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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이요?” “조심하는 겁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 혹시나 하는 거죠.”

이헌영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12장 김찬주 회장

이헌영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9/21 [04:05]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12. 김찬주 회장

 

어느 날, 오후 김진규 보좌관이 문을 열고 들어와, 심상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의원님! 누가 찾아 왔는데, 신분은 밝히지 않고, 뵙고 직접 말씀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국정원이나 검찰 쪽 사람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국정원?…검찰?”

 

관영은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들어오라고 해야죠.”

 

잠시 후, 말쑥한 감색 정장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관영은 잠시 방문자를 눈여겨보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김진규 보좌관에게 말했다

 

“잠시 나가 계세요. 여기 차 좀 들여보내시고요.”

 

보좌관이 나가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재정그룹, 김찬주회장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예?… 재정!…김찬주회장님?”

 

“그렇습니다. 저는 비서 차주혁입니다.”

 

관영은, 느닷없이 닥쳐온 사태에 잠시 아연했으나, 순간 형체를 가늠할 수없는 큰 그림이 그의 머리에서 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차주혁 비서님이시군요.”

 

관영은, 차주혁 비서를 찬찬히 살폈다. 전체적으로 말끔한 생김새이지만, 특징지어질 만한 것이 없고 표정 또한 덤덤했다. 이럴 경우, 명함을 내미는 게, 보통인데 그럴 기미도 없다.

 

“회장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역시 감정이 절제된 심부름 말투다.

 

“아! 회장님께서요?”

 

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했다.

 

때 마침, 여직원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여직원이 찻잔을 조심스레 놓고, 나갈 동안 관영의 머릿속은 ‘면접과 보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회장님께서는 저를 언제, 어디서 만나시려고 하십니까?”

 

“의원님이 괜찮으시다면, 12월 하순경에 일본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년 말엔, 대개 그쪽에 머무십니다. 어려우시면 의원님께서 일정을 정해주시면, 맞춰 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주혁의 준비된 답변은 결정문으로 들렸고, 뒷내용은 사족으로 이해됐다.

 

“12월 하순이면, 오늘이 7월 22일이니 약 5개월 후네요?”

 

“의원님, 일정이 많이 있으실 것을 고려해서, 그렇게 정하신 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12월 하순경, 도쿄에서 뵙는 거로하고, 연락은…?”

 

“12월 20일 부터 말일까지, 도쿄에서 언제라도, 제게 전화주시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제 전화번호입니다.”

 

차주혁은 미리 준비한, 전화번호 쪽지를 내밀었다.

 

“명함이라도 주시지.…”

 

“믿으셔도 됩니다. 비밀은 잘 지켜 질 것입니다.”

 

차주혁은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은 듯 했다.

 

차주혁이 가고, 김진규 보좌관이 궁금한 얼굴로 들어왔다.

 

“어디서 왔답니까?”

 

관영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국정원에서 보좌관 중에 불온한 낌새가 있는 사람이 없느냐 구 묻던데”

 

“에이!… 어디 누구신데요?”

 

“국정원이나, 검찰 쪽 같다면서요? 어디가 그쪽 사람 같습니까? 지역구 민원인 셈입니다. 서초구의원 지망생입니다 나를 한번 써 먹을라고 찾아 온 거죠. 참!”

 

“아이고! 저런!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로…”

 

그렇게 일단락을 지었다.

 

다시, 혼자가 된 관영은, 쪽지를 꺼내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곤 생각에 빠졌다 12월 하순이면, 대선을 2년 앞둔 시점이다

 

재정그룹은, 명실공히 국내1위 그룹으로, 포브스 기업순위 19위에 올라있고, 주가가 저평가 돼있어서 그렇지, 제대로 평가됐다면, 순위는 더올라갈 거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김찬주회장은 올해 57세로 경영을 이어받은 후, 12년 사이에,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확실하게 성장시켜, 대부분의 영업매출이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룹의 총수가, 관영에게 먼저 만남을 제의해 왔다. 무슨 생각으로, 만나자는 것일까? 차주혁과 약속을 할 때, 머릿속에 그려졌던 그림을, 더듬어 생각해보았다. 관영은, 고대했던 일들이, 예상보다 빨리 성큼 다가 왔음을, 알아 차렸다.

