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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절세미인 처녀 향련(香蓮) 이야기

이법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2/23 [22:14]

▲ 이법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한반도에 불교가 국교(國敎)였던 신라시절, 서러벌(경주)땅에 불심이 돈독하여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관음경(觀音經)을 눈감고도 줄줄 외우고 뜻을 환히 아는 절세미인이며, 이름은 향련(香蓮)이라는 19세의 처녀가 살고 있었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전생(輪廻轉生), 즉 환생(還生)은 있는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상으로 다시 환생하게 되고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인가? 환생은 분명 있다는 사례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부지기수(不知其數)로 전해오는 데 환생의 근거의 하나로 나는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기이한 향련(香蓮)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서라벌의 어두운 겨울 하늘에서는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길을 사십대 후반의 부부가 머리와 어깨에 수북히 눈을 맞으면서 관음사(觀音寺) 일주문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부부는 관음사 법당에서 관음보살상 앞에 “부디 자식을 얻게 해주소서”하고 지극지성으로 백일기도를 해왔다. 이 날은 백일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남편의 성명은 박신(朴信), 부인은 설씨(薛氏)였다. 박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내리는 하늘을 우러르면서 탄식하듯 이렇게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 관음보살님은 자식 하나도 점지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

 

남편의 말을 들은 설씨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죄업이 무거워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소리 죽여 흐느꼈다.

 

부부는 서라벌 왕성 쪽에서 제법 토지가 있는 살림이 넉넉한 농부이면서, 조그마한 상점인 연꽃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신라국은 불교국이기 때문에 남녀 간에 연꽃을 사서 부처님 전에 공양드리는 것을 좋아해서 장사가 잘되었다. 부부는 불교 신도들이 사서 불전에 바치는 연꽃을 정성껏 만들어 팔면서 보람을 느끼며 사는 착한 부부였다.

 

눈길을 걸어 집이 가까운 마을 입구 쪽에 이르러 설씨 부인이 앞쪽을 손으로 가르키면서 놀란듯 말했다.

“여보, 저기 눈 속에 묻힌 것이 사람 아닌가요?”

 

“오-, 사람이 눈 속에 빠졌군. 어서 구해드립시다.”

 

눈 속에는 칠순이 넘어 보이는 노파가 눈구덩이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 위로 눈은 쌓여가고 있었다. 노파는 눈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기력이 다해 의식이 흐려져 가고 몸은 식어가고 있었다. 박신 부부는 황급히 노파를 구덩이에서 나오게 한 후 자세히 보니 노파는 걸인신세였고 더욱 딱한 것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박신 부부는 자비심으로 주저하지 않고 노파를 구하여 등에 업고 집으로 뛰었다. 따뜻한 방에서 박신부부의 극진한 간호로 노파는 의식을 회복했다. 노파는 앞을 못 보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하고 자신의 신세를 토로했다.

 

“나는 올해로 나이가 일흔 다섯인데, 자식도 없고 친척도 없답니다. 사십에 과부가 되어 오십에 두 눈마저 안 보이고…. 이렇듯 떠돌이로 이 마을, 저 마을로 구걸해 끼니를 연명한답니다. ”

 

노파는 섧게 울음을 터뜨리더니 이윽고 옷깃을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 슬픈 음색으로 ‘관음경’을 외었다.

 

설씨 부인은 놀라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자식이 없답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군요.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관음경을 잘 외우세요?”

 

“눈이 보일 때 어느 노스님께 관음경을 배웠지요. 관음경을 외우면 생사를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었지요. 나는 늘그막에 외롭고 슬프면 관음경을 외우는 낙으로 산 답니다. 지금은 관음경을 거꾸로도 외울 수 있는 걸요. 큰 절의 고명한 큰스님도 관음경을 거꾸로 외우시는 분은 드물걸요.”

 

박신 부부는 의지할 데 없는 노파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살자고 합의하였다. 박신이 노파에게 간청했다. “저희 부부가 할머니를 양어머니로 모셨으면 합니다. 돌아가시면 저희들이 장례도 잘 치러 드릴께요. 저희와 함께 사시면서 저희에게 관음경을 가르쳐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노파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그날로부터 노파는 하루 세 끼의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았고, 따뜻한 방에서 기거하며 밤이면 셋이서 관음경을 외우며 뜻을 가슴에 새기고 신심을 다졌다.

 

3년이 흘렀다. 어느 봄 날, 노파는 설씨 부인을 조용히 방안으로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오랫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이제 나는 이 집을 떠나갈까 합니다.”

