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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한일약품 노조 고약한 와해작전’ 전말

대한상의 회장회사 “노조탈퇴 안하면 구조조정 대상” 협박?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5/12/21 [15:52]
250여명 조합원, 1년 사이에 1/10로 무력화
 
삼성, 신세계, cj, 한솔 등 엄청난 비용과 사회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노조 신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범삼성가 그룹... 범삼성가의 무노조 신화에 2개의 ‘오점’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정밀화학과 한일약품중, 하나가 이 ‘무노조 신화’에 곧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창업자이자, 무노조 정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자 이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는 cj그룹은 지난해 인수 합병한 한일약품 노조에 대해 파괴 공작을 은밀하게 진행해왔으며, 이 파괴공작은 이제 완료단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60년에 설립되어 종합감기약 화이투벤과 안약 핀클·산클 등 생활에 밀접한 약품을 주로 생산해온 45년 전통의 한일약품은 지난해 cj 인수로 화의채무를 전액 상환하고, 관리종목에서 벗어난 업체로, 이 회사 노조도 1987년에 설립되어 근 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한일약품 노동조합은 회사가 중간관리자들을 내세워 근무시간중 개별면담에서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는 말로 협박, 지난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생산직 85명의 노조 탈퇴를 이끌어냈다고 최근 밝혔다.

 
이 회사 노조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도 이번과 동일한 수법으로 120명이 가입되어있던 영업부노조를 소멸시켰으며, 영업부 노조가 사라진 정황에 대해서는 회사측 관계자도 부인하지 않았다.

한일약품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2005년 12월초 중간관리자들을 앞세워 근무시간 중에 조합원들을 한사람씩 개별면담을 해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고 곧 있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는 협박과 함께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노조 관계자는 “압력과 협박을 이기지 못한 조합원들이 지난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매일 수십명씩 집단적으로 탈퇴원서를 제출해 상근직 2명을 포함해 총 113명의 조합원중 85명이 탈퇴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이 회사 중간관리자들이 단순히 노조탈퇴를 종용하는 것을 넘어서 일과 시간중에 노조탈퇴서 양식을 가지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조합원들에게 탈퇴 원서를 받기도 했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회사 관리자들은 탈퇴원서를 제출하는 기한도 정해 ‘12월 15일까지 탈퇴서를 제출하고 그 이후에는 제출해봐야 효력이 없다’는 말을 하며 조합원들의 탈퇴를 독려하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한일약품 노조는 “경영진이 이렇게 조합원 회유와 협박으로 집단 탈퇴를 유도하며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려는 근본 원인은 ‘구조조정 추진’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일약품노조를 없애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고 그 뿌리를 잘라내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회사가 연봉제 도입과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노동조합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12월 6일 임시총회를 통해 향후 투쟁계획을 확정하고 집행 준비를 해 나가는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

놀랍고도 어이없는 사실은 이 회사가 작년 9월 무분규로 임단협을 성사시키고 ‘화의채무보고의무 면제승인’을 받아 부실기업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게 되면서, 대외적으로 “노사간 신뢰가 재건의 밑거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

cj 경영진이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노사간 신뢰’를 이어가는 것보다 다소 트러블이 있더라도 노조를 없애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사업적 판단을 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착한 노조보다 죽은 노조가 낫다?
 
노조원 집단탈퇴 종용에 대해 한일약품 노조는 지난 12월 14일 노조 간부들이 수원공장의 생산본부장 사무실을 항의방문한데 이어 15일에는 중식집회 시간에 노조 위원장이 항의 삭발을 실시하고, 이날 오후에는 서울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노조의 14일 항의방문자리에서 한일약품 생산본부장 김영경 상무는 “노조 집단탈퇴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회사에서는 개입한 적 없다”고 말해 항의하러간 집행부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약품 노조는 “cj그룹이 2004년 7월에 한일약품을 인수, 합병한 이후 회사는 시종일관 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 노동탄압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민주노조의 뿌리를 짤라내겠다는 음모를 여지없이 드러내 왔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그해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역시 조합원들을 회유, 협박하여(노조탈퇴 안하면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등) 영업부 조합원 120명 전원이 노조를 탈퇴하거나 퇴사해서 노동조합은 영업지부 자체가 없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한 “의약품을 제조, 판매하는 한일약품은 전통의 제약회사로 노동자들의 고통과 피와 땀으로 오늘가지 유지될 수 있었다”며, “98년 부도가 나자 한일약품노조 조합원들은 상여금 250%반납, 임금동결 등 자구노력으로 회사를 살려냈다”고 밝혔다.

