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연일출신 오씨가 일본 吳國세웠다"

평생연구한 일본 연구 대공개-3 / 오나라(吳國)를 세운 '연오랑'

박병식/역사연구가 | 기사입력 2008/01/09 [09:22]

일본천황가의 비사(秘史)를 이야기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날 일본민족이라고 일컬어 지는 일본인이 우리와 같은 피를 지니는 한겨레라는 사실부터 밝혀둘 필요가 있다.

▲박병식 선생
태고시기의 우리민족은 "태양을 조상이라고 우러러 모시는 태양신앙족"이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스스로 가라(伽羅)=가야(伽倻)족이라고 자부(自負)했었다. 가라(伽羅)란 우리의 고어로 '태양'이란 뜻인데, 그 어원은 '하라=태양족'이고,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ㅎ→ㄱ 자음변화를 일으킨 탓으로 '하라→가라'로 소리바꿈 됐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천황이 스스로 제주(祭主)가 되어, '가라가미(韓神)'를 일년(一年)에 봄가을 두 번 봉사(奉祀)하고 있는 사실로 입증되며, 춘계(春季) 제삿날인 2월 11일은 건국기념일(우리나라 개천절)로 제정(制定)되어있다.

초대천황이 된 수로왕(首露王)의 후손

황국주의사상에 흠뻑 빠져 있는 일본학자의 대부분은, 지금도 "일본 황실은 초대 진무천황(神武天皇)으로부터 현재 재위중인 제125대 헤이세이천황(平成天皇)에 이르기까지 같은 혈통으로 이어 저 왔다"라고 호언(豪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허언(虛言)에 불과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초대천황이 된 사람은, 말기 아라가야(下伽倻)의 수로왕)의 칠대(七代) 후손이다.

김해 김 씨의 족보에 의하면, 시조(始祖) 수로왕(首露王)에게는 본디 아들 형제 열이 있었다.

그의 왕후(王后)는, 태국(泰國) 중부에서 번영했던 태양왕조국 '아유다야(ayuttaya)에서 시집 온 허(許)씨였다. 그녀가 낳은 열 아들 가운데서 일곱은, 백제로부터 파급되어 온 곰 신앙사상(熊信仰思想)에 물들어, 태양숭배사상(太陽崇拜思想)을 고집하는 형들을 뒤에 남기고 일본 규-슈-(九州)의 남부지방으로 이주(移住)하여 일곱 곰의 마을(七熊里)을 만들어 그곳에 정착했다.

나중에 초대천황으로 즉위한 것은, 그들 일곱 형제 가운데 한사람이었고, 일본역사 학자들은 그를 '오-진덴노-=應神天皇'라고 기록해 뒀는데, 제15대 '오-진덴노-=應神天皇'의 즉위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서기 420년경인 것으로 짐작된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진무덴노-(神武天皇)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킨 일본학자들은, 제15대 '오-진덴노-=應神天皇'에 이르기까지의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진무덴노-(神武天皇)로부터 제14대까지의 천황을 유령(幽靈)으로 채워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오나라(吳國)를 세운 '연오랑'

승(僧) 일년(一然)이 편찬해 놓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략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 저 있다.

"제팔대(第八代) 아달라왕(阿達羅王) 사년(四年)에 동해변(東海?)에 살던 연오랑 이라는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 지역 임금이 됐다."

아달라왕(阿達羅王) 사년(四年)은 서기157년에 해당된다. 그리고, '연오랑'의 '연'은 포항 근처에 있는 '연일(延日)'이라는 고을 이름을 줄여서 표시한 것이며, 그곳을 바로 오(吳)씨의 본관이 있는 곳이며, '연오랑'의 '랑'은 젊은 남자를 일컫는 말임이 분명하다.

'연오랑'이 세웠다는 오국(吳國)은, 일본역사에 오-구니(大國)라고 적혀있으며, 왕이 됐다는 '연오랑'은, '오-구니누시노미꼬도(大國主命)라고 기록돼 있는데 그들이 지배하고 있던 지방은 지금의 시마네 현(島根縣)지역이다.

'연오랑'이 동해를 건너갔을 당시의 일본열도는, 가라족(=태양숭배족)과 고구려의 전신(前身)인 '오로족'이 살고 있었으나, 곰 신앙족으로 전향한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에게 정복당하고 있었다.

'오-구니누시노미꼬도(大國主命)라고 불리웠던 '연오랑'의 후손도, 해군을 이끌고 시마네 현(島根縣)의 이즈모시(出雲市)의 이나사노하마(稻佐の浜)에 기습(奇襲) 상륙한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에게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덧붙인다. minjock1944@hanafos.com

**필자/일본 천황가를 평생 연구해온 역사학자.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고, 저서로는 "일본어의 비극" "일본어의 발견" 등 20여권이 있다. 현재는 한민족문화연구원 학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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