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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4주년, 밀정의 시대는 계속되는가?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 기사입력 2019/08/14 [08:12]

▲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브레이크뉴스

지난 2015년에 개봉해 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에서는 일제 시대 일본의 밀정을 했던 자가 해방후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난 동지들에 의해 처단되는 장면이 나온다. 동지들의 총을 맞은 그는 밀정을 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광복이 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말한다.

밀정은 국어사전에서 '남 몰래 사정을 살핌.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스파이라는 뜻이다.

일제는 식민지 시절 식민통치와 국내외 독립운동 조직 파괴를 위해 수많은 스파이, 즉 밀정들을 두고 관리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과 한반도 주둔 일본군 헌병대, 만주의 관동군 헌병대 등 일제의 무력통치기관들은 체계적으로 밀정을 운용했다. 그 수는 수만명을 헤아릴 것으로 추산된다.

일제시대 밀정들은 자발적으로 밀정이 된 경우도 있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회유를 받는 과정에서 밀정이 된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독립운동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직내 각종 기밀을 일제에 넘기는 대가로 금전적 지원과 편의를 제공받았다. 자녀들의 일본 유학과 취업, 징집면제 등의 특혜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독립운동 세력에게는 일제의 경찰과 헌병 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

최근 KBS 탐사보도부가 8개월여간 일본과 중국 의 기밀문서 5만여장을 분석해 보도한 밀정 관련 혐의자 895명에 대한 자료를 보면 밀정이 얼마나 깊숙히 독립운동 조직에 침투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비서였던 이정은 1924년 일제에 독립군 지도자들의 용모, 김좌진 김원봉의 향후 합동 의거 계획, 군자금 모금 상황 등을 보고했다. 의열단원 김호도 김원봉 단장의 이동루트 등 의열단 내부의 고급정보를 일제에 전달했다. 또 안중근 의사의 거사 동지였던 우덕순도 1920년대 들어 친일단체인 조선인민회 하얼빈 지부장을 맡아 본격적인 밀정의 길을 걸었다.

이들 밀정 혐의자 3인은 해방후 모두 독립유공자가 되어 훈장을 받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밀정들이 해방후 독립운동가로 둔갑하고 호의호식했다. 일제에 치열하게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이 하늘에서 통곡할 일이다. 우리 후손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한일 경제전쟁의 와중에도 21세기 신 밀정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척 교묘하게 위장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도층으로 행세하면서 친일 행동을 일삼는다.

해방후 밀정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않으니 광복 74주년이 된 지금도 신 밀정들이 날뛰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특별심사기구를 구성해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밀정들의 서훈을 박탈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광복 74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필자/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청와대 정치국장과 영남매일신문 회장, 인간개발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 교수를 지내면서 동북아 국제정치를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중 공공교류기구인 한중도시우호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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