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권력대행자' 장성택, 킹메이커?

집중진단 : 한반도 전쟁과 평화 2탄 - '포스트 김정일' 누구?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9/02/16 [10:29]
북한이 1월30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해 그동안 남북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해 합의한 모든 사항을 무효화한다는 대남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인공위성에 포착되는 등 한반도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을 필두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강경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수시로 북한의 자존심을 긁는 무신경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북한의 '통미봉남'(미국과는 대화하고 남한과의 관계는 끊는다) 전략을 오히려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이다.

한편에서 핵 문제 해소를 위한 6자회담은 꾸준한 성과를 내는 듯한 반면 김정일 사망설 등으로 대표되듯이 북한의 급격한 체제변화 가능성과 장기간 지속되어온 식량난·경제난은 '제2차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미래전략가이자 북한전문가로 유명한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전 국회의원)가 <전쟁과 평화 -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을 내 주목된다. <사건의내막>은 책 내용의 골자를 뽑아 장성민 대표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장성택, 킹이냐 킹메이커냐?

장성택, 정치 좋아하지 않고 묶여있는 것 싫어하는
김정남 데리고 여행 가 "후계자 되어야 한다" 설득


▲ 김정일 이후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권력대행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장성택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     © 브레이크뉴스

장성민 대표는 "북한체제와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너무도 안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우리는 한 국가의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 지도자가 가진 리더십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사생활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만 집착함으로써 북한 현실에 대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과연 누가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 그리고 후계권을 놓고 북한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북한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여 핵 통제권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

핵무기가 밖으로 유출되거나 호전적인 군부집단에 유입되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 중국의 공동의 적이다. 그리고 북한의 정치권력은 지금 김정일의 건강악화 이후에 당에서 군부로 이미 넘어갔다.

평소 만성 폐질환과 당뇨합병증, 심장기능 이상을 앓아온 김정일은 2007년 4월 말 심혈관 확장수술 후 2주 정도의 회복기를 거쳐 활동을 재개했다가 2008년 다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김정일의 건강이 회복세라고 하지만, 이미 심장병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그에게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당뇨합병증으로 인하여 다음 번에는 또다시 어떤 병으로 쓰러지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일의 건강회복이 늦어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김정일 이후의 후계구도에 대한 것이다. 누가 과연 김정일의 권력을 승계할 것인가 하는 점 그리고 권력구조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도 논란거리이다.

당과 군의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김정일이 지명하는 인물에게 절대적 권력을 집중하는 또 다른 수령체제로 갈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한 명의 상징적인 지도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군과 당이 협력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인지가 상당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장 대표는 "이 모든 문제가 김정일의 건강 여하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김정일의 권력대행자는 누구?
 
김정일의 권력이양 과정도 완벽한 후계구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김정일의 의중을 전달하고 집행하는 '권력대행자'의 역할이 불가피하다. 현재 그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인물은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 장성민 대표의 지적.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인물도 아들들을 제외하면 김정일의 주치의와 김옥 과장 그리고 장성택 세 사람 정도이다. 김정일의 병실은 완벽하게 통제되어 장성택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한다.

장 대표는 이처럼 장성택이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김정일의 두 아들인 김정철 김정운의 어머니이자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고영희가 2004년 6월 세상을 떠남으로써 장성택에 도전할 수 있는 김정일의 최측근이 사라졌다는 점이고, 둘째 이유는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김정일의 형제뻘 되는 가장 가까운 피붙이는 여동생 김경희 경공업부장뿐인데, 장성택이 바로 김경희의 남편이란 점이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은 2003년 7월4일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 그 다음을 이을 사람은 장성택이 제일 가깝다. 장남 김정남과는 비교가 안 된다. 장성택이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있으면서 사방에 자신의 사람을 많이 받아놓았다"고 발언했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의 2003년 7월 발언 이후 장성택은 공식활동을 중단했고, 2004년에는 직무정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2004년 5월 고영희 사망을 계기로 복권 움직임을 시작해 2006년 정치무대에 복귀해 다시 2인자의 자리로 올라섰다.

