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집 떠난 제비가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제비에 대한 애정이 깊다”

권오인 수필가 | 기사입력 2021/03/03 [09:07]

▲ 권오인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벌써 13년째 집 떠난 제비가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 오늘 금방이라도 턱시도를 입은 제비는 안마당 빨랫줄에 앉아 지지배배 귀국신고를 할 것만 같다. 그 날씬한 자태와 긍정과 열정의 눈매 그리고 소프라노 음역대로 노래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오랫동안 대를 이어 오던 제비는 마루 위에 알뜰하게 집을 짓고 새끼도 몇 마리씩 낳아 예쁘게 키워서 가을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남쪽나라로 떠나곤 했었는데 절손이 됐는지 영 오질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림자는커녕 헛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던 해, 제비부부는 들고양이의 위협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에는 새끼를 잃은 슬픔에 피를 토하듯 몇 날을 울부짖었다. 인기척이 없거나 어둠이 내리면 검은 들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에 올라 제비둥지를 향해 펄쩍펄쩍 뛰면서 호시탐탐 제비새끼를 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제법 많이 자란 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먼저 차지하려고 둥지 앞섶에 나와 까치발로 서서 몸싸움을 벌이다 한 마리가 마루에 떨어지자 들고양이는 냉큼 물고 줄 행낭을 쳤다. 그 현장을 목도한 어미제비는 먹이 사냥을 포기한 채 빨랫줄에 앉아 한참을 비통한 마음으로 재잘거렸다. 추락 사고가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들은 날갯짓을 시작하더니 온다간다 말도 없이 일찌감치 훌쩍 떠났다. 이후 지금까지 지휘자 복장을 한 제비의 발걸음은 끊기고 때가 되면 제비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 그때 평화를 깬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과 새끼를 잃은 트라우마가 진저리쳐지나 보다. 그렇게 예단하면서도 해마다 봄이 되면 혹여 조상이 남긴 지도 한 장 입에 물고 후손이 찾아올까 집을 비울수가 없다. 아마도 이산가족 찾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지난해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그곳의 텃새인 제비 무리가 살고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나 다낭을 둘러보았지만 깃털조차 보지 못한 서운함에 캄보디아 여행할 때 메콩강 상류에서 조그마한 배를 타고 베트남 호치민시 쪽으로 황토 물결 따라 내려갔다. 통통배는 강줄기를 따라 한참을 가다 속도를 줄이며 가이드의 손가락은 톤레사프(Tonlé Sap) 호수 부근에 수상가옥을 짓고 모여 살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선상난민)들의 거주 지역을 가르쳤다. 그들은 월남이 월맹에 패망한 후 공산주의 치하가 되자 핍박을 피해 배를 타고 피신해 태평양을 떠돌다가 남의 나라 캄보디아 바다위에서 처참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삶의 현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이방인은 몹시 안타깝고 슬펐다. 그곳에서 조금 더 하류지역으로 가는 중간쯤 강물에 잠긴 나뭇가지에 엄청난 무리의 제비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너무나 반가워 ‘제비다’ 소리를 질렀다. 물위에 나르는 곤충을 잡아 에너지를 충전하고 메콩강 줄기를 날아다니며 근육을 키운 다음 한국으로 돌아갈 태세다. 혹시 우리 집에 다니던 후손이 있나 싶어 눈여겨봐도 감별할 수가 없었다. 큰 소리를 내어 태국어로 ‘싸왓디 크랍! 이라 인사해도 대답이 없고 베트남 국적 새인가 싶어 ’신짜오‘해도 여전히 대꾸는 없었다.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똑 같은 관광객인 줄로 오해를 하고 있는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의 카르텔 모습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어느새 멀어져 가는 아쉬운 이별의 마음은 길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제는 제비가 올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 곧 바로 마루를 벗어난 안전한 서까래 밑에 제비 똥 받지를 만들어 놓고 양지바른 마당가 언덕에 제비가 좋아 할 것만 같은 제비꽃도 심었다. 강남에서 돌아왔을 때 아름다운 제비꽃이 피어 있다면 제비는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이곳저곳 이식했다. 제비꽃도 제비꽃다워야 아름답기에 변종 없이 귀엽게 꽃을 피워주기를 바랬다. 나도 좋아하지만 프랑스 나폴레옹도 그 아내인 조세핀과 함께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젊을 때에는 ‘제비꽃 소대장’으로 불릴 만큼 좋아해 동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엘바 섬에 유배되었을 때에도 “제비꽃이 필 무렵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무튼 예쁘게 제비꽃이 필 무렵 연미복(燕尾服)을 입고 돌아온 제비 한 쌍이 빨랫줄에 정답게 앉아 지지배배 노래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하지만 이루어지기 힘든 막연한 기다림이라는 사실도 안다. 왜냐면 언제부터 제비의 개체 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어디서도 보기조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환경변화를 꼽을 수 있다. 제비의 보금자리를 만들 추녀가 있는 집들이 아파트로 대체되고 먹이가 될 잠자리, 나비 등 곤충은 농경지에 살포되는 농약으로 먹이사슬이 끊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온난화로 한 여름의 더위는 강남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여름철새의 피서지로 적절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물론 땀샘이 없어 폭염에도 땀은 나지 않지만 먹이 사냥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제비에 대한 애정이 깊다. 아무래도 겨울철새인 기러기나 가창오리는 무리를 지어 들판에서 먹이를 찾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 심하기 때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없어 친숙함이 덜하지만 여름철새인 제비는 텃새인 참새, 까치와 더불어 사람의 옆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친밀하다. 더욱이 고전의 중심에 있는 제비는 권선징악과 빈부갈등을 그려낸 흥부전에서 모두의 가슴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정성껏 치료해준 마음씨 착한 흥부에게 그 은혜로 선물한 박씨를 심어 금은보화로 부자가 되고 놀부는 제비의 생 다리를 부러트리며 악행을 저지르고 받은 박씨를 심어 도깨비가 나타나 풍지 박산이 났다. 이후 잘못을 뉘우친 놀부와 흥부는 의좋은 형제로 가족의 우애를 강조하였다. 제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람들과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하고 희생정신이 강한 조류로 표현되고 있다. 오스카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제비 역시 착하고 친숙한 모습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왕자를 돕느라 결국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추위에 죽음을 맞는 모습은 감동이다. 나중에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새드 엔딩이다.

