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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오월은 끝나지 않았고, 노무현 정신은 살아있고!

김태균 | 기사입력 2020/06/01 [15:27]

 

▲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재단

 

역사는 변화한다. 그런 변화 속에서 발전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열혈청년 고김상진 열사의 죽음을 앞에 둔 절규처럼. 5월은 붉은 장미의 계절.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 하지만 우리들 젊음에서 5월은 붉디붉은 죽음만이 있다. 1980년 우리가 고등학교 문밖을 나갔을 땐 오직 죽음의 공포에 짖눌린 거리였다.

 

군인들이 다방까지 총을 들고 들어와 일제 검문만 했다.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처럼 술 먹고 기행으로 젊은 날을 보내던 가 아니면 싸우던 가 둘 중에 하나인 선택의 기로에서, 토플 책을 배에 깔고 누워있다가도 짱돌을 들어야 하는 이중적 고해의 바다가 1961년 소띠들의 운명이었고, 아니 1980년대 젊음의 자화상이었다. 1980년 이른바 광주항쟁세대. 위로는 1970년 세대에 밀리고 아래로는 전대협세대에게 치인 중간세대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전두환 정권에 가장 많은 매를 맞은 세대이기도 하다.

 

5월이 갔다. 5.17 광주항쟁을 지나, 23일 소신공양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 27일 광주항쟁 진압과 29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청노제를 지나 산화공덕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나 6월이 왔다. 그리고 이제 해방 후 처음으로 그 수많은 죽음으로 이루어진 소신공양을 밑거름으로 소위 진보로 정치지형의 변화를 보지만 아직 5월을 편히 보낼 수 없는 마음은 여전하다.

 

정치 주체로서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 이제 반성할 시간이다. 되돌아봄을 통해 특히나 역사의 뒤안길을 진혼하며 아픔을 같이 하며 더불어 상생의 미래를 열 때이다. 누구를 죽여야 누가 사는가! 위안부 이 용수 할머니에 대한 비난을 멈추자. 그리고 그 아픔을 위한 상생의 정치 미덕을 펼치자. 그게 노무현 정신이다.

 

당신들은 잊었는가! 그때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력과 편승한 일부 친노들을. 폐족을 자처하며 내부에 총을 돌린 자들을. 정권을 넘겨주면 어떠냐하던 그들이 또다시 진영논리로 뻣뻣이 고개 들고 또다른 죽음의 광기를 내뿜는 판을 또 만들 것인가 묻고 싶다. 이제 대립의 진영논리를 더불어 상생의 논리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후일담이다. 2002년은 월드컵의 열기와 대선의 파란이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고 노무현 후보자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반란을 뚫고 대선국면을 주동적으로 풀어갔다. 당시 이기택 민예총 상임이사가 문화예술특보로 임명된 관계로 나는 주요 선거 활동을 도왔다. 그리고 이기택 특보와 같이 1123일인가 문화예술인 간담회를 대학로 호프집에서 만들었고, 그리고 주요 이미지를 구상하며 문화예술간담회에서 기타 치는 대통령을 연출했다.

 

바쁜 일정 가운데, 그날은 특히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협상을 하고 온 자리였다. 민예총 활동에 대해 참 의미 있는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란 덕담을 하고 평소 그가 좋아하는 사람 사는 세상에 태어나~”로 시작되는 어머니라는 노래를 같이 불렀다. 그리고 신경림 시인 등 주요 인사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준비한 상록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나는 TV에서 국악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데 난 절대 안 돌립니다~, 시간되면 꼭 판소리를 배우고 싶고요등 하신 말씀이 남는다.

 

그때 만해도 그에겐 내가 기억하기로 정무특보, 조직특보, 불교특보, 문화예술특보, 노동특보 후원회장 정도였다. 물론 시니어 그룹에서이다. 왜 노무현이 당선 되야 할 이유를 묻는 후배에게 한국사회에서 해방이후 현성된 모순 세력에서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는 말을 나는 했다. 일본으로 부터,기독교로 부터, 경상도로부터, 군대로부터, 미국으로 부터 등등 그래서는 민족과 우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좌우익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이다 나름의 소견을 말했다.

 

당선 후 격동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삼성전자를 북경으로 옮긴다는 칼이 정권 깊숙이 들어오고, 삼성이 내민 칼과 함께 시니어그룹이 밀리며 주니어그룹 중심으로 무게추가 옮겨갔다.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과 같이한 이들은 시니어들이다.

 

나는 나름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에서 판을 벌이며 그를 지켜봤고, 이른바 좌충우돌의 광경과 거대한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조리돌림 당하는 그를 안타깝게 봤다. 그리고 부엉이 바위에서의 죽음 다음날 김명곤 장관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 노제를 어찌할 지 구성해보라는 전화를 받고 만감이 교차했다.

 

노제연출팀.

 

모든 판은 그렇지만 나는 판을 짜면 민족적이다. 굿의 틀이다. 초혼- 모심- 나눔- 보냄의 과정에서 거대한 운구행렬을 어찌 맞으까 하는 고민을 했다. 태평소로 잔잔히 맞이하는 것, 전통적으로 왕을 보낼 때 의식인 상위복(上位復) 의식과, 그의 죽음을 다시 상생하는 즉 죽음과 삶이 만나는 민족혼례를 구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보내는 과정에서 수백의 풍물패와 그리고 수만의 하얀 천을 뿌려 보내는 의식을 구상했지만 마지막 부분은 포기했다.

 

당일 사회자 멘트를 보시고 김명곤 장관은 역시 아직도 시심이 살아있다는 말씀도 들었지만, 당일 사회자들과 조율과정에서 민족혼례라는 말 등 몇 가지 부분은 그들의 판단에 맡겼다. 그리고 당일 크레인을 타고 상위복 하는 과정에서, 내게 붉은 피가 묻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입었던 푸른 와이셔츠가 정성껏 접혀서 전해졌다. 그 옷을 정성껏 받아들고 김명곤 전장관에게 전달했다.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진행된 노제, 분노하고 이리저리 치받고 싸우던 김명곤 장관의 노제를 진행하기 위한 그야말로 혈투과정과, 크레인을 타고 올라 창망한 하늘위로 해동조선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복 복 복다시 오라는 외침과 함께 푸른 옷을 휘날리던 모습이 여전히 맴돈다.

 

그날 아침 또한 MBC로부터 영상관련 기타 치는 대통령사용해도 되냐는 말에 당연히 역사적 산물이므로 괜찮다 했다. 노제가 끝나고 서울역으로 향해 가는 운구행렬을 무대 위에 올라 보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 합니다눈물과 함께 떠나는 행렬을 보며 또 하나의 전태일이 가는구나 생각했다.

 

어느 돌맹이의 외침. 그런 수많은 돌맹이 들의 외침이 역사를 진보하게 한다. 이제 반동의 시대를 지나 자칫 또 다른 반동의 시대가 우려된다. 역사 발전을 위해 누구한테 원망도 없이 소신공양한 노무현 정신으로 회향(回向)해야 하지 않겠는가! 늘 푸른 5월을 위해menary12@hanmail.net

 

*필자/김태균

 

음악평론가, 전 국립극장 기획위원, 전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장, 삼청각 바람의 도학 작-연출 등 다수 작품 연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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