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길’ 신상철 대표 “천안함 사건, 10년 진실투쟁”

[단독 인터뷰]종북 빨갱이 콤플렉스 극복해야 남북평화 시대도래...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0/10/26 [16:28]

지난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일명 ‘천안함 사건’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평상시도 북한의 폭침이면 문제지만 전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미합동대잠훈련기간에 북한 잠수함이 쥐도 새도 모르게 침투하여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흔적도 없이 월북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군 당국에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누구한 사람 책임진 사람이 없다. 

 

신상철 전 위원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남북대화, 남북경협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고 강조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민주당 추천)은 2010년 5월 국방장관을 비롯한 3인의 군 장성들의 고소고발로 시작된 천안함 재판이 2016년 1월 25일 34개 기소항목 가운데 32항목은 무죄(무죄율 94%), 2개 항목 즉, ‘고의 구조 지연’과 ‘고의 증거 인멸’을 주장한 두 건의 ‘게시 글’에 대해 비방목적이 인정된다며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2심 재판에서 신상철 전 위원이 10년째 진실투쟁을 해온 결과 지난 6일 2심 선고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학문의 자유’와 ‘중요한 공익적 관심사’라는 이유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은 북한의 소행으로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 추천한 신상철 위원은 지난 10년간 외롭게 고군분투하며 법정 투쟁을 해올 때(신 위원은 ‘맨땅에 헤딩’으로 표현)종북 좌파 용공 빨갱이 온갖 수모를 당했다고 했다. 정말 억울한 부분은 정부의 발표가 진실이면서 그러한 수모를 당했다면 덜이나 억울한데 과학적 근거에 의하면 삼척동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작’이었다고 하소연했다. 

 

기자는 지난 2013년 ‘부러진 화살’을 감독한 정지영 감독이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 백승우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를 청계광장 시사회에 참여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당국에선 그 어느 영화관에서도 상영을 할 수 없도록 온갖 방해와 압박을 가해와 제작사측에서는 하는 수없이 이 날 비가 오는데도 청계광장에서 무료 공개 시사회를 강행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관객들이 정부의 발표대로 천안함의 폭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발표하는 내용마다 폭소를 자아냈다. 한마디로 정부발표대로라면 ‘조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브레이크뉴스는 10년동안 진실투쟁을 외롭게 해온 신상철 전 위원으로부터 ‘천안함 사건’ 실체파악을 위해 23일 오전, 120분간에 걸쳐 ‘진실의길’(영등포구 여의도 소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천안함 사건의 진실투쟁으로 10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감회는?

 

▶ 10년의 한을 풀어내듯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첫 말문을 열었다. 신 대표는 자신을 해군장교 출신으로 수송함(LSM)을 진두지휘한 항해사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5개 도서를 지키는 항해사 출신으로 상륙함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륙함은 땅바닥을 짓누르고 접안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천안함 사건은 구두 뒤축과 같은 것이다. 해군 제대 후 한진해운에서 13척의 배를 건조하는데 감독을 했다. 해군과 민간영역에서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라고 감히 자부한다. 천안함 파괴 중심부분인 CPO(Chief Privacy Officer)실에서 최고 베테랑인 원사, 상사 생존자들의 증언은 ‘폭발이 아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선박과 선박이 부딛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좌초가 아니고 폭발로 몰아갔다. 폭발이라면 화학적 변화기 일어나야 한다. 산화과정에서 화염, 시커먼 그을음, 폭발 흔적이 증거로 남아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어디에도 그러한 흔적은 없다. TNT350Kg이 폭발하면 인체 의 장파열 같은 손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사망자 전원의 사망원인은 폭발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익사’였다. 

 

항소심에서 이들의 진술서 원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방부에서 이들의 증언을 무시했다. 조사위원으로 이의제기를 했다.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합조단장, 조사단장 등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10년 동안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신 위원은 "(천안함이)폭발이라면 화학적 변화기 일어나야 한다. 산화과정에서 화염, 시커먼 그을음, 폭발 흔적이 증거로 남아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어디에도 그러한 흔적은 없다. TNT350Kg이 폭발하면 인체 의 장파열 같은 손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사망자 전원의 사망원인은 폭발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익사’였다. "고 밝혔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국민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

 