 

그럼에도 제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나 수식어도 존재한다. 말쑥한 신사에게 제비라는 호칭은 주로 유부녀를 유혹하여 불행한 결과를 낳게 하는 남자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며 춤 선생이라는 제비족도 제비를 빗댄 은어이다. 꽃제비는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북한의 어린아이들을 이르기도 한다. 이들은 늘 자유를 갈망한다.

 

그런가하면 제비도 곳곳에서 수난을 당한다. 도둑고양이에게 자식을 잃은 아픔이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깔끔쟁이 아줌마는 새끼의 배설물이 더럽다고 둥지를 부서 부리기도 하고 마을 텃새인 맹금류 중급 황조롱이는 제공권을 장악하여 강남 제비를 위협한다. 중국의 연해지역을 비롯한 태국 등지에서는 제비가 사는 집으로 요리하는 제비집(nid d’hirondelle) 옌워(燕窩연와)가 일급 요리로 통하자 이들 집을 불법 강탈하는 인간들 때문에 많은 희생을 당한다. 금사연(金絲燕)이라 불리는 바다제비가 분비한 타액과 깃털 등으로 만든 제비집 요리인 옌워는 명나라 때부터 먹기 시작한 전통식품이다. 연해안의 바다제비가 해초의 젤라틴 물질을 삼킨 후 침을 섞어 만든 둥지를 말린 조각이다. 희끄무레하고 기공이 있는 이 물질은 물에 불려서 중국 전통 수프를 만드는 데 사용하며, 끈적끈적한 농도와 특유의 향을 내준다. 옌워는 단백질, 아미노산 등이 풍부하여 신체의 기운을 왕성하게 북돋는 고급 건강보조식품으로 인기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연회니 연회석’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 제비집 요리인 옌워(燕窩)가 나와야 큰 행사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여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옌워 요리는 관심이 없다. 매무새 나는 턱시도를 입지 않아도 좋다. 또한 금은보화의 박씨도 거부한다. 다만 내년 삼짇날 제비꽃이 피면 환한 웃음으로 돌아와 지지배배 노래하면 나는 춤이라도 출 것이다. 그때를 위해 천적들이 얼씬 못할 명당을 처마 밑에 이미 잡아 놓았으니 그곳에서 금슬 좋은 부부애로 암수 구별 말고 자손 낳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그립다.

