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서울'을 성공시킨 편집영웅 ‘선데이서울 김병규 부장님’

[한 언론인을 추모하는 글]“‘선데이서울 김병규 부장님’을 추모합니다”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1/02/28 [09:55]

생전, ‘선데이서울’ 김병규 부장의 모습.  <Photo Description> Kim Byeong-gyu, director of “Sunday Seoul,” in his lifetime.   ©브레이크뉴스

 

필자는 ‘선데이 서울(1968-1991)’의 덕을 많이 본 작가입니다. '선데이서울'(Sunday Seoul)은 일간신문인 서울신문사가 발행했던 간행물이었습니다. 황색(옐로우 성향) 주간 잡지였습니다. 수영복을 입은 배우 탤런트 가수 등 여성 스타들이 표지모델로 나와 인기가 대단했던 주간잡지였습니다.

 

필자는 1979년 무렵부터 선데이 서울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당시 서울신문 출판국장은 신우식 씨(전 서울신문 사장)였습니다. '선데이서울'은 서울신문 출판국 소관이었는데, 김병규 부장(1936-2012)이 ‘'선데이서울'’의 편집 데스크(전 선데이서울 부장) 였습니다.(필자는 그분을 지금까지 그렇게 부릅니다. 호칭에 대해 양해 바랍니다.) 전남여수 출신인 김병규 부장은 경기중-여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눈이 다른 이들에게 비해 아주 커 보였습니다. 줄담배를 피웠습니다.

 

김병규 부장이 필자에게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할애해줬습니다. 연재기회를 준 것입니다. 은인이었습니다. '선데이서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문운(文運)이 열렸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사회가 뒤숭숭할 때였습니다. 필자는 그 당시 ''선데이서울''에 ‘인간시장’이란 제목의 글을 연재를 하게 됐습니다. 김병규 부장은 나의 연재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문 작가 연재물 때문에 독자가 늘었다”며, 자주 막걸리를 사주기도 했습니다. 이 연재물을 모아 ‘이색지대’란 책을 만들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이 집을 한 채 장만할 수 있을 정도의 인세가 들어왔습니다.

 

'선데이서울'의 취재 지시와 편집은 김병규 부장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판매부수 1위를 차지했는데, 매주 5만여 부가 팔리는, 그래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황색잡지라는 것 때문에 일부로부터 백안시당하기도 했습니다. 후일 굿데이 전무-편집국장(현 인터뷰365 발행인)을 지낸 김두호 '선데이서울' 차장, 서울신문 정치부장-총리실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성 '선데이서울' 기자 등이 당시 이름을 날렸던 기자였습니다.

 

김병규 부장은 주간지의 영웅이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푸대접을 당한 지역인 호남출신이어서 그런지, 그 수재가 서울신문 본지에서 일하지 못하고 '선데이서울'에만 근무했습니다. 사내에서조차 냉대(?) 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선데이서울'을 아시아지역의 명품 주간지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지난 2월26일 저녁 서울 인사동에서 당시 '선데이서울' 필자였던 이상헌 작가님과 김병규 부장의 둘째따님인 김결이 씨를 만나 김병규 부장 재세 시의 대화로 이야기꽃을 이어갔습니다. '선데이서울' 하면 ‘김병규 부장’이었습니다. 선데이서울 김병규 부장님은 한 시대가 가더라도 그 이름은 영원히 남을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주간잡지계의 영웅이었던 김병규 부장님-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그 분은 한국 주간신문 역사의 전설적인 영웅이었습니다.

 

아래는 고 김병규 부장이 지난 2009년 3월21일 쓴 “기자촌 포기”라는 글의 전문입니다.

 

▲고 김병규, 전 선데이서울 부장.  ©브레이크뉴스

*기자촌 포기

글/김병규(전 서울신문 선데이서울 부장)

 

“동사무소 가서 호적등본에 인감증명도 뗐다. 

기자촌 기부채납 보상금 때문이었다. 

 

호적등본에 기자촌 주소로부터 분당까지 

많이도 이사를 했다. 

 

기자촌에서 방배동, 방배동에서 은마 아파트,

도곡 삼호아파트, 대치동 청실아파트, 그리고는 

동아빌라, 여기 분당까지. 

 

마치 내 이력서를 보는 것 같다.

김병규란 인생의 흥망성쇠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기자촌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집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놀이 그리도 좋았다. 

어느 화가가 그런 물감을 써서 놀을 그리겠는가.

그나마도 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다. 

 

날씨 좋은 날엔 멀리 강화도의 이어진 산들이

꿈처럼 가뭇가뭇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유리가 

하루는 가방을 동댕이치면서 화를 냈다. 

“우리 이사 가요! 이 언덕 가팔라서 

도저히 학교 못 다니겠어요."

 

우리 집은 기자촌 언덕배기 

거기서도 맨 꼭대기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버스 종점에서 올라오자면 

등산하는 기분이었으니까. 

 

거기서 몸을 일으켜 용은 승천을 못하고

울분을 씹었지만, 

등본 굽이굽이에 추억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보상금은 안 받기로 했다. 

이 일을 맡은 총무에게도 연락을 했다. 

“아니, 다른 사람 다 받는데 안 받으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내가 받을 돈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까지 동네 지켜온 이들에게 3분의 1,

은평구청에 3분의 1, 가난한 이에게 쓰라고 헌납,

나머지 3분의 1은 

기자촌 떠난 사람들 몫으로 하면 좋겠다. 

 

어떻든 그 돈 받아 부자 될 것 아니고 

그것 없다고 밥 굶을 것도 아니니

나는 빠지고 싶었다. 

그래서 털털 털어버렸다. 