노조는 “대한생명이 인수한 이후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모든 직원들이 퇴직금과 상여금으로 회사주식을 인수해 최대주주로써 역할을 해오면서, 무노조 경영과 노동탄압의 대명사 삼성의 형제기업 cj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는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일약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단협도 무분규로 원만하게 타결되는 등 겉으로 드러난 노사 갈등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측 “집단 탈퇴 원인은 노노갈등” 주장
 
화학섬유연맹과 한일약품노조는 “무노조 경영과 노동탄압의 상징인 삼성의 형제기업 cj그룹은 즉각 부당노동행위와 모든 노동탄압 행위를 중단하고 강압적으로 탈퇴시킨 조합원들을 원상회복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노조는 “만약에 한일약품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 민주노조 와해 음모를 지속한다면 민주노총 및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cj그룹에 대한 강력한 응징과 전면 투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한일약품 쪽 입장은 한마디로 “사실무근이다”라는 것이다.

한일약품 관계자는 “우선 중간관리자들을 동원해서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탈퇴원서를 거둔 사실 자체가 없으며, 노무관련해서 cj그룹과의 협의 같은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cj는 회사의 대주주일 뿐 회사 경영에 대해 간섭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밝혔으며, 회사 대표부터 주요 임원진까지 대부분 cj제약사업부 출신들로 채워져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노조 탈퇴는 전적으로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연봉제 도입이나 희망퇴직 실시 관련, 직원들 사이에서 먼저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상황을 오판한 노조 집행부가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서 “회사 입장에서 발언하거나 개입하기 껄끄러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회사 노조에는 이전부터 노노갈등이 있었다. 이번 대량 탈퇴 사태도 그동안의 갈등이 이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도한계, 부당노동행위 구제 힘들어
 
한편 한일약품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재미있으면서도 충격적인 문구를 발견했는데, 이 회사 사업보고서에서 ‘노동조합 현황’의 ‘노조 가입대상’으로 “사업주 및 사업주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자 이외의 전 근로자”라고 명시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노조가입 대상에 직급이나, 근무처 등을 명시하는데 그치는 것과 달리 이렇게 표현했다는 점은 이 회사가 “노조 가입=사업주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의 표현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는 증거로 보였다.

한일약품과 함께 범삼성가 기업중 유일하게 노조가 있는 삼성정밀화학의 경우에도 노조 가입대상으로 “회사종업원은 누구나 가입가능 단, 대리이상의 간부사원, 인사, 급여 및 정보시스템, 신경영사원, 비서실 사원, 경리·관리 및 자금담당 사원, 교환직 사원, 경비직 사원, 수습사원, 기타 노사 합의로 정한 사원은 조합원이 될 수 없음”이라고 돼있을 뿐이다.

회사 사업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이러한 반 노조적인 표현에 대해 한일약품 관계자는 “인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표현을 별다른 검토 없이 그대로 받아서 쓴 것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해명했다.

한일약품 노조는 지난 12월 16일 지방노동사무소에 이번 사안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고소를 접수하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하는 한편, cj그룹 본사 앞에서의 항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노조가입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 노동부 노사관계조정팀의 담당자에게 문의해본 결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절차가 복잡하고, “재판으로 가더라도 부당노동행위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실정이다.

더욱이 지난해 “해고 위협으로 노조탈퇴를 종용해도 실제 해고를 하지 않으면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한일약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해고 위협을 통한 파괴공장에 대해 노조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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