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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패륜지국? "아버지, 저부터 좀 삽시다"

경기불황 후폭풍 현대판 고려장 실태

이보배 기자 | 기사입력 2009/01/12 [18:29]
늙고 병든 부모를 낯선 곳에 버리거나 학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부모를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부터 11월까지 해당 기관에서 파악한 노인 유기 사례는 3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33건보다 늘었다. 또 노인 학대 상담 건수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이 기관에 접수된 학대 상담 사례는 3만1973건으로 2007년 2만7492건보다 3371건이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노인 유기·학대가 증가한 원인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을 꼽았다. 경제위기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짙은 그늘을 만들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경기불황으로 인해 2008년 여름 이후 노인 유기·학대 늘어나
노인들 장남 의존도 높지만 형편 어려운 장남 부모공양 포기


자식들에 의해 자행되는 노인 유기, 학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중앙노인전문기관이 노인학대 사례 1792건을 분석한 결과, 노인학대의 유형을 살펴보면 정서적 학대가 40.4%, 신체적 학대, 22.4% 방임 23.8% 순으로 나타났으며 성적학대도 12건 접수됐다.

가해자의 85.7%는 친족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아들에 의한 학대가 51.5%로 절반 이상을 자치했다. 이어 딸(12.1%)과 며느리(11.2%) 순으로 나타났으며, 손자녀에 의한 학대도 32건(1.8%)이나 접수됐다.

노인학대 행위자의 연령을 보면 40대가 31.3%, 50대가 27.5%, 30대가 13% 순으로 나타나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대의 가해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인해 노인 유기·학대가 늘어났다는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60세 이상의 가해자도 23%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 ‘노인대 노인’ 학대 유형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노인학대의 주요원인은 ‘분노·정서적 욕구불만 등 개인의 내적문제’가 33.8%로 가장 높았지만 ‘부모에 대한 부양 부담’이 20.8%, ‘경제적 의존성’이 12.5%로 뒤를 이어 경기불황 이후 증가한 노인학대의 이유를 증명했다. 한편 과거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이 원인이 된 사례도 2.1%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상담 전문가들은 최근 노인학대가 증가한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경제 여건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역별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상담사례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 한 노인보호전문기관의 관계자는 “지난 2008년 하반기 이후 자식들의 사업 실패나 실직이 학대와 유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학대에도 모두 “내탓이오”
 
경기도 인천에 살고 있는 장아무개(여·75) 할머니는 현재 막내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함께 살고 있다. 장 할머니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은 가족들과의 식사시간이다.

▲"우리 애는 잘못 없어"   경기불황으로 늙은 부모를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행여 자식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내가 길을 잃었어”, “넘어진거야”라며 자식을 두둔한다.    
온 가족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으면 다른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진다. 할머니에게만 개인용 물컵과 찌개를 먹기 위한 앞접시가 주어지는 것.

그리고 식사 도중 젓가락질이 힘들어 숟가락으로 반찬을 떠먹기라도 하면 며느리와 손주의 표정이 확 굳어져 눈치를 보게 된다.

장 할머니는 이런 자신의 처지가 수치스럽고 모욕스럽지만 나이가 들어 무능력해진 자신이 자식에게 얹혀살아 미안할 뿐이라고 전했다.
정서적 학대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경기지역에서 김아무개(여·90) 할머니가 버려진 채 발견됐다. 김 할머니는 2008년 초 함께 살던 큰 아들이 사업체 부도에 이어 중풍을 맞으면서 작은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형님이 있는데 내가 왜 모셔야 하느냐”며 압류 때문에 비어있는 큰형의 집 앞에 할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가버렸다.

압류를 당해 큰 아들은 이미 거처를 옮긴 뒤였고, 김 할머니는 90세의 노모를 홀로 버려둔 채 집으로 가버린 작은아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큰아들의 집을 서성거리다 주변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견된 김 할머니는 기관의 도움으로 요양기관에 입소했다.

수소문을 통해 연락이 닿은 큰아들은 중풍으로 쓰러져 있는 병상에서 “이런 불효가 없겠지만, 지금은 사정상 도저히 어머님을 모실 수 없다”며 울먹였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2008년 11월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홀로 서성이던 박아무개(여·83) 할머니가 발견된 것.

박 할머니는 “함께 외출했던 아들이 ‘여기 잠깐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보호시설에 입소한 박 할머니는 입소 이후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자궁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실직 이후 아내와 별거한 아들은 자취를 감춘 후 끝내 소식이 닿지 않았고, 어렵사리 전화 연결이 된 며느리는 “나 살 길 찾기도 어렵다”며 외면했다.
홀로 자궁암 투병 중인 박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아들은 아무 죄가 없다”면서 손자의 이름을 되뇌였다.

그런가 하면 자식의 학대에 직접 노인요양소를 찾아온 할머니도 있다. 2008년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지난해 12월4일 밤 9시, 오른쪽 눈에 멍 자국이 선명한 김아무개(여·83) 할머니가 겁에 질린 채 경기지역의 한 노인요양소를 찾아왔다. 김 할머니는 요양소에 들어와서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했다.