 

관영과 장훈은, 가연갤러리 3층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다시피 했다. 그들이 만나는 횟수에 비례해서[한 생각1.2]도, 구체적으로, 단단해지고, 명확해져 갔다.[한 생각1,2]에 대한 골격이 점점, 구체적으로 자리 잡아가면서도, 부유층의 동의를 얻어내는 전략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었다. 미리, 유력인사들에게 사전 동의를 얻어놓으려면, [한 생각1.2]을 세세하게 설명해야하는데, 선거판에 들어가서 관영이 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 비밀을 간직해야 하므로, 아무런 사전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두,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

 

관영은 김찬주회장 측에서, 만남을 요청한 사실을, 장훈에게 말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말했다가, 신통치 않은 결과가 있을 경우를 염려했다. 몇 번 씩이나, 사실을 밝히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나, 꾹 참았다.

 

12월 22일 도쿄,

 

전화 음이 울린 것 같지 않았는데,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차주혁입니다. 의원님! 안녕하셨습니까?”

 

관영은 전화 음이 울리기도 전에 들려온 목소리에 잠깐, 당황했다.

 

“아! 예, 정관영입니다 …저 지금 도쿄에 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지금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여기가…힐튼호텔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 2층에 있습니다.”

 

“아! 그러면 제가 30분쯤 걸릴 겁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끊긴 화면을 들여다보며 차주혁을 생각했다.

 

5개월 전에도 어렴풋이 느꼈던 그것,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인물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창밖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일본에 올적마다 생각하던, 그 생각을 또 했다. 지진과 화산이 상존하고, 남쪽은 태풍이, 북쪽엔 폭설이 잦은 섬나라이면서도, 소련과 중국 등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에게 겁 없이 덤벼들었던 나라, 우리나라를 36년간 지배했던 나라. 미워해야할 나라이지만, 배울 것도 많은 나라, 그리고 그들의 몸에 밴 근면에 대해서 생각했다.

 

차주혁이 나타났다.

 

“내려가시죠. 택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앉지도 않고 차주혁이 말했다.

 

두, 사람은 택시에 올랐다. 차주혁은 택시기사에게 한참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일본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저는 재일교포 3세입니다 지금 기사에게 설명한 것은,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니, 도쿄의 번화가를 한 바퀴 돌아보게 해달라고 했고요, 그런 다음에 하찌오지로 가자고 했습니다.”

 

“아! 교포시구나 어쩐지…”

 

관영은, 차주혁에 느꼈던 묘한 분위기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여기에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고 혹시, 미행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몰라서, 택시로 관광하는 것처럼, 빙빙 돌다가 갈 겁니다. 대략 한 시간 삼십분쯤 걸릴 겁니다.”

 

관영은, 미행이라는 말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미행이요?” 

 

“조심하는 겁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 혹시나 하는 거죠.”

 

차주혁은 어디론가, 몇 번을 전화를 걸어 점검하는 듯했다.

 

때로는, 한국어로 때로는, 일본어로 했다. 몇 번의 점검 끝에 결정을 내리듯, 말했다.

 

“됐습니다. 이제 가시죠.”

 

택시가 중심지를 벗어나는 것 같았다 점점 외곽으로 가는 것 같아서 관영은, 슬쩍 의구심이 들었다.

 

“회장님이, 호텔에 묵으시는 거, 아닙니까?”

 

“호텔에 묵으시는 거 맞습니다. 오늘은 확실히 눈을 피하기 위해, 좀 외딴곳으로 장소를 정했습니다.”

 

관영은,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디입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하찌오지 라고, 후지산 쪽으로 가다보면, 여기 사람들이 등산을 많이 가는 카카오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 입구 부근입니다.”

 

관영의 표정이, 여전히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는지, 덧붙여 설명을 했다.

 

“사실은 제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호텔은 너무 눈들이 많아서, 누추하지만, 저희 집으로 정했습니다.”

 

관영은 이해가 됐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만나려는 목적이 무얼까?’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나를 면접 보겠다는 건가? 아니면, 나에게 보험을 들겠다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다른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뭘까?’

 

택시는 점점, 외곽으로, 논밭을 지나치며 한참을 갔다.

 

차주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저기입니다.”

 

일본식 2층 단독주택들이, 산을 등지고 여러 채가 있었다.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집 앞에 택시가 멈췄다. 팁을 넉넉히 주었는지, 택시기사가 유난스레 황송해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먼데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집들이 규모가 있고, 한눈에도 부유층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높은 담과 잘 가꾸어진 정원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들어오십시오!”

