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한글학회는 창립 109돌 기념행사를 가졌다. 필자는 이 날에 김두루한 회원과 함께 ‘한글학회 회칙 개정 위원 명단을 한글 새소식에 게재하라’고 피켓 주장을 하였다.
필자는 한글학회의 회칙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내용을 발견하여, 지난 3월 25일 정기총회가 있던 날에 ‘한글학회 회칙 개정위원회’를 출범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정기총회에서는 이 안건을 논의하여 의결하였다. 4월 18일에 ‘한글학회 회칙 개정위원회’ 1차 회의가 한글학회 회의실에서 열려, 개정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개정위원으로 김주원·이관규·김수열·김정수·정동환·박용규·이창덕·홍현보가, 개정위원장으로 리의도가 선임되었다. 이후 계속 회의를 가졌고, 7월 6일에 4차 회의를 마쳤다.
필자는 한글학회 정회원과 국민 여러분께 한글학회의 발전을 위해 시대에 뒤떨어진 한글학회의 회칙 내용을 고치는데 관심을 촉구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회칙 내용으로 임원(회장과 이사) 선출의 간선제, 1988년에 등장한 평의원회, 이사회에서만 회칙 개정을 발의하도록 한 점, 정회원 자격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간선제와 평의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글학회는 1908년 국어연구학회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국어연구학회를 이른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우리 말글 말살 정책에 맞서 언어 독립 투쟁을 전개하여 우리 말글을 수호하였다. 해방정국기에도 조선어학회는 국어정책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조선어학회는 1949년 10월 2일 한글학회로 개명하였다.
한글학회 초대 이사장으로 최현배가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었다. 정기총회에서 정회원이 임원인 이사를 선출하였는데, 최현배는 연이어 이사장에 뽑혔다. 1970년 3월 23일 서거할 때까지 최현배가 이사장직을 맡았다. 최현배는 대한민국을 한글나라로, 대한민국 국민의 문자생활을 한글전용으로 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1908년에서 1988년까지 80년간 한글학회는 정회원의 임원(이사장과 이사) 직선제로 활기가 넘쳤다.
문제는 허웅 이사장 재임 시절에 발생하였다. 허웅은 정회원 직선제로 1971(9대)에서 1986년(14대)까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3월 정기총회에서 허웅이 1등으로 이사장에 선출되고, 김석득은 2등으로 뽑혔다. 직선제는 다수 정회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민주제 선출 방식이었다. 참고로 허웅(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은 경남 김해 출신이고, 김석득(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충북 괴산 출신이었다.
허웅이 이사장으로 있던 시기인 1988년 3월 20일에 정기총회를 열었는데, 평의원회가 신설되는 규정이 삽입되도록 회칙을 부분 개정하는 안을 상정하여 통과시켰다. 이 날에 이루어진 회칙 개정 사건은 영남출신 김계곤 회원이 회원이 행동대장이 되어 버스 3대를 동원하여 영남지역 회원 1백여명을 데리고 와 정기총회에서 간선제로 임원을 선출하는 회칙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임원 선출 방식을 변경하였다.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었다. 즉 평의원이 이사를 선출하고, 이사들이 호선하여 이사장을 선출하도록 회칙을 고쳤다.
이후 한글학회의 정회원은 임원 선출권을 박탈당하였다. 회비를 낸 정회원의 임원 선출권이 박탈된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일어난 버스 동원은 유독 영남 지역에서만 일어났다. 자기 지역 출신을 임원으로 뽑기 위해서 벌어졌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후 곧바로 한글학회의 이사와 지회장이 평의원 51명을 선출하였다. 이사와 지회장에게 찍힌 정회원은 애초부터 평의원에 선임될 수 없었다. 평의원에 선출된 51명의 지역 분포가 너무도 편중이 심하였다. 영남(경북과 경남) 지역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호남·충청·강원·경기·서울 지역 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평의원 분포만 보면 한글학회는 영남지역의 학회로 전락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남지역 출신 평의원들이 단합하면 얼마든지 자기 지역 출신들을 이사로 뽑을 있게 되었다. 이후 이사의 분포를 보면 그리 결과가 나왔다. 영남 지역 출신의 이사들은 자기 지역 출신을 이사장(회장)으로 선출하는데 다수를 차지하였다.
1988년에 평의원에 선출된 영남지역 인사가 이후 지금까지 모두 한글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허웅·김계곤·김승곤·김종택·권재일이 여기에 해당하였다. 참고로 허웅은 직선으로 이사장에 선출되어 18년간, 간선으로 이사장(회장)에 선출되어 15년간 총 33년간(1971-2004) 재임하였다.
2016년과 2017년의 평의원 현황을 살펴보면, 영남 지역의 평의원 분포가 과반에 근접하고 있다. 여전히 특정 지역 편중을 해소하지 못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회칙에 보면, ‘이사회가 평의원을 추천하여, 평의원회에서 평의원을 인준’하도록 되어 있다. 이사회가 평의원 추천의 전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사에게 찍힌 정회원은 평의원에 추천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비민주성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1988년에 평의원회가 신설된 이후 지금까지, 평의원들이 한 일은 3년에 한 번씩 임원을 선거한 것 밖에 없다. 임원 선출은 정회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평의원들이 가로챈 것이다. 학회의 역사에서 입증하고 있다. 평의원과 이사들이 정회원보다 회비를 더 낸 것도 없다. 정회원과 비교해서 평의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와 전두환은 정권을 연장하고자 국민 직선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조직을 이용해서 간선제로 대통령에 뽑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짓을 자행하였다. 그들 독재자의 말로는 역사가 입증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수많은 희생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국민 모두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성취하였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때부터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글학회에서는 오히려 사회의 민주화를 역행한 일이 벌어졌다. 1988년 3월 20일에 간선제로 임원을 선출하는 회칙 개정안이 통과된 일이었다. 이 일은 한글학회 109년 역사에서 쿠데타적 사건이었다. 이전의 80년간 이루어져온 정회원의 임원 직선제를 전복시킨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의원에 의해서 임원을 선출하는 간선제 이후 한글학회는 활기를 잃었다.
‘한글학회 회칙 개정 위원’의 한 사람인 필자는 정회원의 임원(회장과 이사) 선출 직선제와 평의원회 폐지를 관철하고자 한다. 한글학회의 정회원 여러분께서는 이번 ‘한글학회 회칙 개정 위원회’가 하고 있는 회칙 개정 내용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도 부탁을 드린다.
*필자/ 박용규 :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한글학회 연구위원. 문학박사(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