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기업’ 이뤄낸 이건희, “세계의 삼성으로 도약한 신경영철학”

취임 후 매출 39배·이익 359배 증가..‘질’ 경영 승부수 글로벌서 통했다

정민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0/26 [10:33]

 

▲ 198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임식     © 삼성


브레이크뉴스 정민우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 취임 당시 삼성의 매출은 10조원이었으나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약속이 결국 실현된 것이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이 회장의 남다른 경영전략과 결단력, 앞서가는 인재양성 방법 등이 꼽힌다.

 

▲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신경영 선언     © 삼성


우선, 이 회장은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지만,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삼성의 일선 경영진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 돼 있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와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은 소홀히 했던 것.

 

이에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일갈했다.

 

당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마침내 이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라며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다”고 통탄했다.

 

이후 같은해 6월 4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福田) 고문은 “일류상품은 일체화 돼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며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고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낌 점을 이 회장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 회장이 그동안 숱하게 지적하며 고치기를 강조해 온 업무 관행이었고, 이에 대한 논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결국,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모으고,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삼성 신경영은 이제까지 지속됐던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즉, 질 위주 경영은 신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장은 불량의 폐해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며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개선 첫 출발은 불량 추방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현주소에 대해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고, 3만 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라고 질타했다.

 

이후 나온 실직적인 조치 중 하나가 ‘라인스톱’ 제도였다.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혁신적인 제도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감소한 것이다.

 

특히,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은 삼성전자의 ‘질’ 위주 경영으로 변모하는 특별한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이 회장은 1995년 1월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5만 대, 150여억 원 어치의 제품이 수거됐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브레이크뉴스


신경영의 변화는 혈연·지연·학연이 끼지 않는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조직에 뿌리 내리고,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조항을 철폐해 시대 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삼성은 1993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전형 방법을 전격적으로 변경했다. 필기시험에서 전공시험을 폐지하고 전산 기초지식과 상식, 영어 듣기 시험을 도입했다. 1994년 6월에는 가점주의 인사고과, 인사규정 단순화, 인간미·도덕성 중시 채용, 관계사 간 교환근무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사개혁을 단행했다.

 

먼저, 삼성은 학력이나 성별을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던 닫힌 제도와 관행을 모두 철폐하고, 능력과 의욕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열었다. ‘대졸 신입사원 채용’이라는 명칭을 ‘3급 신입사원 채용’으로 바꾸고,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능력주의 인사를 도입했다. 급여 인상이나 승진·승격 때 본인 스스로 일궈 낸 능력과 업적에 따라 대우받게 하는 것이다. 1년 간의 고과 결과에 따라 개인별로 급여가 차별화되고, 능력만큼 보상받는 능력급제를 단계적으로 모든 계열사에 실시다. 승격도 연공서열의 관행에서 벗어나, 직급별로 요구되는 자격요건을 정해 놓고 이에 해당하는 점수를 획득하게 되면 기간에 관계없이 승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승격 자율관리 제도를 도입했다.

 

마지막으로 고졸, 현장직 사원도 장기적인 가능성과 비전을 갖고 부족한 능력을 보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확충했다. 사내대학을 설립하고 조기출퇴근제를 활용해 야간 대학에 진학할 경우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이 외에도 이 회장은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다”며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국제화, 전문화, 다양화 시대에서는 한 가지 전문분야에만 정통한 I자형 인재가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갖춘 T자형 인재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기술자도 MBA가 돼야 하고, 관리부서 출신도 컴퓨터와 친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break9874@naver.com


-아래는 구글번역기로 번역한 기사 전문.

 

Samsung Electronics Chairman Lee Kun-hee passed away on the 25th. Age 78.

 

At the time of Chairman Lee's inauguration, Samsung's sales were 10 trillion won, but in 2018, 387 trillion won, about 39 times, and profits from 200 billion won.

It increased 359 times to 72 trillion won, and the market capitalization of stocks increased 396 times from 1 trillion won to 396 trillion won.

 

Chairman Lee's promise to “grow Samsung into a world-class company” was finally realized. At the heart of this change are Chairman Lee's extraordinary management strategy, determination, and ways to cultivate leading talents.

 

First of all, Chairman Lee diagnosed that in order to survive the upheaval of the global business environment, it must be a first-class company and a globally recognized company, but Samsung's level is not.

 

In fact, Samsung's frontline management was focused on how much it produced and sold compared to last year. Each division was in a hurry to achieve quantitative targets in front of them, neglecting qualitative factors such as added value, synergy, and long-term survival strategies.

 

In response, Chairman Lee said, “We don't really think of a crisis as a crisis because we are blinded by pride. He doesn't know his ugliness.” I have a cold sweat on my back.”

 

At the time, the products made by Samsung were partially successful in some markets, such as Southeast Asia, but were treated as cheap in advanced markets such as the United States and Japan.

 

Finally, in February 1993, Chairman Lee was attended by major executives of electronic affiliates. In Los Angeles, USA, he hosted a local comparison evaluation meeting for electronic products. This is for the purpose of checking with your own eyes how the products made by Samsung, who are proud to be good, are being treated in the United States, the world's largest market.