 

차주혁이 철문을 밀며 말했다. 문을 미리 열어 놓았던지, 인터폰이나 벨도 누르지 않고 그냥 들어섰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나고, 현관을 지나 거실을 지날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나무계단을, 올라 2층에 도달할 때까지도,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기이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때, 문이 열리며 웃음 띤, 낮 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와, 본정신으로 돌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찬주회장이다. TV에서 보던 모습그대로의 정장 차림이다.

 

“아! 회장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관영입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여기가 안전할 것 같아서…자! 앉으십시다.”

 

15평 쯤 되는 2층은, 아이보리색 양탄자가 깔려있었고, 안쪽 큰 창가에 고풍스러운 탁자와 의자, 네 개가 있을 뿐, 다른 가구는 거의 없었다. 관영이 잠시 실내를 둘러보니, 거실 오른 쪽 출입문이 병풍으로 가려져 있었다. 임시로 문을 가려놓은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할 때, 차주혁이 병풍 뒤에서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하얀 도자기 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카스테라 두 개가 있는 접시를 내려놓고 병풍 뒤로 사라졌다.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우선 차 한 잔 하시지요. 선친께서 즐겨 드셨던 교쿠로 라는 차인데요. 우리말로는 옥로차라고 합니다.”

 

김찬주회장은 주전자를 만져, 온도를 감지한 후, 관영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차를 따르는 동안, 관영은 김찬주회장을 찬찬히 관찰했다. 평범했다. 너무 평범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호는 좀 다를 줄 알았었다.

 

“저도 차를 즐기는 편이지만, 녹차류의 풍미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미국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커피향이 제일 좋더라고요”

 

김찬주회장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관영은 그의 어감에서, 어렴풋이 나른한 느낌을 받았다.

 

“회장님!… 외로우시지요?”

 

관영은 자신의 질문에 때늦은 후회를 했다.

 

김찬주회장은, 순간, 당황한 듯 관영을 바라보다가 차츰 웃음 띤 얼굴로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게 보였습니까? 허허허!…외롭지요. 누구나 다 외로운 거 아닙니까? 의원님도 외로우실 텐데요. 때로는 사는 게 지겨울 때도 있고요.…이상하게 얘기방향이, 허허허…”

 

“맞습니다. 저도 늘 외롭습니다.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고요, 거의 매일 밤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밤에 불을 끄고, 흔들의자에 앉아서,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옳게 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시간이 가장 오붓하고, 소중하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시간, 하하하…초면에 너무 나갔나요?“

 

관영은, 가급적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김찬주회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 깊게 들었다.

 

“아! 의원님도 그러시군요. 머잖아 대통령이 되실 분이신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김찬주회장의 말을 자르고 관영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저는 대통령 감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야! 그래도 하실 수밖에 없잖습니까?”

 

김찬주회장은, 관영의 어투가 단호해보였지만, 겸손일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회장님은, 제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예상을 하시고,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어쨌든, 이렇게 만나 뵈었으니, 말씀은 들어봐야겠지요. 한번 말씀을 해 보시지요, 저도 드릴 말씀을 준비해 왔습니다.”

 

“아! 그러실까요?…시간이 빠듯하시지요?”

 

“아닙니다. 저는 오늘 회장님 뵙는 것 외엔 일정이 없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러면 시작해 보지요. 시작하기 전에, 한사람을 합석해서, 같이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 만남의 의견을 낸 사람이 차 비서입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만, 제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얘기하긴 좀 그런데,… 아마 제 동생일 겁니다. 선친께서, 이곳에서 배다른 동생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제게, 저 친구를 잘 돌봐 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마, 저 친구도 말은 하지 않지만,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아!…”

 

“괜찮은 사람이고 조심성 있는 사람입니다 같이 말씀 나누도록 해주시지요.”

 

“예, 그렇게 하시지요.”

 

“고맙습니다.”

 

김찬주회장은 병풍 쪽으로 나가더니, 이내 차주혁을 뒤에 달고 들어왔다. 차주혁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자리를 잡았다.

 

“자네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을, 말씀드렸네. 이제, 자네가 자초지종을 설명해보게”

 

“예”

 

차주혁은, 막상 말을 하려하자, 말문이 쉽게 트이지 않는지, 낮게 목을 가다듬었다.

