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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TV의 다른 길...광고의 덫에서 탈출하기

김유열 EBS 부사장 | 기사입력 2020/07/11 [11:37]

▲ 김유열   EBS부사장  ©브레이크뉴스

요즘 지상파 사업자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방송사별로 대표가 직접 나서서 경영혁신안을 내놓고 있다. 대폭 인원 감축 계획부터 제작비 및 인건비 삭감 계획까지. 예전에 찾아 볼 수 없는 사즉생의 결기도 보인다. 경영 위기에서 EBS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EBS는 좀 더 색다른 대안을 포함한 경영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지상파 TV의 위기는 시청률 추락, 광고 매출의 급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EBS와 KBS는 좀 다르지만 MBC와 SBS 그리고 모든 종편 방송도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운영되고 있다. 한때 방송 광고는 황금알이었다. 한때 2조 4천억원까지 하던 지상파 광고매출이 지난해 1조 800억대까지 떨어지고 2020년에는 8천억원 대까지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황금기의 30%대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멈출 것 같지 않다. 

 

왜 그럴까? 지상파 TV의 광고 하락 현상이 콘텐츠 경쟁력이 하락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어렵기때문이다. 신문광고를 방송광고가 빼앗아 갔듯이 방송광고를 인터넷, 모바일 광고가 빼앗아 가고 있기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도 구글과 페이스 북 광고 점유율이 89%나 된다고 한다. 나머지 11%의 시장을 놓고 모든 미디어가 사활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콘텐츠의 경쟁력에 상관 없이 갈수록 이런 전이 현상은 강화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대개는 착각을 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돌아가고 있다. 헨리 포드의 말처럼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리는 말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마부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드라이버가 될 것인가 선택의 순간에 많은 사람은 마부를 고수한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학한다. 그래서 더 속도를 내기 위해 자신과 말에게 동시에 채찍질은 한다. 아무리 빠른 말도 가장 느린 자동차를 따라가기 힘들다. 물론 자동차 시대 초기에 더 빠른 말이 있었을 지는 모르겠다.

 

다음 해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할 때 같은 현상이 일어 난다. 대개의 경우 2017년에 했던 대부분을 2018년에도 한다. 2019년도 2018년의 연장선이다. 2020년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출 용기와 결단이 아니면 2021년, 2022년, 2023년, 2025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보고자는 아니라고 보고하고 CEO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보고서의 미사여구가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보고자와의 긴밀한 신뢰가 혁신을 막는다. 유능한 마부는 유능한 말을 믿는다. 

 

내년에 광고와 콘텐츠 판매 사정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결국 자동차 시대에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는 것과 같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시대가 아니다. 콘텐츠를 혁신하면 금세 광고가 호전될 거라 착각한다. “미스터 트롯”과 “사랑의 콜센터”로 기적 같은 반전을 보이고 있는 TV조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광고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악화하는 속도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더 나아지지 않을 광고 시장을 우리만 예외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판단하면 근본적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인의 25% 광고 차단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TV시청 중에도 광고가 나오면 채널이 돌아간다. 그래서 중간 광고를 하지만 중간 광고도 대세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중간광고가 조금은 광고매출을 호전되겠지만 대세를 거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신문 산업도 광고에 집착하다가 망했다. 신문과 잡지는 구독경제의 효시 격이다. 그런데 언제가 부터 신문은 광고에 의존하고 말았다. 고도성장의 산업화 시대에 광고는 넘쳐났다. TV가 광고를 빼앗아가도 신문에 광고할 여력이 있었다. 구독자 보다 광고주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구독할 가치는 떨어지고 광고할 가치가 올라갔다. 신문은 광고 때문에 더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신문에 끼어 오는 전단지 광고가 수두룩하다. 광고인지 기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기사도 늘어났다. 심지어 하단엔 광고를 싣고 상단엔 기사를 싣는 모랄 해저드도 있다. 광고는 독자를 신문에서 멀어지게 했다. 

