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양 사람이어서 동양의 역사에 친숙하다. 서양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겠지만 우리로서는 공자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반응한다.
공자가 증자에게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吾道一以貫之)고 말했다. 이 말을 증자는 충서(忠恕)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해석이 혼란을 초래했다. 어떤 이는 충(忠)과 서(恕)로 받아서 자신에게 충실한 것(忠)과 용서와 화해, 포용(恕)이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충을 서의 관형사로 해석하여 진정한 용서와 화해, 포용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의 옳고 그름은 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나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혼탁한 시대에 공자가 끝까지 자기 사상의 중심을 잡고 이것을 세상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낮은 수준의 교육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이것은 전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 도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자극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토론과 비판은 그 일환이자 수단이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 교육은 대부분 가치와 사상을 제거한 채 지식과 정보의 전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은 삶의 수단인 만큼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삶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관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 토론은 사라지고 그저 인공지능 그 자체에 기능적으로 매몰되어 버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공자가 2,500년 전에 자기의 도를 충서(忠恕)라고 했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데, 서(恕)를 현대적으로 연장한 공존과 공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존과 공생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연과 인간 아닌 생명체를 대상으로 추구해온 개발과 정복의 관점을 폐기하고 바꾸는 것이다. heungyong57@hanmail.net
Confucius's words, "My Way is One and Penetrating!"
-Hwang Heung-ryong, columnist
We are Easterners, so we are familiar with Eastern history. Westerners would quote Socrates, Plato, and Aristotle, but we respond more closely to the teachings of Confucius or Buddha.
Confucius said to Zengzi, "My Way is One and Penetrating" (吾道一以貫之). Zengzi interpreted this as loyalty and forgiveness. However, this interpretation has caused confusion. Some people interpret loyalty as loyalty and forgiveness, and others interpret it as true forgiveness, reconciliation, and inclusion, interpreting loyalty as an adjective for forgiveness. Whether this explanation is right or wrong is beyond my scope, so I read it with both in mind.
What is important to me is that in a chaotic era, Confucius held on to the center of his thoughts until the end and taught them to the world and his disciples. This is education. Transmitting knowledge and information is a very low-level education. High-level education is about gaining enlightenment, and this is not achieved through transmission. The teacher is in charge of teaching, stimulating, and guiding the disciple to reach enlightenment through his own path. Discussion and criticism are part and means of this.
In this context, it seems that most of our education is limited to the transmission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without values and ideas. For example, since science and technology such as artificial intelligence are means of life, there needs to be discussion on how to improve our lives through them, but this discussion disappears and we are simply functionally absorbed in artificial intelligence itself. If this happens, we become slaves to artificial intelligence.
So if Confucius called his way loyalty and forgiveness 2,500 years ago, we need to think about what we should call it now, and I think it should be coexistence and symbiosis, a modern extension of forgiveness. Coexistence and symbiosis are about discarding and changing the perspective of development and conquest that humans have pursued since the Industrial Revolution, targeting nature and non-human life forms. heungyong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