▶ 천안함 사건은 1심부터 중요사건으로 분류되어 처음부터 단독이 아닌 합의부에서 맡았다. 준비기간만 10개월이 걸렸다. 사실, 허위,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선 증인요청이 1심에서 무려 70명이 선정되고 1심이 5년 가까이 걸렸다. 거기에 제가 2013년 대장암에 걸려 1년 정도 항암치료를 했다. 법적으로 명예훼손사건이지만 저의 유무죄도 중요하지만 ‘진실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심 선고에서 34가지 중 32가지는 무죄를 선고했다. 2가지 중 검찰은 3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 10년 동안 투쟁해 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 이 사건의 권한을 갖고 있는 관료들, 과학자들, 언론들,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침묵하는 것이 아쉬웠다. 항소심 3번 교체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의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둔갑하고 ‘종북, 빨갱이 사건으로 등치되어 종북몰이에 모두가 용기가 없었다. 

 

항소심은 이해당사자들한테 골고루 떡을 나눠주는 결과였다. 북한 소행,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정부 발표를 유지했다. 어뢰 흡착물, 휘어진 프로펠러 진위는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지난 두해(2010.3, 2015.1)동안 진실규명을 위해 4번 요구를 했으나 묵살되었다. 바램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해서 재조사의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 당시 MB정부는 초기에 북한 관련성을 부인했다. 미 국무성 대변인 크롤리 발표 또한 한국정부와 같았다. BH도 ‘북한 개입 증거가 없다.’며, MB도 인정했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도 국회 정보위에 참석해서 북한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런데 왜 북한 폭침으로 둔갑했는가?

 

▶ 1차적으로 미국의 공식 천안함 논평은 북한 소행을 동의하지 않았다. 천안함이 기동력이 상실되면 그 자체가 쟁애물이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해저부분은 거대한 암반이 있는 곳이 아니라 모래, 조개 등이 있는 지역으로 천안함과 같이 반파될 수가 없다. 천안함 파괴부분이 녹색 페인트의 흔적과 둥그런 형태와 충돌하는 흔적을 남겼다.  이와 관련 일본의 산케이 신문 시마즈 편집장은 “천안함 사고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북경주재)관련을 기사화하고 서해상에서 이스라엘 핵잠수함 침몰연관성을 보도한바 있다. 

 

- 이스라엘 핵잠수함이 서해바다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 이스라엘이 공군력 의존에서 해군력 강화로 정책을 확장시켰다. 이스라엘 해군이 활동하는 페르시아만과 서해안이 환경이 비슷하다. 핵미사일을 탑재한 돌핀급 잠수함이 서해에서 실시되고 있는 한미대잠훈련에 이스레엘도 참여했다. 한국해군에선 최무선함이 미국에선 콜롬비아호가 참여했다. 이스라엘은 북한이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에 무기판매를 하고 있어 서해상 길목에서 그 루트를 차단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문제는 이스라엘 모항에서 출발하여 한미대잠훈련에 참여하기란 물리적으로 너무 거리가 멀어서 베트남 캄란만(모항)에서 출항하여 서해상 길목을 차단하는 동참훈련에 참여하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세월이 흘러 천안함 사건이 잊혀질만한 시간인 지난 2011년 겨울 이동시간, 수리시간 등을 감안할 때 녹색 페인트의 흔적을 남긴 이스라엘 잠수함이 2년여 동안 극비리에 수리를 마친 자료를 입수하여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해 국제적으로 확신시켰다. 

 

- 신 대표의 무죄와 상관없이 천안함 사건은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과 보수 세력들은 여전히 북한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 현 정부의 입장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단순히 남북문제만 게재되어 있다면 서로 간에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미래로 나가면 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방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부되어 있다. 미 대선을 앞두고 코너에 몰리고 있는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바이든 부통령 시절에 벌어진 사건이기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싶겠지만 이방카의 남편인 유대인 출신 쿠슈노가 있어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유대인들에 반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까발리면 대선을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에 트럼프도 이 사건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당시 2010년은 한이스라엘 수교 50주년이 된 해이다. 그런데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던 이스라엘 대통령이 50년만에 실무방문(2010.6.14.)목적으로 성남비행장으로 들어왔다. 두 번째는 2017년9월 이스라엘 대통령이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50년 동안 한번도 방문하지 않던 이스라엘 대통령이 2번씩이나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방문시기와 함께 의미심장하다. 

