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가 교만하면 백성이 위태롭다(4)

[고전연구가 고전소통]정치란 용인(用人)의 예술

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 기사입력 2019/11/14 [14:10]

▲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브레이크뉴스

언젠가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신지(申地)에서 제후들을 소집했는데, 송(宋)나라 태자 우(佑)가 뒤늦게 도착했다. 영왕은 그를 묶어 방 안에 가두게 했다. 또한 서(徐)나라 군주를 조롱하고 제(齊)나라 대부(大夫) 경봉(慶封)을 옥에 가두었다. 그때 영왕의 신하들 중 낮은 지위에 있던 오거(伍擧)가 심히 염려가 되어 영왕에게 말했다.

 

“군왕이 제후들을 소집할 때는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곧 나라가 망할 징조입니다. 하나라 걸왕이 유융(有戎)에서 제후들을 불러 모았을 때 유민(有緡)이 그를 배반했고 여구(黎丘)가 제후들을 불러 모았을 때는 융(戎)과 적(狄)이 그를 배반 했습니다. 이는 모두 제후에게 예의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는 이런 역사의 교훈을 잘 생각하시어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영왕은 여전히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몇 년 뒤, 영왕이 남쪽 지방을 순행할 때 제후들이 그의 아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영왕은 건계(乾溪)의 산을 오래도록 방황했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염없이 걷던 그는 예전에 궁궐에서 청소를 하던 자를 우연히 만나 애걸복걸했다.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네. 먹을 것을 좀 줄 수 없겠나?”

 

그러나 그 사람은 영왕의 청을 거절했다.

 

“새로운 왕이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당신을 따르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 없군요.”

 

영왕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 사람은 영왕이 잠든 틈을 타 흙덩이로 그의 머리를 괴고 도망쳐버렸다. 영왕은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영왕은 교만이 지나쳐 제후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초나라 영왕은 인생의 전성기에 있을 때 제후들을 소집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멋대로 징계하였다. 그래도 충신 오거의 말을 듣고 즉시 태도를 바로잡았다면 훗날의 비참한 최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군주의 교만은 제후에게 예를 갖추지 않아 찾아오는 화근이다. 만약 영왕이 오거의 말을 듣고 즉시 자신의 행위를 바로 잡았다면 아마도 뒤에 올 비참한 국면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군주가 자신의 위풍과 강한 힘만 믿고 제후를 겸손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의 위풍과 강한 힘은 곧 사라지고 뜻밖의 비극을 맞게 된다. (계속). j6439@naver.com

 

*필자 : 이정랑, 언론인. 중국 고전 연구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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