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와 유자 그리고 효도

홍시와 유자가 1천년이 넘은 세월을 효와 문학의 소재로 사용돼

박채순 박사 | 기사입력 2020/12/24 [16:26]

▲ 박채순 박사. ©브레이크뉴스

소학교 입학하기 전 어렸을 때, 할머니를 찾아 큰댁을 방문하곤 했다. 슬하에 손주를 여럿 둔 할머니가 다른 손주들이 보지 않을 때 내 손에 빨간 홍시를 쥐여 주곤 하셨다.

 

그때의 내 할머니의 사랑과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의 맛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또한, 자자일촌의 마을에서 10월경에는 조상들의 묘에 제사를 지내는 시제(時祭)가 많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시제 모시는 곳을 따라다녔다. 시제가 끝나고 나면 볏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떡과 과일 등을 골고루 싸 주셨다. 이 음식을 받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쫓아서  이산 저산 조상들의 시제에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 음식 중 꾸러미에 고흥에서 생산한 유자를 한 개씩 넣어 주셨다. 다른 음식은 곧 다 먹어치우지만, 형현할 수 없는 특별한 향을 가진 유자는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유자를 방안에 두고 딱딱하게 굳어져 까만색으로 변할 때까지 두고두고 그 향기를 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은 맘만 먹으면 홍시와 유자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의 홍시와 유자의 그 맛과 향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 들어 겨울로 들어서니, 어렸을 때의 할머니와 아버지 생각과 홍시 맛과 유자 향기가 그립다.

 

홍시와 유자를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노계 박인로 선생의 조홍시가(早紅柹歌)가 떠오른다.

 

“조홍시가(早紅柹歌)”, 박인로(朴仁老, 1561-1642)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柚子(유자) 아니어도 품음직 하다 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소반 위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만

 

품어가도 반가워하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구나

 

이 시는 홍시와 유자를 가지고 효심을 노래한 것이다.

 

노계 박인로 선생은 조선 선조 때 사람으로 초반에는 임진왜란에 종군했던 무인(武人)으로 후반에는 독서와 수행을 했던 문인(文人)으로 활동했던 분으로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시가작가로 불린다.

 

박인로 선생이 조선 시대에 영의정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워 후세인들에게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으로 잘 알려진, 한음 이덕형에게서 감을 대접받자 돌아가신 어머니와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가 떠올라 이 시조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육적회귤의 고사는 회귤고사(懷橘故事)라고도 하는데,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육적(陸績)이라는 사람에 관한 고사다. 육적은 6세 때 당시 권력자였던 원술(袁術)을 만났다. 원술은 육적에게 귤을 주며 먹으라고 했는데, 육적이 원술이 모르게 귤 세 개를 집어 품 안에 감추었다. 육적이 원술에게 작별인사를 올리는데 품 안에 있던 귤이 떨어져 굴렀다. 원술이 “육랑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欲歸遣母)”라고 대답하였다.

 

이 고사는 원나라 때 곽거경(郭居敬)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적은 『이십사효(二十四孝)』에 실려 있으며, 여기에서 유래하여 육적회귤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역사 자료를 보니 육적은 삼국시대에 오나라에서 187년에 태어났다.

 

그가 원술집에서 어머니를 위해 유자 3개를 품 안에 넣었을 때가 6살이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1827년 전인 193년의 일이다.

 

박인로 선생은 1561년에 태어나셨으니 조홍시가는 약 1,440년 전의 일이다.

 

홍시와 유자가 1천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중국과 한국을 관통하는 역사에서 효와 문학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유자의 고장 고흥에서는 “탱자는 고와도 발길에 차이고, 유자는 얽어도 신사 손에 논다”라는 구전 민요도 전해진다. 1980년 이후에는 천연두가 지구상에 없어졌지만, 천연두 백신이 발명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천연두를 앓아 사망하거나 치료가 되더라도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남았다.