 

홀가분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서운함은 

웬일인가!”

 

사진은 필자(오른쪽), 김병규 부장의 둘째딸 김결이씨(중앙), 이상헌 작가(왼쪽). The last picture is the author (right), Kim Gyeol-i (center), the second daughter of Director Kim Byeong-gyu (center), and Lee Sang-heon (left).   ©브레이크뉴스

 

“Sunday Seoul Director Kim Byeong-gyu”, the editorial hero who succeeded in “Sunday Seoul”

[Written in commemoration of a journalist] “In memory of “Sunday Seoul Manager Kim Byeong-gyu””

-Ilseok Moon Publisher

 

I am a writer who has benefited from'Sunday Seoul (1968-1991)' a lot. 'Sunday Seoul' was a publication published by the daily newspaper Seoul Shinmun. It was a yellow (yellowish) weekly magazine. It was a weekly magazine that was very popular with female stars such as actors, talents and singers in swimsuits as cover models.

 

I have been in contact with Sunday Seoul since around 1979. At the time, the head of the publishing bureau of the Seoul Newspaper was Shin Woo-sik (former president of the Seoul Newspaper). 'Sunday Seoul' was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Seoul Newspaper Publishing Bureau, and Director Kim Byeong-gyu (1936-2012) was the editorial desk of ``Sunday Seoul.'' (I call him that way. Please understand the title.) From Yeosu, Jeollanam-do. Director Kim Byeong-gyu was a graduate of Gyeonggi-Yeosu High School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Law School. His eyes looked very big compared to others. He smoked a rope cigarette.

 

Director Kim Byeong-gyu devoted the paper to'Sunday Seoul' to me. It gave me an opportunity to write a series. He was a benefactor. Since I started writing on'Sunday Seoul', my moon luck (文運) opened up.

 

It was a time when the 5.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took place in 1980, and society was tumultuous. At that time, I wrote a series of articles titled'Human Market' in'Sunday Seoul'. Director Kim Byeong-gyu praised my series, saying, “Because of the series of writers, the number of readers has increased,” he often bought makgeolli. He collected this series and made a book called “The Unique Zone,” which became a bestseller. The salary has been paid enough to allow a villager who came up from the countryside to buy a house.

 

'Sunday Seoul' was directed and edited by Director Kim Byeong-gyu. It ranked first in the number of sales units, and about 50,000 copies were sold every week, so it had a great influence. Just because it is a yellow magazine, some people have been dismissed. Reporters such as Doo-Ho Kim'Sunday Seoul', who later served as Goodday Executive Vice President and Editor-in-Chief (currently the publisher of Interview 365), and reporter Kim Jae-sung'Sunday Seoul', who served as the Prime Minister's office, were the reporters.

 

Director Kim Byeong-gyu was the hero of the weekly magazine. Perhaps it was because he was from Honam, an area that was treated with great hospitality by the Park Jung-hee and Chun Doo-hwan regimes. He was a place where he was treated coldly even in the company. However, he made a name for himself as the protagonist who has grown'Sunday Seoul' into a luxury weekly magazine in Asia.

 

On the evening of the 26th, in Insa-dong, Seoul, I met writer Lee Sang-heon, who was the writer of'Sunday Seoul' at the time, and Kim Gyeol-i, the second daughter of manager Kim Byeong-gyu, and continued the story through dialogue between manager Kim Byeong-gyu and Jae-se-si. When it comes to'Sunday Seoul', it was'Kim Byeong-gyu'. Sunday Seoul Director Kim Byeong-gyu was a journalist in South Korea whose name will remain forever even as the times pass. In memory of his deceased, Director Kim Byung-gyu, who was the hero of the Korean weekly magazine world.  He was a legendary hero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Weekly Newspaper.

 

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post, “Abandoning Reporter Village,” written on March 21, 2009, by the late manager Byeong-gyu Kim.

 

Giving up the Giza village

Written by/Byeong-gyu Kim (Former Director of the Seoul Newspaper Sunday Seoul)

 

“I went to the town office and removed the seal certificate on the copy of my family register.

It was because of the compensation for donations to the Giza village.

From the address of the Giza village to Bundang on a copy of the family register

I moved a lot.

Bangbae-dong in Giza Village, Eunma Apartment in Bangbae-dong,

Dogok Samho Apartment, Daechi-dong Cheongsil Apartment, and then

Dong-A Villa, from here to Bundang.

It's like looking at my resume.

Kim Byung-gyu seems to see the rise and fall of his life.

I had no intention of leaving Giza Village.

It was also nice to watch the sunset at home.

Which painter would use such paints to paint the game?

At least, there is no one picture that is the same.

On a nice day, the mountains of Ganghwa Island in the distance

Like a dream, it casts a lot of shadows.

But Yuri, who entered junior high school

One day, I got angry when I threw my bag around.

“We are moving! Because this hill is steep

I can't go to school."

My house is on the hillside of Giza Village

It was also at the top there

It was worth it.

Coming up from the bus terminal

It was like climbing.

There he rises up and the dragon cannot ascend

I chewed my resentment,

Memories lurk in the twist of the copy.

However, he decided not to receive compensation.

He also contacted the secretary who was in charge of this.

“No, everyone else receives it, but if they don’t,

Wouldn’t it be sad?”

“I don't think it's the money I'm going to get. ”

My thoughts are like this.

One-third of those who have kept the neighborhood up to now,

Dedicated a third to Eunpyeong-gu Office to write to the poor,

The other third is

It would be good to do it for those who left the Giza village.

I won’t get rich anyway

I don’t mean to starve without it

I wanted to fall out.

So I brushed it off.

It’s easy, but the sadness in one corner of my heart

For some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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