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사람' 카카오 김범수 의장, 그는 누구인가?

김범수 의장 “기부금을 묵혀두지 않고 필요한 곳에 써 나가고 싶다”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21/04/14 [07:34]

▲ 김범수 카카오 의장.  ©뉴시스

 

카카오 이사회 김범수(1996~) 의장. 그는 어떤 분이 길래 그렇게 통 큰 사람일까요? 재산 6조 이상 기부.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80여 평생을 살아 왔지만, 아직 그렇게 통 큰 재벌(財閥)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서 농사를 짓다가 무작정 서울로 이사를 온 부모 밑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김범수 의장이 중학생 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하네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서 무려 세 번의 혈서를 쓰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보면서 독하게 담배를 끊었다고 합니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86학번)했습니다. 그리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1992년 석사학위를 따고 졸업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에 했습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다고 합니다. 그해 양식 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습니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됩니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습니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던집니다. 김 의장은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납니다. 애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 것이지요.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한 것입니다. 카카오톡은 PC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습니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 수 제한이 있었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약아빠진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에서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2014년 ‘다음(daum)’과 합병합니다.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무인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에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세계적인 자발적 기부 운동 ‘더 기빙 플레지’에 참여해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공식 서약했습니다.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이 16일 ‘더 기빙 플레지’의 220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장은 ‘더 기빙 플레지’ 서약서에서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 창립 20주년 특집 기사를 보고 창업의 꿈을 키웠던 청년이 이제 ‘더 기빙 플레지’ 서약을 앞두고 있다. 기사를 처음 접했던 때만큼이나 설렘을 느낀다.”며, 기부 서약이라는 의미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빌・멀린다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 그리고 앞선 기부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또 “목표했던 부를 얻고 난 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으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詩)를 접한 뒤, 앞으로의 삶에 방향타를 잡을 수 있었다.” “성공의 의미를 다시 새겼던 10여 년 전, 100명의 창업가를 육성・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카카오 공동체라는 훌륭한 결실을 맺으며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지난 2월 카카오 전 직원에게 보낸 카톡 신년메시지를 통해,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약6조원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부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디지털 교육격차 등으로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과 AI인재에 관심이 많다” “기부금을 묵혀두지 않고 필요한 곳에 써 나가고 싶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사회 문제들을 풀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통 큰 사업가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굴지의 대기업들이 탈세를 하고, 자식들에게 부를 세습시키는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야 말로 인생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요? duksan4037@daum.net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Chairman of Kakao Beomsu Kim, who is he?

Chairman Kim Bum-soo “I want to spend the donations where I need them without leaving them alone”

-Poet Kim Deok-kwon

 

Chairman of the Kakao Board of Directors Beomsu Kim (1996~). Who is he who is so big? Curiosity arose. This is because, although I have lived for more than 80 my entire life, I haven't seen a big conglomerate yet.

 

He was born the third of two boys and three daughters to his parents who moved to Seoul after farming in Subuk-myeon, Damyang-gun, Jeollanam-do. Chairman Kim Bum-soo is said to have been raised by his grandmother's hands. When Chairman Kim Bum-soo was in junior high school, his father took up a position as a meat wholesaler and even bought a small house. However, he went bankrupt within a few years, and when he was lucky, he even studied hard while writing blood books. Whenever his mind was disturbed, he cut his finger to write three blood books, bought three cigarettes sold individually to quit, put it on the desk, and quit smoking violently.

 

At the end of his luck, he entered the Department of Industrial Engineering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86 students). And he went to school with a part-time tutoring job to cover tuition and living expenses. After graduating with a master's degree in 1992, he joined Samsung Data Systems as a professional research agent. He is said to have dug into computer language in earnest here. That year, he developed the form editor “Form Editor,” and in 1993 he developed an image management system for the collections of the Hoam Museum of Art. In 1996, he developed the PC communication “Unitel” and was in charge of the design and development of the Unitel emulators Uni-Win 2.0 and Uni-Win 98. Having officially started working as a research institute in 1998, he gained lifelong comrades at Samsung SDS.

 

Chairman Kim Beom-soo founded'Hangame' in November 1998, at the end of the year, in Samseong-dong, Gangnam-gu, Seoul. Chairman Bum-soo Kim merged'Hangame' with Naver, President Lee Hae-jin Lee of Samsung SDS, and became the co-representative of NHN. After serving as the sole representative of NHN in 2004, he became the representative who oversees overseas business. Then he casts the post in August 2007. Chairman Kim robs and leaves for the United States where his family was. He spent a year playing with the kids and taking me to school. He begged his family for patience and returned to his home country alone, falling into music, falling into books.

 

Three years to play so, I ask his family for patience to do a new project with the release of the iPhone. And ‘KakaoTalk’ was born. When I was in the U.S., I saw the iPhone launch, and I guessed it would move from the PC to the mobile era. Kakao Talk has opened up a new horizon of'mobile messenger' in the market of PC messengers.

 

KakaoTalk, which puts out the strength of free service and group chat, has attracted 10 million users within one year of its launch. At the time, the reason KakaoTalk grew rapidly was that until the early 2010s, mobile communication service providers had a limited number of characters and had to pay a lot of extra communication fees.

 

In Korea, which had such a weakened system, KakaoTalk was able to use unlimited text without restrictions as long as it was connected to the Internet, and later released emoticons and additional features ignited the popularity and led the box office. After that, it merged with'daum' in 2014.

 

At first, it was a free service, so we made profits by focusing on linking with game companies. However, as the paid services prepared afterwards and the unmanned banking business such as Kakao Bank produced great results, in 2019, we satisfied the criteria for large corporations with total assets of 10 trillion or more, and entered the ranks of conglomerates after nine years.

 

In addition, Kakao Chairman Kim Beom-soo participated in the global voluntary donation campaign “The Giving Pledge,” and officially pledged to donate more than half of his assets. Kakao announced that Chairman Beom-soo Kim was named as the 220th donor of'The Giving Pledge' on the 16th.

In the pledge of “The Giving Pledge,” Chairman Kim said, “The young man who dreamed of starting a business after reading a special article on the 20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Microsoft in 1995 is now facing the pledge of “The Giving Pledge”. “I feel as excited as when I first saw the article.” I would like to express my respect and gratitude to the “Bill-Merlinda Gates,” Warren Buffett, and the previous donors, who provided a meaningful opportunity for the donation pledge.

 

“After getting the wealth that I had aimed for, I lost my direction in my life and had to wander for a while, but after encountering the poem “What is Success?”, I was able to take the rudder in my future life.” “After starting a project to foster and support 100 entrepreneurs more than 10 years ago, when the meaning of success was re-engraved, the Kakao community has produced a wonderful fruit and has an impact on the lives of many people in Korea.”

 

In a Kakao New Year message sent to former Kakao employees in February, Chairman Kim Bum-soo said that he will donate more than half of his fortune (about 6 trillion won) to resolve social problems during his life. “I am very interested in AI talent and people who have not gotten the opportunity due to the digital education gap.” It would be great if we could put in a large amount of capital to solve social problems.”

 

How is it? Have you ever seen a big businessman like this? I wonder if the leading conglomerates have thrown a fresh shock wave into this society where they tax evasion and inherit wealth to their children. Making a lot of our money is not a success. Isn't sharing what I have with my neighbors the greatest happiness in my life?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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