 

신 위원은 "정보공개 청구내용은 교신기록, 항적기록, 백령도 초소 TOD영상, 국방부-해경간 통신기록 등등 사고가 났다면 그 원인을 규명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정보들이지만 국방부가 군사기밀을 이유로 기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숨기는 자체가 진실은폐다."고 주장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지금도 여전히 극우 보수세력과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 종편에서는 ‘종북 프레임’과 ‘빨갱이 타령’을 하면서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국론 분열을 일삼고 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중앙행정심판원에 정보공개청구나 행정소송을 하는 것은 어떤가?

 

▶ 정보공개 청구를 했으나 국방부도 기각하고 권익위원회도 기각했다. 정보공개 청구내용은 교신기록, 항적기록, 백령도 초소 TOD영상, 국방부-해경간 통신기록 등등 사고가 났다면 그 원인을 규명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정보들이지만 국방부가 군사기밀을 이유로 기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숨기는 자체가 진실은폐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도 핵심 지지층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부되어 여론화 하는데 한계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미봉책은 현 정부에서 남북대화를 추진하고 남북경협을 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과 배치된다. 시간의 문제이지 톱다운(Top Down)으로 한 번에 풀어야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민족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 천안함 사건 조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 평택에 있는 회의실에 첫 참여할 때부터 충격적이었다. 미, 영국 발표자가 좌초가 아닌 ‘폭발’로 몰아갔다. 우리나라 장성들 또한 같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파괴 부분은 폭발 흔적은 없고 좌초 충격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조작’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합조단 2함대에서 폭발이라며 회유를 유도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당시는 6.2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이해찬 선대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천안함 사건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득을 보기 위한 조작이다.“고 보고했다. 

 

사건의 실체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 당시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압박과 회유에 굴복하여 입을 다물까?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할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결과 그러한 결정은 나 홀로 맨땅에 헤딩하며 10년동안 나를 옭아 메고 이끌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그 결과를 보고하려고 했으나 조중동 보수언론이 민주당 중진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지도부 모두가 손사레를 처, 보고 루트가 차단되는 참담한 결과를 목도한 점이었다. 

 

그 후 천안함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난 4.15총선 전에도 장문의 편지를 모든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보냈지만 단 한사람도 답변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총선 후에도 당선자들 모두에게 천안함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장문의 서신을 보냈지만 이번에도 단 한사람의 답변이 없어 서글펐다.   

 

 ▲ '쌍끌이 어선인 대평수산 11, 12호가 스모킹 건인 ‘어뢰’를 인양했다고 사건 발생 2010.5.15.일 후 닷새가 지난 5.20일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방부에서 5.19일 천안함의 중심부인 가스 터빈실(길이11m, 폭8.7m)을 비밀리에 인양했다. 그러나 발표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작의 결정적 단서는 어뢰인양 영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평수산 11,12호 쌍글이 어선이 건졌다는 어뢰는 금양호가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신 대표의 무죄와 천안함 사건의 진실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무죄가 곧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폭침이 부정되는데...)

 

▶ 항소심 결과는 나에게는 무죄이고 천안함 사건은 북한 소행으로 결론났다. 항소심을 앞두고 저의 솔직한 마음은 설령 제가 유죄가 나오더라도 북한소행이 아니길 바랐다. 그 이유는 이 결과를 가지고 사건의 실제적 진실을 규명하는 모멘텀을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국방부 발표를 믿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 쌍끌이 어선인 대평수산 11, 12호가 스모킹 건인 ‘어뢰’를 인양했다고 사건 발생 2010.5.15.일 후 닷새가 지난 5.20일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방부에서 5.19일 천안함의 중심부인 가스 터빈실(길이11m, 폭8.7m)을 비밀리에 인양했다. 그러나 발표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작의 결정적 단서는 어뢰인양 영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평수산 11,12호 쌍글이 어선이 건졌다는 어뢰는 금양호가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쌍글이 어선이 끄는 그물은 어뢰와 가스 터빈실을 건져 올리지 못하고 그물이 다 찢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가능한 설정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모든 의원들은 침묵했다. 한마디로 광풍처럼 불어오는 종북 빨갱이 프레임에 저항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국방부에서 5.19일 천안함의 중심부인 가스 터빈실(길이11m, 폭8.7m)을 비밀리에 인양했다. 그러나 발표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작의 결정적 단서는 어뢰인양 영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평수산 11,12호 쌍글이 어선이 건졌다는 어뢰는 금양호가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쌍글이 어선이 끄는 그물은 어뢰와 가스 터빈실을 건져 올리지 못하고 그물이 다 찢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가능한 설정이다."고 밝혔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 어떻해야 한가?

