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천황 가문, 김해김씨 피 절절흐른다"

<역사연구가 평생연구 대공개-1> 일본 황실의 뿌리

박병식/역사연구가 | 기사입력 2008/01/07 [12:16]

1.<가사사 笠沙>항(港)에 상륙한 수로왕의 일곱 아들들

일본은, 무력(武力)으로 협박(脅迫)하여, 우리나라의 통치권(統治權)을 겁탈(劫奪)한지 5년도 채 못되는 1915년 6월 29일, 조선총독부 경무령(朝鮮總督府警務令)을 포고(布告)하여,「치안상(治安上)의 이유(理由)로, 김해(金海)를 본관(本貫)으로 하는 김씨(金氏)의 족보발행(族譜發行)을 금지(禁止)」시켰다.

경무령(警務令)이란 대체 어떤 명령(命令)이길래, 남의 족보의 발행마저 규제할 수 있는 강제력(强制力)을 가졌는가부터 우선 살펴보자.

일본말 사전(辭典)에 따르면, 경무령(警務令)이라는 것은,「국가(國家)의 안전(安全)과 사회공공(社會公共)의 질서(秩序)를 지키기 위하여,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强制)하여, 그 본래의 자유를 제한(制限)하는 명령(命令)」이다.

서기 1985년에 실시한 국세조사(國勢調査)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274종의 성씨(姓氏)가 있는데, 김씨는 그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그 김씨에게는 자그마치 285가지의 본관(本貫)이 있으며, 김해김씨(金海金氏)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 김해김씨의 족보가, 왜 「일본(日本)의 국가안전(國家安全)과 사회공공(社會公共)의 질서(秩序)를 해친다」고 일본정부(日本政府)는 생각했을까? 그 수수께끼를 풀자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김해김씨의 족보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서기1864년(甲子年)에 발행되어 전래(傳來)되어 오는 김해김씨의 족보에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에 쌓인 구절이 보인다.

【김해김씨의 시조(始祖)인 수로왕(首露王)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넷째부터 10째 까지의 일곱 아들은, 세상이 되어가는 꼴을 비관(悲觀)하여, 구름을 타고 나라를 떠났다】

▲역사연구가 박병식 선생     ©브레이크뉴스
김해김씨의 족보에 있는 수수께기 같은 이 구절이, 일본정부로 하여금, 족보의 간행(刊行)을 금지 시켜야 할 정도로 「일본(日本)의 국가안전(國家安全)과 사회공공(社會公共)의 질서(秩序)를 해친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대한 해답(解答)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고사기 古事記』와 『일본서기 日本書紀』에 있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기사(記事)에서 찾아낼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이라고 불리우는 나라를 건국(建國)한 황실(皇室)의 시조(始祖)는, 하늘 나라로부터 구름을 타고, 규-슈-(九州)에 있는 <다까찌호미네 高千穗嶺>의 <구시후루>에 내려왔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들이, 구름을 타고 금관가야(金官伽倻)를 떠났다】는 김해김씨의 족보 내용과,【황실(皇室)의 시조(始祖)가, 하늘 나라로부터 구름을 타고, 규-슈-(九州)에 있는 <다까찌호미네 高千穗嶺>의 <구시후루>에 내려왔다】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술(記述)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우선, <다까찌호미네 高千穗嶺>의 <구시후루>라는 것은, 수로왕이 하늘에서 금괴를 타고 내려왔다는 <龜旨嶺 구지부리>가 소리변화된 이름이다. 그 옆에는 <다까찌호미네>보다 높은 <가라구니다께 韓國岳>가 있는데, 그 자락에 넓게 퍼져있는 지역(地域)에는, <일곱 곰의 마을>이라는 게 있다. <일곱 곰의 마을>이라는 곳은, 곰(熊)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 아니고, <일곱 사람의 금씨(김씨 金氏)가 살던 마을>을 뜻하며, 하늘 나라에서 구름을 타고 왔다는 금수로왕(=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살던 곳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사람이 구름을 타고 갔다느니 왔다느니 하는 비현실적(非現實的)인 말을, 역사적(歷史的)인 사실(事實)과 결부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의아(疑訝)해 할 것이나, 그런 의문(疑問) 역시 간단히 풀린다. 왜냐하면,『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있는 일본의 건국신화(建國神話)에는, 아래와 같은 현실적인 보충(補充) 설명이 곁드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늘 나라에서 온) <니니기노미꼬도>는, <아다 吾田>의 <가사사 笠沙>에 이르러,「여기는 <가라구니 韓國>에 향해 있고, <가사사 笠沙>의 산곁 모통이(岬)를 막 돌아선 곳으로서, 아침 햇빛이 똑바로 비치고, 저녁 해도 잘 비치는 곳이니 매우 좋은 땅이다」라고 말하고, 그곳에 정착(定着)하게 됐다】

우선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하늘 나라>라고 표현 돼 있는 곳은 가야(伽倻)를 뜻한다는 사실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보이는 <가사사 笠沙>는, 오늘날의 사쯔마반도(薩摩半島) 첨단(尖端)에 있는 항구(港口)다. 즉, 수로왕의 일곱 아들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고, 배를 타고 대한해협(大韓海峽)을 건너가서, 규-슈-(九州)에 있는 <가사사 笠沙>에 도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곳 향토지(鄕土誌) 편찬위원회(編纂委員會)가 수집한 자료(資料)에는, 그들이 처음 상륙할 때 징검다리로 밟았다는 첫 번 째 바위 이야기를 비롯하여, 많은 유적(遺跡)이 남아 있어서, 그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납득시켜 준다(서기1979년 11월 발행 「笠沙の神話·傳說」참조).

