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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일곱 한평생 절하고 웃었더니 단골이 먹여 살리네요!

<붓가는 대로 쓴 수필> 세상을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9/19 [11:11]

지난 9월17일, 자의 반 타의 반, 핑계 삼아 태국에서 귀국했다. 요양 겸 태국에 관한 배움의 길에 나섰다. 인도차이나에서 그래도 나은 치안 문화 통신 생활물가 국민성을 나름 종합 판단하여 최소 3년 의도로 나선 유학(?)길이었다. 평소, 친가쪽 애경사에 가면 팔순 구순에 이른 어른들이 “어 이디 아프냐? 신수가 금방 쓰러지게 생겼다”라는 소문이 여러 번 빙돌아 다녔고 86세 어머니의 오장육부를 뒤흔들었다. “아니, 지 새끼들이나 챙길 일이지 멀쩡한 우리 아들을 뱅자(病者)취급허는디, 자식 키우는 사람은 말 함부로 허믄 죄받을게 내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봐야 쓰것다”라며 어머니는 나를 위로했다.

 

▲ 간식     ©브레이크뉴스

▲ 고구마줄기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사실이었다. 인슐린 12mg을 매일 맞다보니 저혈당으로 길 가다가도 주저앉기 일쑤였고, 우울증 여섯 알을 계속 먹다보니 면도 시 거울을 보면 마취된 듯 초췌한 자화상이 싫었다. ‘죽을까? 아냐, 전주이씨 종손으로서 손자는 보고 죽어야 조상님들을 뵙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 온 게 사실이다.

 

카드가 없고 가까스로 체크카드(내 돈 넣어 놓고 찾아 쓰는 카드)를 방콕 세븐 바깥 현금서비스 기기에다 귀신을 홀린 듯 연거푸 다섯 번을 눌렀더니 사용중지 창이 떴다. 겨우 진정하여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으로 계속 눌렀더니 아예 wifi 기능마저 사라져 버렸다. 노트북 역시 프록시 방화벽에 걸리어 일거에 무용지불이 됐다. 할 수 없이 귀국하는 당일 은행을 찾아가 비번 재설정을 했고, 비대면 재설정 기회를 상실케 한 주민등록증의 낡은 사진 대신 10분 완성 사진을 25000원에 찍어 동사무소에 제출 30일 임시사용증명서가 나왔다. 문제는 동사무소 여직원 왈, 2주를 기다려야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니 기다리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듣고 평소 존경하던 김부겸 행안부 장관의 업무능력에 깊은 회의를 품게 했다. 물론 ‘내 죄(?)요 실수이니 누굴 탓하랴’마는 2주간 그냥 있기는 뭐해서 대대적인 청소를 1주일하기로 맘먹고 필요한 다층 선반 및 청소도구를 사러 신촌 마트에 들러 귀가하는 중이었다.

 

“아따 총각 점심때도 됐고 양손이 무겁게 보이능만, 이리 와서 떡이나 김밥으로 요기나 하고 가요!  천장 없지만 하늘 안 무너징게 이리와 않으소!”라는 연로한 길바닥 노점상 할머니의 부추김에 그만 어머니가 생각나 자석처럼 끌리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고 김밥 2000원짜리를 이쑤시개로 찍어 씹어 먹었다.

 

바람은 산들 했고, 11시가 좀 넘어 약간 허기가 져서 다시 팥떡 2000원짜리를 추가하여 내친김에 점심으로 때우고 대대적인 집안 청소를 하기로 작정했다. 와중에 이것저것 할머니와 문답시간이 나름 흥미로워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갈 요량으로 자릴 잡으니 의자에 골판지를 아예 밀어 넣어 주셨다.

 

▲ 길거리 좌판. ©브레이크뉴스

 