 

 ▶ 북한에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남북 공동조사를 해서 명쾌하게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힘들지만 인내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종북 빨갱이 타령에 남북이 철천지 원수가되어 70년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 향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된가?

 

 ▶ 무죄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항소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해서 대법원이 부담감을 떠 안았다. 어뢰의 흡착물인 백색물질, 프로펠러가 S자형으로 휘어진 부분이 어떻게 대법원에서 귀결될지 주목된다. 

 

-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평택 천안함 전시현장에서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언론의 질문에 답했다. 진실규명 어떻게 해야 한가?

 

▶ 지난 2015년 해병대 기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은 북한 잠수함 폭침에 의한 것이다”라고 밝혀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당연히 섭섭하고 화도 났지만 지극히 전략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점과 참모들의 견해가 대단히 섭섭했다. 

 

- 2010년 당시 신 대표는 당시 야당인 현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천안함 진실규명을 위해 현 집권여당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남북대화, 남북경협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 

 

- 만약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조작이라면 당시 천안함 장교들과 사령부의 교신내용, 어뢰1번,  국방부, 국정원의 극비 자료를 공개하여 추악한 종북 프레임을 걷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 저에 대한 34가지 중 32가지가 무죄이고 그것도 2개는 명예훼손 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된 북측산이라고 주장하는 어뢰1번(문제는 어뢰추진체 구멍안에서 가리비 나옴), TOD(적외선 카메라)영상이 명명백백히 말해주고 있다. 천안함이 폭발이 되기 위해서는 3,000도의 고온에 물 색깔이 변해야 한다. 그런데 적외선 카메라 영상에 변화가 없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입증이다. 

 

오죽하면 ‘천안함 폭침은 0.00001%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도올 김용옥 교수는 “패잔병들이 마치 지들이 무슨 개선장군인 것처럼 쫘악 앉아가지고..”라고 쓴 소리를 했다. ‘어뢰1번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했었다.  파란색 매직으로 쓴 MB정당의 ’파란색 기호1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보수정권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물적 증거였다. 총풍사건처럼...’진실‘을 추구하는 용기,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 조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지금은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당시는 야당이라 한계가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러나 저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민주당이 지금은 촛불혁명으로 탄생된 집권여당이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한 개인이 10년 동안 악전고투하며 조사한 결과를 보고받는 게 순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천안함 사건의 민간인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결과를 보고하고 명예롭게 퇴진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 위원은 "당시는 야당이라 한계가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러나 저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민주당이 지금은 촛불혁명으로 탄생된 집권여당이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한 개인이 10년 동안 악전고투하며 조사한 결과를 보고받는 게 순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천안함 사건의 민간인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결과를 보고하고 명예롭게 퇴진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인터뷰를 마치며

 

진실과 국익 충돌, 역사에 수없이 보아왔다. 국익이라고 포장된 그 국익이 사실은 정권유지가 국익으로 포장된 것이지만.

 

인터뷰 말미에 신상철 전 위원은 “천안함의 진실이 드러나면 현 보수 세력은 향후 50년간 집권이 불가능할 것이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이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의 예언이 적중될까?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내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일까? 아니면 차기 대권 후보가 결정된 후 그 어느 시점일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정책으로 승부해야지 종북 좌파 빨갱이 타령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국민의식이 성숙했다. 태영호 의원이 당당히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입성한 마당에 전 근대적인 종북 좌파 빨갱이 타령이 용납되어선 안된다. 

 

끝으로 10년 동안 온갖 회유에 굴하지 않고 ’천안함 사건‘의 진실투쟁에 무죄선고를 받아낸 신상철 전 위원에게 늦게나마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를 보낸다.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면서...  hpf21@naver.com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The Path of Truth,” CEO Shin Sang-cheol, “The Cheonan incident, 10 years of struggle for truth, the government and the media must come out”

The era of inter-Korean peace will come only after the North-North Red Red Complex is overcome...

