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쿠바 독립 유공자 후손' 고국 방문 동행기

[동행 르포]저 멀리서 할아버지를 찾은 독립유공자 후손들 동행

박채순 박사 | 기사입력 2019/10/18 [13:34]

멕시코와 쿠바에서 고국을 찾아 온 독립유공자 후손 7명과 2019101일부터 11일까지 함께했다. 101일 서울에서 전국 체전이 열렸는데, 올해 2019년은 전국체전 100년이 되는 해로써, 서울시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년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16명을 초대하였다. 스페인어를 쓰는 중미와 미국 등에서 할아버지 고국을 방문한 7명과 전남대학교 김재기 교수와 함께 그들의 일정에 동행하고 한국을 소개한 것이다.  

 

광주에서 멕시코 한국학교 후원회 결성. ©브레이크뉴스

박원순 서울시장 초청 만찬. ©브레이크뉴스

소녀상과 함께. ©브레이크뉴스

 

이들은 미국에서 한국을 찾으신 한 분과 멕시코에서 온 네 분 그리고 쿠바에서 온 두 분 등 일곱 분이다. 이들은 1929년 광주학생 운동 시기에 그들의 처지가 곤궁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전달한 한인들의 후손들이다.

 

한국의 미주 이민사는 1902121명이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자들을 효시로 한다. 당시 대한제국 시대에 일본의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는 불안정한 정세와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에서 1902년부터 1905년까지 약 7,400여명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향해 고국을 떠났다.

 

세종대왕릉 방문.  ©브레이크뉴스

한인 독립 유공자 후손들 현충원 방문.   ©브레이크뉴스

미국의 하와이 농장 이민이 침체되자 19054월초에는 1033명의 한국인들이 멕시코 에네캔 농장으로 떠나게 된다.

 

이들은 영국 상선 일포드호(s.s. Ilford)로 제물포항을 떠나 5월 멕시코 서남부에 위치한 살리나크루소(Salina Cruz)항에 도착한 후 지방으로 옮겨 유카탄 지역의 메리다(Merida)지방에 도착하여 에네켄(henequen)을 재배하는 농장에서 고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한인 후손.  ©브레이크뉴스

그들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의 계약노동 기간이 해지된 19095월까지 만 4년 동안 열악한 환경과 노동 조건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에네켄은 2미터 크기의 가시가 많은 식물로 선박용 밧줄과 마대용으로 사용했던 천연 섬유였으나, 나일론의 발명으로 에네켄 수요가 줄어들어 사업이 망하게 되었고, 멕시코의 내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멕시코에서 생활하던 이민자들 중 288명이 1921년에 쿠바로 재 이민을 감행한다. 물론 이 당시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제 합방으로 국가가 없어진 상태였다.

 

멕시코에서 생활했던 한인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전국으로 현지인 속으로 흩어졌고, 쿠바로 이주한 한인들은 1949년 쿠바 카스트로의 혁명과 일본의 강점으로 국적을 잃어버린 상태여서 쿠바에 정착하기 위한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박채순     ©브레이크뉴스

한편, 1929년 광주에서는 학생들이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가 있다. 19193.1운동의 좌절을 겪었던 울분이 만연했던 가운데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와 광주농업학교 등의 학생들이 주축으로 한 광주학생 항쟁은 결국 전국으로 확대되어 전국에서 궐기한 민족 독립 항쟁이었다. 수많은 학생이 퇴학 처분을 당했고 또한 구속되었다. 이 광주학생 운동은 처음 나주에서 일본 학생들이 한국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는 것을 한인 남학생들이 일본학생들을 때린 일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이 광주 학생운동 당시 멕시코와 쿠바에 어렵게 생존하던 한인들이 성금을 모아 이 독립운동의 지원금으로 보냈던 기록이 역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이들 한인들을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지정한 바 있다. 이번에 이 독립유공자 후손들 중 멕시코 출신 4명과 쿠바 출신 2명 그리고 미국 출신 1명이 중국 출신 8명과함께 서울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필자는 멕시코와 쿠바 한인들의 후손들을 인하대학교에서 가르쳤던 경험과, 재외동포 권익을 위해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집행위원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고, 학술적으로 재외동포에 관련한 여러 연구 발표를 하였다. 이런 저런 연유로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정당인 국민당과 민주평화당에서 재외동포관련 업무를 책임지는 등의 인연이 있다. 이런 연유로 재외한인 서훈 미전수 독립유공자에 대한 연구와 현지 조사를 진행한 전남대학교 김재기 교수와 함께 서울 시청의 독립 유공자 후손 초청 업무에 함께하여 중미의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그들의 전 일정에 함께한 것이다.

