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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지 화가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그림’ 주제 작품전

유종근 전 전북지사 아들이자 유예지 작가의 동생인 고 유주영 군 출판기념회도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9/10/20 [21:54]

 

▲유예지 화가(사진).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유예지 작가의 작품 평에서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조형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고 감탄했다.     ©브레이크뉴스

유예지 화가의 작품전이 10월  29일부터 30일까지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그림’이라는 주제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3층 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유종근 전 전북지사의 늦둥이 딸인 유예지 작가는 1996년생. 그는 자폐로 인한 언어표현의 한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내 작가들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뉴욕 Hungerford school 재학 시에는 뉴욕 맨해튼의 Artist group class에 추천받기도 했다.

 

이날 전시되는 작품들은 원색과 거침없는 선 그리고 반복적인 형태가 화면을 채우는 그림들. 주저함 없는 선의 흐름에는 시각적인 경쾌함과 그 자신만의 순수한 형태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여러 사물들을 그만의 확실한 이미지로 표현한 조형적 해석은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표출된다. 감상자를 의식하지 않는 직관적으로 구축된 조형질서를 보여준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유예지 화가의 작품 평에서 “알록달록한 원색과 거침없는 선 그리고 반복적인 형태가 화면을 채우는 그림들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형태를 만들어가는 힘차면서도 간단명료한 선은 속도감을 수반하면서 일사천리로 내닫는다. 도무지 주저함이 없는 선의 흐름에서는 시각적인 경쾌함이 느껴졌다. 무엇일까 이건? 그 순간 이런 식의 선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었든가 돌아보았다. 얼른 비교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그 자신만의 순수한 형태미의 발굴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 그의 형태감각은 자발적이고 즉자적이며 순수하고 순정한 감정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매우 직관적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해석이 담긴 그 자신만의 언어는 이처럼 신선하고 생생하다. 그가 지어내는 이미지는 즉흥적인 발상의 산물이거나 매순간 다른 조형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익숙한 감각에 이끌려 만들어지는 형태는 대체로 비구상적인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어느 유형이건 간에 우리의 시각을 충분히 납득시킬 만큼 명확하고 힘차며 아름다운 선과 색채로 채워진다.”면서 “오로지 그 자신만이 가꾸는 행복의 정원에서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비구상적인 조형언어를 구태여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번역하려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로 받아들여도 거기에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충만하다. 도무지 망설임 없이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유려한 선의 유희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가 만들어내는 형태미는 결코 강요하는 바가 없다. 그만큼 자연스럽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맑디맑은 영혼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조형언어의 연금술을 글로나마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고맙고 행복했다”고 평했다. 

 

▲유예지 화가 작품전. ©브레이크뉴.     ©브레이크뉴스

이날 전시회에는 유종근 전 전북지사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유예지 작가의 동생으로 천재소년으로 기대를 모았던 고 유주영 군이 미국 유학중 16세의 나이로 소천한 1주기를 맞아 10세부터 16세까지 집필한 글들을 엮은 책 『신학을 논하고 떠난 천재 소년』의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도 함께 할 예정. 아래는 이 책에 담긴, 유주영 군이 남긴 글의 주요 내용이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진리에 나아갈 수 없다. 그분은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세상의 빛이다.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는 문이다. 그분은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다. 진정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며, 이론들과 교리들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체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는 진리다. 그리고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는 자를 죽음에서 영원토록 자유롭게 하는 영원한 생명이며, 어두움 속에 비치는 빛이다. 그분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생명의 떡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빛이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자 진리이며 생명이다. <“나에게 예수란 누구인가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있어서 박▫▫ 선생님의 역할을 해 준 것은 책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해결했고, 책을 읽으면서 고통을 벗어났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성장했다. 책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배웠다. 시와 산문, 역사와 철학 등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은 도움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책들은 나의 선생님이었다. 사마천, 진수, 맹자,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 수많은 저자들이, 수많은 책들이 나의 스승들이었다. <“나의 성장 과정중에서>

 

○…숙종의 환국정치로 조선의 정치가 사생결단의 정쟁으로 변질되기 이전, 선조부터 현종 시기까지의 당쟁을 살펴보면 오히려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보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영논리에 휩싸여 상대편의 주장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국익과 관련된 사안(대표적으로 대동법이 있다)에서는 붕당을 초월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오히려 부끄럽게 한다. 조선은 맹자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 조선의 설계자였던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유배지에서 정몽주(鄭夢周)가 선물로 준 맹자를 읽고 혁명을 구상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교 국가였다. 그리고 조선은 성공작이었다(물론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고 해도 유지보수를 경시하면 바로 문제가 생기는 법이고, 그 현상은 실제로 일어났다). <“맹자 여전히 유효하다에서>

 

유종근 전 전북지사 초대장 내용

 

▲ 유주영군의 유고집「신학을 논하고 떠난 천재소년」의 표지.  ©브레이크뉴스

한편. 유 전 전북지사는 초대장에서 “하나님은 저희 가정에 예술적 소양을 타고난 딸과 학문적 재능이 탁월한 아들을 보내주셨다. 어려서부터 영특함과 신실함으로 저희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었던 아들 주영(主榮)이는 신학 공부를 계속하러 갔던 미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떠났다. 벌써 1년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곁에서 여전히 기쁨과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딸 예지(霓智)는 창의적 구도와 아름다운 색채로 자신의 영혼을 담은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하나뿐인 그림들이. 이제 이 작품들을 평소 예지와 주영이를 사랑해주신 분들과 저희를 성원해주신 분들게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전하면서 “아울러 이름처럼 주님께 영광을 올리는 신학자를 꿈꾸며 학문에 몰입했던 주영이가 9세부터 16세까지 남긴 글들을 모아 「신학을 논하고 떠난 천재소년」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여 나눠드리고자 한다. 오셔서 격려해주시면 고맙겠다.”고 알렸다.

