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미국무대에서 성공한 걸그룹과 프로듀서

-미국CBS TV ‘에드 설리번 쇼’ 22번 출연한 김시스터즈

박정례 기자 | 기사입력 2020/09/10 [11:23]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보폭을 넓혀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든 개척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개척자의 길은 십중팔구 수많은 걸림돌로 인한 가시밭길, 그중에서도 해외 진출과 같은 낯선 곳으로의 모험은 이중 삼중의 고충이 뒤따르곤 합니다.

 

▲박정례 기자

 2009년도에 JYP의 걸그룹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위해 용감하게 나섰고, 뒤를 이어 소녀시대, 보아, 그룹 엑소, 씨엘 등이 잇따라 미국 진출 시도를 했다지요. 초창기 시도는 그리 큰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선제적이며 능동적인 도전은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2년도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수 싸이가 성공적으로 미국 무대에 서게 됩니다. 싸이의 경우 선() 현지 진출 후 위치 확보를 기대하는 식의 방법을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영상이 널리 퍼져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을 때 아일랜드 레코드소속의 유명 프로듀서인 스쿠터 브라운 쪽이 싸이의 영상을 재밌게 보고서 콘텐츠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동포 이규창 씨를 통하여 싸이 측과 접촉한 케이스였습니다. 이후 방탄소년단을 위시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다수의 K-Pop 예인들이 위상을 높이고 입지를 굳혀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K-pop에 대한 희소식은 금 번 2020 여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디스코 팝 장르 곡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확인시켜주고 있으니까요.

 

60,70,80,90년대 매번 해외 진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초창기 해외 진출 시도라야 대부분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만, 거짓말 보태서 연예인들의 해외 진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국내 팬들의 묻지 마응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격 향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 현실과 기대감을 분리하지 않은 채 이성적인 사고는 접어두고 애국이 따로 있나? 해외 진출을 한다는데, 말로 부조하고 박수로 일조하면 서로 좋은 일인 거지!”라는 식의 단순, 명쾌, 순진한 정서가 작용한 때문이었습니다.

 

집단으로 발현되는 군중심리는 때로 무조건적일 때가 있잖습니까? 축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죠. 우리 선수가 골을 넣기라도 하면 온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환호가 쏟아지고 상대에게 골을 먹으면 갖은 야유와 한숨이 파도를 치듯이 뒤덮습니다. 승리하면 축제 분위기요 지게 되면 그야말로 뒤끝 작렬인 거죠. 골인했을 때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려고 작심했던 희망이 사라지는 판이니 애먼 한탄만 쌓이는 거죠.

 

연예인들을 소비하는 심리나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태도나 오십 보 백 보입니다. 당사자들은 설레발, 순진한 팬들은 묻지 마 응원, 언론과 방송들은 밑질 것도 없고 해될 것도 없다는 생각해서인지 폼 날 것 같은 뉴스라 생각되면 소나기 퍼붓듯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되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말이죠. 이런 패턴은 자주 반복됐습니다. 입으로는 기와집 열댓 채 지었다 허물었다를 누군들 못 하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계은숙 씨가 일본 가요계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죠. 그러다가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김연자 씨를 꼽을 수 있고요.

 

옆 나라 일본 진출만 해도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미국에 진출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 진출이 쉬웠겠습니까? 그런 환경에서도 김시스터즈가 성공했다더라 정도는 바람결에 꽃잎 흩날리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작곡가 겸 악단 장인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딸 들이었습니다.

 

김시스터즈의 리더인 김숙자 씨에 의하면 언니 영자 12, 본인 나이 9, 막내 여동생 애자가 8살 적부터 부친에 의해 구성된 가족뮤지컬 쇼로 시공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부친은 5~6세 난 자녀들에게 클래식에 가사를 붙인 아주 빠른 속도의 노래로 연습을 시켰다고 하는데, 이후 부친이 북한군에 끌려가 변을 당한 후 어머니 이난영은 대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악극단을 운영하려면 돈이 들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난영은 재능 있는 자식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됩니다. 체격 큰 미군들을 상대로 흥을 돋우고 리듬을 타며 공연을 하자면 아무래도 코러스도 필요하고 막간을 메꿔줄 막간 가수도 필요했을 테지요.

 

세 자매는 미군들이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불렀고 미 8군 무대에도 섰습니다. 부산 피난 시절 낮엔 학교에 밤엔 무대로 달려갔습니다. 모두 열 살 갓 넘은 나이에 말이죠. 출연료 대신 받은 것은 위스키나 양담배 소시지 같은 현물이었습니다. 이것을 암시장에서 쌀과 돈으로 바꿔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이후 키가 훌쩍 커버린 큰 언니 영자는 무용단으로 가고, 언니의 빈자리를 외사촌 민자로 채워 숙자와 애자 민자로 팀을 이뤄 김시스터즈의 멤버를 확정 짓습니다.

 

이난영은 자매들에게 가야금, 장구, 북 같은 우리 악기를 기본으로 바이올린과 트럼펫 등 서양악기와 한국무용에 발레 레슨까지 시켰습니다. 연습량을 다 채워야 바나나와 초콜릿이 간식으로 주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간식은 어린 나이에 혹독한 연습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보상이었는지 모릅니다. 안 그래도 자매들은 청음 실력이 좋고, 악기 습득력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갈고닦지 않으면 빛날 수 없습니다. 혹독한 훈련은 당연하고도 상시적인 일과였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톰 볼이라는 미국인 프로듀서가 한국에 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시아계 특집 쇼를 구상하던 중 김 자매들의 소식을 듣고 실력을 테스트하러 온 것입니다.

 

4주 계약을 하고 달려간 라스베이거스였습니다. 한국을 떠나 생면부지 타국에서 처음 해본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이 호평을 받은 덕분에 연장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선더버드 호텔 측과 연 8개월씩 15년간 전속 가수로 공연을 펼치게 돼요. 이들은 40분 공연을 매일 밤 2~4개씩 소화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줍니다. 20여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에 재기 발랄하고 속도감 있는 동작과 환상적인 화음에 높은 음악성을 가진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라스베이거스를 기반으로 점차 뉴욕과 시카고 등 미국 전역으로 입지를 넓히게 됩니다. 김 자매들의 활약상은 라이프지에 실리고 시카고 TV 가이드 지에는 표지로도 소개됩니다.

 

주급 400달러로 시작한 출연료가 이내 15천 달러가 되고, 급기야 2만 달러를 받는 팀이 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예인의 가치는 출연료가 증명해 주지요. 당시 한국인의 1인당 연 국민소득이 2천 달러였으니 김시스터즈의 수입이 얼마나 고액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라스베이거스 고액 납세자 6위는 이들의 공식적인 납세 기록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휴양과 여흥을 위해 모여드는 라스베이거스 공연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고는 가능치 않은 일이죠. 비틀스가 미국을 강타할 때 교두보로 삼았던 CBS 인기 TV <에드 설리번 쇼>에 김 자매들은 무려 22번 출연하는 기록을 세웁니다. 이난영은 63년도에 도미하여 딸들과 함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 트로트 가수로서는 미국 최고의 메이저 쇼 무대를 밟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람일 겁니다.

 

트로트 양식이 정립된 시작점에서부터 일세를 풍미했던 가수 이난영, 그 자신 재즈와 블루스 장르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미국 무대에서도 먹힐 수 있는,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에 춤 실력까지 갖춘 걸그룹을 조련한 엔터테인먼트 계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최초로 미국 무대에 진출하여 성공 가도를 달린 걸그룹은 김시스터즈이고 그들을 길러낸 최고의 프로듀서는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람 그 이난영이었습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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