일단 할머니를 요양소에 모신 상담원들은 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김 할머니는 일용직 근로자인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며 최근 일감이 줄어들자 걸핏하면 술에 취해 어머니를 폭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할머니는 행여 아들이 경찰에 붙잡혀 갈까 봐 “문에 부딪혀 난 상처”라며 아들의 폭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학대나 유기를 당한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봐 “길을 잃었다”거나 “넘어졌다”고 둘러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유기 판정 절차가 까다로운데다, 자식을 보호하려는 노인들이 적지 않음을 감안하면 실제 유기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모 재산만 ‘쏙~’ 나몰라라
 
그런가 하면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경제적 능력은 물론 재산이 한푼도 남지 않은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17년 전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건물과 토지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집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아무개(여·72) 할머니는 최근 아들에게 물려줬던 건물과 토지를 다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재산 넘기니 구박덩어리"   일부 자식들은 부모를 종용해 미리 재산을 물려받은 후 돌변해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부양자체를 거부하는 등의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    
그동안 이씨의 남편이 장사를 하면서 생계비를 부담했지만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들은 어머니에게 생계비를 요구했고, 이 할머니가 이를 거절하자 신체적 학대는 물론 언어와 정서적 학대를 가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노인법률지원단의 한 변호사는 “많은 부모들이 재산증여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재산증여는 생전에 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재산증여는 자식 등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약을 소홀히 하기 쉽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에도 부담부 증여로 계약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담부 증여란, 상속을 대신해 생전에 증여를 하지만 증여받은 자식들이 배은행위를 했을 때에는 이를 취소할 여지를 남겨두는 증여계약 방식이다.

실제 법원에서는 부담부 증여를 바탕으로 이뤄진 재산증여와 관련,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려줬던 17억원대의 땅을 되찾아주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정아무개(70)가 아들(39)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소송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받았던 땅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6남매 중 차남으로 치과의사이던 아들이 효도를 약속하며 부모를 설득했고, 부모는 매달 생활비로 200만~3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땅을 증여했지만 아들이 땅을 받은 이후 약속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던 것.

변호사들은 “증여도 계약의 한 유형이므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면으로 확인서를 남길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췌장암 말기판정 받은 60대 입원 앞두고 90대 아버지 ‘살해’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들 우울증·자살…또 다른 문제 ‘양산’


입원 앞둔 아들 아버지 살해
 
노인을 학대하거나 유기한 자식은 그나마 양반이다.

최근 경북 포항에서는 입원을 앞둔 60대가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더 이상 부양하기 힘들다며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살을 기도해 충격을 줬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지난 1월5일 신병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게 돼 부양이 힘들어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김아무개(64)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석 달 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씨는 입원을 결심하고 지난 1월3일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93)와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김씨는 자신도 집안 천장에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부친을 숨지게 한 뒤 자신의 아들에게 연락했고, 아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된 것.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아버지가 ‘아픈 놈이 무슨 술을 쳐 먹느냐. 네가 입원하면 내가 어떻게 밥을 해 먹느냐. 나를 죽이고 가라’며 멱살을 잡는 바람에 감정이 격해졌다”고 말했다.

또 “솔직히 이대로 가면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를 정도였는데 아버지를 따라 죽지 못한 것이 더 큰 불효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20여 년 전 이혼한 김씨는 이후 재혼하지 않고 어업에 종사하면서 아들, 아버지와 함께 3대가 별 문제없이 지내왔다”면서 “사건 당일 양쪽이 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감정이 격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정은 딱하지만 아버지를 살해한 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2008년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전북 무주에서 의붓아버지를 상습 폭행한 혐의로 박아무개(44)가 구속됐다.

박씨는 청각·언어장애 등 종합장애 1급인 의붓아버지(78)를 마구 폭행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1995년부터 최근까지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박씨는 술에 취해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붓아버지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학대…우울증·자살 양산
 
▲"도와주세요"   서울특별시노인보호전문기관 사이버 상담실에 올라온 노인학대 상담요청 글.     © 브레이크뉴스
노인 학대나 유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또 있다. 학대를 겪은 노인들은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실제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 또한 꾸준이 늘고 있다.

지난 1월4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아이무개(70) 할아버지를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이 할아버지는 같은 날 종로2가 인근 슈퍼마켓에서 빵과 우유, 생필품 등 2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또 2008년 12월8일에는 종로구 연근동 일대에서 공중전화부스를 돌며 동전을 꺼낸 김아무개(62)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김씨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공중전화기 안을 건드려 한 번에 꺼낼 수 있는 동전은 평균 300원. 20차례에 걸쳐 공중전화기를 턴 금액은 고작 2400원에 불과했다.

경찰조사에서 이 할아버지와 김씨는 모두 “배가 고파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그랬다”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복지센터 관계자는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고 어렵게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아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된다”면서 “자식들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노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경정신과 한 전문의는 “최근 늘고 있는 노인학대의 증가는 노인들의 자존감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응급실 손상환자 표본심층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1996년 28.6명에서 2006년 72.1명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또 최근 발표된 ‘건강보험 우울증 환자수 및 진료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우울증 환자가 32.9% 증가했으며, 특히 연령대별 증가율은 70대 이상의 우울증 환자 증가율이 약 78%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노인들이 심리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은 다양하고 심각한 상황이며, 특히 우울증을 비롯해 노인학대로 인한 육체·심리적 파괴는 노인들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해 자살로 이어지게 하기도 한다”면서 “때문에 무엇보다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심리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인이 주위에 있을 경우 가족을 비롯한 이웃, 사회단체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재 / 이보배 기자   bobae383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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