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야 땅, 한-일 이제는 미워말자!"

한국-일본은 뿌리가 하나인 같은 민족, 태양족 후손

강동민 이사장 | 기사입력 2008/01/14 [13:49]

도시국가 연합체인 가야(태양민족. 광명의 민족)의 한 부족이었던 신라가 경주 쪽에서 고구려로부터 독립 신라를 만들게 되고, 옛 가야 시대 때 이미 일본 시마네 현 쪽으로 건너가서 살고 있었던 “석탈해”(일본 시마네 현 출생) 가 신라의 2대왕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어 유리왕 다음으로 왕이 되었다. 이때는 일본 이 모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땅이었다.

▲강동민  이사장
한편 신라는 박. 석. 김 씨로 돌아가면서 임금을 맡아서 하다가 16대 흘해왕 때, 김 나물 왕이 혁명을 일으켜서 왕권을 쥐게 되었고, 석 흘해왕과 아들도 죽임을 당하고 손자 중 하나가 겨우 살아서 일본 시마네 현 이즈모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서부터 한-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꼬이기 시작하였다고 나는 본다.

그때부터 신라에 원한을 품은 석씨일족 들의 일본 내에서의 활동은, 신라의 왕이었던 고귀한 신분을 앞세워, 일본 정부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되니 자연이 권한이 많아지고 권력을 휘두르고 천황까지도 꿈을 꾸었던, 석씨왕족인 소가일족(蘇家一族)의 300년 영화는, 국무대신 겸 재무장관 직책까지 맡아서, 새 천황들을 옹립 할 때마다 깊숙이 관여 하였고, 백제와 손을 잡고 신라를 못살게 굴며 석 씨 왕권 회복과 신라 왕권 전복의 기회를 노리며 무척 노력하였다.(우리조상이 세운 일본 나라 : 박병식 저 참조)

신라가 반도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문무왕 2년 서기662년 에 석씨왕족의 재산(본피궁)을 몰수하여, 반은 국고에 넣고, 나머지를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나누어 준 사실이 있었다. 이는 신라가, 왕좌에서 쫓겨난 석씨왕족이, 백제와 손을 잡고 250년 동안이나 신라를 괴롭혔던 일에 대한 보복이었다.

서기 681년 7월 신라 문무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자기 시신을 동해 입구에 있는 대석상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하였다. 감은사(感恩寺)에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바다의 용이 되어 왜군을 막겠다고 되어 있다 한다. 문무왕의 이러한 유언을 해야 할 이유는, 바로 그의 손으로 모진 박해를 한, 석씨왕족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깨달아야 한다.

조선왕조 선조25년 1592년 임진왜란이 6년간 계속되어 1598년 끝날 때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이 끈질기게 계속 되었으며, 그 후 일본의 국력이 강해 질 때면 꼭 침략의 본성을 드러내곤 하였다. 또 한 일제 강점기 35년은 대한제국을 철저하게 짓밟고 괴롭힌 현대사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옛 가야를 흡수한 신라를 미워하고 “님의 나라 (임나: 가야)”를 잃었다는 슬픔과 석씨 왕조의 원한에 찬 보복 이 겹친 업보가 아닐까? 심히 마음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하나님을 “아리랑” 이라고 노래하는 하늘의 직계 자손이며, 스스로 태양이라고 표현하는, 언어가 같고 뿌리가 하나인, 같은 민족, 태양족 후손들의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하나. 언제쯤 끝이 보일까. 양국의 화해 정신과 용서 . 관용 이 꽃 피울 때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서로 미워하지 말자! 서로 용서하자! 서로 사랑하자! 옛 선조들의 홍익인간 정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minjock1944@hanafos.com

*필자/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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