 

“지불할 가치가 있는 기사”에 목숨을 거는 정신과 문화와 시스템은 무너졌다. 광고의 덫에 빠지 않았다면 신문의 주인이 광고주가 아닌 독자가 되었다면 디지털 혁명기에도 신문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전혀 다른 신문이 있다. 뉴욕타임지다. 디지털 전환기 즉 자동차의 시대에 마차도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지는 “지불할 가치가 있는 프리미엄 디지털 콘텐츠(기사 포함)”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성공했다. 2019년에 디지털 콘텐츠 판매 수익이 전통적 광고 수익을 앞질렀다고 한다. 연간 1조 2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세계경제가 위험 상황에서 언택트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그 수익이 더 확대될 전망이라 한다. 정기 유료이용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불황이란 그늘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치 있는 것에 지불한다. 광고주가 대신 지불할 콘텐츠보다 자신이 지불할 콘텐츠에 더 매력을 느낀다. 파이낸셜 타임지도 이렇게 성공했다. 이코노미스트도 그렇다. 

 

디지털 전환기에 광고가 방송과 신문 미디어 산업에 있어 독이 되고 있다. 그동안 광고는 마약과 같았다. 이용자는 공짜로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었다. 

 

TV가 광고를 딜리트한다고 가정하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딜리트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TV 광고 총량은 결코 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영업팀이 다이나믹을 발휘하고 제작자가 창의력을 발휘해도 대세를 뒤집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뒤흔들만한 킬러 콘텐츠는 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고를 딜리트한 넷플릭스를 보라. 이미 약 연간 30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예정이고 매년 20조원의 콘텐츠 투자를 하겠다고 한다. 광고에 대한 집착을 딜리트하는 즉시 그 자리를 지불 가치가 있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차지할 것이다. 광고 수익이 아니라 “구독 수익”에 더 집중할 공간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의 수익이 더 중요하다. 누구도 당자의 익숙한 수익을 포기할 수 없다. 전략을 이동하면 누구나 불편해 한다. 방송사에서 사람 하나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방식에 집착한다.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 투입되는 리소스를 절대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레짐을 구축한다. 오너가 없는 공영방송사는 더욱 어렵다. 전략적 사고와 리소스의 전략적 이동이 불가능하면 혁신 또한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전략적 사고와 이동은 사치 같다. 모두 비용 절감에 혁신 방향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고를 딜리트한 사고를 하면 고객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지난 7월 8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언론 3학회가 주최한 “변화하는 미디어 지형에서는 공영방송 가치 확립”이란 심포지엄이 열렸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양대학교 정준희 교수의 말이 남는다. 지상파 사업자들은 고객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객을 모른다고 했다. 오로지 관념화된 시청률표로만 시청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뼈아픈 지적이었다. 시청자위원회도 있고 나름 직접 만나려 노력했겠지만 “고객을 만나지 않았다. 고객을 모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광고를 중심으로 그동안 살아왔는데 고객의 사고, 행동, 소비 패턴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시청자는 늘 관념화된 존재였다. 직접 만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일 것이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모든 이에게 무차별적으로 전파를 통해 콘텐츠를 쏜다. 누가 거기에 저격되는지 알 수 없다. 소득별, 연령별, 지역별, 성별, 학력별 인구학적 조사방법으로 시청률을 조사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다르다. 개별화된 고객의 개별적 취향을 모두 알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 미디어의 특성이다. ID로 접속해야 하는 모든 이들은 사실 그들의 별의별 정보를 모르는 새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생체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 지도 모르게 흘러가 우리의 모든 것이 파악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존이 TV를 보는 순간 쌍방향으로 사람의 표정, 우는지 웃는지 감정까지 수집하는 솔류션을 내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넷플릭스가 고객 개별 특성에 맞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팔고 있다면 TV는 광고주들에게 콘텐츠를 팔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한 광고 중심이 아니라 “콘텐츠와 서비스”를 중심으로한 개별에게 접근하고 어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EBS는 내년에는 광고와 책 판매가 호전될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갖고 내년을 설계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올해보다 더 악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다.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관점에서 “방송이 아닌 방송사”를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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