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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천황 왕력 내 신라세력의 약진

천황계보는 백제계 하나의 만세일계로 보이지만 실은 신라계-고구려 계 왕도 섞여있어

홍순주 역사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9/12 [10:53]

▲ 홍순주   역사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백제는 온조가 세우고 그 혈통 들이 만세일계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한개의 왕력 안에는 두개의 왕권 세력이었던 온조계와 비류계의 왕들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황 계보는 백제계 하나의 만세일계로 보이지만 실은 신라계(천무 천황)와 고구려 계(현종) 왕도 섞여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신라계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건은 대화개신 및 임신의 난에 이은 천무 천황의 등장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645년에 왜열도에서 일어 난 정변을 대화개신(大化改新, 다이카노 가이신)이라 한다. 이는 백제계 소아(蘇我)씨 대신 세력이 커지자 중대형(中大兄, 나카노 오오에) 황자가 이를 제거하기 위해 등원겸족(藤原鎌足,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과 함께 왜열도 나라 아스카 지역에 신라세력을 끌어들인다.

 

이 때 신라에서는 대해인(大海人, 오오아마)으로 나오는 신라 귀족 김다축 장군이 이끄는 신라 지원군을 파견하여 나라 아스카 군을 제압하고 소아입록(蘇我入鹿, 소가노 이루카) 대신을 제거한다. 이 사건으로 백제계 황극 여왕(의자왕의 여동생)이 물러나고 효덕 천황이 새로 등극하게 된다.

 

그런 후 김춘추가 왜열도로 들어가서 당나라 인 고향현리(高向玄理)를 국박사로 세우고 당나라 유학과 승려 들이 주동이 되어 신라식 정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660년에 멸망한 후 은솔 부여복신과 흑치상지 장군에 의해서 다물전쟁(多勿戰爭, 백제 복국)이 3년 간 진행된다. 이 때 왜열도에서 백제 왕으로 온 부여 풍왕(의자왕의 아들)을 군사지원 하였던 중대형 황자(의자왕의 또다른 아들 부여 용)가 마지막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대패하여 백제 복국이 무산된다.

 

이로써 중대형 황자가 668년에 제 38대 천지 천황(일본서기 식 이름)으로 등극한다. 그런 후 2년 뒤 670년 경 일본(日本, 히노모토)국을 세우는데 이는 <해 뜨는 땅>이라는 의미로 백제인들이 스스로 불렀던 국가 명이었다.

 

즉 일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개의 나라가 아니라 백제 귀족 과 유민 들이 왜열도로 도피해 들어가서 세운 <또 다른 백제국> 의 별칭이었던 것이다.

 

그런 후 앞서 일본을 세운 백제계 천지 천황이 672년에 급사하자 이후 왕권을 두고 신라계 대해인(일본서기 천지의 동생으로 위장)과 천지의 아들 대우 왕자(나중 홍문 천황으로 추인)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데 이를 임신 난(壬申亂)이라고 한다. 신라 장수 대해인이 대우 왕자를 물리치고 제 40대 천무 천황 (673~686)으로 등극하게 되자 백제계 정권에서 신라계 정권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천무 천황 당시 일본서기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백제 세력이 일본에 온 것을 감추기 위하여 앞부분에 신대기(神代記)를 은유적으로 기록하여  놓았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일본 만엽집(萬葉集, 759년 경 작성)의 뿌리가 신라 향가로부터 나왔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홍순주 역사칼럼니스트.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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