 

“회장님께서는, 일본에 가끔씩 들르십니다. 그리고 지금같이 년 말 년 시에는 거의 일본에서 지내십니다. 그럴 때 마다, 제가 많은 말씀을 들어 드립니다. 말씀을 반복해서 많이 듣다보니, 어렴풋이나마 회장님의 애로사항들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알게 됐다고 해도, 제가 어떻게 해드릴 능력이 없으니, 마음만 어지러웠습니다. 회장님이 일본에 계시지 않을 때는, 저는 별로할 일이 없습니다. 매일 한국 신문 몇 개를 읽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러다가 정관영의원님의 근황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 의원님이 쓰신 책 ‘가난을 부추기는 것들’ 도 읽고, 회장님께도 드려서, 회장님도 다, 읽으신 걸로 압니다. 그리고…”

 

김찬주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됐네! 이젠 내가 함 세…정 의원님! 좀 놀랬습니다. 정 의원님은, 빈손으로 시작하셔서, 대기업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국가에서는 사양 산업이라고 포기한 섬유산업을 살려내시고, 국민 모두에게 신임까지 얻으셨습니다. 특히, 전 계층에게 고루 지지를 받는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부러웠습니다.”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회장님 사업에비하면 소꿉장난에 불과합니다.… 그냥 재정그룹 얘기만 하시죠?”

 

관영은 이마를 짚으며 부끄러워했다.

 

“아! 그럴까요. 우리 재정은 조부께서 창업을 하시고, 선친께서 사업을 확장시키셔서, 글로벌화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좀 더 다변화하고, 새로운 것, 몇 가지를 개발해낸 것뿐인데, 그것도 제가한 게 아니고, 미래기획 팀과 연구팀들이 다해 놓은 것을, 제가 결재한 것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결재를 하려면 뭘 알아야 하는데, 제가 첨단제품에 대하여 제대로 알 턱이 없잖습니까? 지금은, 여러분야가 융합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보니, 한 제품에 대해서, 분야별로는 알아도 전체적으로 알기 어렵고, 그것은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를 아는 연구원은, 아주 드뭅니다.”

 

“아! 그렇겠네요.”

 

“연구원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몇 년씩 연구를 하다가, 특허 문제나, 규제법 또는, 정치문제로 발목 잡히는 경우, 이럴 때, 조속한 해결방법을 찾다 보면, 불가피하게 편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세월이지나, 경쟁력을 잃거나, 물거품이 되니까요. 편법동원도, 불가피한 선택이고, 의도적일 수밖에 없지만, 정말 모르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돕는답시고 망치는 경우도 있고, 결국 최종책임으로, 기업인들이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기업입장에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검사도 모르고, 판사도 모릅니다. 기업운영 전문가인 저도 모르는데, 저들이 알리가 없죠.…사실 감옥살이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룹대표인 제가, 감옥살이를 해야 할 것을, 저 대신 들어가 있는 분들입니다. 총수인 저를 보호하느라 총대를 멘 거죠.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들 중에는 제 선친 뻘 되시는, 창업 초기부터 기업과 고락을 같이 하시던 분들도, 계시다는 겁니다. 이미 연로하신 분들이고, 한때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신 분들인데,…염치없는 노릇입니다.”

 

김찬주회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관영이 입을 열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회장님에게서 희망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따듯해졌습니다.”

 

김찬주회장과 차주혁은 닮은꼴로 관영을 바라보았다.

 

“회장님도 우리 보통사람들과 같이 여리고, 따듯한 심장을 가지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워낙, 큰 세계적인 기업집단의 총수이시라, 피도 눈물도 없고, 카리스마가 대단하신 분으로 생각하기 쉽잖습니까? 정말 회장님 말씀대로, 다 알고 기업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절세와 탈세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똑 같은 매출, 매입 갖고도 세금을 늘렸다 줄였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원님께서는, 세무서에 우리 회사 세무조사 좀 해달라고 신고를 하셨다면서요?”

 

차주혁이 끼어들었다.