 

지금, 그날이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The swallow who has left the house for 13 years is waiting to see it!

“People in our country have a deep affection for swallows emotionally”

-Kwon Oh-in, essayist

   

The swallow, who has already left the house for 13 years, is waiting to see him. Even today, the swallow wearing a tuxedo seems to be sitting on the clothesline in her courtyard and reporting her return home. She wants to see her slim figure, eyes of positivity and passion, and singing in the soprano range. She built a house on the floor of the long-established swallow, gave birth to a few babies, raised them beautifully, and promised to come back in the fall. She used to leave for the southern country, but she does not come to see if she has become desperate. She can't even hear the sound of coughing, let alone the shadows, without fail this year.

 

The last year they left her home, the swallows spent days anxious at the threat of her wild cat, and eventually cried out for several days as if they were vomiting blood in the grief of the loss of her baby. When there was no popularity or the darkness fell, a black wild sheep climbed to the floor and jumped towards the swallow's nest, aiming at the Hositamtam swallow. Then one day, the young, who grew up quite a bit, came out to the front of the nest to take the food the mother asked for first, and stood with their claws to fight. When one fell to the floor, the cat was biting cold and struck a bag. After witnessing the scene, the mother swallow gave up hunting for her food and sat on her clothesline and chattered with bitterness for a long time. Not long after the crash, the cubs started flapping their wings and left without saying anything. Since then, the swallow's footsteps in the conductor's costume have ceased, and when the time comes, the longing for the swallow only grows. At that time, the fear of the cat who broke the peace and the trauma of the loss of the baby seem to be fed up. Even though it is so predictable, I can't leave the house every spring, in case my ancestors leave a map in my mouth and descendants will visit. Perhaps you should find separated family members.

 

So, when I went on a trip to Southeast Asia in the early spring, when the cold didn't go away last year, I wanted to go to a place where a swarm of swallows, which is a family bird, live. I toured Halong Bay or Da Nang in Vietnam, but when I traveled to Cambodia in the sadness of not even seeing the feathers, I took a small boat from the upper Mekong River to Ho Chi Minh City, Vietnam, along the loess wave. The tongtong boat traveled for a long time along the river, slowing down, and the guide's finger taught the residential area of ​​Vietnamese boat people (ship refugees) who built floating houses near Lake Tonle Sap and lived together. They flee the persecution and flee to the Pacific Ocean after the defeat of Vietnam by the Viet Nam and become communist. They are living a terrible refugee life on the seas of Cambodia, a foreign country. The stranger who looked closely at the scene of his life was very sad and sad. From there, about halfway to the downstream area, a huge group of swallows on the branches submerged in the river was spectacular. I was so glad I cried out, ‘Swallow’. It is poised to recharge its energy by catching insects flying on the water, build muscles by flying around the Mekong River, and then return to Korea. I couldn't discriminate even if I looked at it because I was wondering if there were any descendants from my house. Aloud, in Thai, ‘Sawatdi Krab! There was no answer even if I said hello, and there was still no response to “Shin Chao” because I wanted to be a bird of Vietnamese nationality. It looked like a silent cartel without even making a mistake as to whether it was the same tourist who interfered with the break. The feeling of a regretful breakup was long as the goodness was getting farther away for a while.

 

As soon as I got home, I had a good feeling that swallows are coming. Soon after, I made a swallow dung box under the safe rafters off the floor and planted violets that the swallows would like on the sunny courtyard hill. When I came back from Gangnam, I imagined how happy the swallow would be if beautiful violets were blooming, and transplanted them here and there with excitement. Violets are also beautiful when they look like violets, so I wanted them to bloom cutely without strain. I like it, but Napoleon of France, along with his wife Josephine, said that he loved violets very much. When I was young, I liked it enough to be called "Violet Platoon Leader" and used it as a sign to confirm comrades. He also said that when he was exiled on Elba Island, he said, "I will go back when the violets bloom."

