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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현지르포]인도 바라나시 화장터, 세상 멍 때리기 좋다…바라나시 이야기<2>

조석용, 본지 인도 통신원 | 기사입력 2024/11/26 [13:41]

인도의 바라나시 화장터에 오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일부 전기 화장터도 있지만, 나무 장작으로 화장하는 것이 오랜 기간 내려왔고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처음 장작더미에 붙이는 불은 신성한 불이다. 그 불의 씨앗은24시간, 1365일 한 순간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오직 장자(큰 아들)만이 그 불을 살 수 있다. 장자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면서 화장 의식이 시작된다.

 

▲ 인도 바라나시     ©브레이크뉴스

 

▲ 인도 바라나시     ©브레이크뉴스

▲ 인도 바라나시     ©브레이크뉴스

 

화장하는 나무는 가격에 따라 종류가 조금 다르다. 그러나 화장하는 시간은 딱 4시간이다. 그 시간은 누구나 공평하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이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4시간의 화장이 끝나면 유골을 수습해 갠지스 강에 뿌린다.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는 헤어진다.

 

바라나시 화장터에는 원칙적으로 여자의 출입이 금지된다. 힌두교에서는 사람이 사망하면 하루에 모든 장례의식이 끝난다. 24시간 안에 화장을 마쳐야 한다. 여자가 화장터에 따라와서 과도하게 슬픔을 표현하다 보면 제대로 화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인도에는 여자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는 것에 대한 주변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평생 그 부당한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젊은 여자가 죽은 남편의 불타오르는 장작더미에 올라가 함께 죽는 것을 영웅시 했다.

 

 

이를 사티라 한다. 현대 인도는 사티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화장터에 여자 출입을 금지한 이유는 혹시라도 사띠가 돌발적으로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힌두교의 생사관은 윤회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주어진 환경(카스트)를 수용하고 선행을 쌓아야 더 다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육신은 이번 생에서 잠시 빌려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 망자의 육신이 화장되어 사라질 때 비로소 이 생이 마감된다고 믿는다. 이 때서야 그 정신이 육체를 떠난다는 것이 힌두교 시각이다.

 

그러기에 사띠는 한 날 한 시에 남편과 함께 이 생을 마감하는 행위이다. 매우 야만적인 행태로서, 식민지 시절 영국사람이 가장 충격적인 문화로 기록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면 비슷한 형태가 많았다. 고대 우리도 국왕 등 유력자가 죽으면 순장했지 않았던가.

 

 

바라나시 화장터의 모습은 아무래도 밤에 조금 더 경건한 느낌이다. 화장 의식은 간단하다. 시체가 운구 되어 화장터에 도착한다. 간단한 기도 의식을 갖고, 갠지스 강에 2~3번 적신다. 나무 장작더미에 올려 진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모든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 저기 활활 타오르기도 하고, 또 불길이 약해지는 곳도 있다. 시차를 두고 이런 모습이 반복된다.

 

화장이 끝나면 유골을 수습해 갠지스 강에 띄어 보낸다. 이것으로 장례 의식은 끝나고, 장자 등 유가족은 화장터를 떠난다. 이 때 가족 누구라도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표표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죽은 자의 가는 길을 잡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화장터에서 이런 궂은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불가촉 천민이다. 그들은 때론 장작에 불이 붙지 않는다고 떼를 쓴다. 상주가 노자 돈이라도 꽂아주면 비로소 불이 붙는다. 유골을 수습할 때 혹시 귀금속이라도 나오면 그들 몫이다. 은근히 수입이 좋다고 한다. 요지경 세상이다.

 

불은 사람의 마음에 이상한 흐름을 준다. 우리는 종종 캠프 파이어아니면 추운 날씨에 장작 화로 옆에서 불을 쬐던 추억이 있다. 그냥 마음이 편하다. 혹자는 불 멍을 때릴 때 가장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바라나시 화장터의 불은 멍 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를 잠시 생각해 본다. 동아시아의 유교 사상은 인간으로서 최고 덕목을 부모 자식 간의 인륜지사에서 찾는다. 그래서 근본이 효 사상인 것이다. 장례 역시 엄중하고 복잡하기까지 한다. 또 매장을 한다. 3년 상이라면서 부모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봉양한다.