 

“여러 번 했습니다. 우리 회사 회계담당하고 세무서 직원하고 싸움을 시킨 겁니다. 몇 번을 해봤는데, 우리직원이 이길 때도 있었고요. 조만간, 또 할 겁니다. 너무 오래 안했거든요. 하하 하!…”

 

김찬주회장도,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었겠네요. 우리는, 제대로 하려면 연중 내내 해야 될 겁니다. 그리고 기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자체시장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여기 일본도 1억3천만이나 되는데, 우리는, 겨우 5천만이니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키아의 몰락도 핀란드 인구가 일본 정도만 됐더라면, 저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겁니다. 핀란드는 인구가 겨우 500만인데, 그런 기업이 탄생됐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지요, 아무래도 자국시장이 이점이 많지요. 판매제약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되고요. 유통비가 덜 들고 애국심에도 기대할만 하거든요. 그래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우선적으로 보장 받으려면, 자국내수시장이 클수록 좋은데, 우리의 내수시장은 너무 적습니다. 중국은 아무리 큰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내수시장이 워낙 크니까, 자국에서 덩치를 무한정 키워서 세계무대로 나오니,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는, 공장을 돌리기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강성노조를 통한 끝없는 요구는 대처하기가, 거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노조의 행태를 생각해 볼 때, 영 자신이 없으니 해외로 나가는 거죠. 해외라고 노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노조보다는 덜 강성이고, 일단 해고가 우리보다는 쉽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자 해고는, 회사가 어려워도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해고를 남발할까 봐, 그러는데 일감이 있으면 해고할리도 없고, 해고를 쉽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채용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여러 공장에서 평상시 급여보다 1.5배를 주면서 초과근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해고가 자유롭다면, 초과근무 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건데, 일감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서 고용을 줄이고, 초과근무를 시키고 있는 겁니다. 적어도 몇 만 명의 일자리가 있지만, 채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관영은 집중해서 들었다

 

메모를 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회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회장님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네요. 하긴, 100개가 넘는 회사들을, 경영하시려면,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겠지요.”

 

김찬주회장은 잠시 창밖에 시선 두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행복이요? 그래도 행복하다고할 수 있죠. 제가, 그룹을 맡고나서, 다행히 그룹이 더 성장했으니, 행복하다고 해야겠지요.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압박감이 대단했겠지요. 지금도, 압박감은 여전합니다. 여기 일본에 있을 때는, 그래도 덜 합니다. 소소한 일상도 있고 이 친구하고, 밤에 록본기나 시부야 쪽으로 나들이도 가고, 나름 밤 문화라는 것도, 접해보고 합니다. 저하고 행복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좀 있고, 성취감이라는 단어가 가깝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룬 것 중에, 제 개인의 능력이나, 예지로서, 또는, 의지로써 성공한 게. 거의 없습니다. 제, 의견보다는 미래기획팀이나, 연구팀 또는, 감사실에서 수없이 검토하고 나서, 제게 와서 최종 승인을 받는데, 제가 결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들이 결단을 내리고, 저는, 묵인만 하는 꼴이라 성공을 해도 기쁘긴 하지만, 큰 성취감은 못 느끼는 편입니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삶입니다. 아이고! 이게 이런 얘기를 하려한 게 아닌데…죄송합니다. 모처럼, 대화를 하다 보니 별 애기가 다 나오네요.“

 

관영은 손 사례를 가볍게 쳤다.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을 열어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하고 싶던 말씀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감은 몰라도, 성취감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네요. ‘부자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요“

 

“버트란드 러셀입니다”

 

차주혁이 끼어들듯이 말하곤,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러셀이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했지요. 다들,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부자가 되면, 잠시 동안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이내 허무감에 맞닥뜨리게 되기 쉽지요. 그렇다고, 다시, 가난해지기는 더 싫고요. 회장님은, 허무감은 덜 느끼실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관영은, 김찬주회장에게 많은 얘기를 하도록 해서, 속엣 것을 몽땅 쏟아놓아, 후련해지면, 마음이 비워져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저는 날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삶이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 같은 것은 경험자체가 없었으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요. 따라서 가난의 고통이나, 부자가 된 뒤의 허무감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그런 것 보다는, 기업이라는 게, 성장이 멈추면 도태 되니까 끝없이 성장해야 되는 운명이라, 늘, 그게 벅차죠. 특히, 모든 조건이 우리보다 월등한 세계의 대기업들과 경쟁해야 되는데, 이길 예상확률로 치면, 늘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저들이 일본을 견제하느라, 우리를 잠시 등한시하고, 우리가 그 틈을 잘 파고들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서 무한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각종견제를 막거나 뚫기 위해서, 법무 팀을 글로벌화 하는 게, 급선무라 지금도 계속해서 강화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팀을 대폭 강화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갑니다. 당연히 생산원가가 높아지죠. 특허분쟁이 끊이질 않네요. 제품하나에 특허가 수백, 수천 개가 연관되니, 그걸, 다 어떻게 피하면서, 제품을 만듭니까? 피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특허도 지켜야지요. 에이! 그만 하렵니다. 이렇게 말씀만 들어도 머리가 복잡하죠?”

