순이가 아니라,>는 우리사회에 만연하여 ‘많이 낯익은’ ‘불통 문화’, ‘갑질 문화’ 속의 인간 소외를 생생한 사례들로 ‘조금은 낯설게’ 물어 파헤쳐가되, 생생한 ‘진경 사회’에 대한 진단에 멈추지 않고 일정한 출구를 제시한다”고 알렸다.

 

이어 “‘같이 달리, 달리 같이’의, 일종의 ‘문화 백신’을 생각하는 <갑순이가 아니라,>는 그러나 다른 생각이나 물음의 여지를 넓게 남기려 한다. 삶의 절실한 현장을 의미와 흥미의 두 ‘맛’(味)으로 접근해가므로, 쉽지만도 어렵지만도 않다는 <갑순이가 아니라,>는 일간, 주간, 월간의 종합 시사지를 읽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가슴으로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같이 생각하며 물어가는 책’일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불통 문화’, ‘갑질 문화’에-피해자로서든 가해자로서든-직간접으로 ‘연루된’ 다양한 개인 분들이나 집단, 기관, 단체들은 물론, 무의미한 일상에 휩쓸림을 염려하거나 부조리한 ‘비-세상’ 속의 ‘비-인간’, ‘비-인간’ 속의 ‘비-세상’를 고민해온 각계각층의 개인 분들과 집단, 기관, 단체들에 일독을 권한다. 나아가 ‘세상크기’, ‘사람크기’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대학의 각종 인문 교양과목뿐만 아니라, ‘다를 수 있는  같음, 같을 수 있는 다름’의 수평적 소통문화에 대하여 생각을 함께 맘껏 열고 나누고 키워가는 각종 세미나나 토론회의 ‘서로배움터’에도 추천 드린다”고 덧붙였다.

 

저자 이하배 박사 소개

 

이하배(李昰培)박사는 묻고 배우기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국내 최대의 인문지리서’ 『조선환여승람』을 펴내신 조부님 슬하에서 6년 동안 서당공부만을 하였다. 『천자문』,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 『소학』 등을 배운 후, 조금 늦은 나이에  3학년 2학기로 주봉국민 학교에 입학했다.

 

공주사대부고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새롭고 다르고 넓은 세상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고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 자유대학교’(FU Berlin)에서 철학과 중국학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의 연구교수 등을 거쳐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현실 속의  다양한 분리들’, ‘현실과 철학의 분리’,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분리’ 등 이 땅에서 철학하기의 ‘삼중 분리’가 재생산되는 전체 맥락을 물으면서, ‘같이 살자, 사람같이 다같이!’를 기치로 ‘다 사람, 더 사람’의 길들을 함께 물어 찾아 걸어가는 <한국소통문화연합>과 ‘우리 속의 나’와 ‘나 속의 우리’를 (돌아보고 둘러보고 들여다보고 내다보는) ‘돌/둘/들/내’ 서로배움터인 <열음학당>을 열어가고 있다.

 

학위 논문은 Trennende Verbindung oder verbindende Trennung: ‘Li’-Verhältnisse in der konfuzianischen Vergesellschaftung (분리하는 결합인가 아니면 결합하는 분리인가: 유교 사회화에 있어서의 ‘禮’의 제 관계들)이다.

 

저서로는 『유교적 사회화: 분리와 결합의 변증법』, 『소통 열음: 한국사회의 소통문화를   통틀어 묻는다』,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고마움』(공저), 『동아시아 문명공동체』(공저)가 있고, 논문은「우리 속담에 나타난 성차별의 사회화」, 「현재 한국사회와 거듭나야 하는 유교연구」, 「노자의 정치-윤리 철학」, 「나이의 일상 예문화」, 「소통크기, 행복 크기」, 「‘갑질’의 소통 문화」, 「나와의 싸움, 남과의 싸움」, 「‘따로함께’의 소통 문화와 비움의 아스케제」 외에 다수가 있다.

 

▲ 이하배  박사의 저서 표지.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책 속의 주요 내용이다.