“46년 병술생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개띠나구요? 내가 큰누나요! 내 35년생 갑술 개띠니 열 살이나 많어요. 왜 이북 버리고 남한에 왔냐구요? 이 양반 역사 잘못 배웠구만. 황해도 해주가 내 고향인데 원래 6,25전장 전엔 남한땅이었잖어요?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는디, 미군 통조림 안 얻어먹은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이요? 다 미군간첩으로 몰아 죽인다는데……. 한마디로 살고 싶어서 17살에 부산으로 서울로 옮겨댕기다 보니 아 이 자리 신촌 길바닥서 50년 넘게 주저앉고 말었지 뭐요.증손자까지 봤으니 할미로 애기들 용돈이라도 줘야할 것 아녀요. 우두거니 방구석에 앉어 있다가 요양병원으로 고려장 당하느니 돈도 벌고 사람구경도 하고 얼매나 재밌는지 몰라요. 할아버지는 육남매 씨 뿌리고 사십 중반에 먼저 가버렸어요. 넋놓고 신세타령 한다고 누가 물 한 그릇 갔다 줘요? 그때부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주구장창 이 자리 지키고 있는 거요. 예, 너무 불쌍허다고 구청으서도 눈감아 중께 그나마 하느님 감사허지요. 뭐 비갤이라는 것이 따로 액자에 있는 게 아녀요! 그냥 손님들이 나를 멕여 살리는 하늘이거니 허고, 드런 꼴 봐도 웃고 가끔 단골들이 한여름 땡볕일 적에 음료수라도 시나브로 갔다주믄 그 정이란 것이 시나브로 쌓이는 벱이요. 아, 아까 음료수 갖다 준 것이요? 그 할매 당뇨다 허리다 다 못쓰게 됐는디, 지난번 지갑을 잊어버려서 여그 약국에 5000원 빌려 달라 했다가 면박 냉대만 받고 나헌티 왔길래 내가 3000원 빌려줬드니, 지금 손님양방반이 드시는 오란지 주스허고 뭐시냐 알로엥가 뭔가 갖다 준 것이요. 뭐라구요? 큰일 날 소리 말어요! 자기들 땅은 아니라도 저 약국이 봐줘서 50년 장사해먹는디, 당초 그런 말씀 마시오. 나라고 속창아리가 없것어요? 허지만 인생살이란 것이, 또 내가 구순 바라보는 나이에 오십년 넘게  저 약국 들어서기 전부터 수십 사장들을 다 겪어봤어요. ..그러믄요. 우리 같은 한디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창시 내놓고 그저 빌고 웃고 감사허다고 허리 굽실대믄 그것이 분쟁 안 일으키는 최고의 비갤이고 건강허게 사는 것이요. 아. 시방 간 그 여팬네요? 50년 동안 딱 두 번 내 것 팔어줬어요?

 

한 시간 남짓 집나간 서방 분풀이 나한테 쏟아놓고 가니 당분간은 그 여편네 안 올 것이요. 내 떡이 새벽에 받어다 딱 팔만큼만 파는디 추석 이틀 전에 사간 이천 원짜리 콩떡이 쉬었다고 개지랄 떨어대니 다 응대하면 내 복창터져 죽어요. 저기 젊은 양반 나한티 왜 건강 허냐고 물어봤잖어요? 바로 그거요!  좋아도 웃고 싫어도 웃고, “손님은 하늘이다” 허고 고개를 굽신거리믄 운동돼야서 더 좋은 법이요. 뻣뻣하게 구는 것들이 죽을 때도 뻣뻣이 굳어 풍맞어서 자손들 괴롭히다 똥냄새 핑기며 죽는 법이요. 내가 똥내 나는 은행알 몇 개 주워 비닌봉지에 담아뒀드니 없는 것들이 더 코틀어막으면서 발길 돌린는 거 봐요. 그런 집구석 가봐야 똥구녕 뻘겋게 사는 것이 삼삼허게 뵈는 것이요. 안 그려요, 젊은 양반?


예끼 여보쇼? 이 떡 다 팔어야 한 이삼만원인디 그 돈 갖고 어떻게 육남매 대핵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아파트 사는데 보태줬것쇼?  한창 때는 나도 쌀 반가미니 값어치 야채 생선 띠어다가 팔어서 재미가 쏠쏠혔지요! 생각혀보쇼? 내 나이 낼모레 구십인디 그 많은 야채 생선을 어떻게 들먹거리겄쇼? 허리 다리 안 안픈데가 한군데도 없어요. 이젠 증손자 손자손녀들 과자값이라도 주고 사는 게 순리고, 집에서 노령연금 받고 자식들 힘든디 용돈받아쓰면 그 게 부모요? 맞어요! 마트다 팬의점이다 혀서 요샌 젊은 것들도 이런 것 안 사 처먹어요! 오십년 넘게 상대한 손님들이 내 물건 좋다고 팔아주니 나오는 것이지, 그나마도 요샌 안 팔려 집에 갖고 가서 저녁 아칩 대신 먹을 때가 많어요. 떡보 되것어요. 허허허... 문재인 대통령이 전장보다 좋게 통일허자는 것에 찬성이요. 우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왜정 인공 안 겪어봐서 있는 것들이 까불대고 있는데, 아마 젤 먼저 아부 떨고 도망갈 사람들은 젊은 양반 말대로 바로 그것들이 일등이요. 내가 다 눈구멍으로 구십 바라보게 살면서 다봤쇼! 무슨 변명이 필요하단 말이요?

 

암은요! 그저 국민들이 단합혀서 잘들 살게 세상을 맹글어야지요!  내가 6,25때 인민군에 쫓겨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서울 마포구로 다시 올라올 때까지 따발총 색색이 미군 비양기 쏘아대는데 정신없이 이리저리 숨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이 모진 목숨 살아남은 거요? 천당이 어디 있대요? 남의 입에 오르락거리지만 않고 자식 손자 멀쩡히 세끼 밥 먹고 살면서 빚 안지믄 그게 바로 천당이요! 그려요! 나는 낼모레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길바닥이 천당이고, 이 떡이 하늘이구만요. 젊은 양반 내 심심해서 고구마쑨 벳겨 파는 것 딱 한 뭉치만 팔어줘요? 아따 풍체에 안 맞게 쫀쫀하기는? 이거 집의가서 냄비에다 깔고 된장 풀어서 고등어 올려고 쪄봐? 다 환장들 할 것잉게 의심허지 말고... 그려요. 그냥 소금간 허고 마늘 쪽파 고명 올려서 식용유 살짝만 쳐서 볶아봐 맛이 일품이여. 그려요. 똥도 고구마쑨마냥 쭈욱 딸려나옹게 변비에 특효여 특효...“