 

김찬주회장은 웃으며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쉽지 않겠네요. 제가 알기로는 법무 팀 변호사가 천명이 넘는다고, 어느 신문에서 읽은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관영은 붙들고 늘어졌다

 

“네! 아마 지금 1200명쯤 될 겁니다. 우리는, 적은 편입니다. 10000명이 넘는 회사도 있으니까요.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려면, 그 각국마다 변호사가 필요하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늘려나가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몇 백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큰 건은, 몇 개 안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10년이 넘는 것도 있고요.

 

다툼액수도 큰 것은 조 단위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업의 생사가 달린 싸움인 셈이지요.”

 

관영은, 알고 있었다. 속속들이는 알지 못 했지만, 전반적인 것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그러니, 그걸 다 어떻게 감당합니까? 게다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만들어내야 할 텐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실 겁니까? 이런 것은 비밀이지요?”

 

관영은, 거의 끄트머리에 왔다고, 생각했다.

 

“비밀이지요! 비밀이지만, 이 자리에서야 구체적인 것도 아니고, 이게 사실 기업으로서는 주구장창 생각해야 하는 제일 큰 문제죠. 단, 하루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는, 숙명 같은 겁니다. 전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몰두하고 있고, 누가먼저, 큰 것을 창안해서, 시장에 맞게 만들어 공급하느냐에, 매달리는 거죠. 요즘 떠오르는 것 중에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드론, 인공지능, 그리고 바이오산업이 있는데, 우리는 좀 늦었지만, 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도 하지만, 우리는, 크게 두 방향으로 목표를 잡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생명연장입니다. 앞으로, 이 지구에서 인류가 지속적인 삶을 영유하려면, 반드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석유에 의존하는 에너지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뽑아 쓸 수 있는 양의 바닥도 문제이지만, 석유로부터 오는 혜택보다는, 궁극적으로는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을, 지구인들이 확실히 알아차린 겁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그동안 수출한 자동차, 조선, 전자들을 다 합친 수출액보다, 에너지 수입액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사용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에너지를 어떻게, 그것도 청정에너지를 무한대로 확보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여러 방법을 검증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 한 가지는 건강관련 분야인데요. 인류가 추구하는 과학의 최종목표의 종점은 인간의 영생입니다. 영생까지는 요원한 꿈같은 얘기이지만, 우선은 생명연장, 그것도 젊고 건강한 생명연장이 모든 인류의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요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추구해온 욕망 같은 겁니다. 인류탄생의 역사가 300만년 쯤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 인간의 수명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00여 년 전쯤엔, 평균수명이 40세 정도였습니다. 그 후,현대과학이 탄생하면서, 의학도 눈부시게 발전해서,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세가 되었습니다. 불과 100여년 사이에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인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잖습니까? 물론 변수는 많아요. 혜성충돌로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거나, 세균의 공격으로 인류의 멸망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실, 재앙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기업은, 이런 재앙을 모두 극복되는 것을 전제로,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를 하는 것이지요. 여하튼 에너지와 생명연장을 화두로 삼고, 그런 것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종류의 사업아이템을 찾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급한 것은 금융업입니다. 이게 사업 같지 않으면서도 진짜 사업입니다. 직접 무엇을 만들지 않아도, 그 이상의 수익도 낼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품을 기껏 만들어 내느라 고생만 하고, 열매는 금융업자가 독차지하는 경우를 막아내기 위해서도, 금융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긴 급한 것이 그것뿐 이겠습니까? 수없이 많지만, 오늘은 그만 하렵니다. 차비서! 나, 오늘, 너무 말 많이 했지? 이거 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타국까지 와서 만났는데, 서로 할 얘기 다하고, 듣고 싶은 얘기 다 듣고 해야, 수지 타산이 맞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또, 우리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또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 같은 거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저라는 사람이 혹시, 대통령이 되면, 우리 같은 기업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제발 사업에 방해 좀하지 말고,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죠? 하하하!…비슷합니까?”

