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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자병법-<1>' 제1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이동연 작가 | 기사입력 2024/11/19 [09:39]

 *필자/이동연 작가.

소설 '손자병법-<1>' 제1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주요 등장인물

 

 -손무孫武 _ 주인공. 춘추시대 전략가로 《손자병법》 창시자.  제나라 출신으로 아버지 손빙을 따라 오나라로 이주했다.

 

 -손빙孫憑 _손무의 아버지.

 

 -무미한武微汗 _주나라 도서관 관리.

 

- 윤희尹喜 _노자老子의 제자. 함곡관 수문장을 지내며 손무에게 《도덕경道德經》을 주었다. 

 

- 포강鮑姜 _손무의 정혼녀, 손무가 진陳나라 공자 류柳에게 억류당해 있을 때 구출해 내었다.

 

 -오자서伍子胥 _국보회의 영웅. 초나라 출신이지만 초나라 왕이 아버지 오사伍奢를 죽이자  오나라로 망명해 손무의 도움으로 초나라를 징벌했다.

 

 -공자孔子 _유교의 창시자. 병가의 창시자인 손무와 절친이다.

 

 -합려闔閭 _오나라 왕으로 손무의 지략과 오자서의 무공으로 중원의 패권을 차지한다.

 

- 범려范蠡 _월나라 구천句踐의 책사.  구천이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당한 회계산의 치욕을 갚아주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대 실업가로 변신했다.

 

 -자공子貢_공자의 제자이며 세 치 혀로 중원의 정세를 뒤바꾸어  노나라를 위기 에서 구했다.

 

- 귀곡자鬼谷子 _귀곡산장에 은거하던 전국시대 최고의 스승.

 

 -금활리禽滑厘 _묵자墨子의 제자로 수시로 귀곡산장에 들러 귀곡자와 담소를 나누었다. 

 

-방연龐涓 _위나라 장수. 손빈과 더불어 귀곡자의 동문同門으로 이론에는 밝았으나 응용력이 부족해 늘 손빈을 질투했다.

 

 -손빈孫矉 _손무의 5대손이며 방연의 모략으로 두 다리가 잘렸지만,  제나라에 등용되어 방연에게 통쾌하게 복수했다.

 

손무 일족의 망명

 

티벳에서 출발한 장강長江(양쯔강)은 광활한 대륙의 중앙을 동서로 관 통해 상해를 적시며 바다로 빠져나간다.

 

강의 중류 양쪽에 동량산東梁 山과 서량산西梁山이 우뚝 솟아 있다.  그 두 산을 천문산天門山이라고도 하는데, 거센 파도가 하늘 문을 두 조각 냈다는 뜻이리라. 

 

때는 춘추 후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초여름날 오후 였다. 천문산을 휘돌아 내려온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하류에 늙은 뱃사공이 탄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그 배 위로 큰 키에 깡마른 청년이 훌쩍 뛰어올랐다. 아직 스물이 안된 손무(545~470)였다.

 

손무가 뱃머리에 털썩 앉자, 사공이 긴 장대로 강변을 쭉 밀어 배가 중원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 했다. 배는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위에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되어 곡예 하듯 넘고 또 넘어갔다.     

 

물벼락이 쉴새 없이 사공과 손무의 온몸을 내리쳐도 둘 다 요동하지 않았다. 사공이야 장강에서 뼈가 굵고 늙어 그럴 수 있다지만 손무가 의외였다.

 

무엇에 그리 골똘히 빠져 거센 파도도 안중에 없었을까.  ‘난세를 정리할 원리.’ 손무는 그 생각 외에 다른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계속> dyl1010@hanmail.net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Novel 《The Art of War》

 

Main Characters

 

Sun Wu _ Main character.

 

           A strategist from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the creator of 《The Art of War》. From the state of Qi, he followed his father Sun Bing to the state of Wu.

 

Sun Bing _ Sun Wu's father.

 

Wu Weihan _ Manager of the library of the Zhou Dynasty.

 

Yun Xi _ A disciple of Laozi. He served as the gatekeeper of the Hamgok Pass

 

          and gave Sun Wu the 《Tao Te Ching》.