 

* 앞을 잡아당기고 뒤를 밀어내면서 앞으로만 달려야 해서다. 함께 아닌 함께, ‘아닌    함께’, ‘비함께’···.

 

* 함께 뛰지만, 외롭다. 외롭기만 하다면 다행이리.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고 다리가 풀릴 것 같다. 사람 울리는 ‘올림-픽’, 사람 살리는 ‘내림-픽’?

 

* 모두가 나의 잘못 같다. 살기는 했지만, 죽은 것 같기도 하다.

 

* ‘움직이지 않음’의 ‘부동’(不動), ‘뜬 움직임’의 ‘부동’(浮動), ‘따라 같아짐’의 ‘부동’(附同) 속에 ‘같지 않음’의 ‘부동’(不同).

 

* 물질에 휘둘리고, 물질로 휘두름이 ‘물(物)-질’. 휘둘리고, 휘두르고···.

 

* 아니, 최대를 향할 수 있어 최고다. ‘질(質) 없는 양(量)’인가? 질과 방향은 정해졌으니, 양과 크기만 최대로 키우면 된다. ‘양(量)의 Era(시대)’?

 

* 물질-만, 나-만, 강(强)-만임을 부모가 가르치고, 스승이 가르치고, 사회가 가르치고,  미디어가 가르친다.

 

* ‘이런 반복’ 속에 ‘저런 번복’은 언감생심···. ‘쿨투어’(Kultur, 문화)가 ‘나투어’(Natur, 자연)로 되는 순간. ‘인도’(人道)가 ‘천도’(天道)로 되는 순간? ‘유한’ 질서의 ‘무한’화?

 

*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 틈도, 생겨날 틈도 없다. 나의 ‘같은 생각’과 ‘같은 가치’가 많이 이렇게 결정된다.

 

* ‘아래’ 국민과의 붙음은 결국 국민들과 떨어진 ‘위’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로 드러난다. ‘떨어지기 위한 붙음’일까?

 

* 그리고, 그러면, 그러니 다시 ‘새 정치’가 말해진다. 돌고, 돌고, 돌고···. 4년 전, 4년 후···. 8년 전, 8년 후···.

 

* ‘일반-인’들의 ‘남녀 간의 따로’가 ‘특수-인’들의 ‘남녀 간의 함께’를 지원하기 때문?

 

* ‘강조’는 의심의 여지를 남기기 쉽다. ‘반(半)-절대자’로 군림하며 ‘절대자’를 부르고 가리키면서 자신은 ‘반(反)-절대자’로 타락-하고, 다른 사람들은 ‘반(反)-절대자’로 타락-시킨다. ‘더 세속이려고 세속 부정’. 아님?

 

*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보니, ‘없는 눈’? 자신에게 눈이 없으면서 상대에게 사람이 없다고···.

 

* Emerson에 따르면, ‘태양은 성인에겐 눈 표면을 비출 뿐이지만, 어린아이에겐 눈과   심장을 뚫고 들어가 비춘다.’ 그리고 Pestalozzi는 ‘모든 인간타락의 중심에는 심장의 경화가 있다.’라고 한다.

 

* 가르면서 그은 획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글이 써지면, 이들은 일정한 것을 ‘가리키는’  혹은 ‘가르치는’ 힘이 된다.

 

* 말이 마술사 같기도 하다. 말이 사람들을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정한 말들이 통용되는 세상에 뚝 떨어져 속해, ‘이런 말들’을 듣고 배우고 쓰면서 살다가, ‘이런 말들’-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만다면···.

 

* 수평 다름은 다양성과 평등성-‘에 빠진’ 다름, 수직 다름은 다양성과 평등성-‘이 빠진’ 다름···.

 

* 이제 ‘낯익은 것이 낯설 수’ 있다. 이제 ‘낯선 것이 낯익을 수’ 있다. ‘저제’ 안 보이던 것이 ‘이제’ 보인다.

 

* Camus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믿는 진리들의 희생양이 된다.’라고 했고, Nietzsche는 ‘(진리에 대한)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적’이라고 했다.

