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제2대 주한(駐韓) 일본대사 한국사랑 인구에 회자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8/11 [08:45]

아베 일본 총리의 7월1일 발언으로 한일 간 무역전쟁이 증폭되면서 일본인으로서 모국인 일본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제2대 주한 (駐韓) 일본대사(재임 1968~1972년)의 한국사랑이 인구에 회자된다.

 

‘중앙선데이’는 지난 2015년 8월9일자 “가나야마 부른 박정희 ’한국 대사 역할 한번 해주시오’”제하의 글에서 포항제철이 만들어질 때의 비화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비화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이 공개한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서면 원장이 공개한 비화내용을 보면, 포항제철 설립과정에서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의 공로가 큰 것으로 확인된다.

 

한일 간 어지러운 이때 가나야마 마사히데 전 일본 대사를 추모하는 추모식이 준비되고 있다. 황학수 추모식봉행위원회 위원장(전 의원)이 주도하며, 오는 8월17일 오전 10시 유택(사진) 앞에서 진행된다. 사진 속 인물은 황학수 전 의원.  ©브레이크뉴스

 

이 신문은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술이나 먹자”며 가나야마 대사를 청와대로 불렀다. 박 대통령이 돌발 질문을 던졌다. ▶박정희=“가나야마 대사, 당신은 누구요.” ▶가나야마(金山政英)=“예, 일본국 주한 특명전권대사입니다.” ▶박정희=“거꾸로는 안 되겠소? 대한민국의 주일 특명전권대사 역할 한번 해주시오.” 박 대통령은 이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에게 건넸다. 친서에는 포항제철소를 만들고 싶은데 일본 측이 기술 협력을 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고 알리면서 ”일본 외무성에는 알리지도 않고 가나야마 대사는 조용히 도쿄로 건너가 사토 총리를 만났다. ▶사토=“(한국의 제철소 건설을 지원하는) 그 문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또 해달라고 가져왔군.” ▶가나야마(金山政英)=“박 대통령께서 저에게 이 친서에 답이 없으면 한국에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한 관계가 끝장납니다.” ▶사토=“이거 큰일 났네.” 사토 총리는 그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신일철 회장 겸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에게 전화를 돌렸고 그날 밤 세 사람이 만났다. ▶이나야마=“나사도 제대로 못 만드는 한국이 무슨 제철소야.” ▶가나야마(金山政英)=“그런 말씀 마십시오. 1897년 야하다(八幡) 제철소(신일철 전신)를 만들기 전에는 우리도 나사조차 못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변명보다는 도와줄 방법을 찾아주세요.” 가나야마(金山政英)는 마치 주일 한국 대사로 부임한 사람처럼 집요하게 이나야마 회장을 설득했다. 당시까지 ‘일본의 재계 총리’로 불리던 이나야마 회장은 결국 마음을 돌렸고 포항제철소 지원의 길이 열렸다“고 소개했다.

 

▲1969123일, 가나야마 당시 주한 일본 대사(오른쪽)가 김학렬 당시 부총리와 포항제철 차관 도입 관련 서명을 하고 있다©사진/정부 자료사진.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나야마·마사히데 지난 1975년 9월25일 경주에서 열린 미륵 왕능 향사에서 경주 김씨 종친회 이사회 결의에 따라 명예 김씨가 됐다. 이날 가나야마 대사는 자신의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밝혔다. 할머니 성씨가 김씨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 때 “한국성을 꼭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나야마 유해는 사후 한국에 안장됐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산 1-15 천주교 삼각지 성당 하늘묘원에 안장됐다. 

 

중앙일보 1998년 8월14일자는 “가나야마 전 일본대사 유골 한국 안장” 제하의 기사에서 “지난해(1997년) 11월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가나야마 마사히데 (金山政英) 제2대 주한(駐韓) 일본대사 (재임 1968~1972년)의 유골이 한국에 안장된다. 한일친선협회중앙회 (회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는 ‘한.일친선을 위해 한국에 묻어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나야마 전 대사의 유골 일부를 28일 도쿄 (東京)에서 한국으로 옮겨 경기도 파주시 서울삼각지 성당묘지에 이장한다’고 13일 밝혔다. 장례식은 29일 오전 11시 전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집전으로 치러진다”고 전했다.