 

On March 26, 2010, the sinking of the PCC-772 Cheonan, a patrol ship of the ROK Navy, occurred in the sea near Baengnyeong Island. Of the 104 crew members, 58 were rescued, and the remaining 46 were missing. It is also known as the “Cheonan incident.

 

According to the government's announcement, the truth of the'Cheonan incident' is a problem if the North Korean invasion is normal, but during the Korea-US joint anti-submarine training, which boasts the world's strongest, North Korean submarines infiltrate the Cheonan without a trace. It means that he went to North Korea. If that's true, then in the military authorities somebody is responsible, but no one is responsible.

 

Shin Sang-cheol, a former member of the Cheonan Civil-Military Joint Investigation Committee (recommended by the Democratic Party), said that the Cheonan trial, which began in May 2010 due to the accusation of three military generals including the Minister of Defense, was not guilty on January 25, 2016. 94% innocence rate), two items, namely,'deliberate rescue delay' and'intentionally destroying evidence', claiming that non-grazing is recognized for non-grazing. Has been sentenced.

 

However, as a result of the recent struggle for truth by former commissioner Shin Sang-cheol for 10 years in the second trial, the 5th Seoul High Court Criminal Division (Judge Yun Kang-yeol, Deputy Judge of Justice) at the second trial on the 6th abolished the ruling of the lower court and rejected the judgment of the lower court. He was acquitted for reasons such as'important public interest'.

 

However, the court maintained its original position with North Korea's essential responsibility for the Cheonan incident.

 

Shin Sang-cheol, who was recommended by the opposition Democratic Party at the time, said that when he struggled and struggled in court over the past 10 years (Shin is referred to as ‘heading to the ground’), the North Korean left wing yonggong red gang has suffered all kinds of humiliation. The really unfair part was that the government's announcement was true and that it was less regrettable if he had suffered such reproach, but according to the scientific grounds, it was a "manipulation" that even Samcheok Dongja could not understand.

 

The reporter remembers that in 2013, director Jung Ji-young, who directed “Broken Arrow,” produced the “Cheonan Ham Project,” and director Baek Seung-woo participated in the premiere of a documentary film at Cheonggye Plaza. At the time, the authorities inflicted all kinds of interference and pressure so that no movie theater could be screened, and the production company held a free public preview at Cheonggye Plaza even though it rained countless times on this day. The important point here is that the audiences did not take the Cheonan bombing seriously as the government announced, but made a laugh at every presentation. In a word, according to the government's announcement, it was completely unacceptable except for "manipulation."

 

Break News conducted an interview with former commissioner Shin Sang-cheol, who has been lonely in the struggle for truth for 10 years, on the morning of the 23rd for 120 minutes on the morning of the 23rd, in Yeouido, Yeongdeungpo-gu.

 

The following are questions and answers

 

-He was sentenced to innocence at 100,000 for the truth struggle of the Cheonan case. How do you feel?

 

▶ He opened his first sentence, saying,'There was no choice,' as if solving the ten-year period. Shin introduced himself as a former naval officer and a former navigator who commanded a transport ship (LSM). He was a sailor who guards five islands in the West Sea, including Baengnyeongdo and Yeonpyeongdo, and knew the characteristics of landing ships better than anyone else.

 

The landing ship is characterized by crushing and berthing the ground. In that respect, the Cheonan incident is like a shoe heel. After being discharged from the navy, Hanjin Shipping supervised building 13 ships. I am proud to be the best expert in this field with more diverse experiences than anyone else in the naval and civilian sectors. In the CPO (Chief Privacy Officer) room, which is the center of the destruction of the Cheonan, the testimony of the survivors of the best veteran Yarn and Sergeant testified that it was not an explosion. They said,'I had an experience that ships and ships collide with.'

 

But it wasn't stranded, it was driven by an explosion. If it is an explosion, a chemical transformation must occur. Flames, black soot, and traces of explosions should remain as evidence during the oxidation process. However, there is no such trace anywhere in the Cheonan. When TNT350Kg explodes, damage such as long rupture of the human body must occur. The cause of death for all the dead was not death by explosion, but “drowning”.

 

In the process of verifying their original affidavit at the appeal hearing, the Department of Defense ignored their testimony. He filed an objection as an investigator. He was accused of being accused by the Minister of Defense, the Chief of Staff of the Navy, the Head of the Joint Corps, and the Head of the Investigation Team. In the last 10 years, life has become a big deal.

