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록, 1622년 조선사람 독도 살았다"

평생연구한 일본 연구 대공개-6 /"일본발간 大日本地名辭書 독도=한국땅"

박병식/역사학자 | 기사입력 2008/01/11 [22:42]

독도. 수년전 서울에 주재하고 있었던 일본대사가 우리 땅인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고 공언하여 우리들의 심기를 매우 어지럽게 했었다.

"1622년에 많은 조선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 맹랑한 소리를 하는 다까노-도시유끼(高野 紀元) 대사와 엉뚱한 소리를 앵무새처럼 본국 지시대로 말했던 신임 대사들에게 서기1907년에 일본에서 발간된 大日本地名辭書. 吉田東伍著)를 보여 주고 싶다.

▲역사학자 박병식 선생
그 자서의 제2권, 434쪽에는 다께시마(竹島, 즉 독도에 대하여, 대략 아래와 같은 설명이 적혀 있다. 다께시마(竹島. 게이쬬-(慶長)이후(임진왜란 이후를 뜻함), 변해의 어민들이 다께시마(竹島)에 왕래하며 그곳을 점유하였던 모양이어서, 요나고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1621년에 무라가와 마사가쯔(村川正勝)라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 다께시마(竹島)에 갔던 바, 약간의 조선 사람이 그 섬에 있음을 보고 즉시 요나고에 돌아 와, 그 사실을 관청에 보고했다.

그 다음해 인 1622년에, 관의 허가를 받고 다시 그 섬에 건너 가 보니, 많은 조선 사람이 살고 있음으로, 두 사람을 생포해 귀국하여 실상을 관에 보고하고 다께시마(竹島)에 왕래하는 것을 공인해 주도록 호소했으나, 관은, 1623년, 요나고 사람들이 다께시마에 왕래하는 것을 금지 했다.

그런 한편, 에도막부는, 대마도의 영주인 무네 씨(宗氏)에게 명하여, 조선정부에게 단판 하도록 했다.“

무네씨(宗氏)가 "우리 땅인 다께시마에 귀국 어선들이 빈번히 침범하므로, 우리 어민이 그중 두 사람을 잡아 와서 그런 실정을 보고해 왔다. 하지만 이에 그들을 돌려준다"라고 한즉, 조선 정부의 예조는 "그곳은 문헌을 보나, 우리나라와의 거리상으로 보나, 우리 땅임이 명백하며, 귀국 은 오인하고 있다"라고 결연히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에도막부도 하는 수 없이 조선에 굴복하여 화해하고, 다께시마(竹島에 가는 것을 금지했으니, 이 때 가 서기1699년이었다.

▲울릉도 배안에서 독도를 찍은 모습. 갈매기들의 비상이 인상적이다.     ©김상문기자
명치16년, 서기1883년, 한일(韓日) 두 나라 정부는 다시 다께시마의 영유권에 관한 단판을 했는데, 그 결과, 일본정부는 다께시마에 건너 간 배를 모두 철수시키고,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명하여, 다께시마(竹島)가 조선 땅임을 명백히 하였다.

"일본정부가 다께시마의 영유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

이상은 '大日本地名辭書'의 기사를 간단히 요략한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명치시대에 들어가서도, 일본정부가 다께시마의 영유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는가? minjock1944@hanafos.com

**필자/일본 천황가를 평생 연구해온 역사학자.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고, 저서로는 "일본어의 비극" "일본어의 발견" 등 20여권이 있다. 현재는 한민족문화연구원 학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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