 

Bao Jiang _ Sun Wu's fiancée, 

 

      rescued him when he was imprisoned by Prince Liu Liu of the state of Chen.

 

Wu Zixu _ A hero of the National Treasure Council. 

 

          He was born in the state of Chu, but when the king of Chu killed his father, Wu Shi, he fled to the state of Wu and punished the state of Chu with the help of Sun Tzu.

 

Confucius _ Founder of Confucianism. 

 

          He was a close friend of Sun Tzu, the founder of military school.

 

He Lu _ King of Wu, who took over the central plains with Sun Tzu's strategy 

 

         and Wu Zixu's martial arts.

 

Fan Lu _ A strategist for Gou Qian of the Yue state.

 

         He avenged Gou Qian for the humiliation of Huai Shan that he suffered from Fu Cha of the Wu state, and left behind the famous saying, "A rabbit dies and a dog is cooked," and transformed into a great businessman.

 

Zigong _ A disciple of Confucius, he turned the situation in the central plains   around with his three-inch tongue, and saved the state of Lu from crisis. Guiguzi _ The greatest teacher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who lived in seclusion at Guigu Mountain Villa.

 

Jinhuoli _ A disciple of Mozi, he often visited Guigu Mountain Villa to chat with Guiguzi.

 

Pang Yan _ A general of the Wei Dynasty. Along with Sun Bin, 

 

          he was a fellow student of Guiguzi and was well-versed in theory, but he lacked practical skills and was always jealous of Sun Bin.

 

Sun Bin _ The fifth-generation descendant of Sun Wu, 

 

           he lost both his legs due to Pang Yan's plot, but was appointed to the state of Qi and took revenge on Pang Yan.

 

Part 1: Whose World Does It Own?

 

The Exile of Sun Wu's Clan

 

      The Yangtze River, which originates from Tibet, flows through the center of the vast continent from east to west, irrigating Shanghai and flowing out into the sea. On both sides of the middle reaches of the river, Dongliang Mountain and Xiliang Mountain stand tall. The two mountains are also called Tianmen Mountain, which means that the strong waves split the gate of heaven in two.

 

     It was the late Spring and Autumn period, an early summer afternoon when the heat was starting to get intense. Downstream, where the river that had wrapped around Tianmen Mountain flowed powerfully, a small boat with an old boatman was floating. 

 

    A tall, skinny young man jumped onto the boat.

 

    It was Sun Tzu (545-470), who was not yet twenty. As Sun Tzu sat down on the bow of the boat, the boatman pushed the riverbank with a long pole, and the boat began to slide toward the central plains. The boat became a single-leafed boat and performed acrobatics over the endless waves. Even though the water continuously struck the boatman and Sun Tzu’s entire bodies, neither of them moved. 

 

   The boatman said that he could become old and thick-boned in the Yangtze River, but Sun Tzu was unexpected.

 

  What was he so absorbed in that he didn’t even notice the rough waves?

 

  ‘The principle that will organize the troubled times.’

 

