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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 (196) 박준상 시인의 시가 품은 그리움에 대하여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2/18 [15:13]

▲ (좌로부터 시집: 목포 아리랑, 시집: 그림자, 한국미술 정예작가 50인시화집, 박준상 시인)     © 브레이크뉴스

 

박준상 시인의 시에는 그리움이 화석처럼 들어박혀 있다. 이는 시인이 노래하여온 자연에서부터 온갖 사물과 무형적인 의식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시에 내재한 바탕이다. 시인은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감정과 의식 중에서 즉흥적인 자각이거나 감흥에 의하여 생겨나는 감성과 달리 간절한 마음에서 생성되는 그리움을 시상(詩想)의 주요한 의식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시가 품은 그리움은 보편적인 감성의 그리움이 아닌 매우 특성적인 의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헤아림을 위하여 박준상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움(박준상) 네가 날아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꽃바람 타고 가는 네 마음을 나는 안다/ 하늘 높이 날아 미지의 세계에서/ 새 꿈 가지고 살아가는/ 너를 그리워하며 산다./)

 

이와 같은 시인의 시를 통하여 그리움을 시로 품은 내면이 마치 겹겹의 유리창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잡힐 듯 서 있는 사람이거나, 그리움으로 간직한 기억을 비추는 시인 스스로 그리움과 대면하는 화자가 되어 있다.

 

이를 더욱 면밀하게 해체하여 보면 시 첫 구절 (네가 날아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에서 시가 쓰인 실체의 대상이 떠나간 사실의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어 다음 구절 (꽃바람 타고 가는 네 마음을 나는 안다)를 통하여 헤어짐이라는 단순한 인식이 아닌 내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하늘 높이 날아 미지의 세계에서)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부재를 나타내는 새로운 변화를 드러낸다. 이어진 구절 (새 꿈 가지고 살아가는)에서 시인은 부재의 대상에 대한 깊은 소망의 감성을 드러내면서 마지막 구절 (너를 그리워하며 산다.)를 통하여  시를 이루는 실체적인 감성의 바탕과 의식이 덩어리진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박준상 시인의 시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을 살펴보면 더욱 구체화한 그리움의 감성이 헤아려진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박준상)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나무가 되어라/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바위가 되어라/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풀꽃이 되어라/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푸른 하늘을 보아라/) 이와 같은 시에 담긴 의식의 주요한 바탕 또한, 그리움이다. 시인의 기다리는 사람으로 시작과 끝을 이루는 그리움은 ‘오지 않는다면’이라는 반복적인 부재의 시어를 통하여 더욱더 깊은 그리움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어 나무와 바위와 풀꽃과 하늘이라는 영원한 생명으로 승화시킨 그리움이 순차적인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의 시를 이루는 바탕인 그리움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시인이 매만진 주제였으며 심상의 대상이었다. 이와 같은 그리움을 노래한 수많은 시에 나타나는 함축된 은유와 상징의 보편성은 그리움이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되어 끝을 이루는 감성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박준상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매우 특성적인 의식을 가진 그리움에 대한 이해는 시인의 시를 깊숙하게 이해하게 되는 관문이다.

 

이와 같은 특성적인 인식과 의식을 가진 시인의 그리움에 대한 헤아림의 접근은 먼저 ‘그리움’에 대한 어원과 언어에 담긴 의식을 살펴 가야 한다. 우리말 ‘그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이와 같은 ‘그리움’은 어떤 대상에 그려진 그림과 맞닿은 말이다. 이는 어떤 물체에 그려놓은 그림과 마음에 새겨 놓은 그리움이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어 오면서 생겨난 말이었다.   

 

이와 같은 우리말 이전에 존재하였던 한자어에서 그리움은 다양한 언어로 구분되어 있었다. 먼저 고향과 같은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그리움을 품은 한자는 ‘사념’(思念) 이다. 이어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그리워하는 기억과 같은 의미에서는 ‘회념’(懷念) 을 사용한다. 이어 우리는 떠오르는 생각으로 사용하는 한자이지만, 중국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며 상용하는 그리움의 언어는 ‘상념’(想念) 이다.  
 