 

Anyway, I would like to see a pair of swallows who returned wearing a tailcoat when the violets bloom beautifully, sitting on a clothesline and singing a song. However, I also know that it is a vague wait that is difficult to achieve. This is because from some point the number of swallows began to decrease gradually, and now it is difficult to even see them anywhere. Of course, the reason is environmental change. This is because the houses with ugly girls who make the swallow's nest are replaced by apartments, and insects such as dragonflies and butterflies, which will be used as food, are cut off by pesticides sprayed on agricultural land. One of the reasons is that the heat in the summer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at of Gangnam due to the warming of Korea, so it is not suitable as a summer resort for migratory birds. Of course, there are no sweat glands, so you don't sweat in the heat, but there seems to be a limit to hunting for food.

 Nevertheless, Koreans have a deep affection for swallows emotionally. Winter migratory geese and stargazers are less familiar because they find food in the field and are very wary of people, so summer migratory swallows are less familiar with humans along with sparrows and magpies. It is intimate to live. Moreover, the swallow at the center of the classic was engraved on everyone's hearts in Heungbujeon, which portrayed the conflict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He planted Mr. Park, who was gifted with grace to the good-hearted Heungbu who healed the broken swallow's leg, and became rich with gold and silver treasures, and Nolbu broke the swallow's raw leg and planted the received Park seed after committing evil deeds. . After that, Nolbu and Heungbu, who repented of their mistakes, emphasized the friendship of the family as righteous brothers. Swallows have a familiar image with people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Europe, and are expressed as a tide with a strong spirit of sacrifice. The swallow in Oscar Wilde's fairy tale ‘The Happy Prince’ is also kind and familiar. It is impressive to see him die in the cold after not going to his hometown while helping the prince who freely sacrifices himself for the poor. Later, you will live a new life in heaven, but in reality it is a sad ending.

 

Nevertheless, there are also negative images or modifiers for swallows. To a neat gentleman, the name swallow is a common term for a man who lures a married woman and leads to unfortunate results, and the swallow family, a dance teacher, is also a sweet word for swallowing swallows. Kkotjebi also refer to North Korean children wandering in search of food. They always crave freedom.

 

On the other hand, swallows are also suffered everywhere. The pain of losing a child to a thief cat will not be the only thing at home. A neat lady breaks her nest because her baby's excrement is dirty, and the village bird, a raptor, intermediate Hwang Jorong, takes over the air and threatens the Gangnam swallow. In the coastal areas of China and other places such as Thailand, the nid d'hirondelle (燕窩yeonwa), which is cooked in the house where swallows live, became a first-class cuisine, and many victims were sacrificed by humans who illegally rob these houses. Yanwo, a bird's nest dish made from saliva and feathers secreted by sea swallows called Geumsayeon (金絲燕), is a traditional food that has been eaten since the Ming Dynasty. It is a piece of dried nest made by mixing saliva after swallowing seaweed's gelatinous material. This whitish, porous substance is soaked in water and used to make traditional Chinese soups, giving off a sticky consistency and characteristic aroma. Yanwoo is known to be popular as a high-quality health supplement that energizes the body with its rich protein and amino acids.

 

The term “banquet-ni banquet seats”, which is commonly used in China, is also a word that was coined by saying that when a large event was held in China, Yanwu, a bird's nest dish, had to come out to be recognized as a large event.

 

Above all, I am not interested in Yanwu cuisine. You don't need to wear a slick tuxedo. He also rejects Mr. Park, who is a treasure trove of gold and silver. However, if violets bloom on the third day of next year, I will come back with a bright smile and sing a song to the supporter, and I will even dance. For that time, the natural enemies had already caught a famous temple under the eaves, so I miss the appearance of living happily by giving birth to offspring, rather than distinguishing between males and females due to good marital love there.

   

Now, that day is more desperate than waiting to win the l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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