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에덴성회 이영수 총회장은 누구인가?

<집중기획>에덴성회 이영수 총회장 종교활동 연구③

문일석 기자 | 기사입력 2009/03/15 [15:15]
오늘날의 에덴성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수 총회장은 1973년 9월 26일 전도관에서 해직 당했다. 그 후 1973년 11월 17일 한국기독교 전도회관 부흥협회를 창립했다. 1974년 2월 15일에는 한국기독교 에덴성회로 교회 이름을 개칭했다. 이어 1996년 3월5일에 재단법인 한국기독교에덴성회선교재단을 정부 당국에 등록했다. 에덴성회측은 전도관(현재의 천부교)을 세운 박태선 장로를 '제1감람나무'라고 여기고 있다. 에덴성회측은 공식 홈피에 올린 제1감람나무 개요를 통해 “1948년 남대문교회에서 이성봉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를 안내하다가 열심이 있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헛수고라는 설교를 듣고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불같은 성령을 받았다. 1950년 6.25동란이 나고, 피난을 가지 못하여 서울 수색에서 구들장 밑에 숨어 기도 생활을 하던 중, 목이 달콤하여지고 뱃속이 시원해지는 생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은혜를 받던 당시에는 그것이 생수인 줄 모르고 다만 좁은 공간에서 오래 기도하여 몸이 불편하니 하늘에서 위로해 주신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주께서 믿는 자에게 생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후에(요 7:38, 계 21:6∼7) 이천년 만에 처음으로 주신 역사적 순간이었다”면서 “박 장로는 경기도 부천의 소사에 신앙촌을 세운 뒤에 하나님과 교류가 계속되지 않자 1962년에 경기도 양주군 와부읍 덕소리에 제 2 신앙촌을 세워 옮겼고 1970년 경남 양산군 기장면 죽성리에 제 3 신앙촌을 건설하였다. 1973년에 두 번째 감람나무의 역사가 시작되자 이를 가로막기 위해 폭력을 사주하고 계속 비방을 일삼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 에덴성회의  성전과 편의 시설들.
반면에 에덴성회측은 이 총회장을 두 번째 감람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덴성회측은 공식 홈피에서 “두 번째 감람나무, 곧 이영수 총회장은 1942년 7월 20일 이대 부속병원에서 부친 이문재와 모친 김유정 사이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황해도 금천의 지주였던 부친을 따라 1944년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았는데 부친은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모든 것을 잃고 1946년 철원으로 이주하였다. 1950년 6.25동란이 일어나고 1953년 4월에 경북 김천으로 피난을 갔으며, 1951년 10세에 첫 번째 감람나무와 더불어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이긴자로 인정하시며 알려주신 내용”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에덴성회가 상천리에 성전을 건축했던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1985년, 알곡성전을 건축하라는 지시에 따라 장소를 조사하고, 1985년 9월에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상천 1리에 산을 구입하였다. 1986년 7월 16일, 알곡성전을 건축 할 때 기술이 부족한 경우에는 사회 사람을 쓰라는 지시를 하셨고, 1987년 1월 9일에 알곡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보여주신 대로 성전을 지어 1987년 11월 6일에 헌당하였다”면서 “이후에 여호와께서 '너를 따르는 양떼들이 이 성전을 거쳐 내 나라에 들어오리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하여 제2 감람나무 역사는 이 알곡성전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1996년 3월 5일에는 제단의 모든 재산을 재단법인 명의로 등록하고 제단 명칭을 '재단법인 한국기독교 에덴성회 선교재단'으로 변경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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