 

시인 구상이 그의 묘비석 글을 썼다. 묘비석에 그의 생애와 업적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비문 내용이 길지만, 그의 생애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을 소개한다.

 

▲가나야마 마사히데  묘지의 비문. 인물은 황학수 추모식봉행위원회 위원장(전 의원).    ©브레이크뉴스

“이 무덤의 주인공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님은 1909년 1월 24일 일본국(日本國) 도쿄도(東京都) 세다가야구(世田谷區)에서 육군 장성의 자제로 태어났다. 일찍이 국립동경대학정치학과에 재학 중 가톨릭에 귀의하여 그의 천성이라고도 할 박애주의적 세계관과 인간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1934년 학업을 마치고 같은 해 국가공무원 상급 시험 외교과에 합격하여 바로 외교관으로 출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재공관의 서기관으로 일하다가 1942년 바티칸 일본 사절관, 참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중과 종전 후를 합쳐 10년간이나 바티칸에 머물면서 그의 독실한 신앙생활과 성실한 인간성으로 교황 바오로 12세를 비롯한 성청 내 여러 성직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사서 전후 일본의 전범처리와 평화 재건문제 등에 전폭적 지원을 받음으로써 크게 공헌한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2년에는 대리공사로 임명되었고, 곧 다시 연합군의 일본 전범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주재 참사관으로 전보되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바티칸의 엄호로써 전범 석방에 혼신 노력하여 1953년 필리핀독립 기념일에는 전원 사면과 석방이라는 특사를 얻어내어 국내외에 경탄과 칭송을 받았다. 그 뒤로 이어서 미국 호놀룰루 총영사, 외무성 유럽 아시아국장, 뉴욕 총영사, 칠레, 폴란드 대사 등으로 활약하다가 1968년 한국대사로 전임되었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추진 계획의 초기였는데 그는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그 정황을 소상히 파악한 후 한국산업 근대화에 국교적 차원을 초월하여 협력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의 각계각층의 인사와 인간적 친화를 통해 신뢰와 우애를 다져 나아갔다. 1972년에는 4년간에 이르는 한국 주재를 마치게 되었는데 그는 귀국 후 파리주재 일본 관장 등의 직책을 제의 받았으나, 이를 물리치면서 ‘나는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일한양국 친선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아 앞으로 죽는 날까지 그 일에 헌신할 것이다’라고 하고, 이를 내외에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의 실천으로 1973년 동경한국연구원 최서면(崔書勉) 원장을 찾아서 참여를 자원하여 동원의 이사로 취임함과 더불어 국제공동연구소를 병설하고 그 초대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한일관계의 친화를 굳히는데 힘을 기우리고, 아울러 한국의 국제적 선양에 이바지하였다.

 

이렇듯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여 마지않던 그가 1997년 11월 1일 이승을 떠나니 향년 88세였다. 평생에 추구하고 실천한 가톨릭 적 박애주의의 완수, 그것이 곧 그의 생애이었다. 고인은 생전 유족에게 거듭 ‘나의 시신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뒤 유족을 비롯해 이제까지 그를 그리고 기리는 한일 양국 간의 친지들이 이렇듯 여기에 무덤을 짓고 우정의 징표로서 돌 하나를 세우는 바이다. 1998년 8월 28일. 글 구상, 글씨 김단희>“

 

한일 간 어지러운 이때 가나야마 마사히데 전 일본 대사를 추모하는 추모식이 준비되고 있다. 황학수 추모식봉행위원회 위원장(전 의원)이 주도하며, 오는 8월17일 오전 10시 유택 앞에서 진행된다.

 

그의 유언이 오늘날 한일 양 국민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나의 시신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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