 

* 있는 겉을 보임으로, ‘있는 겉’이 ‘없는 속’에까지 ‘연장’되면서 ‘없는 속’도 ‘있는 겉’  처럼, 겉과 ‘다른 속’-도 겉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굉장한 능력이다.

 

* 아름다운 겉을 ‘보이며’ 속-도 아름답다고 보이는 ‘건너-뜀’과 아름다운 겉을 ‘보며’   속-도 아름답다고 보는 ‘건너-뜀’? 두 ‘건너-뜀’은 ‘다정한’ 사이?

 

* 내용을 표현(表現)하고 현실을 재현(再現)하는 ‘이름’ 내지 ‘겉’이 늘 문제다. 혹은 구체의 ‘실’(實)을 ‘이기는’ 혹은 ‘배반하는’ 추상의 ‘명’(名)이 늘 문제다.

 

* 이번에도 우리들이 ‘부르고, 보는 이름표’, 그리하여 그리 ‘여기고, 대우하는 이름표’가 문제다. 아니, 얼렁뚱땅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문제다. 아니, 그런 사람이 문제요 그런 문화가 문제다. 아니, 다 문제다.

 

* 너 없는 ‘나-만’도 실체 없는 ‘이름-만’도 ‘다 사람, 더 사람’을 방해한다. 후자 ‘이름-만’은 전자 ‘나-만’의 파생-물? 

 

* ‘단순-화된 우리’, ‘단수-화된 우리’ 혹은 ‘안 보는 하나’ 속에 구체적인 실제 삶의 수많은 문제들이 안 보이고 사라질 수···. 

 

* 나가거나 들어오는 잘못을 알고 막기는 가르고(divide) 거르기(filter)···? 가르는 앎,   거르는 함···?

 

* 하지만, ‘반이성’(Paralogie)과 ‘반대싸움’(Widerstreit)을 지향하는 ‘탈현대’의 프랑스  철학자 Lyotard에게, 소통에서 ‘여럿’ 혹은 ‘비합의’(Dissens, ‘分意’)의 ‘다름’이 중요하게 된다.

 

* ‘위’에 ‘붙들리기 쉬운’ 존재론, 윤리학···. 힘에 ‘붙들리기 쉬운’ 앎···. 곡학아세(曲學阿世)는 곡학아-‘세’(勢)···.

 

* 갑질에서 을은 없다. ‘있는 없음’···. (···) 을은 갑과 같아졌기 때문. 이는 ‘갑의 밥에 같아짐’이 아니라, ‘갑의 법에 같아짐’이다.

 

* 남의 말을 ‘잘 듣기’는 주관이 약함이고, 남의 말을 ‘못 듣기’는 소통능력이 약함? 못  들어서 잘 듣는다? 잘 들어서 못 듣는다?

 

* ‘학교 안’의 책임? ‘학교 밖’의 책임? ‘나 안’의 책임? ‘나 밖’의 책임? 같이 책임? 어떤 같이···?

 

* 이제 나는 ‘너랑 같아도’ 혹은 ‘나랑 달라도’ ‘나일 수’ 있다. 혹은 ‘나 같을 수’ 있다. ‘너 같아도’ ‘나 같을 수’ 있음이다.

 

* 남과 달라 ‘나일 수’ 있어 남과 ‘따로’일 수 있고, 나와 달라 ‘남일 수’ 있어 남과 ‘함께’일 수 있고···.

 

* 외적, 정치적 전제들 가운데 첫째는 ‘일 있게’ 함으로 ‘밥 있게’ 함이고, 내적, 윤리적  전제들 가운데 첫째는 서로를 사람으로 알고 대(對)하여 ‘사람 있게’, ‘사람이게’ 함으로 ‘법 있게’ 함이리···.

 

* 더하고 곱하는 나눔에다가 빼기를 더한다면, 크고 작은 ‘나 중심주의’ 혹은 ‘수직주의’를 빼는 일. 이런 빼기의 효과는 무엇보다, 나의 ‘다를 수 있음’ 혹은 ‘낮을 수 있음’의 열음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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