 

“허허허! 그렇게 정리를 하시네요. 그렇죠! 그런 셈입니다. 꼭 해주십사 보다는, 그냥, 이해라도 해주시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관영은, 잠시, 뜸을 들이듯, 두 손바닥을 가볍게 비비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대통령이 안 될 겁니다.”

 

김찬주회장을 정면으로 보았다

 

“무슨 말씀을,…아까도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아직 2년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 저의 지지도가 유지될는지도 모르겠고, 설령 유지된다고 해도, 저는 대통령자리는 사양해야합니다. 그래야만할 사정이 있습니다.”

 

“사연이 있으시군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네! 회장님이 꼭 도와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회장님에게도,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세계 인류사에 없었던 일을, 우리나라에 실현해 보려고 합니다.”

 

관영은, 또, 손바닥을 비비며 생각을 정리했다

 

김찬주회장과 차주혁은 궁금한 중에도 애써 태연히 기다렸다

 

“세계최초로 자본의 양극화를 해결한 나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회장님 같이 재산이 많은 사람들 재산을, 빈곤층으로 이동시켜서, 부유층과 중산층만 있고, 빈곤층은 없는 나라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아! 그게 무슨? …강제로 말입니까?”

 

차주혁이 어이없어 하며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강제는 아니지만, 의무적인 기부라고 할 수 있죠. 그에 상응하는 보상도 있고요. 우선 좋은 것, 두 가지만, 먼저 말씀을 드려서 분위기를 훈훈하게 해야 되겠네요. 제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양극화가 해결이 되면, 회장님이 걱정하시는 일중에, 기업인 감옥살이문제, 상당부분 해결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인구가 적어, 내수기반이 약한 것도 지금보다는, 확실하게 나아질 거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요 간접적인 것은, 회장님과 그룹의 이미지가 아주아주 좋아진 다는 것과, 회장님 자신이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시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회장님! 회장님 그룹에서 내는 준조세가 연간 얼마나 됩니까? 거 왜, 권력층이나, 측근들이 운영하는 단체 등에 내주는, 찬조금, 재단출연금. 성금, 헌금, 그리고, 재난구호금, 불우이웃 돕기 성금, 장학금, 등 많잖습니까?”

 

“글쎄, 갑자기…아마 천억은 넘을 것 같고…아! 간단히 천억은 넘겠는데요. 한 건에 300억 짜리도 있으니 한 1∼2,천억 되나?”

 

“그렇게 많은 기부를 하는데도,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룹이미지는 어떤지 아시나요?”

 

“별로 안 좋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여기 이 차비서도 인터넷 댓글들을 보고 말합디다. 그러나 그 댓글들은, 대부분 근거 없는 비난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업을 크게 하다보면 별의별 일들이 있게 마련이고, 원래 재벌들은 욕먹는 게, 정상 아닙니까?”

 

“정상 아닙니다. 사업도 잘 하시면서, 기부도 많이 하시면, 당연히, 칭송을 많이 받아야 정상입니다. 회장님은 사업도 잘 하시면서, 기부도 많이 하시니, 칭찬을 많이 받아야 마땅한데, 결과는 그렇지 않으니, 무엇이 잘못 됐을까요?… 제가 말씀드리죠. 기부의 방향을, 잘못 잡으신 겁니다. 그 연간 기부금 1∼2천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직접 나누어 주셨다면, 그것도 매년 그렇게 하셨다면, 지금쯤, 회장님과 그룹이미지는 하늘을 찌를 만큼, 칭송을 받고 있을 겁니다. 회장님네 그룹전체가 내는 세금이 국가예산의 20% 가까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고, 기부도 많이 하고 있는데도 누구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반감을 갖는다면,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직접이 아닌, 간접이기 때문입니다.”

 

“아! 당연히 세금을 국가에 내야지요.…직접이 좋다는 거죠?”

 

관영은 드디어 본론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회장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들 즉 기업인들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감옥가게 되는 것, 그리고 내수시장이 너무 작아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해결 내지는 완화 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이미지도 180도로 확실히 좋아질 거고요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들까지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관영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허!…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고요?”

 

김찬주회장은 반신반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있습니다. 이게 그 아이디어를 대략 정리한 겁니다. 제가 제목을[한 생각1.2]라고 붙였는데요. 한번, 검토해 보시지요. 저는 대한민국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사회적 문제, 또 하나는 정치적문제로 보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사회적 문제는 경제양극화이고 둘째 정치적 문제는 대통령선거제도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만 하면, 대한민국은 훨씬 건강하게, 꾸준히 발전해나갈 수 있고, 회장님께서 안고계시는 문제들도 상당부분 해결 될 거라고 믿습니다.”