 

In local stores, Samsung products were turned away from customers and placed in a corner covered with dust. Looking around it with the executives, Chairman Lee said, “We must return the name Samsung. “Why do you use the name Samsung for being buried in a dust pit in one corner?” He said. “Isn't there any product on the shelf that has a broken lid or doesn't work? This is an act that deceives shareholders, employees, the people, and the country.”

 

Later, on June 4 of the same year, Chairman Lee held a meeting in Tokyo, Japan, with Japanese advisors who had been guiding Samsung's management sites to discuss Samsung's problems.

 

Fukuda, who led the design department of Samsung Electronics'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division at the time, said, “The first-class products must be integrated, but Samsung’s product planning is weak. “There is,” he reported to Chairman Lee about the things he saw and felt while working at Samsung Electronics for four years.

 

This was a business practice that Chairman Lee has pointed out a lot and emphasized fixing, and discussions about this continued in Frankfurt.

 

After arriving in Frankfurt, Chairman Lee received another shock from receiving a videotape of an in-house broadcasting program showing the appearance of the washing machine assembly line, where employees cut and assemble the cover on the spot because the opening and closing part of the washing machine did not meet the specifications. .

 

Eventually, on June 7, 1993, Chairman Lee summoned more than 200 people, including executives and overseas residents, to the Frankfurt Kampinski Hotel, and said, “Samsung must now completely change from the consciousness, constitution, institutions, and practices of quantity to quality.” He declared Samsung Shin-Young.

 

Samsung Shin Young-young declared that it would break the vicious circle of volume-oriented management that has been sustained so far, and realize a virtuous cycle of management structure in which quantity is harmonized centering on quality. In other words, quality-oriented management can be said to be the core of Shin Shin Young.

 

In particular, Chairman Lee emphasized the evils of the defect. Chairman Lee said “ If it is for quality, you can sacrifice quantity,” he said. “If it is necessary to improve the quality of products and services, people and management, you can stop producing factories or lines.”

 

Accordingly, Samsung's first start for improvement began with the deportation of defectors.

Chairman Lee criticized the current status of Samsung Electronics at the time, saying, “Samsung Electronics is an organization that has no pickers even though screws are rolling around at the production site, and it is an insensitive company that is an inefficient, wasteful group of 30,000 people and 6000 people to fix.

One of the unemployed measures that followed was the “line stop” system.

The line stop system is an innovative system that prevents recurrence of problems by immediately stopping the operation of the production line, completely solving problems in the manufacturing process, and then restarting them when a defect occurs at the production site.

 

It was quite a pain for the production managers who had to build the line despite the backlog of production, but the effect was great. In the case of electronic products, the defect rate in 1993 was reduced by as little as 30% and as much as 50% from the previous year.

 

In particular, the bad wireless telephone format in March 1995 provided a special opportunity for Samsung Electronics' “quality”-oriented management.

 

At the time, Samsung Electronics' wireless phone division was forced to produce finished products without proper quality, revealing a serious problem that the product defect rate rose to 11.8%.

 

Eventually, in January 1995, Chairman Lee asked customers to take special measures to exchange for new products unconditionally while apologizing for quality accident measures and future plans. Along with this, it was suggested that the collected products be burned to burn the employees' bad consciousness. 150,000 units, worth 15 billion won worth of products were collected, and all of them were disposed of through burning.


The change of Shin Kyung-young was an opportunity for merit-oriented personnel to be settled in line with the changes of the times by rooting the tradition of fair personnel in the organization, and eliminating seniority and various discrimination clauses.

 

In the second half of 1993, Samsung has radically changed the screening method starting with the public offering of new employees. The major test was abolished in the written test, and the computerized basic knowledge, common sense, and English listening test were introduced. In June 1994, personnel reform was carried out with major contents such as review of additional store-based personnel, simplification of personnel regulations, hiring with emphasis on human beauty and morality, and introduction of an exchange work system between affiliates.

 

First, Samsung abolished all closed systems and practices that did not even give an opportunity for reasons of education or gender, and opened the door to all people with the ability and motivation. The name of “recruiting new college graduates” was changed to “recruiting third-level new employees,” allowing anyone to apply regardless of their educational background.

 

Also, merit-oriented personnel were introduced. When raising a salary or being promoted or promoted, they are treated according to their own ability and achievements. The salary is differentiated for each individual according to the results of one year's hard work, and the competency pay system that is compensated for the ability is implemented step by step to all affiliates. As for the promotion, it deviated from the practice of seniority, and introduced a self-regulatory management system for promotion that allows for promotion regardless of the period when the qualification requirements for each position were set and the corresponding score was obtained.

 

Lastly, the system and conditions were expanded so that high school graduates and field-workers could also have long-term possibilities and visions to make up for insufficient abilities. An in-house university was established and an early commute system was used to provide support for entering university at night.

In addition to this, Chairman Lee said, “It is a kind of sin for companies not to cultivate human resources, and it is a major loss of management to not utilize and send out high-quality human resources.” Emphasized the importance.

 

In addition, he emphasized that in the era of internationalization, specialization, and diversification, T-shaped talents with comprehensive thinking skills in various fields are desirable, not I-shaped talents who are well versed in only one specialized field. In the future, technicians should also become MBAs, and management department backgrounds should be familiar with comp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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