 

설씨 부인은 깜짝 놀랐다. “저희들의 정성이 부족해서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더욱 정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떠나지 말라고 극구 만류했다.

 

“인연이 다해 꼭 가야 한다우.”

“혹 어디 가실 데가 있나요?”

“허허허 . 있고말고요.”

“어딘가요? 저희 집보다 나은 곳이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노파는 은은한 미소 속에 설씨 부인에게 말했다.

“주인댁 뱃속에 태어나서 은혜를 갚고 싶어요.”

“네? 어머나 별 농담을 다 하시네요.”

 

설씨는 얼굴이 홍안이 되어 남편에게 양어머니의 말을 전했지만 남편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노파는 자기 방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방석위에 단정히 좌선자세로 앉아 염주를 헤아리다가 스스로 호흡을 끊어 버렸다. 박신 부부는 놀랍고 슬퍼하면서 생전의 약속대로 후히 장례를 치르고 천도재까지 해드렸다.

 

그 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노파가 죽고 나서 설씨의 몸에 태기가 온 것이다. 부부는 노파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고 오직 관음보살의 감응으로 믿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박신부부는 천금과 같은 딸을 얻었고 이름을 향련(香蓮)이라고 지어 주었다.

 

향련은 성장할수록 보통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상선녀와 같은 미모와 모든 불경을 박람강기(博覽强記)하는 총기를 보였다. 큰 키에 은은히 미소 짓는 절세 미인같은 향련의 모습을 보면 감탄하여 천상의 선녀가 인간세계에 온 것같다고 찬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향련은 관음경을 졸아하여 남녀 친구를 사귀지 않고 오직 시간만 나면 관음경 외우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향련은 열 살 때부터는 불경을 혼자서 읽고 이해했다. 특히 선문답(禪問答0에 있어 서라벌의 고승인 대각선사(大覺禪師)도 쩔쩔 맬 정도였다. 또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어 서라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박신 부부는 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세음보살님이 선녀를 보내주신 게야.”

 

향련이 열여덟 처녀가 되었을 때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대각 선사를 만났다. 향련은 공손히 합장하여 예를 표한 후 대각선사에게 선문답을 했다.

 

“큰스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저한테 일전어(一轉語)가 있는 데요.”

 

“말해보아라.”

 

“법화경에 ‘용녀성도(龍女成道) 이야기에 의하면 용녀는 8세 때, 부처님께 보주(寶珠)를 바치고 득도하였다는데, 저는 열 살이 넘은지 오래인데, 보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성불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각선사는 진땀을 흘리면서 당황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것을 물으려면 선방으로 오너라.”

 

향련이 정색하여 목소리를 높여 대각선사에게 말했다.

 

“승속(僧俗), 산하대지(山河大地), 불법의 도랑이 아닌 곳이 없사온데 무슨 선방으로 오라는 것인가요? 제 질문에 어서 답해주세요!”

 

대각선사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향련은 대각선사를 향해 날카롭고 크게 “할!” 일할(一喝)을 해보이고는 대각선사가 걸치고 있는 금란가사(金襴袈裟)를 강제로 벗기려고 하니 대각선사는 황급히 사찰로 줄행랑을 놓았다.

 

향련은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대각선사가 주석하는 절에 올라갔다.

 

때마침 사찰의 승려들이 오직 부처님 오신 날에 밝히는 봉축등(奉祝燈)을 신도들에게 판매할 욕심으로 신도들에게 친절하게 하지 않고 오직 거만한 표정으로 등을 사라고 시주만 청하고 있는 것이 마치 시장의 장사꾼 같았다. 향련은 등을 팔려고 애쓰는 승려를 딱하게 보고 다가가 진지하게 물었다.

 

“스님, 이 절에 장식한 많은 등 가운데 어떤 등이 제일 밝나요?”

 

등을 판매하는 승려는 거만스럽게 대답했다.

 

“불전에 걸어놓은 등이 제일 비싸고 밝고, 소원을 빨리 이룰 수 있지.“

“비싼 등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해야 소원이 이루어져요?”

“그럼, 바싼 등을 켜면 부처님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시지.”

 

향련은 탄식하듯 한숨을 토하고는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봉축등은 많은데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는 심등(心燈)은 어디 있나요?”

“뭐? 글쎄…?“

 

향련이 정색하고 말했다.

 

“심등도 모르면서 거짓말로 신도를 속여 비싼 등만 팔아 돈만 벌려고 해요?”

