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중의 제일은 어떤 복일까요?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했는데...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19/07/12 [14:19]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생전 보지도 못한 남남인데 글로 만나 이렇게 즐기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문학가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용수(龍樹 : 150~250년경)보살은 <중론(中論)>에서 ‘이 세상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즉, 인(因)과 연(緣)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악이 연을 만나면 악과(惡果)를 얻을 것이며, 선이 연을 만나면 선과(善果)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지요.

 

어쨌든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고,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이 되든지 때론 악연이 되든지 하는 것은 그 후의 인연과(因緣果)에 의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만남의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모든 것이 만남의 연속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을 통해서 결정됩니다. 여자는 좋은 남편을 만나야 행복하고, 남자는 좋은 아내를 만나야 행복합니다. 그리고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실력이 생기고, 스승은 뛰어난 제자를 만나야 가르치는 보람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자식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잘 만나야 합니다. 또 윗사람은 부하를 잘 만나야 하고, 아래 사람은 윗사람을 잘 만나야 승승장구(乘勝長驅)합니다. 이처럼 인생에서의 만남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연한 만남이든 섭리 적(攝理的) 만남이든 만남은 중요합니다. 인생의 변화는 만남을 통해 시작됩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중에 어떤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 될까요? 정산(鼎山) 송규(宋奎 : 1900~1962) 종사께서는「복 중에는 인연 복(因緣福)이 제일이요, 인연 중에는 불연(佛緣)이 제일이니라. 오복(五福)의 뿌리는 인연 복이니, 부지런히 선근자(善根者)와 친근 하라.」하셨습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오복을 갖추고 살면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예로부터 오복이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마다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복 받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의 뿌리가 인연을 잘 짓는 것이라는 말씀과, 복 가운데 인연 복이 으뜸이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복이 나오는 출처는 크게 보면《사은(四恩)》입니다. 진리 즉, <천지(天地)⦁부모(父母)⦁동포(同胞)⦁법률(法律)>로부터 복을 받기도 하고 죄가 있다면 벌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이 나오는 문(門)과 죄벌(罪罰)이 나오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은 하나입니다. 자신이 지은 바에 따라 죄도 나오고 복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죄와 복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과의 인연을 소홀히 하겠습니까? 그리고 진리적으로 영생을 생각한다면 물질적인 복보다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복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현(聖賢)을 늘 가까이 모시고 받들며 섬기는 인연을 맺어두어야 제도(濟度)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능력과 제도의 방편을 갖추신 분도 인연이 없는 중생은 제도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어찌 인연을 범연히 생각할 일이겠습니까!

 

제가 이생에서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일원대도(一圓大道)》를 만난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천방지축(天方地軸)의 삶에서 사랑하는 도반(道伴) 동지(同志) 그리고 우리 <덕화만발> 가족을 어찌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불연(佛緣) 잘 맺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안고 태어났어도 토양(土壤)이 좋지 않다면 잘 자라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지나 갑니다. 그중에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불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불법(佛法)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불심(佛心)이 장하지 못하면 사실은 아슬아슬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주위에 불연 깊은 인연들이 도처에 많다면 수월하게 공부 길도 잡을 수 있고, 영생 문(永生門)도 훤히 열릴 것입니다.

 

우리 정말로 좋은 인연들을 만나야 합니다. 세계는 넓고도 넓습니다. 그 수많은 생령(生靈)들 속에서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드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항상 주어지는 기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성불을 못한 범부 중생으로 머물러 심신의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나보다 승(勝)한 선근자(善根者)와 친근하고 좋은 인연을 맺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인연은 살았을 때는 나의 앞길을 열어주고, 죽어서도 천도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영생의 기연(奇緣)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는 인연 복이 제일이고, 인연 중에는 불연이 제일’이라 하신 것이지요.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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