 

우리네 선인들이 유자를 천연두로 곰보가 된 얼굴을 향기 좋은 유자에 비유했고, 얼굴이 반반한 사람을 탱자에 비유한 표현이 흥미롭다. parkcoa@naver.com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Hongsi, Yuzu, and Hyodo

Hongshi and Yuja have been used as materials for filial piety and literature for more than 1,000 years.

-Dr. Chae-Soon Park

 

When I was young before entering her elementary school, I used to visit her oldest home in search of her grandmother. When her grandmother, with her many grandchildren under her, she would hold a red shin in my hand when her other grandchildren were not looking.

 

My grandmother's love at that time and the soft and sweet taste of Hongsi could not be expressed with anything.

 

In addition, in the village of Jajail Village, around October, there were many tense rites for ancestral rites.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I followed the place where the tense was enshrined. After the tense was over, he evenly wrapped rice cakes and fruits in a package made of rice straw. In order to receive this food, he would have followed his father at a young age and followed the tense of his low-born ancestors.

 

Of those foods, he put one citron produced in Goheung into the package. All other foods will soon be eaten, but the citron with a special fragrance that cannot be expressed could not be eaten. The memories of leaving the citron in the room until it hardens and turns black and smelling the scent is vivid.

 

These days, you can easily get hongsi and citron anywhere you like, but you can't forget the taste and aroma of hongsi and citron when you were young.

 

As I get older and enter winter, I miss the thoughts of my grandmother and father when I was young, the taste of Hongsi, and the scent of citron.

 

When I think of Hongsi and Yuja, I think of Cho Hongshiga (早紅柹歌) by Nogye Park Inro during the Joseon Dynasty.

 

“Cho Hong Shiga”, Inro Park (1561-1642)

 

You can see the sensation of 盤中 (banjung) and 早紅

 

Even if it's not a citron,

 

I am sorry for him because I have no welcome.

 

You can also see the red persimmon on the soban!

 

Although I have a heart to embrace it even if it is not citron

 

I'm sorry that there aren't any parents who would be happy to see you

 

This poem sang filial piety with Hongsi and Yuja.

 

Nogye Park In-ro was a man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was a warrior who fought during the Imjin War. In the latter half, he was active as a literary man who read and practiced. Is called

 

In-ro Park served as Yeongui-je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made great contributions during the Imjin War. It is said that he built this ancestor.

 

The test of the Yukjeok Hoe Tangerine is also known as the Hoe Tangerine (懷橘故事), and it is a test about a person named Yukjeok who served as the staff of King Son Kwon of the Onion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China. When he was 6 years old, he met Wonsul, who was in power at the time. Wonsul gave a mandarin orange to eat, but the flesh took three mandarins and hid them in his arms. The fleshly man said goodbye to Won-Sul, and the tangerine in his arms fell and rolled. Wonsul asked, “Why did Yukrang come as a guest and put the mandarin oranges in his arms?” In response, the flesh replied, “I wanted to return home and give it to my mother.” (欲歸遣母).

 

This testimony is published in ``Twenty Four Hyo (二十四孝),'' written by Gwak Geo-gyeong (郭居敬) in the Yuan Dynasty, describing the filial piety of 24 representative Chinese filial sons.

 

According to historical data, the flesh was born in 187 in Onara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It is said that he was 6 years old when he put three citrons in his arms for his mother at his original bar, 1827 years ago, in 193.

 

Park In-ro was born in 1561, so Cho Hong-shi was about 1,440 years ago.

 

Hongshi and Yuja have been used as subjects of filial piety and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penetrating China and Korea for more than 1,000 years.

 

In Goheung, the home of citron, there is also an oral folk song that says, “Tengja is also used by Kowado, and citron is entangled in the hands of a gentleman.” After 1980, smallpox had disappeared on the planet, but before the invention of the smallpox vaccine, many people died of smallpox, or even if they were cured, they had scars on their faces.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our predecessors compared the face of citron with smallpox to the fragrant citron, and the expression that compared the person with a smooth face to a t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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