장 대표는 장성택이 북한에서 최고 실세의 자리라 할 수 있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직을 거머쥐게 된 것은 단순히 그가 김일성의 사위이고 김정일의 매제였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을 최고지도자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처 김경희의 큰 역할이 컸다고 밝혔다.

김경희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김정일에게 감정적인 발언까지 숨기지 않고 할 수 있는 인물로, 김정일이 "경희의 말은 나의 말과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북한 내부에는 김정일의 후계자를 누구로 내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김정일의 참모들 사이에 김정남계와 김정철계 간의 파워게임이 아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 파워게임에서 장성택의 선택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에게 완전히 쏠려 있다.

장성택은 2008년 건강문제로 러시아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귀국길에 잠시 싱가포르에 들러 김정남과 만났고 두 사람은 곧장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상당히 장기간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를 했다.

김정남이 원래 정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디에 묶여있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런 김정남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니면서 김정남에게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설득시키고 돌아온 것이다.

장 대표는 "김정남과 장성택 이 두 사람은 김정일 이후 북한의 후계구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이라며, "장성택이 김정남의 '킹메이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킹'으로 등극할 것인지 문제는 더욱 흥미롭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장성택의 역할은 과거 김일성 밑에서 김정일을 옹립한 김영주의 역할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현재 북한 내각에는 많은 해외 사업체를 가지고 대북 지원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김정남과 함께 수행하면서 그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1981년 촬영된 김정일의 가족사진. 앞줄에 김정일과 아들 정남, 뒷줄 왼쪽부터 정남의 가정교사였던 성혜랑(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딸 이남옥, 맨 오른쪽이 피살된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본명 이일남) 등이 보인다.     © 브레이크뉴스
 
김정남은 누구인가
 
김정남, 서방사회 “타락한 지도자의 사생아” 평가받지만
김정일의 모든 비밀 알고 있는 최고 심복중의 심복 역할

 
장성민 대표는 "원래 김정일은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계자로 옹립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측근들의 요구로 할 수 없이 김정남의 후계작업 추진을 묵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일성은 자신의 나이 62세였던 1974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는데,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32세였다. 지금 김정일의 나이는 67세이고 김정남의 나이는 37세이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김정남은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후계수업을 철저하게 받아오지 않았고 김정일도 아버지인 김일성과 달리 아들의 후계작업에 몰입하지 않았다"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김정일이 과연 아들을 내세워 자신의 권력을 이양해 줄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김정남은 어려서 닫혀진 북한사회에서 성장하면서도 북한 이외의 지역에 또 다른 자본주의 남한 사회가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풍물을 보고 자랐고,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김정일이 김정남을 스위스로 유학 보낸 것은 자본주의의 질곡 속에서 고생하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키려면 교육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동생들도 김정남을 따라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남한과 서방사회는 김정일에 대해 타락한 지도자라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듯이 김정남에 대해서도 타락한 지도자의 사생아라는 식의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북한 내부의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정적들 때문에 해외를 전전긍긍하며 떠돌아다니는 국제낭인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정남의 역할들은 북한의 체제유지에 절대적 필수품인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업의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미사일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수금하여 북한으로 송금하고, 아버지의 건강문제를 책임지고 해외로 주치의를 찾아 나서는 등 이미 북한체제에 절대적인 기여자로 인정받고 있다.

김정남이 김정일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을 알고 있는 최고 심복중의 심복이라는 말로, 현재 중국과 서방권을 넘나들며 김정남이 보이는 여러 활동을 후계승계에 필요한 훈련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한국과 서방세계는 그의 손목에 감겨있는 하얀 롤렉스시계만 쳐다보지 말고 그가 북한체제 유지와 김정일의 건강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취재/김경탁 기자 / 119@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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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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