 

내일이 전북 익산 구시장 9일 장날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내 어머니 고단한 인생살이와 닮았다. 아니, 그 고단함이란 단어도 사치로 여길 만큼 긍정과 낙관으로 하루하루 노동으로 살아오신 두 어머니에게서 항상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 고마운 손님도 진상손님도 한결같이 웃음과 감사인사로 50여년을 길바닥에서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나는 항상 죄인이다. 알뜰 폰을 수세식 변기에 빠뜨리고, 다시 사드린 것을 이젠 몸빼바지에 넣고 빨래하셔서 어쩔 수 없이 누나 집에 상경하여 8만원을 주고 고쳤다는 말을 추석에 화상전화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나는 팬티만 입고 영상통화로 30분 동안 어머니에게 나이 환갑에 이르렀지만 다시 신검 받을 정도로 생긴 복근과 가슴 어께 등을 보여주며 재론을 떨었다. 태국에서 별일이 없는 한 매일 오전 세 시간을 땀으로 500g 정도 수건으로 짜낼 정도로 운동한다.

 

87kg이 73.5k으로 날렵해졌다. 인슐린 투여량도 하루 12mg 에서 8mg으로 줄였다. 정신과 하루 여섯 알 투약도 삼일에 한번으로 줄일 정도로 호전됐다. 두 분의 어머니의 길바닥 인생엔 50년간 변치 않고, 손님 가리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땅 닿도록 숙여댄 단순하지만 변치 않는 감사의 마음이 차돌처럼 들어앉은 결과물로 본다. 그것은 비록 하루 이삼만 원 돈벌이지만, 쇠약해진 신체에 맞춰 결코 그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자신과 이 약속이자 실천의지의 발로임에 틀림없다. 취준생 공시생 자영업 제조업 천만 여러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아무쪼록 풍성한 계절에 낼모레 금방 파탄 날 지경에 이른 분들이 허다하다. 국가의 잘못이 아니다. 자기들 돈 아니라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제 올리고, 강성 귀족노조가 주 52시간 관철시킨 결과치곤 정말 참담한 불황 속에서 은행 빚에 아파트 빌라 허다하게 경매로 날아가고 있다.

 

이젠 단 한 가지 응징만이 필요하고 기회는 딱 한번이면 족하다. 과거 최저임금제에 찬성했던 국회의원들 명단을 확인하시어 내년 총선에서 심판하시라.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 이대로는 안된다. 빚 돌려막기도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린지 안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 처하시더라도, 두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웃음을 잃지 않고 고갤 더 숙이고 길바닥에 난장을 벌이시더라도 희망만은 잃지 마시라. 50여년을 그렇게 사시다 보니 간판도 없이 초라하게 한 무덩이 떡을 팔면서 살아계신 할머니의 말씀으로 위로를 전한다.

 

▲시골에 사는 필자 이래권 작가의 모친.  ©브레이크뉴스

 

여든여섯에 시장 길바닥에 나가 좌판 벌이시는 어머님의 말씀이 항상 저리지만 마음을 굳건히 하는데 격려의 채찍으로 자리 잡았다.

 

“야야, 세상 어디 가도 금은보화는 없다. 다 지가 맹그는 것이여! 운다고 남이 도와줄성싶으냐? 어림 반푼 없는 신소리다. 간 쓸개 다 빼놓고 그저 허허 웃고 고개를 땅으다 박으야 푼돈이라도 생기는 것이다. 하늘 쳐다보고 천년만년 빌어봐라 어디? 살라고 인생 고갯길을 혼자 올라가야 밀고 댕겨주는 것이고, 조상들도 복을 주는 벱이여!“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교육받고,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돈을 빌려본 적도 없다. 출가(出家) 후 얻은 법명은 소헌(笑軒)이다. 즉 누각에 모여 같이 호탕하게 웃음을 나누는 것이 꿈이었고, 나의 광기와 분노 저주에 사로잡힌 모습을 당시 세수(世壽) 97세셨던 선국(善國)스님이  심안으로 하사한 법명이다. 거기에, 내가 불경스럽게도 세 번 더 그렇게 웃자고 의도에서 석삼(三) 자를 붙이어, 삼소헌(三笑軒) 별호로 42년째 사용하고 있다.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시대가 덮쳐 왔고, 앞으로 장기간 계속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정하긴 싫겠지만, 사실이다. 주위 세상과 세계를 둘러보시라. 그래도 직장이나 영업에서 웃음은 돈이 안 드는 첫단계 성공의 열쇠이자 상대방을 푸근하게 한다. 스튜어디스처럼 억지웃음이라도 지어야 먹고 사는 철대 문이 열린다. 하하하! 호호호! 열려라 참깨의 비번이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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