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호 롯데햄·롯데우유 부회장이 지난 10월 대선건설을 창립, 건설업에 진출한데 이어 지난해 신 부회장 일가의 개인 돈으로 인수한 대선주조(경남권에서 시원소주 생산)가 1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재단 ‘시원공익재단’을 출범시켰다.
작년부터 부쩍 두드러지기 시작한 신준호 부회장의 독자행보에 대해 신동빈 부회장 중심의 롯데그룹 승계구도가 마무리 단계이고, 대선건설 및 대선주조가 신준호 부회장 일가의 개인소유라는 점을 들어 ‘계열분리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올해 10월 7일 설립된 대선건설이 최근 롯데그룹의 세 번째 건설관련 계열사로 편입됐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대선건설의 설립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롯데건설과 롯데기공에 이어 롯데그룹 내에 새로운 건설업체가, 그것도 ‘롯데’라는 브랜드 파워를 버린 등장한 것을 두고 그 내막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롯데건설은 국내 최초의 브랜드형 아파트 ‘롯데캐슬’을 짓고, 롯데인벤스는 ‘전원형 고품격 아파트’를 표방하는 ‘롯데인벤스’를 짓고 있어 새로운 건설업체가 ‘롯데’라는 이름을 달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업 파워브랜드 ‘롯데’ 버려
건설 분야에서 쌓여 있는 ‘롯데’라는 브랜드 파워를 포기한 것에 대해 대선건설측은 “오늘의 롯데건설을 일군 것은 신준호 부회장”이라며 건설 분야에서 독자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대선건설은 “사람과 자연, 첨단기술을 접목해 신개념의 주거문화를 창출하겠다”며, “이를 위해 축적된 기술력과 건실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세부계획 수립과 사업부지 확부에 진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신준호 부회장은 대선건설의 미래에 대해 “아파트, 빌라, 주상복합, 오피스텔, 재건축, 재개발사업 등에 중점 투자해 5년내 10대 주택건설 업체로 부상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부산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대선건설은 최대주주인 신준호 부회장이 특수관계인이어서 롯데계열로 편입되지만, 신 부회장이 40%, 자녀들이 50%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신준호 부회장 일가의 개인기업이다.
신준호 부회장이 ‘롯데’라는 엄청난 브랜드파워를 포기하면서 선택한 ‘대선’이라는 사명은 신 부회장 일가가 지난해 6월 개인 돈으로 인수한 대선주조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결국 ‘신준호 부회장이 계열분리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대선건설 쪽에서는 신 부회장의 분가설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 “롯데의 2세경영 체제가 가속화되는 만큼, 신 부회장도 독립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맥락으로, 재계 일각에서는 신격호 회장의 장남인 일본롯데그룹 신동주 부사장이 일본롯데를, 차남인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롯데를 맡는 것으로 후계구도가 정리되면서 신 부회장도 일가를 이뤄 나와야 할 때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준호 부회장의 분가 조짐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신 부회장과 그 가족들이 개인 자금을 투자해 부산경남권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선주조를 인수한 것이 바로 그 단초였다.
대선주조는 신 부회장의 사돈인 최병석(53) 전 대선주조 회장이 운영했던 소주 회사로 부산지역 소주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향토기업으로, 최병석 전 회장은 신 부회장의 차남 동환의 장인이다.
96년 불거진 갈등, 10년만의 결말
사실 신격호·준호 형제의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199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격호 회장이 당시 그룹 부회장이던 준호를 상대로 서울 양평동 부지 3천6백평 등 7건의 부동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신격호 회장은 “양평동 부지는 66년 롯데제과를 설립할 당시 동생 앞으로 명의신탁해 놓은 땅”이라며 반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신준호 부회장은 “부모님이 주신 내 전재산으로 형님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땅의 반환을 거부했다.
재산권 분쟁의 이면에는 신격호 회장이 한국 롯데의 경영권을 아들에게 주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데 대해 신준호 부회장이 암묵적으로 반발하면서 형제간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소송이 있기 전인 1996년 2월 신준호 부회장은 10년 넘게 대표이사로 있던 롯데건설에서 롯데햄우유 부사장으로 자리가 옮겨졌는데, 이는 신준호 부회장의 실권을 박탈하기 위한 인사라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신 부회장은 사실상 롯데와 함께 성장해온 으뜸공신이자 신 회장의 오른팔로 꼽혀왔는데,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 입사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롯데에 머물면서 82년부터는 그룹 부회장겸 롯데건설 사장으로서, 일본을 오가는 신회장 대신 그룹경영을 총괄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눈에 띄게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로, 신 부회장이 10년 이상 맡아온 롯데건설의 자금유용 혐의로 95년 말부터 그룹 내부감사를 받은데 이어 이듬해 2월에는 규모가 작은 롯데햄·우유 부회장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이 와중에 95년 말 당시 세븐일레븐의 이사로 재직중이던 차남 신동빈이 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룹기조실 부사장으로 들어가면서, ‘큰아들 동주가 일본롯데를 맡고 둘째 아들이 그룹 총수 자리를 맡는다’는 롯데그룹 후계구도가 가시화되었다.
몇 년간 이어진 형제간 싸움은 1997년 11월 신준호가 형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신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봉합됐는데, 부지 문제는 신 회장이 양평동 등 26만평, 신부회장이 김해 골프장용 부지 11만평을 나눠가지면서 해결됐다.
특히 신 회장은 1998년 롯데칠성이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 29만주를 비롯해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롯데햄·우유 지분 45%를 동생에게 넘겨줬으며,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형으로부터 완전 독립해 새살림을 차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