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우승 후보. 흥국생명보다 전력 균형이 뛰어난 육각형 팀.
올 시즌 V리그 개막 직전에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여자배구 7개 팀 감독과 일부 전문가들이 바라본 정관장 팀 전력에 대한 평가였다.
부키리치(25 ·198cm), 메가(25·185cm) 두 외국인 쌍포의 공격력이 막강하고, IBK기업은행으로부터 FA 보상 선수로 표승주(32 ·182cm)까지 영입하면서 공격 삼각 편대가 완성됐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여기에 국가대표인 정호영(23 ·190cm), 박은진(25 ·187cm)의 장신 미들블로커, 베테랑 염혜선(33 ·176cm) 세터까지 대부분의 포지션이 V리그 정상급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지난 5월 실시된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정관장 고희진(44) 감독이 아포짓 포지션의 부키리치를 선택할 때만 해도 배구 전문가와 팬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미 아시아쿼터에서 부키리치와 똑같은 아포짓 포지션인 메가와 재계약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배구에서 아포짓 포지션은 대부분 서브 리시브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반면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은 수비는 물론 공격까지 전위와 후위를 가리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
때문에 '배구 황제' 김연경(35·192cm)처럼 공격과 수비 모두 수준급 실력을 갖춘 '완성형 선수'는 팀 기여도와 연봉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이다. 김연경이 해외 빅리그에서 세계 최고 연봉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국내 V리그 FA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의 한 수 ·역대 최강'에서 하위권 추락 요인
그런데 정관장은 부키리치, 메가가 모두 아포짓 선수이기 때문에 코트에서 동시에 뛰기 위해서는 한 명은 반드시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으로 활약해야 한다. 당연히 정관장의 리시브와 수비 불안이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희진 감독은 부키리치 지명 직후 언론사 인터뷰에서 "공격력이 좋은 선수를 놓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리시브 부분은 훈련을 통해서 맞춰나가겠다"고 밝혔다.
고 감독의 선택은 지난 10월 6일 종료된 2024 통영 KOVO컵 대회에서 정관장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층 기대감이 커졌다. 부키리치가 막강한 공격력과 함께 서브 리시브에서도 상위권 순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구계와 언론으로부터 '고희진 감독의 신의 한 수', '부키리치-메가 공존 성공' 등 호평이 쏟아졌다.
이런 기류는 2024-2025시즌 V리그 초반까지 이어졌다. 정관장은 지난 달 20일 열린 V리그 첫 경기 GS칼텍스전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그러자 고 감독은 더욱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날 경기 직후 언론사 인터뷰에서 "정관장의 올 시즌 전력은 팀 역사상 최강"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고희진 감독의 호언과 정관장의 강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다음 경기인 지난 달 25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어렵게 승리하더니, 이어진 IBK기업은행전에서 2-3으로 패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팀과 '마의 4연전'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지난 8일부터 20일까지 '현대건설-흥국생명-현대건설-흥국생명' 순으로 맞대결한 4연전에서 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관장이 우승 후보를 유지하고, 3강 구도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반타작 승리는 했어야 했다.
전패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컸다. 지난 27일 6위 페퍼저축은행에게도 승점도 얻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러면서 상위권 3팀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지금은 상위권 추격이 문제가 아니라, 4위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29일 현재 여자부 순위를 보면, 1위 흥국생명이 10전 전승(승점 29점)으로 남녀 배구를 통틀어 유일하게 '무패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어 2위 IBK기업은행(8승2패·승점 21점), 3위 현대건설(7승3패·21점), 4위 정관장(4승6패·12점), 5위 페퍼저축은행(3승7패·9점), 6위 한국도로공사(2승8패·8점), 7위 GS칼텍스(1승9패·5점) 순이다.
수비 불안-공격 약화 '악순환'... 벌써 피로 증세
정관장 하락세의 가장 큰 원인은 부키리치-메가 공존의 '단점과 한계'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에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아포짓에서 아웃사이드 히터로 포지션 변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 셈이다.
실제로 올 시즌 처음으로 서브 리시브를 받는 부키리치가 경기를 치를수록 공격과 수비 모두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더군다나 정관장은 리베로 노란(30)이 7개 팀 리베로 중 가장 서브 리시브가 취약하다. 상대 팀들이 리베로를 상대로 서브 목적타를 날릴 정도다. 이는 고스란히 부키리치의 수비 부담과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그러다 보니 부키리치의 공격 파워가 V리그 개막 한 달 만에 확연하게 약화됐고, 리시브 효율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체력 저하와 멘탈까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아포짓 포지션으로 뛰는 메가도 부키리치의 공격 부담을 줄이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단점인 '중요한 순간 범실'도 빈번해졌다.
더군다나 메가는 올 시즌 '체력과 부상'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 시즌 동안 자국인 인도네시아 리그와 각종 대회를 뛰면서 남녀 외국인 선수 중 정상적인 팀 훈련에 가장 늦게 합류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KOVO컵 대회 직전까지 국제대회도 아닌, 인도네시아 국내 대회를 뛰러 가기도 했다. 결국 메가는 지난 20일 흥국생명과 경기를 앞두고 '허벅지 근육 통증'으로 결장하면서 우려가 더 커졌다.
부키리치, 표승주, 노란으로 구성된 후위 수비 라인이 크게 흔들리면서 정관장의 장점인 미들블로커 활용도 현저히 떨어졌다. 또한 염혜선 세터의 토스도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 팀 입장에선 부키리치, 메가의 공격을 방어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결국 올 시즌 선수 구성을 만든 고희진 감독이 위기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부키리치를 원래 포지션인 아포짓으로 보내서 공격에 주력하도록 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메가에게 아웃사이드 히터 역할을 맡기든지, 아예 주전에서 제외하고 리시브 라인을 강화하는 선수 구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 또한 주전 리베로를 바꾸는 것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떤 결정이든 쉬운 선택은 아니다.
정관장은 오는 30일 2위 IBK기업은행과 일전을 치른다. 이 경기마저 패할 경우 하위권 추락이 현실화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반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