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 지쳤을 때, 문득 어딘가 로 정처없이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러시아에는 우리나라의 화병처럼 정식병명으로 등재된 "히스테리카 시베리아"란 병이 있다.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은 황혼이 너무도 아름다워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부들 중에는 일을 하다가 저녁 무렵 문득 그 황혼에 취해서 말없이 곡괭이나 삽을 그 자리에 꽂아둔 채 무작정 지평선을 향해서 몇날 며칠을 넋을 잃고 걷다가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일종의 실종 신드롬이다 .
사람을 홀리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혼을 빼앗을 만큼 아름다운 황혼이 어찌 시베리아 벌판에만 있으랴?
멀쩡한 대낮에도 우리는 넋을 잃고 헤매며 몰락의 지평선을 향해 끝 없이 걷고 있지는 않는지 문득 발길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될 일이다.
*필자/배규원. 전 언론인. 문화 칼럼니스트.