이와 같은 ‘그리움’이 영어권에서는 명사 ‘로닝’(longing)이라는 한 단어 속에 다양한 의미가 녹아있다. 이는 간절한 소망을 뜻하는 갈망(渴望)이거나 더욱 열렬한 마음을 나타내는 열망(熱望)의 뜻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로닝’(longing)의 언어에는 우리말에 나타나는 그리움의 세세한 표현이 덩어리져 있다. 바로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생각하는 동경(憧憬)과 그리고 정(情)을 들여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뜻인 사모(思慕)와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애모(愛慕)와 같은 그리움이 하나의 언어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준상 시인의 시 ‘사랑은 나로부터 온다’는 그리움에 대한 실체적인 감성이 더욱 명확하게 살펴진다. (사랑은 나로부터 온다 (박준상) 옛날/ 옛날에/ 그대를 사랑했다/ 사랑은 서서히 온다./ 낮달이 하늘을 갈 때/ 사과는 빨갛게 익어간다/ 사랑은 그리움에서 온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휘날리니/ 그대가 그립다./)이와 같은 시인의 시에 담긴 그리움은 사랑에서 시작된 그리움이 다시 그리움으로 종결된 의미 속에서 삶이 빚어낸 이별과 그리움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리움에 대한 언어적 어원을 헤아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박준상 시인의 시를 이루는 바탕의 감성인 그리움에 대한 특성이 시인이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사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면 독일어에서 그리움을 뜻하는 언어 ‘진소호트’(Sehnsucht)가 살펴진다. 독일어 ‘진소호트’(그리움)는 예로부터 인간의 내면에 품은 영적인 갈망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독일어의 그리움(Sehnsucht)은 다양한 언어권의 그리움의 감성과 또 다른 특성적인 감성을 형이상학적으로 품고 있다.

 

이와 같은 독일어 그리움(Sehnsucht)이 품은 은유적이며 복합적인 감성에 대한 접근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영문학에 천착한 영국의 문학가이며 신학자인 루이스(Lewis. 1898-1963)의 헤아림이 깊숙하게 와 닿는다. 루이스는 그리움에 대하여 (그것을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할 세계의 의식까지 갈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과 인식은 연속하여 암시하고 있는 까닭으로 이를 숨길 수도 없다.)

 

이와 같은 루이스는 기독교 변증론에 깊은 인식을 가진 작가로 주옥과 같은 작품들을 쏟아 내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헤아려 본 슬픔’은 삶과 신앙에 담긴 깊은 의식의 헤아림이 탁월하다. 나아가 이와 같은 그리움에 대한 깊은 의식은 의외로 판타지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 ‘나니아 연대기’에서 깊숙하게 나타난다. 신화와 성서를 넘나든 작품을 이루는 주요한 내용이 어린 시절 옷장 안에 들어가서 놀던 기억의 그리움에서 '나니아' 마법 세계가 창출된 것이다.

 

이와 같은 루이스의 그리움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영국의 문학가 톨킨(Tolkien. 1892-1973)의 세계적인 명작 ‘반지의 제왕’이 탄생하였다. 이와 같은 ‘반지의 제왕’ 또한, 무한한 영혼을 담은 반지에 대한 의식은 소망에 녹아내린 야망과 욕망으로 얽힌 그리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모든 언어에서 그리움에 대한 복합적인 의식이 덩어리져 녹아내린 사실을 헤아리며 박준상 시인의 시 ‘구절초’를 살펴본다. (구절초(박준상) 무너진 옛 성터에서/ 부는 바람 멀어져 가면/ 내 슬픔을 달래주던 구절초가/ 가을밤 달빛 아래 피어 있구나/)

 

이와 같은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그리움에 대한 감성은 유럽 이베리아반도 바다의 나라 포르투갈의 그리움의 언어 ‘사우다지’(saudade)와 맞닿은 연관성이 깊다. 이와 같은 포르투갈의 그리움 ‘사우다지’는 중세시대 포르투갈 시인들에 의하여 사용된 언어로 고독과 향수와 사모의 정을 함께 품은 그리움의 언어이다. 이는 부재의 대상에 대한 현실적인 고독한 감성과 미래의 희망적인 염원이 함께 깃든 언어이다.  