 

-People are faint in their memories. Why did it take so long?

▶ The Cheonan case was classified as an important case from the first trial, and from the beginning, it was taken by the consensus team rather than alone. It only took 10 months to prepare. In fact, in order to clarify the truth of falsehood and the case, a whopping 70 witness requests were selected in the first trial, and the first trial took nearly five years. There, I got colorectal cancer in 2013 and had chemotherapy for about a year. It is legally a defamation case, but my innocence is also important, but'find truth' was most important. In the first trial, 32 out of 34 were acquitted. Of the two, the prosecution sought three years, but the court sentenced him to probation.

 

-What was the most regretful thing you have been through for 10 years?

▶ It was regrettable that the officials, scientists, the media, and related industry experts who had the authority in this case were silent. In the process of changing the appeals court No. 3, the case of substantial truth was turned into a political case, and ‘Jongbuk-do, red-legged incidents were replaced, so everyone had no courage to drive toward North Korea.

 

The appeal trial was the result of distributing rice cakes evenly to the stakeholders. North Korea's actions and victims' families kept the government announcement. The authenticity of the torpedo adsorbent and the curved propeller needs to be verified. In the last two years (2010.3, 2015.1), four requests were made for the investigation of the truth, but they were ignored. Hopefully, the Supreme Court will destroy and repatriate to create an environment for re-investigation.

 

-At the time, the MB government initially denied relevance to North Korea. The announcement of the US State Department spokesman Crawley was also the same as the Korean government. BH also said, “There is no evidence of North Korean intervention,” and MB also admitted. At the tim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Director Won Se-hoon also attended the National Assembly Intelligence Committee and denied relevance to North Korea. But why was it turned into a North Korean tyranny?

 

▶ In the first place, the US's official commentary on the Cheonan ship disagreed with North Korea's actions. If the Cheonan ship loses its mobility, it is itself a controversy. The bottom of the sea where the Cheonan incident occurred is not a place with a huge rock mass, but an area with sand and shells, and cannot be destroyed like the Cheonan. The destruction of the Cheonan ship left traces of green paint and collisions with the round shape. In this regard, the editor-in-chief of Japan's Sankei Shimazu said, “At the time of the Cheonan incident, Mossad, an Israeli intelligence agency (located in Beijing), was reported and the connection to the sinking of an Israeli nuclear submarine was reported in the west sea.

 

-What is the logical basis that Israeli nuclear submarines can advance to the west sea?

 

▶ Israel expanded its policy from relying on air force to strengthening naval power. The environment is similar between the Persian Gulf and the west coast, where the Israeli Navy operates. Israel also participated in the ROK-US anti-submarine drill in the West Sea by a Dolphin-class submarine equipped with a nuclear missile. In the Korean Navy, Choi Radio took part, and in the United States, the Columbia. In Israel, as North Korea sells weapons to Iran, Iraq, Syria, and Libya, the need to block the route on the roads along the west coast has emerged. The problem is that it is physically too far to participate in the ROK-US anti-submarine drill starting from Israel's home port, so it is presumed that the Cheonan incident occurred while departing from Cam Ranh Bay (home port) in Vietnam and participating in a participatory drill to block the road in the west sea.

 

The decisive evidence is that the Israeli submarine, which left a trace of green paint, in the winter of 2011, the time when the Cheonan incident was forgotten, and the repair time, etc., had been repaired in secret for two years. It was submitted to the Court of Appeal and convinced internationally.

 

-Regardless of Shin's innocence, the Cheonan incident is still considered North Korea's actions by the conservative media and conservative forces including Jo Jung-dong.

 

▶ The current government's position is in a dilemma. If only the inter-Korean issues are published, you can apologize and go to the future to reveal the truth and apologize to each other. However, in this case, our allies, the United States and Israel, are linked. From the perspective of Trump, who is crowded in the corner ahead of the US presidential election, since it happened during the days of Vice President Biden of the Democratic Party's Obama administration, he would like to reveal the real truth. In addition, Trump is not able to reveal the actual truth to the case, as it is like giving up the presidential election if the story behind the Jews is revealed.

