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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 “나의 도(道)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황흥룡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4/11/14 [11:25]

▲필자/ 황흥룡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우리는 동양 사람이어서 동양의 역사에 친숙하다. 서양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겠지만 우리로서는 공자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반응한다.

 

공자가 증자에게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吾道一以貫之)고 말했다. 이 말을 증자는 충서(忠恕)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해석이 혼란을 초래했다. 어떤 이는 충()과 서()로 받아서 자신에게 충실한 것()과 용서와 화해, 포용()이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충을 서의 관형사로 해석하여 진정한 용서와 화해, 포용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의 옳고 그름은 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나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혼탁한 시대에 공자가 끝까지 자기 사상의 중심을 잡고 이것을 세상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낮은 수준의 교육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이것은 전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 도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자극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토론과 비판은 그 일환이자 수단이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 교육은 대부분 가치와 사상을 제거한 채 지식과 정보의 전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은 삶의 수단인 만큼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삶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관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 토론은 사라지고 그저 인공지능 그 자체에 기능적으로 매몰되어 버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공자가 2,500년 전에 자기의 도를 충서(忠恕)라고 했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데, ()를 현대적으로 연장한 공존과 공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존과 공생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연과 인간 아닌 생명체를 대상으로 추구해온 개발과 정복의 관점을 폐기하고 바꾸는 것이다. heungyong57@hanmail.net

 

Confucius's words, "My Way is One and Penetrating!"

-Hwang Heung-ryong, columnist

 

We are Easterners, so we are familiar with Eastern history. Westerners would quote Socrates, Plato, and Aristotle, but we respond more closely to the teachings of Confucius or Buddha.

Confucius said to Zengzi, "My Way is One and Penetrating" (吾道一以貫之). Zengzi interpreted this as loyalty and forgiveness. However, this interpretation has caused confusion. Some people interpret loyalty as loyalty and forgiveness, and others interpret it as true forgiveness, reconciliation, and inclusion, interpreting loyalty as an adjective for forgiveness. Whether this explanation is right or wrong is beyond my scope, so I read it with both in mind.

What is important to me is that in a chaotic era, Confucius held on to the center of his thoughts until the end and taught them to the world and his disciples. This is education. Transmitting knowledge and information is a very low-level education. High-level education is about gaining enlightenment, and this is not achieved through transmission. The teacher is in charge of teaching, stimulating, and guiding the disciple to reach enlightenment through his own path. Discussion and criticism are part and means of this.

In this context, it seems that most of our education is limited to the transmission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without values ​​and ideas. For example, since science and technology such as artificial intelligence are means of life, there needs to be discussion on how to improve our lives through them, but this discussion disappears and we are simply functionally absorbed in artificial intelligence itself. If this happens, we become slaves to artificial intelligence.