 

 

▲ 필자/조석용 본지 인도 통신원.     ©브레이크뉴스

이것도 조선 왕조의 성리학이라는 지배 이념이 일반 민중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지배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대다수가 묘지 문제와 편의성을 감안해 화장을 한다. 그러면서도 유골은 수습해 또 다른 형태로 보존한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오면 누구라도 자기만의 생사관에 잠시 빠질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사는 것이 무엇이라고 아등바등 했는지. 저렇게 한 줌의 재로 남는데라 들었다. 어떠한 의미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생사가 공존하면서 반복될 뿐이다. cowboy1616@naver.com

 

*필자/조석용

 

 

본지 인도 통신원. 칼럼니스트. 한국어 교원.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인도 뉴델리의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dian local report] Varanasi crematorium in India, a great place to daze the worldVaranasi story <2>

- Jo Seok-yong, India correspondent for this newspaper

 

When you visit the Varanasi crematorium in India, you will think a lot. No, it may have made you think a lot. You can see the intersection of life and death at the closest possible location.

Although there are some electric crematoriums, cremation with wood firewood has been around for a long time and will continue in the future. The fire that is first lit on the firewood pile is a sacred fire. The seed of that fire burns 24 hours a day, 365 days a year without going out for a single moment. Only the eldest son can buy that fire. The cremation ceremony begins when the eldest son lights the firewood pile.

The type of wood used for cremation varies slightly depending on the price. However, the cremation time is exactly 4 hours. That time is fair to everyone. It does not depend on money or high status. After the four-hour cremation, the ashes are collected and scattered in the Ganges River. In this way, the living and the dead are separated.

In principle, women are prohibited from entering the crematorium in Varanasi. In Hinduism, when a person dies, all funeral rites are completed in one day. Cremation must be completed within 24 hours. It is said that if a woman follows the crematorium and expresses excessive sorrow, the cremation cannot be completed properly.

There is another reason. In India, the surroundings had a very negative view of women becoming widows at a young age. They had to live their whole lives with that unfair burden. That is why young women were considered heroic when they climbed onto the burning pyre of their dead husband and died together.

This is called ‘sati.’ Modern India has made it a law to prohibit ‘sati.’ The reason women are prohibited from entering the crematorium is to prevent ‘sati’ from occurring unexpectedly.

Hinduism’s view of life and death is based on the idea of ​​reincarnation. It is said that one must accept the given environment (caste) and accumulate good deeds in order to be born into a better world. The body is just a tool that we borrow for a short time in this life. It is believed that this life ends when the body of the deceased is cremated and disappears. Hinduism believes that the spirit leaves the body at this time. Therefore, ‘Sati’ is an act of ending this life with one’s husband at the same time on the same day. It is a very barbaric behavior, and the British recorded it as the most shocking culture during the colonial period. However, there were many similar forms in history. In ancient times, when powerful people such as kings died, didn’t they also bury them alive?

The appearance of the crematorium in Varanasi seems a little more pious at night. The cremation ceremony is simple. The body is carried to the crematorium. After a simple prayer ceremony, it is soaked in the Ganges River two or three times. It is placed on a pile of wood. Then, it is set on fire. The whole scene is visible at a glance. Here and there, it burns fiercely, and there are also places where the flames weaken. This scene is repeated with a time difference. After cremation, the remains are collected and floated into the Ganges River. This concludes the funeral ceremony, and the bereaved family, including the eldest son, leaves the crematorium. At this time, no family member should look back. They must leave the place gracefully. This is because they must not interfere with the deceased’s path.

All those who do this dirty work at the crematorium are untouchables. Sometimes, they complain that the firewood won’t catch fire. The fire will only start if the mourner puts in some ‘old money.’ If there are any precious metals found while collecting the remains, they get their share. They say that they secretly earn a lot of money. This is the world of Yojikyung.

Fire gives a strange feeling to people’s hearts. We often have memories of ‘campfires’ or warming ourselves by a wood stove on cold days. It just makes us feel at ease. Some say that when we ‘stare at the fire,’ we return to the basics. The fire at the Varanasi crematorium is perfect for staring at the fire.

Let’s think about our country’s funeral culture for a moment. Confucianism in East Asia finds the highest virtue as a human being in the lov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That is why the fundamental idea is filial piety. Funerals are also strict and complicated. They also bury the dead. They say it is a three-year mourning period, but they serve the parents just as they did when they were alive.

This may also be because the ruling ideology of Neo-Confucianism of the Joseon Dynasty dominated the thoughts and behaviors of the general public. It seems to have changed a lot these days. These days, most people cremate the remains, considering the cemetery problem and convenience. At the same time, they collect the remains and preserve them in another form.

Anyone who visits the Ganges River in Varanasi will briefly become lost in their own view of life and death. The general reaction of Koreans is, “What was the point of living? It is just a handful of ashes.” There is no need to search for any meaning. Life and death coexist and repeat. cowboy1616@naver.com

 

*Writer/Cho Seok-yong

 

Correspondent for this newspaper in India. Columnist. Korean language teacher. After a long career in public service, I now teach Korean at a school in New Delhi,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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