 

이들 한인 후손들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였고, 잠실 체육관에서 있었던 전국 체육대회 입장식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6일과 7일에는 광주학생 운동의 고장인 광주제일고를 찾고, 광주에서의 백범 김구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일정을 소화했다. 또한 이들 한인 후손들과 함께 독립 운동의 현장을 찾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인식을 위한 현장 방문을 비롯하여 그들 할아버지가 114년 전에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제물포의 한국 이민사 박물관을 찾아 할아버지 역사를 돌아 보고 강화도를 찾아서 외세의 침략을 방어한 역사적 현장과 강화 평화전망대를 찾아서 남과 북의 분단 현상도 소개했다.

 

할아버지가 평생 돌아가고 싶어했던 고국에 114년 후에 그들 손자들이 찾은 한국은 그들에게는 경이로운 발전이고 꿈에 그리던 방문이었다. 107일에는 서울시청을 방문하여 박원순 시장과 티 타임을 가졌고, 8일 밤에는 박원순 시장이 주최한 전국 체전에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선수단 1,000여명을 초청하여 베푼 만찬장에도 함께했다.

 

양재동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는 멕시코, 쿠바, 미국과 중국에서 오신 독립유공자 후손 15명도 한복을 입고 참가했으며, 이 자리에서 건배사를 제의 받은 멕시코 이주 독립유공자 공돌만 선생의 손자인 후안 이그나시오 두란 공(Juan Ignacio Duran Cong)은 건배사를 통해 “1905년에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주하셨던 공돌만 할아버지의 손자라고 전제하고 할아버지께서 평생 돌아가기를 원하셨던 할아버지 고국에 손자인 제가 114년 만에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조국을 찾아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감격스럽다고 말하고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박원순 시장과 관계자에게 감사하고, 한국의 혼이 우리들 가슴에 항상 함께할 것을 기원하면서 건배를 제의합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한국이다, 우리는 한국이다.”라고 크게 외쳐서 함께 자리한 1,000여명의 한국인들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켰다.

 

그에 앞서 6일 저녁에는 빛고을문화재단, 의향정신세계화사업단과 광주국제우호친선협회, 전남대 평화통일외교센터, 통일부 광주통일교육센터 등 광주 시민사회에서는 '멕시코·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후손 초청·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을 치하하고 그들을 돕고자 기금을 조성하여 현지 한국 학교를 돕고 지속적인 협력을 다짐한 행사에 함께했다.

 

김재기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929년 광주에서 발생한 학생독립운동은 전국 320여개 학교로 확산돼 중국과 미국, 옛 소련은 물론 지구 반대편 멕시코와 쿠바 등 세계 40여 지역으로 번졌다고 한다. 당시 멕시코 5개 지역과 쿠바 3개 지역의 500여명이 나라 잃은 한인들이 에네캔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땀 흘려 번 돈 1000여 원(현재 25000만원 상당)을 학생독립운동 특별후원금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들은 1930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어 전 세계에 학생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고 한다.

 

▲ 박채순 박사.    ©브레이크뉴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훗날 "광주학생독립운동 이후 멕시코·쿠바 등 미주 한인들이 낸 독립운동자금 때문에 상하이 임시정부 재정이 호번하게 됐다"면서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이 결성한 미주 독립운동단체에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저 멀리서 할아버지를 찾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동행한 10일 동안, 필자도 그들 선인들의 애국 정신을 많이 배우고, 행복한 방문에 함께 웃고, 그들 할아버지의 노고와 생전에 찾지 못한 마음에 함께 슬퍼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필자/박채순

 

정치학박사(Ph.D). 민주평화당 김포시을 지역위원장. 민주평화당 재외국민위원장.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인2016~2017). 아르헨티나 국립 라 플라타 대학교 객원교수 역임(2014~2016)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월드코레안 편집위원. 복지국가 society 정책위원. () 대륙으로 가는길 정책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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