Sun Tzu had no other thoughts than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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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대출신 2024/11/22 [00:55] 수정 | 삭제
  • 필자는 성대출신 윤진한(1983학번)임. 한국대학들 자격을 결정하는 합법적.역사적 정통성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대출신 사상가.문필가임. 주권없는 倭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미군정기 문교부 정책입안자들의 기준으로 강점기 잔재세력이 포진한 대중언론(조선.동아.경향등).사설입시지의 약탈에 시달리던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대.성균관.향교의 주요 관련자, 임시정부의 자격을 아는 학계.정치분야 관련자, 한국사.국제법 교수, 가톨릭계의 세계사중심 학자.성직자 중 성대의 국사 성균관자격을 인지해오던 분들이 있었음. 그분들기준은 한국 최고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였음. 이걸 세계사의 교황성하 윤허 예수회산하 서강대의 자격으로, 깨닫게 된 서강대 출신들이 생겨나고, 개교초기부터 거슬러올라가, 가톨릭계 귀족대학 서강대의 과정을 중시하였을것. 서강대 다니다가, 성대 편입한분기준은, 유교 양반사회 전통이 더 자격있다고 생각하였을것. 그러다, 조선일보식 입시기사를 선호하여, 1970년대의 사설입시지 진학지의 전기중심 입시기사가 한국 진학지도교사.수험생들에게 영향력을 주었을것. 한 나라의 최고대학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대학학벌은 국제법,헌법, 한국사,세계사, 국가주권등과 같은 상위규범이 중요함.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대학 성균관의 역사,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주장,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와 대일선전포고한 임시정부의 승인(프랑스.구소련,폴란드), 국제법(일본이 항복하며 받아들인 포츠담선언), 국제법상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승전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이 대한민국 건국전에 존재했음. 미군정법률은 한국에 주권없는 미군정의 적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일제가 폐지한 성균관을 복구하기 위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법률을 제정함. 상위법우선의 원칙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에 의해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은 없으며,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될, 연합국의 적국 일본의 약탈잔재임. 또한 적산재산형태의 국립대성격에불과하였음. 미군정때는, 조선성명 복구령, 미군정의 국사 성균관교육, 향교재산으로 성균관.성균관대 유지법률 제정함.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자격(성균관의 대학교육기능 승계. 제사는 성균관으로 2원화)의 형성이후, 대한민국 제헌의회의 임시정부 계승(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이 있었음. 대한민국 건국후,교황윤허의 예수회산하 서강대 설립승인. 세계사와 교황제도는 국제관습법역할. 유교의 세계종교 자격이 위험해져, 세계사의 교황윤허로 설립된 서강대를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공생관계의 Royal대로 지속시키고자함. 대학이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에서, 단순하게 대학등록만 하고,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견해, 해당대학의 입장을 제시하는것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움 @대중언론.사설입시지를 통한 대대적인 약탈이 끝나면, 다시 UN적국,전범국에,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 패전국 일본과 그 잔재 토착왜구로 주권없이 살아야되는 倭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해방후에 대학이 된 그 미만 전국각지의 대학들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와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의 법률도 작동됩니다. 한편,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끝. 기타大는 불인정. 주권없이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로 아무리 약탈해도, 성씨없는 불교계열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 일본에서는 천황) Monkey가 세운, 패전국 잔재 왜구 마당쇠.개똥이 서울대와 그 미만 자격 대학들로 다시 원위치되는 한국의 대학구조임. 국제법,헌법,한국사,세계사, 국가주권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적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어떠한 하위법으로 포장해도,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적국 일본 잔재일뿐입니다. 미군정에 등용된, 한국내 일제 추종, 한국인 교육 정책 실무자들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각색작업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시켜야 될(expelled), 적국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 성대출신 2024/11/22 [00:52] 수정 | 삭제
  • 성리학(주자학)을 비판하기 위한 글들을 보게됩니다. 도교와 불교를 배척한 성리학이라 막부시대에 불교국가 된 일본이 유교나라도 아니면서, 성리학을 왜곡시켜서 꾸며낸 글들이 다시 횡행하여 안타깝습니다. 유교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일자리를 주고, 환과고독같은 의지할 데 없는 처량한 사람들도 두루 살피며 수천년을 이어왔습니다. 부국강병은 국력에 맞게 하면됩니다. 성급하게 백성의 고혈을 짜서, 국가가 부강해지고 군사력을 키우기 이전에, 백성들의 경제력이 향상되면, 당연히 세금부과에 대한 저항도 줄어들고, 순탄한 세수증대로, 국력에 맞는 부국강병이 실현될것입니다. 부국강병에 대한 성리학의 관학파 입장은 교과서적으로 이렇습니다. 성리학의 정착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으로 성리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 사이에서 입장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학파는 대내외적 모순을 극복하고 왕조 교체에 따른 문물제도의 정비와 부국 강병을 추진하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정도전·권근 등이 있었고 성리학 이외의 다른 사상도 포용하였으며, 주례를 국가 통치 이념화하였다. 반면에 사학파는 정몽주·길재의 학풍을 계승하며 성종 때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교화에 의한 통치를 강조했고, 성리학적 명분론을 중시 하였으며 공신과 외척의 비리와 횡포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출처:성리학의 정착 및 성리학의 융성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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