재미 있는 것은, 영국으로부터 <메이후라워 mayflower>호를 타고 북미대륙에 건너 온 102명의 청교도(淸敎徒)들이, <마사추셑 massachussets)주의 <푸리무스 plymouth>에 상륙한 서기 1620년 12월 26일, 첫 발을 올려 놓았다는 바위가 지금도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 <에피소-드>는, 수로왕의 아들들이 첫 발을 올려 놓았다는 바위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지 않는가!

일본 황실의 시조 이름인 <니니기노미꼬도>는, <가장 니른=가장 이른 때에 온> + <미꼬도=밀 것=성스러운 사람=왕·천황>를 뜻하는 말이다.

2.<진무천황>은 수로왕의 6대(또는 7대) 손자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떠오른다.

①<진무천황>은 <큰곰의 마을 大?の里>에서 자랐다

일본 사람들은  <큰곰의 마을>을 <大?の里>라고 표기하지만, 원래는 <큰 금(金)의 마을>, 즉, 일본에 건너온 수로왕의 일곱 아들 가운데서 제일 맏이인 넷째 아들이 정착한 곳을 <큰곰의 마을>이라 했음을 알 수 있다.

②그는 서기 370년(庚午年)에 태어났다

그가 제1차 <야마터 王朝=우가야 王朝>를 정복(征服)하려고 <휴-가 日向>를 떠난 것은 서기 414년10월(甲寅年)인데, 그때 그의 나히는 햇수로 따져서 45세였다고 한다.

수로왕이 세상을 떠난 것은 서기 199년임으로, 그는 수로왕이 서거한지 약 170년 후에 태오에난 셈이다. 한 세대(世代)를 30년으로 본다면, 그는 수로왕의 5대 손자의 아들임을 알 수 있으니, 결국 수로왕의 6대 손자인 셈이다.

③<진무천황>의 참 이름은 <닌도꾸천황 仁德天皇>이다

 <진무천황>이 제1차 <야마터 王朝>를 멸망시키고 황위(皇位)에 오른 것은, <휴-가>를 떠난 서기 414년 이후 7년 만이라 하니, 그 때는 서기 421년이다.

송사(宋史)에 따르면, 서기 421년에 왜국왕(倭國王) 찬(讚)이 무제(武帝)에게 조공(朝貢)하였다. 일본 학자들은 이 찬(讚)이, 바로 <닌도꾸천황 仁德天皇>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일본 역사에 첫 천황이라고 되어있는 <진무천황>이란 이름은, 수로왕의 후손에 의한 혁명(革命) 사건(事件)을 감추기 위하여, 역사를 왜곡(歪曲)시킬 때에 조작(造作)된 허명(虛名)임을 알 수 있다.

혁명으로 황위에 오른 수로왕의 후예(後裔)가, 황위에 오른 서기 421년에, 송나라의 황제에게 조공(朝貢)함으로서, 그로부터 인정(認定)을 받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여, 요새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학자들에 의한 역사(歷史)의 왜곡(歪曲)은, 그네들이 하늘 같이 떠받들고 있는 첫째 천황 <진무천황> 이름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들의 학자(學者)답지 못한 삐뚤어진 행태(行態)는, 이미 고질화(痼疾化)된 오랜 숙환(宿患)임을 알 수 있다.

종가(宗家)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시초부터 거짓으로 꾸며진 그들의 역사를, 권력자들에 의하여 왜곡(歪曲)되기 쉬운 문헌(文獻)으로서가 아니라, 일본말의 어원(語源)을 밝혀내어, 일본말이 우리말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확인(確認)시켜줌으로서 바로잡아 줘야 할 것이다.

*필자/박병식. 한민족문화연구원 학술고문. 연락 전화: 02)523-1944.
이메일/minjock1944@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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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양 08/01/07 [14:01] 수정 삭제  
  일본 왕조도 김일성 왕조에 비하면
새발이다.
제갈퍼중땀시.
독자 08/01/07 [14:22] 수정 삭제  
  김수로 왕과 허황옥 왕비의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일본 왕가와의 관련설은 처음 듣는,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1915년 6월 29일, 김씨(金氏)의 족보발행(族譜發行)을 금지(禁止)」시킨 조선총독부 경무령(朝鮮總督府警務令)은 어디서 구해볼 수 있는지요?

김수로 08/01/08 [23:36] 수정 삭제  
  http://plaza.rakuten.co.jp/khiroba/diary/200504100000/
백수 08/01/11 [17:22] 수정 삭제  
  총무처에 있을까?
서울대 에 있을까?
정부 기록 보관소에 있을까?
도서관에 있을까?
일본 으로 살짝 가져 갔을까?
어디에 숨겨 놔도 찾을수 있을꺼여...........
가자보러 08/01/12 [07:33] 수정 삭제  
  뉜손뉜손
김수로자손 08/04/18 [22:52] 수정 삭제  
  일본신화에대해 발표준비하면서
일본천황이 김수로왕의 후손들이라는 자료들을 보았는데
아.......일본인들이 엄청 숭배하고 떠받드는 천황이
김수로왕의 후손들이면.........
나 김해김씨.........아 ........이거 흥미진진 ㅋㅋㅋ
jiro 08/10/20 [11:27] 수정 삭제  
  山本梓
熱血韓國人 08/12/20 [00:30] 수정 삭제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백제의 왕실중 권력다툼으로 인해 추방된 왕자의 후손이 세웠다고 들었다.이래하나 저래하나 일본은 우리나라중 한명의 한국인이 세운건 맞다.그런 후손밖에 안되는주제에 감히 한국인을 죽여? 이런 나쁜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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