 

At that time, 2010 marks the 50th anniversary of diplomatic relations with Israel. However, the President of Israel, who had never visited, came to Seongnam Airfield for the purpose of a practical visit (June 4, 2010) after 50 years. Second, in September 2017, the President of Israel visited and held a summit meeting with President Moon Jae-in. The two visits of the Israeli President, who have never visited Korea for 50 years, are significant along with the timing of the visit.

 

-Even now, the conservative powers of the far right and the conservative media including Jo Jung-dong, and in the final episode, ‘Jongbuk Frame’ and ‘Red Taryeong’ are breaking up public opinion due to the bombing of the Cheonan ship. Now that the government has changed, how about filing an information disclosure request or administrative litigation with the Central Administrative Court?

 

▶ A request for information disclosure was filed, but the Ministry of Defense also dismissed it and the Rights Committee dismissed it. The contents of the request for information disclosure are too common-sense and basic information to determine the cause of an accident, such as correspondence records, track records, TOD images of Baengnyeongdo post offices, and communication records between the Ministry of Defense and the sea-span, but the Ministry of Defense dismissed them because of military secrecy. However, hiding it is concealing the truth.

 

 

However, these measures are contrary to the current government's policy of promoting inter-Korean dialogue and pursuing peace through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It's a matter of time and you have to solve it with Top Down all at once. Even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ith the Korean people living in this land...

 

-What were your biggest concerns while participating as a member of the Cheonan incident investigation committee?

 

▶ It was shocking from the first time I participated in the conference room in Pyeongtaek. The US and UK presenters drove the ‘explosion’ instead of a strand. The generals of our country also had the same view. However, there was no trace of an explosion in the destroyed part of the Cheonan, and only traces of a stranded impact remained. So I was convinced that this was'manipulation'. However, officials from the Ministry of Defense induce a conviction, saying it was an explosion in the 2nd Fleet of the Joint Forces. It was so painful.

 

At that time, it was just before the 6.2 local elections, so I called the former chairman Lee Hae-chan of Seoul Mayor Han Myung-sook. “The Cheonan incident is a manipulation for political gains ahead of the election,” he reported.

 

The reality of the event will be revealed someday. My biggest concern at the time was to succumb to pressure and contempt and shut up? What to excuse the children? All feelings crossed. However, I decided to become a proud father to my beloved children. As a result, that decision led me alone for 10 years, heading to the ground.

 

However, what made me the most difficult in the process was that I tried to report the results, but the conservative media in Jojung-dong put pressure on the Democratic Party leaders and saw the disastrous result that all of the leadership were punished and the route was blocked.

 

After that, a long letter was sent to all the Democratic Party candidates even before the April 15 general election to uncover the truth about the Cheonan incident, but none of them answered. Not only that, even after the general election, a long letter was sent to all the elected to uncover the truth about the Cheonan incident, but again, it was sad that there was no answer from only one person.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CEO Shin's innocence and the truth of the Cheonan incident? (Innocent soon, the Cheonan incident is denying the North Korean invasion...)

 

▶ The outcome of the appeal trial was innocent to me, and the Cheonan case was concluded with North Korea's actions. Ahead of the appeal, my honest heart hoped that even if I was guilty, it wasn't a North Korean act. The reason is that we can take the momentum to find out the actual truth of the case with this result.

 

-What was the decisive reason for not believing the announcement of the Ministry of Defense?

 

▶ It was announced on May 20th five days after the incident that the two-spot fishing boats Daepyeong Fisheries 11 and 12 had lifted a smoking gun, a “torpedo”. However, the problem is that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secretly lifted the gas turbine room (11m long and 8.7m wide), the center of the Cheonan ship on the May 19th. However, he did not make an announcement. The decisive clue to the most important manipulation here is that the torpedo image does not exist in the first place. The torpedoes that Daepyeong Fisheries 11 and 12 twins were rescued by fishing boats proved that Geumyang was impossible. The net pulled by the twin fishing boats is not possible from the start, as the torpedo and gas turbine chamber cannot be rescued and the net is torn. Despite this, all members of the Democratic Party were silent. In a word, he couldn't resist the frame of red drums blowing like a frenzy and shut his mouth cowardly.

 

-Then, what about the Cheonan incident?