 

이어 딸 유예지 화가에 대해서는 “1996년 화창한 봄 미술에 대한 천부적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네 살부터 외할머니의 화첩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특징을 몇 분 안에 크로키로 묘사해내었다. 언어의 표현은 늦었으나 이미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통했다. 자폐 장애를 지니고 성장하면서 스케치북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림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다. 수채화, 오일파스텔화, 공예, 도예, 아크릴 및 유화작품 활동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자신만의 구도와 색으로 표현하는 독창적 예술세계로 발전시켜왔다”고 소개하고 “여의도초등학교 시절 재능을 눈여겨본 김현 작가에게 지도받기 시작했고, 뉴욕시의 Hungerford School 재학 중에 이미 예술적 자질을 인정받아 맨해튼의 Artist Group Class에 추천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밀알학교에 입학하여 이흥근 작가를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더욱더 작품에 집중하게 되었다. 평택대학교의 컴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전문적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자폐라는 핸디캡이 한 편으로는 축복이 되어 같은 그림을 두 번 다시 그리지 않는다. 각각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신항섭 미술평론가가 쓴 유예지 화가의 작품평이다.

 

*맑은 영혼이 지어내는, 그저 아름다울 뿐인 세상풍경

-글/신항섭(미술평론가)

 

▲ 작품 창작에 몰두 하고 있는 유예지 화가. ©브레이크뉴스

그림을 보고 글을 쓰기 위해 화실을 방문할 때면 조금은 설렌다. 처음 만나는 작가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전 정보가 없으니 미지를 탐험하러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상상을 동반하면서 한편으로는 낯선 그림을 보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한다. 그러다가 작가를 만나고 그림과 마주하게 되면 즐거운 상상의 여행은 끝나게 된다. 생생한 현실, 즉 작가의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예지의 작품을 보러 가는 길은 꽤 먼 거리였고 그에 비례하는 시간이었다. 늦은 저녁시간불빛 아래 드러난 작품은 생소한 차림이었다. 알록달록한 원색과 거침없는 선 그리고 반복적인 형태가 화면을 채우는 그림들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형태를 만들어가는 힘차면서도 간단명료한 선은 속도감을 수반하면서 일사천리로 내닫는다. 도무지 주저함이 없는 선의 흐름에서는 시각적인 경쾌함이 느껴졌다. 무엇일까 이건? 그 순간 이런 식의 선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었든가 돌아보았다. 얼른 비교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그 자신만의 순수한 형태미의 발굴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 그의 형태감각은 자발적이고 즉자적이며 순수하고 순정한 감정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매우 직관적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해석이 담긴 그 자신만의 언어는 이처럼 신선하고 생생하다. 그가 지어내는 이미지는 즉흥적인 발상의 산물이거나 매순간 다른 조형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익숙한 감각에 이끌려 만들어지는 형태는 대체로 비구상적인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어느 유형이건 간에 우리의 시각을 충분히 납득시킬 만큼 명확하고 힘차며 아름다운 선과 색채로 채워진다.   

 

그의 그림에 표현되는 이미지는 모두 그 자신의 일상적인 삶과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다. 자주 보는 익숙한 소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더러는 어디선가 보았던 물상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또한 직접 보고 만지며 사용했던 물건들이어서 구태여 눈앞에 두지 않고도 쉽게 캔버스로 불러낼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이해를 위한 해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쉽사리 인지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닐지라도 시각적인 이해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만큼 형태감각 및 조형적인 해석은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심상에 명백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놓는 까닭인지 모른다.

 

그의 그림은 막연한 상상이나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실상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자 타고난 미적 감각이 조합해내는 독특한 조형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제한된 일상에서 만나는 소재들이 이처럼 눈부신 형태미로 바뀌는 것은 조형의 마술이자 신비이다. 그는 현실적인 소재에 마술을 걸어 이전에 보지 못한 형태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마술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형감각으로 꾸며진다. 그의 조형감각이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타고난 재능이지 싶다.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조형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나타나는 형태미는 짐짓 꾸미려드는 억지스러움이나 조급함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냥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작품마다 일정한 조형적인 질서를 따른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정연한 조형적인 논리에 의해 이끌리기에 기분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는 그런 불안정한 요소가 없다. 따라서 즉자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자유분방함과는 엄연히 다른, 견고히 구축된 조형적인 질서를 따른다. 동일한 소재를 나열하는 식의 구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신만의 조형의 틀, 즉 형식이 갖추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그 만큼 그의 조형감각은 안정적이고 견고하다.  

 

작품에 따라서는 형태미가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이해가 어렵지 않다. 그 이미지들은 그만의 미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조형적인 해석일 따름이기에 우리의 시각을 거기에 일치시키려 할 이유가 없다. 그의 그림에 표현된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는 감상자를 의식하지 않은 순수하고 소박하며 진솔한 그 자신만의 어투로 세상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채울 뿐이기에 그렇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를 통해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동조하고 거기에 담긴 기쁨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로지 그 자신만이 가꾸는 행복의 정원에서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비구상적인 조형언어를 구태여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번역하려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로 받아들여도 거기에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충만하다. 도무지 망설임 없이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유려한 선의 유희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가 만들어내는 형태미는 결코 강요하는 바가 없다. 그만큼 자연스럽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맑디맑은 영혼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조형언어의 연금술을 글로나마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고맙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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