 

관영은[한 생각]을 설명했다.

 

장훈과의 토론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확립된[한 생각]을 혼신을 다해 설명했다.

 

[한 생각]을 생각하게 했던 원인의 자살문제에서부터 기부권 거래소에 관한 것까지 빠짐없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허장훈의원에게 결정적인 순간 대통령자리를 양보할 것이라는, 밀약에 대해서도, 과감히 털어놓았고, 덧 붙여서 후보사퇴 3일 후쯤 지지성명을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김찬주회장과 차주혁은 줄곧 집중해서 듣다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팽팽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긴장된 침묵의 끝에서 김찬주회장의 한 마디가 툭 던져졌다

 

“의원님께서,…소설책을 너무 많이 읽으신 거 아네요?”

 

탁자에 눈길을 둔 채, 던진 말이었다.

 

순간, 관영은, 까마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답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첫음절이 생각나지 않았다. 

 

침묵을 깬 건, 김찬주회장의 건조한 목소리였다.

 

“일단[한 생각 2]도 들어나 봅시다.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관영은 비틀거렸다. ‘아! 이건 비아냥이다.’

 

처음으로, 김찬주회장에게서 카리스마를 느꼈다.

 

평범하던 모습 속에, 감춰져있던 냉철함에 자신이 밀려나고 있음을 느꼈다. 순간 자신도 냉철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첨 민주주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관영도 던졌다

 

“추첨?…추첨민주주의?…대통령을 추점해서 뽑자는 겁니까?”

 

김찬주회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 놀래키는 재주가 있으시군요.…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생각한신 겁니까?”

 

김찬주회장의 어투에 냉기가 서려 있었다.

 

“학교는 조금만 다니고, 책은 많이 읽고,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연민을 깊게, 오랫동안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되, 자신의 영달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또박, 또박, 한 소절씩 끊어서 던졌다. 비아냥에 대한 반격이 되었을까?

 

김찬주회장은 먼 곳을 응시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 참후, 자세를 바르게 하며,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일단 말씀을 해보시지요.…여기까지 오셨는데…”

 

관영도 감정을 누르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아주 천천히 [한 생각2]를 설명했다

 

김찬주회장의 표정이, 점점 누그러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영은[한 생각2]를 설명이 끝나고 이어서 덧붙여 말했다.

 

“회장님은 제가 망상에 사로잡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추첨민주주의는 제가, 어느 날, 불쑥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부터 있었던 제도입니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결정할 때도, 태종 이방원이 종묘에서 신하들과 함께 동전던지기로 결정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김찬주회장은 입은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주억거리다 툭 한마디 했다.

 

“우리수도 서울이, 동전던지기로 결정 됐다고요?”

 

“그렇습니다. 태조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나, 거듭된 왕자의 난으로, 둘째임금인 정종 때, 다시 개경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뒤, 다시 한양으로 가고자했으나, 개경에 뿌리를 둔 신하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한양도 아니고, 개경도 아닌 무악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나와, 정국이 어지러워지자, 태종은 신하들을 데리고 종묘에 들어가, 척전, 즉, 동전던지기를 한 겁니다. 동전 양면을 길, 흉으로 정하고 세 번씩 던졌는데, 개경과 무악은 2흉1길이었고 한양은 2길1흉으로 한양이 최종 결정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된 수도가 장장 600년이 넘었습니다. 이만하면 잘 결정된 것이 맞잖습니까?“

 

“허허! 참…솔직히 대통령선거의, 예선 직접투표와 결선추첨은, 상당히 와 닿습니다. 그런데, 둘 다 너무나 획기적인 것이라, 실현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연구하시고, 대통령자리도 내놓으시며까지, 진력하시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워낙 엄청나서 의원님!…여하튼 대단하십니다.”

 

“회장님! 이 세상은 역설과 파격에 의해서 발전해왔잖습니까?

 

처음엔, 다 엉뚱하다는 취급을 받다가, 나중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거, 아닙니까?”

 

관영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은 낭패감이 들었다.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됐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시죠! 서류 내용은 제가 잘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잘 지켜질 겁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던져진 회담 종료선언에 관영은 아연했으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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