 

 ▶ To apologize to North Korea, we must apologize and conduct a joint investigation between the two Koreas to clarify the truth of the case and go to the future. It's hard, but I think it's desirable to be patient and do that. I don't think the North and South Koreans should no longer be able to overcome the 70-year division system by becoming enemies of Cheolcheonji in Taryeong.

 

-How did the future events go?

 

 ▶ I cannot appeal because I am innocent. However, the prosecution appealed and the Supreme Court was burdened. It is noteworthy how the white matter, the adsorbent of torpedoes, and the part where the propeller is bent in an S-shape will result in the Supreme Court.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presidential candidate Moon Jae-in answered a question from the media, saying, "I think the Cheonan ship is the work of North Korea" at the exhibition site of the Cheonan ship in Pyeongtaek. How do I find out the truth?

 

▶ At the Marine Corps base in 2015, President Moon Jae-in said, “The Cheonan incident was caused by a North Korean submarine invasion.” Of course, I was disappointed and angry, but I think this is a very strategic statement. However, it was very regrettable that it had created a situation where it was necessary to make such a remark and the views of the staff.

 

-In 2010, then, Shin participated as a recommended investigator for the current Democratic Party, the opposition party at the time. What do you particularly want to say to the ruling party in power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 Cheonan ship?

 

▶ You must have the courage to tell the truth. It is to have the courage to overcome the red complex. The Moon Jae-in government and the ruling party, which was born through the candlelight revolution, must know the will of the people who created the 180-seat ruling party. Without clearing the biggest enemy, inter-Korean dialogue,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and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are unfounded.

 

-If the truth of the Cheonan incident is manipulation, shouldn't it be necessary to remove the ugly North Korean frame by revealing the details of correspondence between the officers of the Cheonan and the command, Torpedo No. 1, the Ministry of Defense, and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 Out of 34 things about me, 32 were innocent, and 2 were defamatory. Torpedo No. 1 (the problem is scallops coming out of the hole in the torpedo propellant) and TOD (infrared camera) images, which claim to be ridiculous in common sense, are clearly telling. For the Cheonan to explode, the color of the water must change at a high temperature of 3,000 degrees Celsius. However, there is no change in the infrared camera image. This is an undeniable scientific proof.

 

“It's not convinced that the Cheonan bombing is 0.00001%,” said Professor Kim Yong-ok, who said, “The defeated soldiers sit down as if they were some kind of triumphal general.” 'I had pointed out the fiction of Torpedo No. 1 sharply. The MB Party’s “Blue Sign No. 1” written in blue magic was a material evidence that revealed the conservative government’s face, regardless of means and methods. The courage to pursue “truth” is a more necessary time than ever.

 

-At that time, the opposition Democratic Party was appointed as a member of the investigation. What is the last thing you want to say to the Democratic Party that is now in power?

 

▶ At the time, it was an opposition party, so I admit that there were limitations. However, the Democratic Party that recommended me as a member of the investigation has now become the ruling party that was born through the Candlelight Revolution. If so, I think it would be reasonable to receive a report of the results of an investigation by an individual struggling for 10 years at the Democratic Party's General Assembly. He strongly said that it was a small wish to report the results of his participation as a civilian investigator in the Cheonan case and to resign honorably.

 

*After the interview

 

It has been seen countless times in the truth, conflict of national interests, and history. The national interest, which is packaged as national interest, is actually the government maintenance packaged as national interest.

 

At the end of the interview, former commissioner Shin Sang-cheol said, “If the truth of the Cheonan ship is revealed, the current conservatives will not be able to take office for the next 50 years. The same goes for the Sewol ferry,” he said meaningfully. Will his prophecy hit? If so, when is that time? Will it be ahead of the re-election next year? Or, at some point after the next presidential candidate was decided? The truth will surely be revealed.

 

We should no longer compete with policy, but we should not even think of leading the Republic of Korea with the red flag of the left wing. That's why national consciousness has matured. As Congressman Tae Young-ho proudly entered the National Assembly, which is the representative body of the people, the former modern Jong-North leftist red flag taryeong should not be tolerated.

 

Finally, I would like to express my generous encouragement and congratulations to former Commissioner Shin Sang-cheol, who has been acquitted of the truth struggle in the Cheonan incident for 10 years without giving in to all kinds of condolences. Hoping that the truth will be revealed... hpf21@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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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솔 20/11/18 [15:10] 수정 삭제  
  참으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하구요, 신상철님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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