So if Confucius called his way loyalty and forgiveness 2,500 years ago, we need to think about what we should call it now, and I think it should be coexistence and symbiosis, a modern extension of forgiveness. Coexistence and symbiosis are about discarding and changing the perspective of development and conquest that humans have pursued since the Industrial Revolution, targeting nature and non-human life forms. heungyong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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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대출신 2024/11/22 [00:56] 수정 | 삭제
  • 필자는 성대출신 윤진한(1983학번)임. 한국대학들 자격을 결정하는 합법적.역사적 정통성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성대출신 사상가.문필가임. 주권없는 倭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미군정기 문교부 정책입안자들의 기준으로 강점기 잔재세력이 포진한 대중언론(조선.동아.경향등).사설입시지의 약탈에 시달리던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대.성균관.향교의 주요 관련자, 임시정부의 자격을 아는 학계.정치분야 관련자, 한국사.국제법 교수, 가톨릭계의 세계사중심 학자.성직자 중 성대의 국사 성균관자격을 인지해오던 분들이 있었음. 그분들기준은 한국 최고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였음. 이걸 세계사의 교황성하 윤허 예수회산하 서강대의 자격으로, 깨닫게 된 서강대 출신들이 생겨나고, 개교초기부터 거슬러올라가, 가톨릭계 귀족대학 서강대의 과정을 중시하였을것. 서강대 다니다가, 성대 편입한분기준은, 유교 양반사회 전통이 더 자격있다고 생각하였을것. 그러다, 조선일보식 입시기사를 선호하여, 1970년대의 사설입시지 진학지의 전기중심 입시기사가 한국 진학지도교사.수험생들에게 영향력을 주었을것. 한 나라의 최고대학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대학학벌은 국제법,헌법, 한국사,세계사, 국가주권등과 같은 상위규범이 중요함.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대학 성균관의 역사,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주장,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와 대일선전포고한 임시정부의 승인(프랑스.구소련,폴란드), 국제법(일본이 항복하며 받아들인 포츠담선언), 국제법상 상위법인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승전국 국가원수들의 포츠담선언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이 대한민국 건국전에 존재했음. 미군정법률은 한국에 주권없는 미군정의 적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일제가 폐지한 성균관을 복구하기 위해,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법률을 제정함. 상위법우선의 원칙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에 의해 일제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학벌은 없으며,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될, 연합국의 적국 일본의 약탈잔재임. 또한 적산재산형태의 국립대성격에불과하였음. 미군정때는, 조선성명 복구령, 미군정의 국사 성균관교육, 향교재산으로 성균관.성균관대 유지법률 제정함.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자격(성균관의 대학교육기능 승계. 제사는 성균관으로 2원화)의 형성이후, 대한민국 제헌의회의 임시정부 계승(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이 있었음. 대한민국 건국후,교황윤허의 예수회산하 서강대 설립승인. 세계사와 교황제도는 국제관습법역할. 유교의 세계종교 자격이 위험해져, 세계사의 교황윤허로 설립된 서강대를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공생관계의 Royal대로 지속시키고자함. 대학이 성균관 하나밖에 없던 나라에서, 단순하게 대학등록만 하고, 대중언론.사설입시지의 견해, 해당대학의 입장을 제시하는것은, 국사 성균관자격 성균관대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움 @대중언론.사설입시지를 통한 대대적인 약탈이 끝나면, 다시 UN적국,전범국에,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한 패전국 일본과 그 잔재 토착왜구로 주권없이 살아야되는 倭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와 해방후에 대학이 된 그 미만 전국각지의 대학들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와 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의 법률도 작동됩니다. 한편,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 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끝. 기타大는 불인정. 주권없이 대중언론.사설 입시지로 아무리 약탈해도, 성씨없는 불교계열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 일본에서는 천황) Monkey가 세운, 패전국 잔재 왜구 마당쇠.개똥이 서울대와 그 미만 자격 대학들로 다시 원위치되는 한국의 대학구조임. 국제법,헌법,한국사,세계사, 국가주권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적국 잔재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어떠한 하위법으로 포장해도,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적국 일본 잔재일뿐입니다. 미군정에 등용된, 한국내 일제 추종, 한국인 교육 정책 실무자들의,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각색작업에도 불구하고,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 영토에서 축출시켜야 될(expelled), 적국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 성대출신 2024/11/17 [15:47] 수정 | 삭제
  • @고대 한국의 경우, 부여 금와왕, 고구려 주몽임금, 신라 혁거세임금등은, 하늘의 신령함으로 태어난 유교의 상고시대 天子개념에 영향받은 탄생신화를 가졌습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하느님족 유교나, 가톨릭의 하느님 숭배 전통! 이 자격이 가장 중요합니다.공자님께서 태어나실때 은나라왕족의 후손이라, 그런지, 하늘에서 하늘의 사자들이 내려와 축하해주었음. 예수님은 다윗왕의 후손. 석가는 그 당시 인도의 최고신분 브라만(성직자계급)이 아닌, 정치계급의 크샤트리아 출신. 공자님은 나중에 성인임금(문선왕, 문선제)칭호 추증. 예수님은 기독교 세계 만왕의 왕.부처 Monkey불교는, 브라만에 항거한 죄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살아옴. 조계종 천민 승려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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