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사전연명거부 의료의향서

살고 죽는 일이 제일 큰일일 것입니다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19/06/18 [07:55]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무슨 일이 가장 큰일일까요? 그것은 아마 살고 죽는 일이 제일 큰일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생사대사(生死大事)라 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 입니다.  생각에는 죽음에 임박하면 정든 내 집, 내 침대에서 품위 있게 죽는 것이 최고라는 상각이 듭니다.

 

저는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늘 상 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좌탈입망(座脫立亡)의 경지는 못가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사전연명거부 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마음을 먹고 제가 다니는 일산병원에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이미 사람들이 몰려 겨우 8월 달에야 차례를 얻었습니다. <사전연명거부의료의향서>란 생명의 연장을 위한 특정치료방법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밝힌 공적 문서를 말합니다.

 

의학적 치료에 관한 의사 결정 능력이 있을 때, 자신의 연명 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 남겨,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2016년 2월 3일 공포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으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법제화 된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월 7일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의향서를 작성할 때 등록증 발급도 함께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가 없습니다. 따라서 임종(臨終)과정만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중이지요.

 

어떻습니까? 생사가 대사라는데 죽음에 임박해 몸에 파이프 꽂고 버티긴 싫습니다. 이미 5월 말 현재 ‘연명의향서’ 작성자가 2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연명의향서는 자신이 연명 의료를 받을 경우를 대비해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작성해두는 것입니다. 임종에 임박하면 자식들도 경황이 없어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을 얘기하면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 같으며,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生滅)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해가 오늘 비록 서천(西天)에 진다할지라도 내일 다시 동녘하늘에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만물이 이생에 비록 죽어간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떠나는 그 영식(令息)이 다시 이 세상에 새 몸을 받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죽음이 그리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죽음의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죽음에 다다라 창황경조(愴荒驚譟)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에 종종걸음을 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잠시 외출을 하려 해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태어나는 길도 어려우나 죽음의 길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생사의 도’를 늘 연마하여 미리 실력을 쌓아 두어야 합니다.

 

<생사의 도>

 

첫째, 착심(着心) 두는 곳이 없이 걸림 없는 마음을 늘 길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생사가 거래(去來)인 줄 알아서 늘 생사를 초월하는 마음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마음에 정력(定力)을 쌓아서 자재(自在)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넷째, 평소에 큰 원력(願力)을 세워 놓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블랙홀의 사진을 찍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찬 가지로 ‘도학문명’도 생사를 해결하는 데까지 다다랐지요. 이제 우리도 매일매일 생사를 연마하는 시간을 정하고 끊임없는 적공(積功)을 들여야 생사대해(生死大海)를 무난히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사계(四季)는 ‘생로병사(生老病死)’입니다. 그 시작은 분명 ‘생’(生)’이지요. 그러나 잘 죽어야 잘 태어남으로 인생의 사계를 ‘사생병로(死生病老)’로 바꿔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의 차이는 겨울을 1년의 시작으로 보느냐 마지막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을의 수확이 엄청나게 다른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1월은 분명히 겨울이니 겨울을 1년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고, 12월도 겨울이니 겨울을 1년의 마지막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겨울을 1년의 시작으로 보는 농부는 겨울 내 객토(客土)도 하고 농사준비 기간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게으른 농부는 겨울 내내 움 추리거나 사랑방에서 노름이나 하며 보냅니다. 그러나 추수에서 두 농부의 차이는 엄청날 것입니다.

 

장수국가 일본은 벌써 ‘웰빙’ 보다는 ‘웰다잉’의 나라가 되어 죽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소식입니다. 시내 곳곳에 ‘웰다잉 다방’이 있고, 사찰은 이미 무병장수를 비는 사찰보다는 ‘9988234’를 축원하는 ‘핀코르’ 사찰이 유행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새 삶’만큼 ‘새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서경(書經)》<홍범편(洪範篇)>에는 오복(五福)의 하나로 아름다운 죽음, 즉 ‘고종명(考終命)’을 5복의 완성판으로 언급합니다. 고종명은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말처럼 ‘9988234’가 쉬울까요?

 

아닙니다. 평소에 죽음에 대한 연마 없이 고종명을 바랄 수 없습니다. 우리 생사연마의 일환으로 미리미리 <사전연명거부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면 어떨까요!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