향련은 얼굴이 블그락푸르락 하는 그 승려의 머리를 마치 장군죽비로 경책하듯 주먹으로 살짝 두 대 갈겼다. 그 모습을 본 대각선사는 껄껄 웃으며 화내는 승려를 진정시켰다.

 

웬지 시집도 가지 않는 향련의 나이 19세가 되는 가을에 양친은 속세의 인연이 다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례로 세상을 떠나갔다. 향련은 깊은 슬픔 속에 정성들여 양친의 장례를 치루고 양친의 극락왕생을 위해 부처님 전에 지극지성으로 천도재를 지냈다.

 

향련은 부모 없는 혼자가 되었지만 선녀처럼 아름다웠기에 서라벌의 지체 높은 집은 물론, 가난한 집에 결혼 적령기에 놓인 총각이 있는 집에서도 혼담이 무수히 들어왔다. 향련은 웬지 결혼에 뜻이 없이 은은하게 웃기만 하더니 어느 날 청혼자들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관음경을 전부 외우고 뜻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총각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따라서 총각들은 다퉈 관음경을 구해 외우고 올바르게 뜻을 해석하기 위해 과외 스승으로 사찰의 고승들을 찾아 배우는 열성을 보였다. 그 중에 어느 부귀한 집의 아들의 관음경 실력이 제일 좋다는 평판이 항간에 돌았다. 항간의 사람들은 향련이 부귀한 집의 며느리로 정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과연 향련이 언제 시집을 가는가?” 기대의 화제가 서라벌에 분분했다.

 

그러나 어느 날, 향련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방안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단정히 좌선자세로 앉아 염주를 한 알 한 알 돌리다가 스스로 호흡을 끊어 버렸다. 향련은 스스로 사세(辭世)하는 사행(四行)의 시문(詩文)을 화선지에 남겨 놀았으니 다음과 같다.

 

“나는 본래 속세 떠난 임천(林泉)의 벗이었는데

인연 따라 홍진(紅塵)을 밟았네.

이제 속세에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나는 십일면(十一面) 관음보살께 돌아가려네."

 

향련의 시신이 있는 방안은 이 세상에 없는 향기가 가득하였다. 관음경을 외우고 뜻을 해석하던 총각들은 청천 벽력같은 슬픈 사건으로 목을 놓아 울며 애통해 했다.

 

향련이 남긴 시문(詩文)의 소식을 듣고 확인한 대각선사는 향련에 큰소리고 말했다. "생사에 자유자재 하도다." 칭찬했다. 대각선사는 직접 나서 죽은 향련을 애도하며 제자들과 정중히 화장(火葬)하였다.

 

화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향련의 몸에서 한 줄기 서광(瑞光)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오르더니 그 서광은 관음사 쪽으로 가서 관음사 십일면 관세음보살상으로 들어갔다. 향련을 화장한 뒤 대각선사가 재로 변한 향련의 유해를 수습하니 놀랍게도 오색영롱한 사리(舍利)가 무수히 나타나 서기(瑞氣)를 뿜었다. 그 사리는 관음사 석탑에 봉안되었다. 대각선사는 법상에 올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을 울리며, “향련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우렁찬 상당법어를 후세에 전했다.

 

나는 향련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세상에 이렇게 주장한다.

 

끝으로, 이제 인간의 과학은 광대무변한 우주에는 1천개의 태양이 있는 태양계가 존재한다고 밝혀졌고 또 앞으로 태양은 얼마나 숫자가 더 밝혀질지 그것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불가해(不可解)의 신비이다. 하나의 태양계는 여러 개의 행성이 윤회하는 데, 그 가운데 지구는 모든 생명체들이 인연 따라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어디론가 떠나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 중국, 영국, 미국, 아프리카, 중동 등에, 나아가 지구촌의 처녀들 가운데는 인연 따라 생사를 오가는 절세미인 향련 같은 처녀들과 그 외 여성들은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 가운데 부처님의 인연법을 믿고, 불경을 읽으며, 수행하며, 이상하게도 시집을 가지 않고 혼자 늙어가는 대만출신 청녀유혼(倩女幽魂)의 여주인공 왕조현이 향련이 아닐까? 왕조현의 사진을 향련의 모습 대용으로 이 글에 첨가하면서, 왕조현은 물론, 지구촌의 수많은 남녀들이 제행무상한 지구의 시간 속에 노력하여 관음경의 깨달음과 불퇴전의 신앙속에 생사를 자유자재하는 능력을 얻기를 바란다.

 

*필자/이법철. 스님, 시인. 이법철의 논단 대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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