 

감성적인 의식에서 보면 전 세계의 그리움에 대한 많은 언어 중에서 포르투갈의 그리움 ‘사우다지’(saudade)는 그 어원의 유래가 가장 애상적인 감성이 깊은 언어이다. 이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살아온 바다의 나라에서 유난히도 많은 재난을 통한 이별의 슬픔을 추슬러온 감성이 녹아내린 탓이다. 푸른 물결을 안고 뱃길로 떠나갔지만, 다시 밀려드는 파도처럼 돌아오길 기원하는 소망이 깃든 포르투갈의 그리움 ‘사우다지’의 감성이 쌓여 훗날 뱃길과 항구를 배경으로 삶을 매만진 가슴의 노래  파두(Fado)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한 박준상 시인이 독일어의 그리움 ‘진소호트’(Sehnsucht)와 포르투갈의 그리움 ‘사우다지’(saudade)에 담긴 오랜 역사의 감성을 헤아려 노래한 시들은 보편적인 시어 속에서 특성적인 감성이 깊게 녹아있는 것이다. 항구도시 목포에서 태어나 평생을 목포에서 정주하며 많은 시를 써온 박준상 시인은 20여 권의 시집을 발표한 중견 시인이다. 시인의 시에 내재한 그리움의 감성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떠나갔다가 돌아오는 물결만을 바라보는 부재의 그리움이 녹아내린 포르투갈의 그리움 ‘사우다지’(saudade)가 낳은 파두(Fado)의 애상적인 감성이 점철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그리움에 대한 남다른 특성의 감성은 단 두 줄로 노래한 시인의 대표 시 ‘그림자’에 흥건하게 녹아있다.  (그림자(박준상) 보여도 그립고/ 안 보여도 그립다./)

 

이와 같은 박준상 시인은 특히 미술 분야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시인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주도 대정 유배 시절의 서첩과 시화에서부터 민족의 빛깔을 구현한 내고 박생광 화가의 작품과 남도 예향의 대 화맥을 탄생시킨 소치 허련 작품에 이르기까지 실로 보물과 같은 수많은 작품을 컬렉션 하여온 시인이다. 이와 함께 소치 허련의 스승으로 민족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를 깊숙하게 연구하여 목포의 지성인들과 차를 나누는 사랑방을 개설하였다. 예향 목포 개항에서 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가장 깊게 헤아린 박준상 시인의 숨은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시인은 20여 권의 시집 중에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싣는 시화집으로 10여 권을 출판하였을 만큼 누구보다 미술을 사랑한 시인이다. 이에 한국미술센터는 박준상 시인의 소중한 의식과 깊은 감성에 담긴 시를 조명하는 뜻을 담아 2020년 새롭게 제정하는 제1회 한국문화상 (시 부문) 수상 작가로 선정하여 시인의 정신을 널리 알리게 된다,       

 

▲ (좌로부터 80인 화가의 그림에 담은 박준상 시, 시집: 당신과 함께한 세월 속에. 시집: 우리꽃)     © 브레이크뉴스

 

박준상 시인 주요 약력: 1942. 목포 출생 / 성균관대학 독문과 졸업 /시집 ‘당신과 함께한 세월 속에’ 목포 아리랑 외 20권/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 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민족문학회 회원/ 시인연대 회원/ 대한민국 예술문화인 대상(문학)/ 성옥예술 문화상/ 한국민족 문학상/ 대한민국 예충회장 표창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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